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9월 7일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죽었다. 그는 최후의 조선총독이다. 그러므로 아베 노부유키에게는 1945년 8월 15일 당시 조선에 남아 있던 100만 일본인의 귀국을 성사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아베가 그 책무 완수를 위해 노력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14세기(1346-53) 중세 유럽에 엄청난 흑사병이 유행했다. 인구 절반이 죽었다. 이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고위 성직자들이 도주했다.
아베 노부유키는 맡은 책무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가족만 데리고 몰래 부산으로 도망쳤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달아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태풍이 불어 배 운항이 중지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서울로 되돌아왔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났다. 대통령 이승만은“국군이 괴뢰군을 잘 무찌르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걱정하지 말라”는 방송을 틀어놓고 국회도 모르게 남쪽으로 도주했다. 심지어 한강 다리를 폭파해 일반 시민의 남하를 막았다. ‘괴뢰군’의 이승만 ‘개인’추격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임진강까지 단숨에 야반도주한 선조는 이율곡 유적 화석정을 헐어 그 목재로 불을 밝혀 도강했다. 이때 선조는 어명을 내려 인근 백성의 집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게 했다. 일본군이 그 집들의 가구로 추격용 선박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놀라운 두뇌 회전이었다.
1902년 9월 7일 태어난 김소월은 ‘진달래꽃’,‘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절창을 남겼다. 그 중 ‘왕십리’도 많이 알려졌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중략)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온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고 진보한다고 배웠는데, 어쩐지 그렇지 않고 계속 ‘왕(往)’하는 느낌이다. 이 비는 언제 그치려나? 이수복(1924∼86)은 ‘봄비’에서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라고 노래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