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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내 모임의 단풍놀이.
감기 걸려 열은 나고
몸은 으스스한데
사람이 모자라서 꼭 참석해야 한단다.
마누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기약 독하게 지어 먹고 관광버스에 탔어
대충 20명 정도 참석.
참석율이 이렇게 저조하나?
버스뒷 구석에 앉아 눈 좀 붙이고 있는데
헉 버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
“어이 총무 보경사 간다며 방향이 틀려..“
내말은 듣지도 않고 버스는 자꾸만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
총무가 갑자기 나를 깨우더니.
앞자리로 가서 앉으라 한다
“괜찬아 내가좀 아파서........”
그래도 자꾸 앞자리로 가란다.
버스는 사상터미날 부근에 정차를 하고.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와 버스에 올라탄다.
한중년 아주머니가 18번 번호를 확인하더니
“안녕 하세요”
인사와 함께 내 옆자리에 앉는다
말로만 들었던
내 평생 첨해보는 무찌마 관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 이 아지메 더럽게 재수없다.
대머리에다 억수로 못생긴 환자 파터너를 만났으니
재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이동네 사세요?”
“아뇨”
“우리는 동네 모임인데 다들 친구분 이세요?“
“자세히 묻지 마세요” (아뿔사 무찌마)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이병태 라고 합니다.”
“수기라 해요”
순간 엘범속의 얼굴가린 미숙이 사진이 떠오른다.
“숙이 입니까?”
“..................”
“이름 끝자가 숙 입니까?”
“걍 수기입니다”
“헉 ... 강 수기 라고요?”
“그런게 아니라 그냥 수기라 불러요
숙이라는 애인이라도 있나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탐색의 침묵이 한참 흐른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총무가 일어나
“오늘 옆의 파터너는 하루 부부입니다.
오늘 하루 즐겁게 지내기 바람니다“
인사와 함께 검은 비닐백을 하나씩 건네준다.
박카스2병 켄맥주 하나 소주1병 종이컵2개
밀감, 마른안주 휴지들이 들어있다.
우선 여성분이 켄맥주를 따서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 만큼 마시고
나머지를 파터너에게 건네 주라는 것이다
켄을 건너 받아보니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완샷으로 모두 마시고 켄을 머리위에 털었다.
빛나는 대머리 위에 하얀거품이 넘치고
나는 휴지를 뜯어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오늘 모임을 위한 건배를 몇번 했다.
언양 휴게소에 도착하자
볼일 볼 사람 충분히 보란다.
자판기에서 커피2잔을 뽑아서
수기한테 한잔 건넸다.
원두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혼자 2잔 다 마셨다
다시 총무가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민방공 훈련을 한단다.
싸이렌 소리가 나면 모두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의 민방공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버스가 국도로 접어 들자 커텐이 드리워졌다.
사회가 여성측 주선자에게로 넘어 갔다.
목적지까지 한 시간 이상 남았으니
몸도 풀고 발성 연습도 좀 하자고 한다.
먼저 사회자가 한곡을 시작 하자마자
짜리몽땅한 한 아주머니가 흔들기 시작 한다.
곧바로 하나 둘 일어서더니
버스통로는 비좁아지고 버스가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자동으로 메드리로 연결되면서
버스는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며 뒤뚱거린다.
이러다 버스 뒤집힐까 걱정이다
총무는 비좁은 통로사이로 오가며
연신 소주를 권한다
갑자기 싸이렌 소리가 울린다.
모두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히
자기자리에 앉아있다.
가사왈 “ 연습이었습니다”
“이정도면 오늘 별탈없이 끝날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개인 노래자랑으로 넘어간다.
그 와중에 나도 소주를 제법 마셨다 .
몇 번을 사양했지만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요즈음 관광버스에는 열 수 있는 창문이 없다.
한번 받은 술은 뱃속 아니면 버릴 곳이 전혀 없는 것이 버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빈통이라도 하나준비할걸.
검정색 비닐백이 눈에 자주 들어 왔지만.
눈물을 머금고 마셔댔다.
