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목의 마지막은 대구화교협회와 화교소학교다. 대구에 화교가 정착한 때는 1905년. 대구화교협회는 1929년에 지어진
서양식 붉은 벽돌건물이다. 단단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화교협회 옆에는 화교소학교가 있는데 중국식 그림과 장식 등으로
꾸며진 것이 이채롭다. 진골목은 여기서 끝나지만 대구의 근대 골목 여행은 계속된다.
화교협회를 나오면 길은 대구제일교회와 계산성당, 동산 선교사 저택으로 이어진다. 대구제일교회는 대구의 기독교 건물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건물이다. 건물을 가득 덮은 담쟁이덩굴이 아름답다. 멀지 않은 곳에 계산성당이 있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한 계산성당은 서울, 평양에 이은 세 번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서울 명동성당을 지었던 중국인들이 내려와 1902년 지었다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서상돈, 김종학, 정규옥 등
초기 대구 천주교 신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인 이상화가 이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나의 침실로’를 지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한 곳도 계산성당이다. 성당 맞은편으로 대구제일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 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3∙1운동길. 1919년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이 길을 통해 서문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명 ‘90계단길’로 불린다. 계단 끝에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예쁜 집이 세 채 서 있다.
1900년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배경이 워낙 예뻐 웨딩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진골목 반대편에 염매시장 골목이 있다. 대구 서민들의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골목이다.
진골목 가기 전, 반월당역 14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옛날 재래시장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날 만한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떡집과 수육집, 건어물집, 잡화점, 이유식 가게가 늘어서 있다.
염매시장의 ‘염매’는 ‘염가 판매’를 줄인 말이다. 그만큼 저렴하다는 뜻. 가수 현미도 한국전쟁 때 피란 왔을 당시 이곳에서 떡장사를 했다고 한다. 성송자 할머니(78)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앞에서 밤을 깎고 있었다.
성 할머니는 염매시장에서 오십 년 넘게 장사를 시작했다. 스물세 살 때 화장품 노점으로 시작해 과일 행상 등을 거쳐 지금의 가게를
일궜다. 잣, 호두, 멸치, 북어포 등 갖가지 건어물을 판다. 문짝도 없는 가게 입구엔 ‘성주상회’라는 조그만 종이 간판이 걸려 있다.
“당시만 해도 염매시장은 제일 컸어요.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 전역에서 물건을 떼러 왔으니까.
하지만 근처에 백화점이다 마트다 대형쇼핑몰이 생기면서 시장도 옛날 같지가 않아.” 염매시장 건너편에는 대형 쇼핑몰 공사가 한창이다. 진골목에서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지금 그들이 살던 자리에 식당이 들어섰듯 언젠가 염매시장 골목도 사라지고 마트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