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주전포수 조인성은 해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포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하며 타자로서의 조인성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올 시즌은 포수로서의 조인성을 실력으로 증명 중이다(사진=LG) |
20승 15패 승률 5할7푼1리. 5월 15일 현재 LG의 성적이다. 팀 타율 2할7푼4리는 리그 1위, 팀 평균자책 3.94는 4위다. 안정된 투·타를 기반으로 LG는 3.5경기 차로 1위 SK를 쫓고 있다.
지난해 같은 경기수를 소화했을 때와는 ‘영’ 딴판이다. 당시 LG는 14승1무 20패 승률 4할1푼2리로 5위에 그쳤다. 팀 타율은 2할4푼2리로 꼴찌였고, 팀 평균자책은 4.92로 6위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LG는 1년 만에 이토록 다른 팀이 된 것일까. 분석은 다양하다. 야구전문가들은 대체로 수준급 외국인 투수 영입으로 인한 선발진 강화,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 강화, 선참 선수들의 분전 등을 선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박종훈 감독이야말로 LG 상승의 원동력으로 평가받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부 야구전문가는 ‘숫자’보다 LG 선수들의 ‘고급 플레이’에 주목할 것을 당부한다. 포수 조인성(36)이 대표적이다.
위장 플레이로 팀을 구한 조인성
한화 전현태를 태그아웃하는 장면. 전현태와 조인성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사진=LG) |
12일 잠실 한화와 LG전. 전날 9회 한화 장성호의 역전 2점 홈런으로 다 잡은 승리를 내준 LG는 ‘오늘 경기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선발 봉중근의 호투로 8회까지 LG는 1대 0으로 리드했다. 그러나 9회 초.
한화는 2사 1, 2루의 기회를 잡으며 LG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LG 마무리 김광수와 한화 이양기는 팀 승리를 위해 한치도 양보 없는 접전을 펼친다. 그러나 이양기의 좌전안타가 터지며 승부는 동점이 되는가 싶었다. 2루 주자가 발 빠른 전현태이기에 동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좌익수 이병규의 송구는 예나 지금이나 빠르고 정확했다. 결국, 3루를 돌아 홈으로 파고들던 전현태는 LG 포수 조인성의 블로킹에 막혀 태그아웃됐다.
이 경기를 지켜보던 야구관계자들은 “전현태가 포수를 밀치는 보디체크를 해야 했었다”며 “최소한 포수의 다리 사이로 슬라이딩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대주자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전현태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전현태가 보디체크나 포수 다리로 슬라이딩을 시도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돌며 슬라이딩을 한 건 조인성의 위장 플레이 때문이었다.
조인성은 경기가 끝나고 이렇게 말했다.
“전현태가 뛰어오는 걸 봤다. 만약 송구가 느리거나 부정확했으면 홈을 비워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병규 선배의 송구가 빠르고 정확하게 오고 있었다. 만약 이때 송구받을 채비를 했다면 전현태가 보디체크를 시도했을 것이다. 원체 탄력이 붙은 상태라, 충돌했다면 아웃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는 척을 했다. 대신 다리를 벌려 주자가 슬라이딩할 공간을 남겨뒀다. 다행히 공이 주자보다 일찍 도착했고, 오른쪽으로 돌던 전현태를 태그할 수 있었다.”
조인성의 재치있는 위장 플레이로 LG는 전날 패배를 되갚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다음날에도 조인성은 위장 플레이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임찬규의 마지막 투구, 그 이면의 진실
13일 넥센전에서 세이브에 성공한 임찬규와 조인성(사진 오른쪽부터)악수하는 장면. 2009년 조인성은 "포수로서 두 가지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몸쪽 속구를 던질 줄 아는 투수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과 '사인을 스스로 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박종훈 감독은 부임 후 "조인성에게 전적으로 사인을 맡기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천했다. 지난해 조인성은 전력분석팀과 함께 매경기 분석에 들어갔고, 스프링캠프에서도 쉬지 않고 분석에 매달렸다. 올 시즌 조인성은 스스로 사인을 내며, 몸쪽 속구를 던질 줄 아는 투수들과 함께 하고 있다(사진=LG) |
13일 목동 넥센전을 앞둔 LG 박종훈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마무리 때문이었다. 박 감독은 “마무리 김광수가 자신 있는 투구를 하지 못한다”며 “(마무리 교체 여부를 두고) 고민이 많다”고 했다. 신중한 박 감독이 마무리 교체 여부를 입 밖에 꺼냈다면 이날 경기는 김광수에겐 마지막 테스트가 될 수 있었다. 사실이었다.