약기운에 술기운 거기다가 시끄러운
노랫소리까지 더해서 머리가 혼돈하다.
“다음은 18번 팀을 모시겠습니다”
헉 내가 18번인데 (임시로 정한 좌석번호)
(참고로 오늘하루 나와 파트너는 이름도 성도 없이 18번이다)
몸도 아프고 해서 사양을 했더니.
감기에는 독한 소주가 약이란다.
“장미꽃 한송이”
반주가 흐르고 멋있게 한곡을 뽑았다
“.............내사랑 내사랑 받아주오 장미-꽃 한송이......”
빵파레가 울리고 100점이 나왔다
(이 기계는 거의 100점이다)
만원을 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소줏병이 버스속을 휘젓고 다니는동안
만난지 몇시간도 되지않는 남녀가.
아주 오랜 친구인듯 말도놓고
러브샷도하고 부루스라하며 잡고 엉켜있다.
그동안 나는 수기와 별대화 없이 잔만 몇 번 부딪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장씨가 수기를 끌어내자
수기는 못 이기는 척 나가서 같이 춤을 춘다.
순간 다른 여자가 내게 소주잔을 건네며
나를 통로로 끌어낸후 끌어 안는다.
약기운이 조금씩 떨어져갈 무렵.
버스는 목적지인 보경사 입구를 들어선다.
다시 총무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시간 11시 지금부터 자유시간입니다
부부간에 손잡고 보경사 구경하시고 저기 보이는
보경식당에서 점심식사 맛있게 하시고
늦어도 1시까지 보경식당 2층으로 오세요“
“오후 자유시간 충분하니 시간은 꼭 지켜주시기 바람니다”
버스가 정차하자 모두들 손살같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 정도 마셨는데 화장실이 제일 먼저지.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박카스1병을 주머니에 넣었다.
총무와 나란히 볼일을 보면서
“이사장님 파터너 맘에 들지요”
“제가 신경 많이 썼어요 나중에 한턱내야합니다”
“무슨 신경?”
“골라서 붙여 준거라니까”
“도데체 무슨 말인지”
“이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듯하다.
회장과 총무 그리고 힘좀 쓰는 사람 파트너는 모두 괜찮은데...
무엇인가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볼일을 마친 사람들은 쌍쌍이 보경사로 들어간다.
수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약은 식후에 먹어라 하던데”
안되겠다 싶어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박카스를 마셨다.
저쪽에서 수기가 야릇한 미소를 보내며 나에게로 다가 온다
얼른 병두껑을 닫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아무일도 없는듯 우리둘은 나란히 보경사로 들어갔다.
그 명성에 비하면 보경사는 아주 작은 사찰이다.
넓지도 않고 별로 볼 것도 없다.
저기 13번 장씨가 파터너와 거리를 두고 뒤따라 걷고 있다.
뭔가 잘안되는 모양이다.
장씨
학교 다닐때 다섯 살 많은 누나에게
사고 쳐서 은정이 낳고
장인한데 개맞듯이 맞고
코꿰어서 연애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장가갔다며 항상 억울해 하며산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리지만
우리 큰놈이 장씨 딸하고 초등학교 같이 나와서
친구 처럼 지내고, 마누라끼리도 잘 지낸다.
법당에는 6번 박씨가 나란히 다정하게 불공을 드리고......
정원 한구석에는 뭐가 그리 재미 있는지 껄껄데는 팀도있고
진한애정 표현을 하는 팀도 보인다.
아무리 어슬렁 그려도 시간이 너무 안간다.
“식사나 하시지요”
수기는 말없이 팔장을 끼더니 식당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우리가 제일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아줌마 부산에서 온 사람인데 밥 주이소”
“몇번 이니껴?”
“18번 이니더”(포항 사투리)
식사는 산채정식으로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후 13번 아짐이 들어오고 장씨가 안절부절하며
뒤따라 들어오며 잘 안 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버스안에서 수기와 부루수 춘것이 잘못된 걸까?
모래알 씹는 맛이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우리 식사가 끝날 때 까지 아직 밥 먹어러 온팀은 몇 안된다.
