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 비판
제 2장 숭고의 분석론
200219094. 철학. 문보경
§23. 미의 판정능력으로부터 숭고의 판정능력에로의 이행.
아름다운 것과 숭고한 것은 모두 그 자체로서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일치하는데 더 나아가 양자 모두 감관적 판단이나 논리적-규정적 판단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판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일치하며 그 만족은 개념에 전제되어 있으며 따라서 한갓된 현시 또는 현시능력과 결합되어 있어서 이 때문에 구상력은 직관이 주어지면 오성의 개념능력이나 또는 이 오성개념을 촉진하는 것으로서의 이성의 개념능력과 조화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연의 미는 대상의 형식에 관계하는 것이며 대상의 형식은 한정에 있어서 성립하는데 반해 숭고는 몰형식적 대상에 있어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무한정성이 대상에 있어서나 또는 대상을 기록으로 해서 표상되며 또한 그 무한정성의 총체가 덧붙여 사유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는 부정적인 오성개념의 현시이지만 숭고는 부정적인 이성능력의 현시로 볼 수 있으며 만족은 미에 있어서는 성질의 표상과 결부되어 있으나 숭고에 있어서는 분량의 표상과 결부되어 있다. 숭고와 미와의 가장 중요한 내면적 차이는 다음과 같은데 자연미는 그 형식상 일종의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 합목적성으로 말미암아 대상이 우리의 판단력에 알맞도록 미리 규정되어 있는 듯 보이며 그로써 자연미는 그 자체가 만족의 대상이 되는 이다. 반대로 사변을 일삼지 않고 단지 그것을 포착할 때에 우리의 내부에 숭고의 감정을 일으켜 주는 것은 형식상 우리의 판단력에 대해서는 물론 반목적적이며 우리의 현시능력에는 부적합하며 구상력에 대해서는 난이한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나 그것은 그 때문에 한층 더 숭고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자연에 관해서 우리가 흔히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 속에는 특수한 객체적 원리들과 이러한 원리들에 적합한 자연의 형식들에 이르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으므로 자연은 오히려 그 혼돈에 있어서 또는 가장 난이하고 가장 불규칙적인 그 무질서에 있어서 숭고의 이념을 가장 많이 일으킨다. 이로써 우리는 자연의 숭고의 개념은 자연에 있어서의 미의 개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으며 또 그 결과가 풍부하지도 않다는 사실과 일반으로 숭고의 개념은 자연 그 자체에 있어서의 합목적적인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는 전혀 독립된 합목적성을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서 감지할 수 있도록 자연에 관한 직관을 사용할 수 있을 때만 합목적적인 것을 지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미에 대해서는 그 근거를 우리의 외부에서 찾지 않으면 안되지만 숭고에 대해서는 단지 우리의 내부에서만 그리고 자연의 표상에 숭고성을 끌어넣는 우리의 심적 태도에서만 그 근거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24. 숭고의 감정의 연구의 구분에 관하여.
숭고함은 미의 분석론에서와는 달리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되는데 이렇게 구분되는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은 평정한 관조로 들어가는 마음의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숭고의 감정은 대상을 반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마음의 상태의 동요를 특성으로 한다. 대상을 직관할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우리의 상상력이 인식능력을 직관할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우리의 상상력이 인식능력과 관계하여 만족감을 일으키면 수학적 정조가 표상된다. 또한 마음의 동요를 거쳐 우리의 상상력이 욕구능력과 관계하여 만족감을 일으키면 역학적 정조가 표상된다.
A. 수학적 숭고에 관하여.
§25. 숭고의 어의.
단적으로 큰 것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부르는데 어떤 것이 크다거나 작다거나 중간이라고 하는 표현의 의미는 판단력의 개념이든가, 혹은 그러한 판단력의 개념에서 유래하여 판단력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표상의 주관적 합목적성을 그 근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관하여 그것은 크다고 단적으로 말할 경우에는 그것을 수학적-규정적 판단이 아니라 그 대상의 표상이 크기의 평가에 있어서의 우리의 인식력들의 일정한 사용에 대하여 주관적 합목적성을 가진다는 데에 관한 한갓된 반성적 판단이다. 우리는 미에서 조차도 크다거나 작다고 하는데 그 근거는 판단력의 준칙에 따라 직관에 있어서 현시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모두 현상이요, 따라서 또한 하나의 양이라고 하는 사실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절대적으로 큰 것이란 그 자신에만 동일한 하나의 크기이므로 숭고는 자연의 사물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이념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하는 결론이 나온다. 즉, 숭고란 그것과 비교해서 다른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이 작은 것을 말하며 그것을 단지 사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관의 모든 척도를 초월하는 어떤 심의능력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을 말한다.
