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승(Come from behind win)” 눅 22:39-46, 2022. 02. 13.
* 본문 말씀 :눅22: 39-46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22: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인간은 승리를 원합니다. 승리 가운데 가장 짜릿한 것은 역전승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완전한 승리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최종적인 이 역전승를 믿는 것입니다. 그 역전승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참패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켜 온 인류의 구제주가 되게 하셨습니다(빌2:5-11). 이것이 기독교의 역전승이요 궁극적 승리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마지막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원(will)’이 있고 하나님의 ‘원’이 있습니다(눅22:42).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주님의 원이 있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하나님의 원이 있습니다. 둘째 그 두 ‘원’ 사이에 주님의 한 없는 고통과 번민이 있습니다(눅22:44). 셋째 주님의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피하고자 하는 당신의 원과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원 사이에 연결점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넷째 마침내 주님은 당신의 원을 접는 기도를 하시고 대속의 하나님의 원을 이루시기 위한 기도를 하신 후(눅22:42)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이 인간의 고통의 상징인 ‘십자가’와 ‘하나님의 원’을 이루려는 ‘주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전승의 신비’가 있습니다.
*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인간이 패배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역전승하게 하시는 자리입니다. 먼저 십자가는 왜 패배하는 자리입니까?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의 결과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피조성이 끝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원이 사라지는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요 죽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인생의 종말입니다. 모든 인생은 이 자리에서 한탄하고 안타까워합니다. 특히 어려운 사람, 장애를 입은 사람, 가난한 사람, 낮은 사람, 병든 사람, 고아와 과부, 압제에 시달리는 사람, 한번 들어내고 살아보지 못한 이런 사람들의 한은 더 크고 더 허무하고 더 억울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왜 십자가는 역전승의 자리입니까?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원이 이루어져 이런 인간의 패배를 영원히 승리하게 하는 역전승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유한한 피조성과 하나님의 무한한 새창조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원이 하나님의 원으로 승화되는 자리입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죄가 용서로, 패배가 승리로, 미움이 사랑으로, 땅이 하늘로, 유한이 무한으로, 찰라가 영원으로, 피조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역전승의 자리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는 멸망할 인생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는 역전승의 자리입니다. 어떤 인생도 어떤 죄인도 어떤 패배자도 이 대속의 십자가의 도를 믿고 소망할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역전승하게 하시는 구원의 자리입니다.
* 그 역전승의 신비가 일어나게 하는 것 무었입니까? 기도입니다. 주님은 그 참패와 고통과 억울함을 이기고 하나님의 원을 받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밖에 없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과정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기도하셨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39-4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눅22:39-41).” 우리가 당하는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승리의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이신 하나님과의 일치를 통해 우리의 패배가 그 하나님의 승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처절하셨습니다. 본문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십자가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이런 십자가 같은 패배는 그 패배가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와 연결될 때만 그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지혜자 솔로몬은 인생이 그 무엇을 이루어도 헛되다 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본분이라 했습니다(전12:13). 일상에서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궁극적인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성경의 기적들의 예입니다. 주님은 습관적으로 기도하셨고 특히 큰일을 결정하실 때 기도하셨고 기적을 베푸실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옥에 가뒀을 때 교회가 기도하니까 천사가 나타나 옥문을 열고 그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했습니다(행12:1-12).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기도하며 찬송할 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행16:25-31). 사도들이 주님의 약속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습관적인 기도 후에 기적이 나타나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주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시며 제자들이 어째서 우리는 할 수 없었습니까 물을 때 주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하셨습니다. 기도는 피조 인간이 역전승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과 사도들이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절망 가운데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전승의 길로 가게 하실 것입니다.
* 기독교는 역전승의 복음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부활 영생으로 역전승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다 이룬다 해도 허무한 인간의 원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원대로 구원하시는 복음입니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어 무한한 생명으로 살게 하는 복음입니다.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이 나는데 영원한 생명의 근원 안에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생의 불가능한 무한한 욕망이 무한하신 하나님 안에서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는 역전승의 복음입니다. 인생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죄 없는 자도 없습니다. 죽음을 피할자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성삼위 하나님을 믿을 때 인간의 그 어떤 삶도 어떤 실패도 어떤 십자가도 죽음도 부활 영생으로 역전승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전승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