LG는 선발 박현준이 7회까지 1실점 하는 역투 속에 8회까지 넥센을 3대 1로 앞섰다. 9회 말 넥센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자 박 감독은 ‘김광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광수는 감독의 신뢰에 호투로 보답하겠다는 듯 연방 긴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2루타와 볼넷 그리고 좌전 적시타를 내주며 1실점 하며 2사 1, 2루 위기에 몰렸다.
박 감독은 곧바로 투수교체를 지시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김광수 대신 누가 등판할지 궁금했다. 이 정도 위기라면 경험 많은 베테랑 투수가 나올 게 자명했다. 게다가 타자는 한방이 있는 코리 알드리지였다. 하지만, 박 감독이 호명한 투수는 신인 임찬규였다. 의외였다. 임찬규의 능력과는 별개로 대개 신인들은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제구가 흔들리거나 폭투를 남발하게 마련이다.
아니나다를까. 임찬규는 연속 볼을 던지며 노스트라이크 투볼로 몰렸다. 초구는 속구, 2구는 커브였다. 그러나 3, 4구 속구가 스트라이크가 되며 볼 카운트는 투스트라이크 투볼이 됐다. 5구가 문제였다. 알드리지의 무릎 아래로 파고드는 낮은 쪽 속구를 던졌으나 볼로 선언되며 투스트라이크 스리볼이 됐다. 6구째 마지막 공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공 하나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릴 터였다.
“변화구를 던질 것으로 예상했다.” 박 감독의 예상은 그랬다. 공 5개 가운데 4개를 속구로 던졌으니 이번엔 변화구를 던질 줄 알았다는 뜻이다.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 사인을 낼지 알았다.” 임찬규의 예상도 같았다. 위력적인 속구를 연달아 선보였으니 이번엔 변화구 사인이 나올지 알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수 조인성이 변화구 사인을 낼 것을 대비해 변화구 그립을 잡았다.
그러나 백네트 뒤에서 경기를 지켜봤던 LG 김준기 전력분석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5회 알드리지가 박현준의 변화구를 받아쳐 안타를 기록했다. 8회에는 이상렬의 변화구에 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앞선 3타석까지 알드리지에게 속구는 2, 3개밖에 가지 않았다. 알드리지 입장에선 ‘LG 투수들이 날 변화구로 상대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할만 했다. 실제로 임찬규가 초구 속구를 던졌을 때 알드리지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알드리지가 변화구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조인성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6구째는 바로 속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조인성은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알드리지의 전 타석들을 모두 복기해봤다. 대부분 변화구로 승부했다. (임)찬규가 초구로 속구를 던질 때 배트가 나오지 않는 걸 봐선 역시 변화구를 노리는 듯했다. 그래서 6구를 몸쪽 속구로 사인 냈다.”
13일 LG-넥센전, 9회말 2사 1, 2루의 위기를 맞은 LG 임찬규의 투구 장면. 동영상 중간에 LG 포수 조인성이 홈플레이트를 손으로 쓸고가는 장면이 나온다(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하지만, 여기서 놓쳐선 안 될 장면이 있다. 사인을 내기 전 조인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홈플레이트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홈플레이트를 쓸었다. 대개 포수들이 이렇게 하는 건 ‘변화구 대비용’이다. 포크볼을 비롯한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의 제구가 잘못되면 포수 미트에 도달 전 홈플레이트에 닿게 마련이다. 만약 홈플레이트에 이물질이라도 있다면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포수들은 블로킹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홈플레이트를 쓸곤 한다.
알드리지가 ‘이번에도 변화구가 오겠구나’하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알드리지는 변화구를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조인성의 위장 전술이었다.
“일종의 위장전술이었다. 가뜩이나 변화구를 기다리던 타자였기에 더 큰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속구가 올 땐 홈플레이트를 쓸 이유가 없다는 걸 알드리지도 알았을 거다.”
알드리지는 조인성의 위장전술에 말렸다. 6구째 속구가 한가운데로 오는데도 스윙은 고사하고 체크스윙도 하지 못한 채 루킹삼진을 당했다. 조인성은 이틀 연속 재치있는 위장전술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조인성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우리 팀의 마무리는 누가 뭐래도 김광수다. 끝까지 (김)광수가 마운드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야구는 위장과 간파가 교차하는 스포츠다. 사인도 위장이고, 그 사인을 간파하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도 야구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흔히 야구를 ‘영리해야 성공하는 스포츠’로 부르는 것이다.
조인성은 영민함으로 팀의 이틀 연속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조인성뿐만이 아니다. LG 선수들은 여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영민한 플레이로 팀 승리에 헌신하고 있다. LG의 선전이 ‘일시적’일 것 같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