도데체 뭐 볼게 있다고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식당을 나왔다
아직 12시도 안되었다
1시간 이상을 뭘 하고 보내나?
커피숖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보이는 것은 식당과 모텔과 여관 뿐이다.
수기는 자꾸만 내 표정을 살핀다.
우리는 말없이 그냥 걷고 있었다.
수기는 체중을 반쯤 내게 의지한 채
나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발길은 버스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사양반이 보이질 않는다.
식사하러 간 모양이다.
하는수 없이 무작정 걸었다.
수기는 나의 외투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나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가날프지는 않지만 험한 일 하는 여자는 아닌듯하다.
여관 앞을 지난다.
수기는 땅만 보고 나와 발을 맞추고 있다.
무거운 걸음으로 모텔 몇 군데를 지났다.
찬바람이 볼을 스친다.
“올해는 단풍이 화려하지 않지요?”
“날씨 변덕이 심하고 추위가 너무 일찍 와서 그런가 봐요.”
이제는 밭길이고 산길이다.
다시 수기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아주 무능하고 못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무슨 결심이나 한 듯 다시 발길을 돌린다.
저기서 한남녀가 모텔을 나오고 있다.
버스에서 나를 끌어냈던 17번 아주머니다.
김사장님 나를 보더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살짝 돌리다가.
마치 공범 대하듯 표정을 바꾼다
“1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어서 식사나 합시다”
“산채정식인데 참 맛있어요”
“벌써 식사하셨어요?”
멀리 버스앞에는 장씨 혼자서 연신 담배를 빨고 있다.
“추운데 버스에서 잠시 쉬지요”
체념한듯 수기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에는 13번 아주머니 혼자 앉아있다.
“식사 잘하셨나요?”
대답이 없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학교 다닐때 와보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참 많이 변했네요”
수기는 몇 번 와보았단다.
“전업주부세요?”
“그런거 묻지 않는거로 아는데요”
“나이는?”
“자꾸 묻지 마세요”
30년전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에 친구들이랑 단체미팅으로
완행 버스타고 보경사에 왔었다.
나의 파카 만년필을 잡은 사람은
강 미숙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잘록한 허리
브라우스에 후리아 치마를 입었다.
점심으로 카레를 만들었다.
서툰 솜씨로 감자 깍는 내가 안스러웠는지
감자 버리는게 아까워서였는지 달라고 했다.
칼을 잡은 가녀린 손이 더 위험해 보였다.
골드스타 카세트 틀어놓고.
세고비아 기타를 치면서...
여자들이 합창을 한다
“시랑해 당신을 정말로...... 예에예..........”
나는 친구들이랑 고래사냥을 힘차게 불렀다.
수건 돌리기를 했다
벌칙은 신문지위에 파터너와 함께 외발로
노래한곡이 끝날 때 까지 서 있고
만약 버티지 못하면 엉덩이로 이름을 쓰야 한다
신문지가 반으로 접어지고
다시 반으로 접어지고.
다시 반으로 접어졌다
미숙이가 수건을 놓치는 바람에 우리가 걸렸다.
신문지는 두발로 서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내가 먼저 한발을 딛고 미숙이가 한발을 놓았다.
미숙이는 나의 허리를 잡았고
나는 미숙이의 손과 어깨를 잡았다
“가방을 울러맨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는데.......“
브라우스 사이로 보이는 미숙이의 가슴선과
손 끝에 부딪히는 브레지어 어께끈 감각에
그만 정신을 놓고 몸의 균형을 잃어 버렸다.
우리는 나란히 뒤돌아서서 엉덩이로 이름을 썼다
장씨가 버스에 몇 번 들락 거리더만
13번 아주머니를 데리고 나간다.
“ 1시 다 되었네요 갑시다”
보경식당 2층으로 올라 갔다.
넓은 홀에 대형화면의 노래방 시설이 잘되어 있다.
다 모인 것 같지는 않은데...
검은 커텐이 하나둘씩 드리워지더니
어느새 사방이 캄캄해지고.
현란한 조명불빛으로 바뀐다.
노래 자랑인지 기금모금인지
아무튼 2부가 시작되었다.
