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의 권(焚書의 券)
-법정 스님-
지리산에 있는 쌍계사 탑전 塔殿! 그곳에서 나는 16년 전 은사 효봉曉峰 禪師를 모시고 단둘이 안거를 했었다. 선사에게서 문자文字를 통해 배우기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한 권밖에 없지만, 이곳 지리산 시절 일상생활을 통해서 입은 감화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시절 내가 맡은 소임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진 시간이 되면 착실하게 좌선坐禪을 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탁발托鉢(동냥)을 해 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50리 밖에는 구례求禮 장을 보아왔다.
하루는 장에 갖다 돌아오는 길에 소설을 한 권 사 왔었다. 호손의 <주홍글씨>라고 기억된다. 9시 넘어 취침 시간에 지대방(고방)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 놓고 책장을 펼쳤다. 출가한 후 불경 이외의 책이라고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던 참이라, 그때 그 책은 생생하게 흡수되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선사는 읽고 있던 책을 보시더니, 단박 태워 버리라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出家’가 안 된다고 했다 불연세속不然世俗을 출가라고 하니까.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워 버렸다. 최초의 분서焚書였다.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 거기에서 얻은 것은 하나의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응시自己凝視 여과 가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전까지 나는 집에 두고 나온 책 때문에 꽤 엎치락 뒤치락거렸는데 이 분서를 통해 그러한 번뇌도 함께 타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풋내기 사문沙門에게는 온갖 분별을 조정하는 그런 책이 정진의 방해될 것은 물론이다. 만약 그때 분서의 권이 없었던들 책이 짓눌려 살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