§26. 숭고의 이념에 필요한 자연사물의 크기의 평가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것이 얼마나 큰가 하는 데에 관한 명확한 개념을 단지 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데 이 수의 단위가 곧 척도며 그런 한에 있어서 크기의 모든 논리적 평가는 수학적이다. 기본적 척도의 크기의 평가는 오로지 우리가 그 크기를 직관에 있어서 직접 포착하여 그것을 구상력이 수개념을 현시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성립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되는데 즉, 자연의 대상들의 크기의 평가는 모두가 결국은 미감적인 것이다. 미감적인 크기의 평가에 대해서는 틀림없이 최대의 것이 있는데 이 최대의 것이 절대적 척도로서 그 이상 더 큰 것은 주관적으로 가능치 않다고 판정되는 경우에 이 최고의 것은 숭고의 이념을 수반하며 수에 의한 크기의 수학적 평가가 일으킬 수 없는 감동을 야기한다. 감각적 판단이 순수하게 주어지고 또 그 위에 미감적 판단력의 비판에 꼭 적절한 실례가 주어져야 할 경우에는 우리는 인간의 목적에 의해서 그 형식과 크기가 결정되는 기술의 산물들에 있어서나 또는 그 개념상 이미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자연 산물들에 있어서 숭고를 지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기를 내포하고 있을 뿐인 한에 있어서의 천연 그대로의 자연에 있어서 그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27. 숭고의 판정에 있어서의 만족의 성질에 관하여.
우리에게 대하여 법칙인 어떤 이념에 도달하는 데에 우리의 능력이 부적합하다고 하는 감정이 곧 경외이다. 자연에 있어서의 숭고한 것에 관한 감정은 우리들 자신의 소명에 대한 경외의 염이요, 우리는 이 경외를 일종의 우리의 주관에 있는 인간성의 이념에 대한 경외대신 객체데 대한 경외로 뒤바꿈 하는 것에 의해서 자연의 객체에게 표시하는 것이다. 감관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포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하여 큰 일절의 것을 이성의 이념과 비교하여 작다고 평가함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법칙이며 우리들의 사명에 속하는 일이다. 크기의 평가를 위한 단위를 현시함에 있어서 구상력이 하는 최고의 노력은 어떤 절대적으로 큰 것에 관계함이며, 따라서 이 절대적으로 큰 것만을 크기에 대한 최고의 척도로 채용하는 이성의 법칙에 관계함이다. 숭고의 감정의 성질은 그 감정이 어떤 대상에 대한 미감적 판정능력에 관해서 일어나는 불쾌의 감정이지만 그러나 그 불쾌는 동시에 그 점에서 합목적적인 것으로 표상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주관 자신의 무능력이 바로 동일한 주관의 하나의 무제한한 능력의 의식을 드러내며 또 심의는 그 무제한한 능력을 오직 자신의 무능력에 의해서만 미감적으로 판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말미암은 것이다.
B. 자연의 역학적 숭고에 관하여.
§28. 위력으로서의 자연에 관하여.
위력이란 큰 장애를 압도하는 능력인데, 미감적 판단에 있어서 자연이 우리들에게 대하여 강제력을 가지지 않은 위력으로서 고찰될 때 그러한 자연이 곧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이다. 미감적 판정에 있어서 장애에 대한 우세는 단지 저항하는 크기에 따라서만 판정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을 역학적으로 숭고하다고 판정하자면 자연은 공포를 일으키는 것으로서 표상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대해 어떤 대상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지 않고도 그 대상을 두려운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 즉 대상을 판정하되, 단지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하여 저항이라도 하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고 또 그 경우에 모든 저항이 완전히 허사가 되리라고 상상해 보도록 하면 된다. 자연이 우리의 미감적 판단에 있어서 숭고하다고 판정되는 것은 그것이 공포를 일으키는 한에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내부에 우리의 힘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것이다.
§29. 자연의 숭고에 대한 비판의 양상에 관하여.
자연에 있어서의 숭고에 관한 비판의 경우 자연 대상들의 탁월성에 관하여 판단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단지 미감적 판단력 뿐 아니라 미감적 판단력의 근저에 있는 인식능력들도 훨씬 더 도야될 필요가 있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용이하게 타인에게서 승인을 기대할 수 없다. 자연의 숭고에 관한 판단은 도야를 필요로 하지만, 그 때문에 반드시 판단이 바로 이 도야로부터 비로소 산출되거나 단지 협약에 의해서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이 판단의 기초는 우리가 상식과 동시에 누구에게나 기대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즉 이념들에 대한 감정에의 소질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미감적 판단이 참칭하는 필연성에 판단력의 비판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계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 필연성이야 말로 바로 미감적 비판에 하나의 선천적 원리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또 미감적 비판을 경험적 심리학으로부터 끌어올려 미감적 판단과 그것을 매개로 하여 비판력과를 선천적 원리들을 그 근저에 가지고 있는 비판들의 부류 속에 넣으며 다시 이 미감적 비판을 그와 같은 것으로서 선험철학에로 끌어넣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