시간 관계상 1절만 불러야 한다.
한곡이 끝나면 자동으로 대형 TV 화면에는 만원이 붙여지고.
주선자 아주머니는 다음곡이 끝나기 전에 연신 그것을 회수한다.
발라드와 뽕짝이 교대로 나오면서.
수많은 남녀가 자동으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더러는 아예 붙어 떨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음은 6번을 모시겠습니다”
“6번”
“6번 없어요?”
“박씨 불공 드리고 있던데..... ”
“그러면 7번으로 넘어갑니다”
사랑이란.
부루스 타임이다.
나는 재빨리 수기를 끌어 안았다.
수기는 쓰러지듯 내게 안기며
가슴을 강하게 밀착 시켰다.
엉덩이를 살짝 빼보았지만
수기는 하반신까지 밀착 시킨다.
“긴장 푸세요”
수기는 내가 아주 긴장하고 있는 줄로 알고
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보기도 하고
얼굴을 비벼보기도 하고 가슴을 밀착시켜 보기도 한다.
아주 평범한 40대 중년으로 보인다.
절세 미인은 아니지만 예쁜편이고.
세상의 한파가 살짝스쳐 지나간듯한
뭔가 애절한듯한 눈빛이다.
요동치는 수기의 심장박동을 느꼈지만,
약과 술에 취한 나의 몸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다시 뽕짝으로 넘어갔다.
짜리몽땅 아주머니가 무대를 휩쓸고 다닌다.
장씨는 아직도 재롱을 부리며 13번 아주머니를 맴돈다.
다시 발라드로 넘어갈 때
내가 먼저 13번 아주머니 팔을 잡았고
장씨는 못이기는척 수기를 잡고 부루스를 춘다.
기미가 낀듯 보리쌀 냄새가 살짝풍기는
13번 아주머니는 수기보다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다.
하지만 손 끝으로 전해오는 그 몸매는 20대 빰친다.
가슴도 D컵은 충분하다
갑자기 신체 일부에 힘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데 첨인 모양이지요?”
“왜요?”
“놀려고 온 건데 재미있게 놀다 갑시다”
“왜요? 재미없어 보여요?
“장사장님 참 좋으신 분입니다”
“그런것 같아요”
“너무 신경쓰지 말고 기분 확 풀고 갑시다.
나도 처음이고 지금 무척 아픈데도 열심히 놀고 있어요”
“그래요”
부루스가 끝나고 수기와 나는 다시 마주서서
그냥 형식적으로 가볍게 흔들고만 있었다.
총무는 연신 소줏잔을 건네고
족발 한점을 입 속으로 밀어 넣어준다.
이곳이 노래방인지 나이트인지 캬바레인지 알수가 없다
“6번 왔어요?”
불공을 아직도 드리는 모양이다.
18번 차례가 왔다
수기가 먼저 애모를 불렀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아마 수기 정말 울고 싶을 거다.
포항까지 놀러 왔는데
파터너는 대머리에다 몸아픈 노인네를 만났으니....
나는 찬찬찬을 부르고 만원짜리 두장을 붙였다.
19번 노래가 끝날 즈음에
6번이 나타났다.
박씨는 열화와 같은 환대를 받으며
108번뇌를 열창 한다.
6번아주머니와 박씨의 얼굴에 윤기가 반지르르 흐른다.
불공을 많이 올리면 얼굴에 광채가 나는 모양이다.
팀별 노래자랑이 끝나고 메드리가 이어지고
총무의 멘트가 나온다
“버스는 5시반에 출발합니다.
시간꼭 지켜주세요. 기다리지 않습니다“
노래와 춤은 계속이어지고
몇몇은 보이지 않는다.
13번은 찰떡처럼 붙어있고
장씨는 나를 보며 엄지를 위로 치켜든다
짜리몽땅 아주머니는 엉덩이부터 디리 밀고,
부루스 추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소줏잔은 쉬지 않고 스테이지를 돌아 다닌다.
비틀거리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 간다
수기도 취기가 도는 모양이다.
2부가 끝나기 전 나는 수기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왔다.
