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해욱 신부 (예수회)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해보다 조금 일찍 사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느낌이 가장 큽니까? 이제 사십일 간은 좋은 일은 다 갔구나. 이 기간 동안 웃음을 삼가고 근신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면, 어떤 절제를 할 것인가? 어떤 희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십니까? 금연이나 금주를 생각하십니까? 단식을 생각하십니까?
단식이나 절제나 희생을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결코 오늘 복음에서처럼 자기가 단식을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울상을 지어야 하는 때는 아닙니다.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때가 언제입니까? 부활절이 결정되는 날에 따라 조금씩 시기가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합니다마는 대개 사순절은 해빙기에 시작됩니다. 절기로 입춘이 지난 때이지요. 봄이 오는 때입니다.
아직 겨울이 가지 않았지만, 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해빙기에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순절이 해빙기에 시작된다는 것을 상기할 때, 거기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는 사과 과수원집 아들입니다. 이 시기, 이제 추위가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멀어져 가고 봄의 소리가 얼음 밑으로 들려오는 이 시기가 오면 과수원은 바빠집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과수원에서 사과나무가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기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필요 없는 부분, 영양가 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지요. 바로 영양가 있는 곳으로 영양가를 모우기 위해서이지요. 새 생명을 위해 미리 죽어야 할 부분을 잘라내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 가지치기는 죽은 부분을 없애고 생명의 기운을 모우는 작업입니다.
사순절은 생명의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준비, 죽은 부분을 없애고 생명의 기운을 모우는 시기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순절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무엇이고, 생명이 아닌, 죽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때입니다. 생명을 위해 죽은 부분은 과감히 버리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한편 우리 안에 죽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제 하느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으시도록 마련해 드리는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봄의 손짓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이제 가고 있다고, 더 이상 겨울에 미련을 두지 말라고, 다시 말해, 우리의 옛 삶에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히 돌아서서 생명에로 우리 자신들을 열라고 초대합니다. 그 생명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승리하신 생명입니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가만히 속삭입니다. 마치 얼음 밑에서 흐르는 시냇물처럼 속삭입니다. 우리의 죽은 부분들을 뒤에 그냥 내버려두라고, 거기 미련을 두지 말라고 가만히 우리의 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여전히 남아있는 겨울의 파편들, 잔설들을 인식하되, 그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이제 그것들을 버리고 돌아서라고 속삭입니다. 눈부신 봄의 향연을 향해 몸을 돌리라고 속삭입니다. 바로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도록 준비하라고 들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삶의 “겨울”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과정들을 통과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겨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마치 죽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삶에서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은 시간들을 통과하기 마련입니다. 제게도 이 시기는 길고 힘들었습니다. 춥고, 어둡고 우울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춥고 어둡고 우울하고 지치게 만드는 시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으로부터 우리를 절연시키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 그 추위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과정임을 생각합니다. 겨울에 춥지 않으면 병충해가 심해집니다. 그런데 비록 추위가 필요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이 추위에 떨 필요도, 미련을 둘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이 추위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헤아릴 때, 그 추위가 우리 삶의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작은 빛을 밝혀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겨울의 추위가 밖으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삶에 닥쳐오지요. 저에게 뇌졸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들, 그 추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고 다만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아픔 뿐 아니라 실연을 당하기도 하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아닌 너무나 사랑하던 사람이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가족의 죽음을 맞아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겨울의 추위가 우리가 저지른 어떤 행위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탓이지요. 우리가 신뢰를 저버렸을 때, 약속을 깨뜨렸을 때, 친구를 이용했을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죽은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정신적인 아픔을 체험하기도 하고 깊은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우리 자신을 탈진 지경에까지 몰아가기도 하고 우리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겨울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메마르게 하거나 심지어 죽게 합니다.
이 음침하고 우울한 음계를 밟으며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계절의 징조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한다면,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서로 잘 화합하며 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동료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가 다소 위축되거나 이유 없는 분노가 일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아직 찬바람이 부는, 때로는 칼바람으로 살을 에는 겨울이지요.
우리가 자신에게 정말 진실하다면, 우리에게 이와 같은 겨울은 한 번 찬바람이 불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불고 또 불어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 안에서 겨울은 또 다시 우리 삶에 찾아듭니다.
또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겨울의 사람들, 겨울 사나이나 겨울 마녀, 찬바람이 이는 사람, 얼음장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들의 겨울은 너무 깊어서 결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마치 두꺼운 얼음이 겹겹이 쌓여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겨울에 압도되어 결코 인생의 따뜻함이나 웃음과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저는 삶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었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명이 바로 우리 안에 죽은 겨울을 몰아내고 다시 생명을 가져오시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몇 주 동안 교회는 독서와 복음 말씀들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 삶의 나날들을 돌아보며 그 의미들을 되새겨보도록 격려합니다. 우리의 안으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밖으로부터 겨울이 우리를 메마르고 죽게 했던 장소들을 점검해 보도록 초대합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하느님께서 사랑의 새 삶을 살도록 우리를 위해 마련하시는지를 바라보라고 속삭이듯 들려줍니다.
오! 우리는 얼마나 겨울이 끝나기를 염원했습니까? 우리 안에 죽은 나무 등걸에 새순이 돋아나기를, 절연되었던 외부와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갈망했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죽은 나무 등걸이 새순이 돋아나도록 준비를 할 때입니다. 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오늘이 바로 그분이 새 생명을 주시기를 청하면서 우리 자신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체를 아우리며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해빙기입니다. 얼음이 녹고 강물이 흐르는 봄입니다. 나무가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시기이며 추위가 뒷걸음치는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생명의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순절은 우리 안에 있는 죽은 것들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리고 그 죽은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버리는 때입니다.
그분이 새 생명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여, 사순절은 희망의 때입니다.
첫댓글 얼었던 계곡의 물도 머지 않아 녹겠지요.
어제 오늘은 제법 봄다운 날씨입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훈풍으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내안의 죽은것들을 모두 잘라낼 수 있게 되기를.......감히 바래봅니다.
빗님이 오시니 봄님도 오시는듯 합니다.
오늘은 겨울잠바가 쑥스럽기까지 하더군요~
봄이오는 소리가 들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