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낱말이 지닌 의미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생명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앗아가버리는
피의 무법자, 전쟁.
스칼렛의 남편 찰스도 전쟁의 와중에
세상을 떠나버렸고
졸지에 남편을 잃은 스칼렛은
멜라니를 붙잡고 애틀란타로 간다.
스칼렛의 생각은 오로지 하나.
애슐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멜라니 곁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스칼렛은 왜 이토록 애슐리에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스스로 사랑이라 착각하면서
맹목적인 해바라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애슐리에게 받은 거절감이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겨
그 상처를 부여잡고 있던 건 아닐까?
애슐리를 향한 스칼렛의 집착은
자기애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칼렛은 남편을 잃은 슬픔보다
검은 상복을 입어야만 하는
자신의 현실이 마냥 우울할 뿐이었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북군의
공세는 애틀란타를 피해 가지 않았고
시시각각 위험이 닥쳐오고 있었다.
허약한 멜라니와 갓 출산한 아기까지...
스칼렛은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리라 결심한다.
불행은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지만
그걸 견디고 이겨내는 인간은
강인해지는 것이다.
스칼렛은 마냥 도도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잠재되어 있던 그녀의 강인함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녀가 돌봐야 할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통해
깨어나고 있었다.
타라.
그래, 타라로 가자.
그녀는 고향, 타라를 떠올렸다.
그러나 온 천지가 불길로 치솟고 있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레트가 그랬다.
그의 눈은 언제나 스칼렛을 주시하고 있었다.
레트는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나서
스칼렛을 위해 기꺼이 흑기사가 되어주었다.
마차를 구해와 에스코트를 해준 것이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짧지만 강렬한 포옹을 나눈다.
"나를 이렇게 껴안지 말아요"
"스칼렛 날 봐요"
"봐둬요! 역사적 순간이니"
"남부가 사라지는 이야기를 손자에게 해주시오"
남부의 역사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이 순간을 꼭 기억해두라고 말하더니
자신은 군대에 들어가야겠다며
레트는 별안간 그길로 사라져버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죽음의 길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타라의 붉은 땅에서
스칼렛은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타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드넓은 목화밭은 폐허로 변한지 오래.
이곳이 예전에는 꽃향기 만발했으며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와 숙녀들의
즐거운 대화로 넘치던 타라였던가.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병이 들었으며
먹을 것이라고는 굴러다니는
감자 몇 알이 전부였다.
이젠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것이 스칼렛의 전쟁이 되었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부자가 될 거야.
다시는 내 사람들을 굶기지 않겠어!
그녀는 세금을 내지 못해 넘어가게 된
타라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동생의 약혼자를 빼앗는 일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해치웠다.
덕분에 그녀에게는 그녀를 증오하는
여동생, 강력한 적을 하나 더 만들었으며
새로운 남편, 프랭크도 만들었다.
그녀는 온갖 수완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야비하고 비열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굶주리지 않는 것만이
그녀에게는 가장 가치 있었다.
사업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북군과도 손잡을 수 있었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흑인들의 영역을
누비고 다니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몹쓸 일을 당했고
격분한 남편 프랭크가 복수를 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
그녀는 다시 남편 잃은 여인이 되고 말았다.
레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청혼했다.
레트가 꼭 안아줄 때 스칼렛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애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애슐리를 향한 환상이나 미련은
숙명처럼 스칼렛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없어도 그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이제 레트가 남편이 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애슐리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의 삶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었다.
어느 날, 기적처럼 돌아온 애슐리.
스칼렛과 레트.
멜라니와 애슐리의
미묘한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스칼렛에게는 말이다.
멜라니는 허약했고 평온했다.
애슐리는 유약했으며
레트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애슐리와 스칼렛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동네를 휘돌았으며
레트가 몰랐을 리 없었다.
자신의 아내가 되었지만
여전히 애슐리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
스칼렛을 보는 일에 레트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균열이 가서 어긋나기 시작한
남녀관계의 특성은 오해가 쌓여
점차 틈바구니를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은 그 틈이 벌어져 둑이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레트와 스칼렛이 그러했다.
소문에 예민해지고
자신에게 여전히 차가운
스칼렛에게 서운해진 레트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사랑하는
애슐리의 생일 파티에나 가라고
스칼렛을 다그친다.
조그마한 그들의 딸, 보니가 없었다면
진작 파국에 치달았을 그들이었다.
보니는 두 사람의 천사.
레트는 보니를 너무나 사랑했다.
스칼렛에게 얻을 수 없었던
무한한 애정을 보니에게서
보상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고되지 않은 비극이
이들에게 덮쳐왔다.
죽음의 긴 그림자가 옷자락을
이들에게 드리운 것일까.
멜라니의 죽음과
보니의 죽음.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많은 걸 변하게 만들었다.
놓치고 난 다음에 깨닫게 되는 것만큼
애달픈 비극도 없는 것 같다.
멜라니를 잃고나서야
스칼렛은 비로소 깨달았다.
멜라니를 향한 깊은 우정을.
레트가 떠나고
그를 잃어버린 후에야
스칼렛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울림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건
애슐리가 아니라 바로
레트였다는 것을 말이다.
찬란했던 타라의 옛 시절도
사랑하는 레트도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내일의 태양이 또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제껏 그래왔으니까.
카페 게시글
용띠들동행
완성-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거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부)
무비
추천 2
조회 100
24.07.31 19:41
댓글 11
다음검색
첫댓글 옛추억이 젖어봅니다..
옛날 기억을 되살려보았습니다.
가물거리네요^^
무비님
기억력도 좋으시네요
덕분에 잘 봤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영화로도 봤지만 학창시절에 책으로 읽으며
인상 깊었던 탓에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런 고전 영화들을 좋아해서요^^
다시
한번 영화 속에
빠져보는 시간 이네요
무비님의 멋진 글 솜씨에 빠져 듭니다
시원한 음료가 생각나는 무더위네요
시원한 밤 보내고 계시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길었죠?
글솜씨 완전 짱임니다~~~엄지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