해가 진줄 알았는데 바깥은 아직도 대낮이다.
17번 김씨, 막걸리와 두부를 앞에 두고
한손은 17번 아주머니 어께를 안고
한손으로 허공을 지르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진짜 부부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포즈다
수기와는 마주 앉아 물국수를 나누어 먹었다.
따뜻한 온기가 속으로 들어가니
몸은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여기는 자판기 커피뿐인데 마시겠어요?”
“......” 수기는 대답이 없다.
커피2잔을 뽑아서 한잔을 건넸다.
살작 웃으며 잔을 받아 들고는
한손을 내주머니에 넣고 발길을 재촉한다.
식당을 나와 계곡 쪽으로 걸어갔다.
낮익은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30년전 미숙이랑 엉덩이로 이름을 썻던 그 계곡이다
사진관에서 빌린 낡은 올림푸스
하프사이즈 카메라로 갖은 폼 잡아가며
친구들이랑 사진을 찍었다.
여학생들은 지들끼리만 찍었다.
사진한장 같이 찍자고 간청을 했지만
미숙이는 한사코 거절했다.
나의 마음을 읽은 친구는
내가 미숙이 옆에 서는 순간을 포착하여
샷터를 눌렸으나 미숙이는 재빨리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결혼전 여자사진은 모조리 태워버렸으나,
얼굴 가린 사진 한 장은 아직도 내 앨범을 장식하고 있으며,
마누라가 제일 궁금해 하고 미워하는 여자다
“무슨 생각하세요?”
나쁜짓하다 들킨것 처럼 깜짝 놀라는
나를 빤히 쳐다 본다
“무슨 상상 한 것 맞지요”
수사관이 범죄자 취조하듯 따지고 묻는다.
절대 아니라고 반색을 하자
“아니면 아니지 왜 이래 흥분해요?”
“내가 흥분 했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냥 넘어가려는 나를 돌려세우고는
자기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라고
얼굴을 내게 드리덴다.
나는 고개를 돌렸으나
돌아가는 고개를 다시 돌려 세우고는
자기 눈을 보라고 강요한다.
쌍꺼플진 눈밑에 잔주름이 몇 개 보인다.
하얀 이가 너무 가지런하다,
분홍색 입술도 참 예쁘다.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동안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수기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순간 나의 가슴은 심하게 떨리면서
전화음이 울린다
전화가 온 것이다.
수기는 얼른 눈을 뜨고 나의 몸을 밀친다.
마누라 전화다
전신에 전율을 느끼면서 얼른 폴더를 열었다.
“혼자 고기 무그이 맛조체?
“아직 ............”
“약은 무긋나? 술 쪼메만 무그라”
“약은 .........”
“언제 오노?”
“모리겠다 빨리 드러가께”
“술 치해가꼬 오기만 해바라”
마누라는 내 대답은 아랑곳 없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어디서 감시카메라로 나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있는듯하다.
수기는 저만치서
전화를 받으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을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다
“부인이세요?”
“네”
“공처가이신 모양이네요”
“..................”
수기의 발길은 버스를 향하고 있다.
나는 말없이 수기의 뒤를 따라 간다.
입대하던 날
밤새워 울었다며 부은 얼굴로 나와서
나의 손을 잡고 통곡을 했던 미숙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받았던 위문편지가
일주일 거르고
한달을 거르고 두달을 거르더니
일년이 못되어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
나는 전역 후에도
미숙이가 돌아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손주는 보고 죽겠노라는
어머님의 성화에 못이겨
미숙이 얼굴을 생각하면서,
황소 도살장 끌려가듯
호텔 커피숖으로 갔다
중매장이가 아가씨를 소개해준다
헉 사슴의 눈매를 닮은
진짜 토끼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나는 첫눈에 완전히 녹아
미숙이란 이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주궁합, 양가대면 모두생략하고
바로 날 잡고 신혼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오르자 머리는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입속에 넣고
비닐백에 남아있는 박카스 1병을 마셨다.
“무슨 약 이예요”
“감기 몸살약 ... 감기가 걸려서”
“낮에 먹은 것도 감기약 이었어요?”
