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편견, 비극으로 뒤섞인 우리 시대의 자화상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의 대표작
치명적 비밀을 가진 남자, 위험한 과거를 지닌 여자……
다시 한번 과거는 그들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필립 로스,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를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꼽은 바 있다. 미국 문학에서 필립 로스의 이름은 거대한 산맥과 같다. 1960년 첫 소설집 『안녕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삼십여 편이 넘는 장편과 이십 편이 넘는 단편을 써왔고, 퓰리처상을 비롯 미국 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스무 차례나 수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필립 로스. 그를 빼고 미국 현대문학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은 미국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2000년에 발표한 『휴먼 스테인』은 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로 떠들썩했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도덕적 위선과 폭력 등으로 얼룩진 현대 미국 사회의 음울한 표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미국 사회에 여전히 잔재하는 인종, 계층 갈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집단에 의해 난도질당한 개인의 상처를 쓰다듬는 한편 이른바 ‘오점 없는 사람들’의 위선과 분노를 비판한다. 삶의 아이러니와 비극성이라는 테마가 시종일관 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다. 필립 로스는 이 작품으로 2001년 펜/포크너 상을 수상했고, 2002년 프랑스 메디치 해외 도서상, 전미 도서재단 메달을 받았다.
◈ 작품 소개
출간 당시 ‘필립 로스 최고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은 『휴먼 스테인』은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의 병폐를 낱낱이 파헤치며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개인들의 갈등과 고뇌를 다루고 있다.
미국 뉴잉글랜드 시골을 무대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로 떠들썩했던 1990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의 화자는 네이선 주커먼이라는 예순다섯 살의 작가다. 주커먼은 버크셔 산악 지대의 한 호숫가 오두막에서 외부와의 인연을 마다한 채 집필에만 전념하던 작가였지만, 아테나대학의 교수이자 오랫동안 학장을 지낸 콜먼 실크가 그를 찾아오면서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평온함도 막을 내린다.
은퇴를 얼마 앞두지 않은 나이에 강의실로 복귀한 콜먼은 출석을 부르는 동안 수업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두 학생을 무심코 유령들(spooks)이라 지칭한다. 그런데 하필 두 학생이 흑인이었고, spook이라는 단어가 ‘검둥이’라는 뜻의 속어이기도 한 탓에 인종차별을 했다는 혐의를 받자, 그는 그 문제를 해명하고자 맞서다가 결국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사직해버린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아내마저 심장마비로 죽자 콜먼 실크는 그런 거짓된 비난의 전말을 책으로 써서 세상에 알리겠다며 작가 주커먼을 찾아온 것이다.
아내가 죽은 후, 자식들도 다 떠난 집에서 혼자 지내던 콜먼은 자신이 재직했던 대학의 청소부로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 보이고 문맹인 서른네 살의 여자 포니아 팔리와 애인 사이가 된다. 젊은 여자와의 사랑으로 생의 활기를 되찾은 콜먼은 포니아를 삶의 구원자로 여기고 깊이 사랑하지만, 여교수 델핀 루는 은퇴한 학장이 청소부 여인을 성적으로 농락하고 있다고 음해하고, 주변 사람들 역시 이들의 만남을 파렴치한과 성적으로 문란한 계집의 추문으로 여긴다. 포니아의 전남편 레스터 팔리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로, 전쟁 경험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사회에 적응 못하는 광포한 인물이다. 이 레스터 팔리가 두 사람의 뒤를 밟으면서, 결국 콜먼과 포니아는 이 남자가 유도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두 사람의 사후, 주커먼은 자유로운 삶,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뿌리를 잘라내야 했던 콜먼의 아이러니한 진실을 찾아나선다.
허위와 아이러니로 얼룩진 미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
필립 로스는 『휴먼 스테인』 출간 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전후 미국인들의 삶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며, 그해 1998년은 미국인이 인내해야 했던 가장 곤혹스런 시기이자 미국의 정신적 죽음을 알리는 시기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작품 초반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미국에서의 그해 여름은 혐오감이 재발했던, 대통령의 사생활을 소재로 하는 조크가 끊이질 않았던, 그리고 억측과 이론화, 과장이 난무했던 계절이었다. 어른들의 생활에 대해 아이들이 계속 환상을 갖도록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생활이 얼마나 추잡스러울 수도 있는 것인지 설명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저버렸던, 인간은 떳떳치 못한 존재라는 점이 너무도 간단하게 결정나버렸던 계절이었다. (…) 그해 여름은 대통령의 성기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었고, 부끄럼을 모르는 온갖 추잡함으로 얼룩진 인생이 다시 한번 미국 전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던 계절이었다. (1권 14~15쪽)
이웃인 콜먼 실크가 일흔한 살이나 된 자신이 아테나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서른네 살 먹은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1998년 여름이었다. (1권 11쪽)
이 작품에서 화자 주커먼은 1998년 그해 여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 분노한 미국인의 도덕적 판단과 전임 학장 콜먼 실크에게 도덕적 질타를 가하는 아테나대학의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대비시킨다. 대통령인 클린턴을 탄핵하고자 하는 욕망과 콜먼을 대학에서 추방하고자 하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퓨리터니즘에서 비롯한 것이다. 클린턴을 조롱하고자 했던 상원의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면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더욱 확대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아테나대학의 교수들 역시 자신들의 위선을 숨기고 대학에서의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콜먼에 대한 아테나대학의 반응은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주홍글자』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감옥에서 나와 마을 사람들을 대면했을 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감옥 밖에서 한 여자는 헤스터의 이마에 뜨거운 쇳물을 퍼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헤스터의 아름다움에 질투를 느낀 또다른 부인은 그녀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스도 『휴먼 스테인』에서 호손처럼 ‘오점 없는 사람들’의 위선과 분노를 지적한다.
