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쪽지창에 이런 말이 떴다. “무단이석을 금하여 주시고 복무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문장 안에 ‘무단이석, 금하다, 복무관리, 만전, 기하다’ 같은 한자말을 줄줄이 나오니까 괜히 겁난다.
‘무단이석’은 ‘아무 까닭없이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고 ‘금한다’는 ‘하지 말라’는 말 아닌가. ‘자리를 지킨다’ 해도 얼마든지 될 말이다. ‘복무관리’란 말은 어떤가? 우리 말 사전에서 ‘복무’를 찾으면 ‘어떤 직무나 임무’ 하고 나온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시간과 장소를 가려 서 일을 하거나 허락을 받고 일터를 벗어난 상태을 가리킨다. ‘관리’도 사전에는 어떤 일을 도맡아 해낸다는 말로 쓰지만, 여기서는 사람을 부리거나 살펴 규칙을 지키도록 한다는 말이다. 자연스레 관리는 ‘하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복무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는 말은 까닭 없이 자리 비우지 말라고 모두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은 ‘윗사람’한테만 걸리는 말이다. 그 다음 ‘만전을 기한다’는 말은 소홀함이나 빈틈이 없도록 애써 힘쓴다는 말이다. 이때 ‘기하다’는 ‘만전’에 꼭 붙어 다니는 말이다. ‘만전’을 안 쓰면 ‘기한다’는 말을 쓸 까닭이 없다. 암튼 누가 이런 말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참 답답하다. 어렵게 써야 권위가 서고 유식해지는 게 아니다. ‘무단이석’이고 ‘복무관리’고 ‘만전’ 같은 말을 꼭 써야할 까닭이 있나. ‘시간을 지켜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잘해 달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들을 말이다. (2014.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