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공감5시
제목: 하궁리
1. 오늘은 하궁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하궁리 좀 생소한 지역인데요. 어디에 있나요?
하궁리는 횡성군 우천면에 있는 마을입니다. 우천면과 둔내면의 경계를 이루는데요. 봉화산이 마을 뒤를 막아주고 넓은 들판이 길게 마을을 따라 난 곳입니다. 마을 앞은 탁 트여서 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마을 안에는 오래된 당숲이 있어서 여름철이면 푸른 숲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들어서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의 곡식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인심 또한 후덕하기로 유명합니다. 마을 뒷길로 난 봉화산을 따라 난 등산로는 이야기도 많고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날 따뜻해지면 한 번 가보기를 권합니다.
2.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산촌과 농촌의 전형적인 마을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하궁리 뜻은 어떻게 되나요?
지난 1월에 마을 이야기를 들으러 다녀왔습니다. 마을회관에 갔더니 많은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니, 한 분이 옆방으로 가서 작은 책자를 하나 가져다가 건네주었습니다. 하궁리의 마을 소개가 이 책 속에 다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책 이름은 이야기 속의 하궁이라고 했고, 문고판으로 된 74쪽 분량의 소책자였습니다. 사진을 꽤 많이 넣었고 마을의 지명과 설화 등을 넣어 책으로 꾸몄습니다. 참 재미있구나 생각했지요. 공이 많이 든 느낌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범위를 넓혔으면 참 좋았는데,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이 책속에는 하궁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뒷산은 동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6~7km 정도의 산등성이가 활등과 같은 형상이며, 앞산은 남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8km정도의 길게 뻗은 산등성이가 활시위처럼 생겼다하여, 뒷산 산등성이쪽의 마을은 궁종리(弓宗里)라고 칭하고, 아랫마을은 하궁리(下弓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니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모양이 활과 활시위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형상을 따라서 마을이름을 정한 것입니다.
3. 하궁리에는 마을이야기가 많다고 했잖아요. 먼저 당숲과 관련한 이야기부터 소개해 주세요?
마을로 들어서다가 보면 왼쪽 산 밑에 고목이 여러 그루가 늘어서서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워낙 숲이 우거차서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 가면 입구에 설치해 놓은 홍살문과 안내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궁리 전통마을숲>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제단(天祭壇)이라는 제단과 당집이 있고, 방문객이 앉아 쉴 수 있는 정자각이 있습니다. 물론 나무에는 무슨 나무인지를 알 수 있도록 나무마다 이름을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곳 천제단이란 곳에는 마을에서 마을제를 지내는 곳인데요. 이야기를 유추해 보면 이곳에 황 씨라는 노인이 살면서 천제단이라고 명명한 단을 쌓아 놓고 무엇인가 기원을 하였습니다. 그때가 190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황 씨 노인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뜨기 전에 황 씨 노인은 마을 대표와 원로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와 술을 대접하고 중대한 제안을 합니다.
“제가 박복(薄福)하여 일가친척이 없고 혼자인데, 이제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제가 가진 땅을 마을에 헌납할 테니 제가 죽으면 그곳(당숲)에 묻어주고 마을에서 장사를 지내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황씨 노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본인의 뜻에 따라 당숲에 묻어주고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 그 이후 1903년부터 마을에서는 당숲에 당집을 짓고 마을에서 관리를 하며 마을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원래는 하늘에 제를 올리고 마을과 개인의 소원을 기원하던 제사였지요. 그런데 황 씨 노인이 자손이 없이 죽었고, 그곳에 황 씨 노인을 묻고, 황 씨 노인이 지내던 제사를 마을에서 이어받아 지내게 되지요. 그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을제사가 마치 황 씨 노인을 제사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요즘은 정월 대보름날 낮 12시에 마을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4. 하궁리에는 마을에 석불도 세워져있다고 하네요. 왜 세웠나요?
하궁리 천제단 가기 전 마을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1992년 11월에 석불을 세웠습니다. 일종의 액막이용으로 보면 됩니다. 돌부처의 힘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는 것입니다. 마을에 봉긋 솟은 작은 언덕산이 있는데, 이곳에 돌부처를 세우고, 그 뒤에는 자비정(慈悲亭)이라는 정자를 세워 두었습니다. 이곳에 가명 석불 옆에 석불을 세우게 된 내력을 써 놨습니다.
이 석불을 세우기 전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35세 미만의 청년 3명이 사고로 죽고, 이어서 5명의 마을사람이 운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불안해하며 그 원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이 마을에 전해 오던 이야기 가운데 “마을 수부막에 묘를 쓰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궁리를 에워싸고 있는 산은 활 모양이기도 하지만, 용이 물을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답니다. 바로 그 수부막이 용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데, 그곳에 누군가 묘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묘의 주인을 찾아 이장(移葬)을 요구했지만, 묘 주인은 이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묘안을 찾다가 풍수지리연구가가 이곳에 불상을 세워 액운을 막으면 된다고 해서 돌부처를 세우게 됩니다. 돌부처를 세우고 나서는 마을에 사고가 없어지고, 예전과 같이 평화가 찾아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대리석에 새겨서 돌부처 옆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석불은 인간과 자연과 신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평화가 깃든다는 사실을 살아있는 전설로 새삼 일깨우고 있다.”고 써 놓았습니다.
5. 상당히 재미있는 마을입니다. 전통적인 마을풍속을 잘 지니고 있다고 할까요. 또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이 밖에도 현몽약수, 신선바위 등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현몽약수는 봉우약물탕이라고도 하는데, 꿈에 나타나 이 약수를 찾아 건강을 찾고 자손까지 보게 되었다고 해서 현몽약수(現夢藥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경상도 어느 산골에 곽 씨 라고 8대 독자가 있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자손을 일찍 보고자 조혼을 시켰는데, 아이는 생기지 않고 병이 생겨 몸이 말라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아내를 살리고 네가 살며 대를 이어 조상에 보답하고 효도하는 길은 아내를 데리고 밤중에 집을 떠나 샛별을 바라보고 강원도 땅으로 가되 낮에는 자고 밤에만 샛별을 따라 활의 형국을 한 산을 찾아가면 병도 낫고 아들도 얻을 수 있느니라.”
라고 얘기를 합니다. 두 내외는 밤을 타서 몇날 며칠을 걸려 이곳까지 오게 됩니다. 지쳐 쓰러져 있는데, 신선이 다시 나타나서
“뭣들 하고 있느냐? 이곳이 바로 너희들이 살고 아들을 얻을 곳이니라. 빨리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도록 해라.”
라고 합니다. 내외는 일어나서 기도를 올리고, 샘을 퍼서 마셨습니다. 두 사람은 갈잎을 바가지 삼아 샘물을 마시니 정신이 명쾌해지고 피곤이 싹 가셨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바위 옆에 움막을 짓고 나무열매와 산채로 식량을 삼아 산천경계를 벗 삼아 낮에는 자고 샛별이 돋아날 때 하탕에 목욕하고 중탕에 세수하며 상탕에 정안수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보름을 지나고 나니 어느 새 두 사람은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기운이 샘솟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백일이 되자 부인의 몸에는 태기가 있고 이어 열 달 만에 늠름한 옥동자를 출산했습니다. 두 사람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업고 첫돌이 되어 그리던 고향으로 금의환향하였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내외가 건강한 모습으로 그것도 손자까지 안고 고향에 돌아오자 시부모의 기쁨은 가히 하늘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병을 치유하기 위한 사람과 옥동자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 후 이 약수는 신선이 현몽하여 생겼다하여 ‘현몽약수’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