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는
지혜에 대한 말씀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문득
'처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날에는
지혜와 처세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거나,
두 개념을 구분하는 데
너무 무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도 그렇고,
자기계발도 그렇고,
성공학도 그렇다.
많은 책들은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
관계를 관리하는 기술,
조직에서 살아남는 기술,
승진하는 기술을
'지혜'라고 부른다.
또는 그것들이
'리더십'이라는 이름을 단 책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그런 내용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리더십을
그것들만으로 채우기에는
리더십은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분야이다.
'리더십'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처세술'을 다루는 책들도 적지 않다.
물론 처세 자체는
본래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중립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체로 자신의 욕구와 성공을 위해
사람과 상황을 활용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 묵상에서는
이러한 현실적 의미를 따라
‘지혜’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처세'를 사용한다.
잠언이 말하는 지혜는
오늘날의 처세와 분명히 다르다.
잠언의 지혜는
‘하나님의 원리를
삶의 가치로 삼아,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삶의 방식(TTPs : 기법, 기술, 규정)이다’
본문 8장 12절 이하에는
지혜와 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덕목들이 이어진다.
사랑, 성실, 통찰, 분별, 명철,
건전한 상식, 공의, 공정한 법,
적법한 권한 행사, 정직, 절제,
겸손, 인격적 교제.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원리를 중심에 두고
사람과 공동체를 살려내는
지혜의 가족이다.
반대로
오늘날의 의미에서 처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들은
성공, 성과, 효율, 계산, 교활함,
간계, 왜곡, 자기중심적 판단,
탐욕, 권력 지향, 기회주의, 사람 이용,
목적을 위한 수단화 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
사람과 상황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물론 성공과 성과,
효율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지혜는
옳은 가치와 진리를
우선순위에 둔다.
부와 영광, 성과와 열매는
그 부산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처세는
부와 영광, 성과와 열매를
우선순위에 두고,
가치와 진리, 심지어 사람까지도
수단으로 삼기 쉽다.
지혜로운 사람은
부와 영광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기에,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와 추구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아니,
바꾸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투쟁한다.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성과와 열매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때에
가장 선한 방식으로
완성하실 것을 믿으며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잠언은
지혜를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원리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 일이라고 말한다.
처세는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를
먼저 묻지만,
지혜는
'어떻게 하나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두 길은 다르다.
‘지혜는
하나님의 원리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이고,
처세는
자기 욕구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이다.’
‘하나는 존재를 살리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이용한다.’
잠언은
더 잘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라,
더 바르게 살아가는 지혜의 길로
우리를 초대한다.
더 잘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최우선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영역이다.
우리의 몫은
지혜를 선택하는 것이고,
열매는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맡기는 것이다.
카페 게시글
성경통독
26.7.4. (잠언 8~12장) 지혜와 처세, 닮았지만 다른 길.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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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0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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