순수함에 대해 환상을 갖는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미친 짓이다. 보다 많은 불순함을 찾아내지는 못할지언정, 순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들다니 무슨 짓이란 말인가? 오점에 대해 그녀가 하는 말은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전부다. 당연히, 그것은 오점이라는 것에 대한 포니아의 견해다. 우리 인간은 불가피하게 오점을 지닌 존재라는 것. (2권 77~78쪽)
화자 주커먼이 “(호손) 이 사람은 1860년대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고 서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헤스터를 비난했던 마을 사람들과 콜먼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도덕에 대한 맹종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오점을 남기고, 우리는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자국을 남긴다……
『휴먼 스테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네이선 주커먼은 콜먼의 시련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주커먼은 콜먼의 삶에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인종 문제, 계층의 갈등 문제, 그리고 사회의 위선과 편견 등의 문제가 얽혀 있음을 하나둘씩 알게 된다. 콜먼은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위장된 삶을 영위하지만, 이로 인해 가족들과 완전히 결별하게 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있단 말이냐? 그래? 내가 택할 수 있는 게 뭐냐, 콜먼?”
“저랑 의절을 하는 거죠.” (1권 254쪽)
콜먼이 백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하자,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넌 피부는 눈처럼 새하얗지만 생각은 노예처럼 하는구나” 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자식과의 결연을 쓰디쓰게 자조한다. 삶의 비극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콜먼은 결국 흑인 가족을 버리고 유태인 행세를 하며 성공과 명예를 누리지만 동시에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삶을 살아간다.
콜먼의 애인인 포니아 팔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혼자서 즐겨 찾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오듀본협회를 찾은 그녀는 콜먼 앞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는 여인이 아니라 상처와 절망으로 피 흘리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포니아의 절망은 두 아이의 죽음이 떠안긴 죄책감과 평생 겪어온 슬픔과 고통에서 비롯한 것이다. 어렸을 때 계부의 성폭행을 피해 가출한 그녀는 계속 가학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지만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전남편 레스터 팔리는 광기에 사로잡혀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과정에서 알게 된 한 남자와 차 안에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을 때, 집 안에 불이 나 사랑하는 두 아이들이 어처구니없이 죽게 되자 그녀는 거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녀는 사람 손에 길러진 까마귀 프린스에게 자신의 삶을 이입하며 콜먼이 선물한 오팔 반지를 까마귀의 새장 안에 슬그머니 밀어넣는다. 야생동물인 까마귀가 사람 손에 길러졌다는 사실은 까마귀에게 커다란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점을 남기고, 우리는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자국을 남긴다. 불순함, 잔인함, 능욕, 실수, 똥, 정액, 이런 것 말고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라곤 없다. (2권 77쪽)
필립 로스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해 피력하면서 콜먼과 포니아를 비난하는 무리들을 공격하고 있다. 인간이 오점을 가질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불행하게도 그게 바로 우리 실존의 증거인 것을.
잘못된 과거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휴먼 스테인』에서 포니아는 치명적 과거를 지닌 콜먼을, 콜먼은 위험한 과거를 지닌 포니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포니아는 광포한 전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고, 문맹자인 양 행세해야 했다. 콜먼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백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콜먼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젊은 여자를 능욕한 파렴치한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한 오류를 범했다. 그는 자신의 흔적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자신을 소멸시켰고 모두가 자신을 망각하도록 했다. 그로써 그는 부모와 형제에게는 잊힌 존재가 되었고,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과 개인 역사에 대해 아내와 자식들에게까지 비밀로 했다. 인종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사회가 콜먼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겼던 셈이다. 세간의 통념이 무모하게 적용될 때 개인의 도덕적 진실은 무참하게 짓밟힌다. 또한 유행하는 사상과 집단적 선동 앞에서 판단력이 마비된 대중들은 맹목적 폭력을 정의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휴먼 스테인』은 미국 사회와 정치가 앓고 있는 증상을 진단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로스는 그 어떤 정치적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작품 속에서 미국이 앓고 있는 증상 자체를 개선하고 치유하고야 말겠다는 집념 어린 태도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런 증상을 통해 오늘날 얼룩투성이 인생을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삶에 대해 반성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잘못된 과거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점 없는 삶이란 진정 불가능한 것일까? 누구든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문해볼 법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