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와 성서 읽기*
[이중섭, 청주교구 청주 분평동본당 주임신부]
*소공동체와 성서 읽기*
사제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의 파견에 따라 임지에 가서 일하는 것이기에, 임지 선택은 마음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에는 이제껏 참 대조적인 본
당으로 파견되었는데, 그것이 다 하느님의 이끄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있는 청주 분평동본당에 오기 전에는 충북 음성군 감곡본당에서 사목을 하였다.
감곡본당은 백 년이 넘은 본당인지라 내가 원하는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을 펼칠 여건이 되지 않았
다. 그래서 성서 백주간을 중심으로 신자들의 성서 읽기를 도와주는 정도로 그쳤다.
2001년 5월 지금의 분평동본당에 발령이 났는데, 신설 본당이었다.
분가 당시 교적상 신자 수는 1,300명 정도였고, 지금은 2,300명 정도이다. 신자의 90%가 새로 입주
한 아파트 주민이고, 연령층은 30-40대가 42%로서 비교]적 젊은 본당이다.
신설 본당이라는 점이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을 펼치기에 오히려 좋은 환경으로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반모임을 일 년 동안 지켜본 결과,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2002년 6월부터 매주 수요일
을 ‘소공동체의 날’로 선포하여, 수요일에는 저녁미사 외에 아무런 회합이나 행사를 잡지 않았다.
이어서 소공동체의 중요성, 소공동체 모임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시간과 여건이 될 때마다 강
조하였다. 주일마다 주보에, 다달이 구역장, 반장, 단체장 회합 때, 그리고 봄과 가을에 발간하는 본
당문집 『구름기둥 불기둥』에 교육자료를 싣고 설명을 하였다.
필자가 주로 교육하고 강조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이다
하느님께서는 공동체적으로 존재하신다(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바로 그 하느님께서 공동체의 근원
이시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교회 역시 본질적으로 공동
체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친교의 삶을 살도록 초대받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다. 하느
님 백성인 교회는 사귐, 나눔, 섬김의 친교 공동체이다. 교회의 본질을 실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친교의 장이 바로 소공동체이다.
2. 소공동체는 시대적 요청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복음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는 나눔과 섬김이
살아있는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충실하려는 노력이다. 초대교회에 뿌
리를 두고 현대사회의 여건과 문화에 적응하여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소공동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소공동체 운동은 단순히 본당 대형화에 따른 궁여지책이 아니며, 사목자의 사목부담을 줄이기 위
함도 아니다. 소공동체 운동은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사도행전 2
장과 4장에 제시된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찾자는 운동이다.
3. 본당의 기본 구조와 조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보았다. 하느님의 백성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
도의 구별이 있지만 모두 그리스도의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을 수행한다. 다만 서로 다른 삶의 형
태와 직무에 따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별될 뿐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본당 공동체 역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같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을 수행한다. 서로 다른 삶의 형태와 직무를 가진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루
어진 본당 공동체는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가 아니라 평면적이며 원형적인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본당신부가 제일 꼭대기에서 명령을 내리고 평신도들은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공동체
가 아니라, 본당신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직능을 가진 평신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공동
체, 서로 의견을 듣고 나누어 일치를 추구해 가는 상향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신앙생활이 신심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신자들은 소외
되거나 방관자로 전락했다. 또한 삶의 자리에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성당에 와야만 신
앙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성당에서의 신앙 따로, 세상 안에서의
생활 따로’가 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친교와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체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진 본당의 조직과 운영을 반, 구역으로 이루어진 소공동체로 전환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학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교과활동 > <특별활동 >
1학년 1반 합창부
1학년 2반 문예부
4학년 1반 밴드부
4학년 2반 축구부
학생이라면 특별활동은 하지 않더라도 해당 학년과 반에 소속되어 공부를 하는 것처럼, 신자라면
단체활동은 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해당 구역과 반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 구역활동 > <단체활동 >
4구역 1반 레지오 복사단
4구역 2반 빈첸시오회 M.E.
5구역 1반 성가대 울뜨레야
5구역 2반 연령회 성모회
9구역 1반 자모회 성서공부팀
공교육은 제쳐두고 사교육에 치중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여기서 많은 문제점이 야
기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들을 높이지만 묘책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우리 교회 안에도 역시 같은 문제가 있다. 단체활동은 사교육과 같은 것이다.
시간 있고, 관심 있고, 능력 있는 신자들이 자신에 맞는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
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앙생활의 핵심으로 착각한다면 문제가 있다. 단체활동이 사교육과 같은 것
이라면, 소공동체 활동은 공교육과 같다고 하겠다.
공교육을 제쳐두고 사교육에만 매달린다면, 우리 교회의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늦은 감이 있
지만 이제부터라도 교회 안에서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삶의 자리에서 구역과 반에 소속되어 하느
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사귐과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단체활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
고 시급하다.