“예”
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껄껄껄 웃는다.
수기는 내가 먹은 약이 이상한 약으로 상상한 모양이다
나는 더 큰소리로 웃었다.
총무가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 즐거웠습니까?”
일제히
“예”
“모두 왔지요 안 온 사람?”
인원을 확인하자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귀를 진동하는 메드리 음악이 나온다.
짜리몽땅 아주머니 또 흔들기 시작한다.
저 아주머니 체력 정말 좋다.
버스통로는 복잡해지고 버스는 뒤뚱거린다.
어두워지면서 실내조명은 화려하게 변한다.
경주 시내를 접어들자 싸이렌이 울린다.
모두 자기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때 까지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으나
수기는 가끔일어나 춤도 추곤했다
고속도로로 진입 하면서 실내는 조용해지고
모두 파터너와 둘만의 대화가 오가고 있다
자옥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온다.
“내곁을 떠나간 그사람 이름은
자옥 자옥 자옥이었어요..........“
나도 모르게 자옥이를 미숙이로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깜빡 깜빡 생각이 난다 미숙아
정말로 착하고 이쁜 아내로 인하여
미숙이의 기억을 깨끗이 지우고
환상의 신혼을 보내는 동안
아들 낳고 딸을 낳으면서
토끼와 같았던 마누라가 고양이로 변하더니
어느날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깜짝 놀라며 눈을 뜨보니
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네요”
입가에 침을 닦으며 “네 미안합니다”
“코까지 골던데요”
“미안 합니다”
오늘 처음 만난 여자를 옆에 두고
침 흘리며 코 까지 골며 잠을 자다니.....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수기가
마치 오래된 친구 같다는 것이다.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 거리낌도 없다.
몸은 아직 정상이 아니지만
잠시 자고 나니 한층 개운해지는 듯하다.
“범어사역에 내리실분 준비하세요”
13번 아주머니가 내릴 모양이다.
장씨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나는 손을 들어 답을 했다.
장씨와 13번 아주머니는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
범어사쪽으로 사라져 갔다.
“온천장 준비하세요”
온천장에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17번 아주머니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인사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혼자 사라진다.
같이 내렸던 김씨는 다시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만덕을 지나 사상을 지난다.
수기는 말없이 나의 손을 잡고 있다.
전화번호를 물어야하나?
내명함을 줘야하나?
“오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입니다”
“아픈 몸으로 이렇게 같이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
“뭘요 제가 미안하지요”
수기는 개금에서 내렸다.
다들 바래다 주라고 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창너머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총무가 연산동에서 뒷풀이 하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집앞 양정에 혼자 내렸다.
마누라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노려 보고 있다.
“밥 좀 줘”
“이제까지 밥도 안무꼬 머했노?”
“...............”
“단풍 조터나?”
“으”
“고기 머뭇노?”
“어............. 오리하고,염소......”
나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
눈치하면 9단이요
진돗개보다 성능 좋은 코를 가진 마누라.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리 없다
“단풍 구경 간거 맞나?”
“보경사 단풍구경 간다 안하더나
“고기 꾸버 무긋다 면서 와 냄새가 안나노?“
“내가 언제 꾸버 무긋다 했나?”
“그라먼 우째 무긋노?”
큰일 났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내가 왜 고기 먹었다는 말을 했는지........
한참을 궁리 끝에
“오리 백숙 무긋다”
“그람 염소는?”
“.......염소는 구워서 접시로 주더라....”
“거짓말 할걸 해라.
어느년하고 바람피다 온거 아이가?“
“비람은 무슨 여자근처에도 안갔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점점 상황을 악화시켜만 가고 있다.
옷에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무슨 단서라도 잡은 양
“이건 여자 화장품 냄새가 분명해..”
“화장품은 무슨...... 당신 거겠지...”
“아저씨 오늘 아침에 새옷 입고 갔고
나는 이런 싸구리 안쓰거덩요”
갑자기 나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더니.
팬티부터 하나하나 상태를 살피고
냄새를 맡아 본다.
