아침공기가 상쾌하다. 울진에서 태백으로 가는 버스에 촌로가 자리를 찾다가 내옆자리에 앉았다. 815 해방 될 때 열서넛 이었다는 촌로는 기침을 연이어 하고있었다. 삼십년을 넘게 석탄 캔 흔적이 그의 손에도, 행색에도 보였다. 곰보자국난 얼굴을 가리고 이어지는잔기침이 말해주고 있었다. 기침이 쉬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태백에 있는 병원에서만 받을수 있는 진폐에 대한 산재처방이 오월 따스한날 그로 하여금 길을 나서게 하였을것이다. 백발의 머리가 기침을 할때마다 들썩였다. 그 광경은 매우 낯익은 풍경이었다
새벽 소풀을 지게에 가득메고 안개를 묻히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에게는 담배향이 진하게 났다. 달콤 짭짜름한 냄새는 듬직한 아버지의 어깨와 굵은 팔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게작대기로 지게를 받치고 첫번째 하시는 일이 담배에 불을 댕기는 일이었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새벽공기를 타고 오르고 답배를 입에 물고 외양간을 들여다 보는 것이 두번째 일이 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기침은 외양간부근에서 항상 시작하는 것 같았다. 좀 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기침은 10~15분 동안 폐부를 온통 뒤집어놓고서야 잦아 들었었다.
촌로가 말을 이었다 “한참 탄캘적에는 사람도 많고 사방이 갱도 였었는데그래도 함백산은 푸른숲이 한창이더만요.” 말을 가녀리게 이어가던 촌로는 다시 마른기침이 이어졌다..
사나흘 전이다. 운탄로를 같이 가보지 않을텐가? 라는 짧은 친구의 소식은 나를 충분히 움직이게 하였다. 아무것도 준비된것 없이 떠난 이번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백에서 시작하여 함백산 만항재까지 강원도의 비탈은 두바퀴의 울림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구절양장의 언덕길은 강원도의 힘이런가,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뒤에 따라오는 친구가 걱정이다. 뒤돌아 내려갈까 하는 생각은 다시 올라와야 하는두려움이 덮는다.
너와 나 사이
백산 탁영준
세상에서 제일로 먼 너와 나 사이
내가가면 1초
니가오면 1년
오르고 또 오르고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지천으로 덮힌 야생화 옆자리에 친구와 별 하나에 소주 한 잔으로 밤을 보낼수 있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유년시절의 짧은시간은 단지에서 콩을 다 들어내지 못할 만큼의 추억이 만들어진다.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지낼수 있는 대상도 대부분이 그들이다. 우정이라는 따뜻한 말로 통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세상이 있다. 함백산 만항재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북두칠성이 머리위에서 빛을 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일부러 늑장을부렸다. 아무것도 바쁠것이 없었고 아무도 서두르라말하는이 없었다. 더구나 텐트 밖의 야생화들은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기에 서두른다는 것은 그들의 대한 예의가 아는듯 하였다.
이슬과 서리가 공존한 차가운 아침은 산의 또다른 맛을 느끼며 굴렁쇠를 굴릴수 있었다
강원도라 비탈진 골마다 인적이 남아있고 틈마다 세월을 짊어진 민가가 바람을 이기려는듯 버티고 있었다.민초의 힘겨운 삶이 비탈의 잡초처럼 끈질기다라고 말하는듯 하였다 오월의 햇살은 산산이 부서져 어깨로 내리고 오랫동안이야기하지 못했던 친구도 말을 아꼈다.
촌로의 말대로 함백산은 초록옷을 입고 파란 하늘을이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진폐의 흔적은 찾을수 없었고 더구나 그 멀쩡한 함백산 속에 구절양장처럼 얽히고 섥힌 갱도를 품고 있다는 것은 더욱 실감이나지 않았다. 간혹 임도에 검은색의 흙이 보이고, 산 중턱에 광산 폐수를 정화하는 인공물에서 촌로의 기침은 계속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했다.
영월에서 친구를 떠나보내고 고독속으로 나를 가두려제천을 거쳐 새로운 여울나루 신탄진으로 향했다.
홀로 여행중 나를 환영하는 곳이 불가마 뿐인가 타지에서 늘 찾는것은 불가마24시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여자나 남자나 궁둥이 맞대고 하루밤 유할수 있는곳, 여관, 모텔이 여행자보다 다른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많아지고 난후, 이방인이 즐겨 찾는 곳이 되어버린 찜질방은 늘 그렇듯이 허리나 지져볼 요랑으로 놀기 삼아온 아줌마들과 가족단위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쉽사리 잠이들지 못했다.
잠이 어찌 깊이오겠는가? 120km
이른 아침 부지런해보이고 후덕해보이는 아줌마네 김밥집에 들러 도시락도 싸고 이른 아침을 먹었다. 태백산을 다녀왔음인지 허벅지는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여행이 이어질까? 맞은편 거울속에 한녀석이 나를 격려하는듯 내 행동을 따라하고 있었다.
거울
백산 탁영준
억지 웃음 짓지마
괜찮은 척 하지도 말고
입도 삐죽거리지마
아무리 그래도
넌 나랑다른
왼손잡이야
06:00 금강종주길(대청호~군산하구둑) 대청호를 출발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비단이라 불렸을까, 골골이 쏟아져 돌을깍은 아픔들은 금강에 도달해서야비로서 여유를 가지는 듯하다.
때마침 아침햇살은 초록풀잎으로 떨어져 산란되고 강물은 하늘을 그대로 품어 검푸르게 보였다. 그 아래 인간의 조형물들이 합인듯 불합인듯 놓여져있었다, 백제고도 부여를 휘돌아 공주로 이어지는 금강의 자전거길은 녹음으로 이어져 분간이 어려웠던 낙화암과 노래소리가 들릴것 같은 고란사를 품었다 폭발사고로 머리에 각인되어 있던 익산을 지나 일제강점기에 호남의 양곡들을 일본으로 빼돌리던시절 군수창역활을 했던 군산의 금강하구둑은 여행자의 금강종주를 아무말이 없었으나 강력한 맞바람으로 곤혹스럽게하며 손톱만한 자존심을 지키고있는듯 했다
금강은 여전히 구석구석 앙칼진 손톱으로 땅을 파고물을 얻어 서해로 서해로 보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금강
백산 탁영준
천갈래 만갈래 앙칼진 손톱으로 땅을 파 군산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 일은 일제강점기도 있었다.
서해는 비단강을 모른척 유유하더라
주행거리 143km 군산은 포항의 정서쪽이다. 지금 군산 포항고속도로도만들어지고 있는데 내겐 늘 미지의세계로 남아있었다.군산에서 광주가는 버스를 탔다. 광주에는 아주 어린시절 추억을 공유했더 친구가 있다. 애인기다리듯한 마음으로 기다렸다는 친구와 이별은 짧을수록 좋고 미련이 있어야 반갑다는 너스레를풀고 목포로 향했다 짧지만 속이 보였고 진정으로 반가워함이 느낄수 있어서 행복했다. 언제 한번은 가고야 말겠다 마음먹었던 목포에 도착했다 전날 군산 부근에서 심한 맞바람에 고생했던 기억으로인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람이 도와주려나 하는 일말의 기대가 나를 목포로 오게했다.
첫댓글 카페에서 또한 길을 만들고 있구나.
걸어 온 길은 내일 갈 길을 가리켜주는 방향타.
용타..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