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동치는 '빌바오 구겐하임' 앞뒤·좌우 명확하지 않고 바닥이 수평도 아니고 벽은 수직으로 솟지도 않아 어느 방향서 보든 독특·생생 - 이제는 방향성보다 변동성 변동성이 커지느냐 작아지느냐에 따라 손익 인내 갖고 오래 기다려 줄 참을성 있는 자본이 중요
▲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건축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는 '형태'와 '공간'이다. 겉으로 드러난 형태를 중요시하는 건축이 있는 반면, 내부 공간을 우선시하는 건축도 있다. 아무래도 형태가 강조되면 예술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건축은 규모가 크고 안전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각처럼 자유롭게 예술성을 표현하기 힘들다. 복잡하고 뒤틀리고 기울어진 조각은 흔히 볼 수 있어도 그런 건물을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런 상식에 과감히 도전하는 건물이 있다. 바로 프랭크 게리(Gehry)가 설계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철강과 조선업 쇠락으로 죽어가던 도시 빌바오를 다시 살려낸 미술관, 미술 작품보다 더 예술적인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건축적 관점에서 이 미술관은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먼저 이 건물엔 방향성이 없다. 앞뒤, 좌우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장미꽃에 비유하자면 꽃잎들이 살짝 겹치면서 사방을 향해 펼쳐질 뿐 지배적인 방향성이 없다. 또한 바닥이 수평도 아니고, 벽이 수직으로 솟아 있지도 않다. 비틀어져 옆으로 쓰러질 듯하다.
방향성이 중요한 시대에서 변동성이 중요한 시대로
이 미술관의 특이성은 공간 창출 방식의 특이성, 즉 리좀(rhyzome)적 공간 창출 방식에 기인한다. 리좀이란 중심이나 위계질서 없이 줄기와 뿌리가 땅속으로 뻗어가는 땅속 줄기식물을 의미한다. 몸통, 줄기, 뿌리의 위계질서가 뚜렷한 일반 나무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전체를 위계화하고 통합하는 규율 없이 파편적 부분들이 자유롭게 모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부분 공간들이 독자적 개성을 갖고 있고, 어느 방향에서 보건 독특하고 생생하다.
투자 전략에 비유해 보면 일반적 건물은 앞뒤와 좌우의 방향성이 명확한 '방향성 거래(direction trading)'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방향성이 통제되고 사방으로 요동치는 '변동성 거래(volatility trading)'다. 주가(또는 이자율)의 상승이나 하락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변동성이 커지느냐 작아지느냐에 따라 손익이 결정된다. 전문적 용어로 표현하면, 방향성을 나타내는 델타(Δ)를 통제하고, 변동성과 관련된 감마(Γ), 베가(ν), 세타(θ)를 조정해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최근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출구 전략을 언급함에 따라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 당분간은 좋든 싫든 커진 변동성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 변동성이 큰 시대엔 변동성을 거래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이나 금융 모두 '방향성이 중요한 시대'에서 '변동성이 중요한 시대'로 변해 가고 있다.
깊게 파려면 넓게 파고, 넓게 파려면 일찍부터 파라
건축이든 금융이든 새로운 것을 설계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설계자, 설계를 지원하는 인프라, 그리고 자본이 그것이다.
먼저 설계자 프랭크 게리를 보자. 어렸을 때 그의 할아버지는 유대인 명절을 치르기 위해 싱싱한 물고기를 사 와 큰 어항에 넣어 두곤 했다. 어린 그는 물고기의 다양한 형태, 펄떡이는 생동감 특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물고기 비늘에 매료되곤 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요동치는 생동감과 티타늄을 입혀 비늘같이 빛나게 만든 외관은 모두 물고기를 보고 키운 상상력이 발현된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설계자로 선정된 자하 하디드(Hadid)도 마찬가지다. 액체처럼 흐르는 형태의 건물로 유명한 그녀는 이라크에서 태어났으며, 바람이 불면 매일 모습이 변하는 모래사막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건축뿐 아니라 경제·금융 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깊이 파려면 우선 넓게 파라는 말이 있다. 넓게 파려면 일찍부터 파기 시작해야 한다.
설계 혁신의 둘째 요소는 인프라 혁신이다. 건축에선 설계 소프트웨어와 재료가 중요한 인프라다. 소프트웨어 '마야(Maya)' 같은 컴퓨터 지원 설계(computer aided design)가 없었으면 꽃처럼 피어나고 요동치는 건물 설계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료 혁신도 마찬가지다. 티타늄 활용과 용접 기술이 없었으면 비늘처럼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건물을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산 투자가 어려운 시대엔 참을성 있는 자본이 중요
셋째가 자본이다. 신비로운 건물일수록 자본이 많이 든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처음 계획보다 10배 이상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를 몇 번씩 바꾸었기 때문이다. 인내를 갖고 끝까지 지원해 준 철강 재벌 구겐하임 재단이 없었으면 미술관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축이든 경제든 새롭다는 것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말이다. '참을성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의 역할이 그만큼 긴요하다. 창조성과 참을성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의 메디치가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가 밀접히 연결되면서 모든 국가, 모든 자산의 상관계수가 높아졌다. 분산 투자만으론 위험 관리가 어려운 시대다. 국가든 기업이든 오래 견딜 수 있는 참을성 있는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용어 설명
델타: 기초 자산의 가격 변화에 대한 파생 상품의 가격 변화 정도 감마: 기초 자산의 가격 변화에 대한 델타의 변화 정도 베가: 기초 자산의 변동성 변화에 대한 파생 상품의 가격 변화 정도 세타: 시간 경과에 따른 파생 상품의 가격 변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