마누라는 어느듯 강력계 형사로 변해가고
나는 유력한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의자는 벌거벗은 채로 담담하게
형사님의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강력게 형사는 티셔츠와 외투를 번갈아가며
냄새를 맡아 보고 구석구석을 세세히 살피며
증거확보에 주력한다.
갑자기 형사는 증거를 확보한듯
입가에 미소가 돌더니 날카로운 잇빨을 드러내면서.
“요즈음 염소는 화장하도 하나?”
“..................”
“이게 뭐여”
“뭐”
“이거 화운데이션 자국”
수기와 부루스 출때 조금 뭍은 모양이다.
“어데 .....어데....”
누가 봐도 화운데이션 자국이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왔지만 너무 억울해서
범행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버텼다.
“불어라 어느년이고 미숙이가?”
마누라는 틈만 나면 얼굴없는 여자 미숙이를 들고 나온다.
정말 미숙이 만났으면 집에 들어 왔을까?
“미숙이는 무신..........”
“바른대로 말해라. 바람핀거 맞제?”
“바람은 무슨 ....동네 협의회 단풍놀이 갔다”
“은정이 아빠한테 전화 해보까?“
“헉. 은정이 아빠”
은정이 아빠라는 말에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와 그래 놀라노 은정이 아빠하고 같이 안 갔나?
은정이집에 전화 함 해보자”
나는 필사적으로 전화 통화를 막았다.
동지(공범)를 다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독립 투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오랏줄을 하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장씨를 상상하니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일이 장씨로 끝이 날 것이가.
피를 나눈 동지들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고,
줄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훗날 나의 이름이 친일 인명사전에 오르고
아이들은 순사 앞잡이의 후손으로
고통 받을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 했다.
자백 할 테니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형사님은
내게 잠옷까지 건네고 자백할 시간을 주었다.
은정이 아빠랑 보경사에 묻지마 관광을
다녀 왔노라고 자백을 했다.
형사님은 시간대별로 세세하게 질문을 했으며.
나는 적당히 시간을 짜맞춰 가며 진술을 했다.
진술에 앞뒤가 맞지 않으면 바로 고문으로 이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진술 해야만 했다.
“따르르릉”
마누라가 전화를 받는다.
“응 조금전에 들어 왔는데,
은정아빠는 아직 안들어 왔어?“
은정엄마 전화다.
“다른 사람들 연산동에서 뒷 풀이 하고 있어....
나만 먼저 들어온 거야”
“은정아빠 연산동에 놀고 있다는데....”
“곧 끝날거야.......곧 들어온다고 해”
“곧 들어오겠지”
“응 그래 끊어”
은정이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
나의 머리는 아주 복잡하게 돌아갔다.
나는 형사님 허락하에 잠시 베란다로 가서
동지들에게 사실을 전파했다.
장씨 전화기는 끊겨 있었다.
큰일 났으니 내게 먼저 전화 달라는
메시지를 장씨에게 날렸다
다시 취조실로 들어서자
형사님은 재빨리 휴대폰을 가로챈후
금일의 통화내역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취조는 계속 된다 .
“나이”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성명”
“순이라 하던데”
“주소“
“안물어 봤습니다“
“전화번호”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에프터”
“에프터 신청을 못했습니다”
나는 끝까지 수기라는 이름을 진술하지 않고
그냥 여자들과 잠시 춤추고 놀다 왔다는
진술을 굽히지 않았다
형사님의 수사 촛점은 언제나 재범의 예방이다.
나는 숙달된 솜씨로 반성문과
각서를 부도수표 남발 하듯 발행했다.
이놈 정말 재범의 우려가 없는 놈일까?
취조는 자정을 넘어서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장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 오후 장씨는 입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동지를 배신 하지 않았고,
동지의 구명을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몇일후 모임에 나갔다.
출석율이 아주 저조했다.
회의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다
회장이 사과의 인사를 한다.
“회원 몇분이 개인적 사유에 의거
사퇴를 하게 되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긴급 의제로
장씨를 포함 회원 6명의 사퇴를 승인하고,
총무는 사임을 발표했다.
나에게는 영구제명처분이 내려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