신자들은 소공동체 모임에 먼저 참여한 다음에, 단체에 들어가 활동해야 한다. 만일 현재 하고 있
는 단체활동 때문에 소공동체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단체활동을 포기하고 소공동체 모임에 먼저
참여해야 한다.
4. ‘나 홀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님께서 “너희가 각자 알아서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아라.” 하고 말씀하지 않고 열두 사도 위에 교
회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더불어 구원받기를 원하셨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혼자 열심히 믿어서 구원받겠다.’는 식의 ‘나 홀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신
앙생활이 되어야 한다. 반모임, 구역모임을 통하여 더불어 하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체험해야 한다.
서로 사귀고 함께 나누고 서로 섬기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
소공동체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서
신명나게 신앙생활을 해보자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던 반모임, 구역모임을 매주 하려니 신자들도 여간 부담이 되는 게 아니었던지 처
음에는 못 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지나니 모이는 것이 재미있는지 지금은 별불평 없이 매주 수요일이면 소공동체
모임을 한다. 특별히 어르신들이 몇 분 계신 반은 모임이 더잘되는 편이다.
경로당에 가는 것보다 수요일 오전의 반모임이 더 재미있어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여름 휴가 때도 거
르지 않고 모인다.
자매님들은 수요일 오전에, 형제님들은 수요일 저녁에, 직장에 다니는 자매님들 역시 수요일 저녁
마다 모인다. 모이면 일단 성서를 5장씩 읽는다. 창세기부터 5장씩 매주 읽을 수 있도록 ‘성서읽기
배분표’를 만들었다. 성서읽기를 힘들어하는 분들이 반모임을 회피할까 싶어, 그런 분들은 듣기만
하고 억지로 읽게 하지는 않는다.
성서를 읽은 뒤에는 간단한 묵상나눔을 하는데, 묵상나눔의 부담감 때문에 반모임을 회피할까 싶어
묵상나눔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묵상나눔 뒤에는 한 주간 동안의 활동보고와 활동계획에 대하여 서
로 이야기를 나눈다.
반장이 반모임 뒤에 회의록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본당신부가 확인한 다음 돌려준다.
우리 본당에는 평협이라는 조직이 없다. 물론 처음에 부임하여 2년 동안은 평협을 소공동체와 함께
운영하였다. 평협 회장이 단체장들을 총괄하고 남자 총구역장이 구역장을 총괄하도록 했는데,
서로 협력하여 일하기를 힘들어하였고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렇다면, 어차피 소공동체 중심으로 가는 것이니 평협회장단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본당은 윷놀이, 본당 주보 축일 일일 호프, 대림시기 기도지향 등 모든 연중행사가 구
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주일미사 전례 담당도 구역별로 돌아가며 하고,
신자가 초상을 당하면 연도 역시 구역별로 한 시간씩 돌아가며 바친다.
특별히 대림시기 기도지향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별로 각 가정이 기도 날짜와 필요한 기도지향을 적어서 제출하면 한두 페이지 정도에 기도지향을
모아 반의 모든 가정에 돌린다.
그리고 대림시기 기도 초를 반별로 나누어 주면,
그 기도초가 각 가정이 청한 기도 날짜에 맞추어 대림시기 동안 각 가정을 순회한다.
그날은 모든 반원이 그 가정이 청한 기도지향을 보며 기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탄 밤 미사 때 반장이 그 기도초를 구유 앞에 봉헌하며 마무리한다.
예비신자 관리 역시 구역과 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비신자가 3개월 정도 공부를 하면 선발예식을 하는데, 선발예식 때부터 대부모를 세워서 지도하
도록 한다. 선발예식을 마친 예비신자는 3개월 동안 반모임에 나가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예비신자의 기도문 찰고와 교리 찰고는 반장이 알아서 하며,
구역신자 10명의 추천을 받아야만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이 추천서 때문에 일이 터진 적이 한 번 있다.
추천서(처음에는 보증서라 하였다)를 받으러 구역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던 예비신자가 추천
서를 찢어버리고 ‘세례를 안 받겠다.’고 화를 낸 것이다.
나중에 세례성사를 받긴 했지만, 그때에는 세례 전 추천서 제도를 포기할까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추천서를 받은 사람만 세례성사를 준다.
그것은 예비신자 때부터 구역의 신자들과 친교를 가지게 하려는 의도이다.
이렇게 엮어주면 아무래도 냉담하는 비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입 교우가 와도 본당신부가 곧바로 면담을 하지 않는다. 해당 반장과 구역장의 확인을 받아야만
본당신부가 면담을 해준다. 유아세례, 첫영성체, 혼인성사 때도 반장과 구역장에게 먼저 들러서 서
명을 받아오라고 시킨다.
신자들 편에서는 귀찮은 일이겠지만,
어떻게든 소공동체 식구들이 서로 알고 지내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곳 분평동본당에서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을 한 지 3년 가까이 된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에 신자들이 소공동체를 알아듣는 것 같다. 그러
나 중요한 것은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성당에 와야만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듣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그것을 직접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