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만 신경 쓰는 우리 아이 걱정된다면…
외모 집착 꾸짖기보다 자녀 고민 들어보고 자신감 갖도록 돌려......
사례 1_ 초등학교 5학년인 수진이(가명)는 올 초부터 엄마에게 귀를 뚫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커서 귀를 뚫으면 된다고 달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도 귀를 다 뚫었다"며 가출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사례 2_ 여고생 민선이(가명)는 매일 틈만 나면 거울을 바라본다. 눈과 코만 조금 고치면 예뻐질 것 같아 속이 탄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부모에게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집에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요즘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걸핏하면 대든다.
사례 3_ 고등학교 1학년인 민준이(가명)는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지방 명문고에 진학했지만, 최근 전학을 결심했다. 두발규제가 심해 이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신경 쓰다 보니 학교 다니기가 싫어졌고 공부까지 멀어지게 됐다. 이런 모습을 본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전학을 택했다.
-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3is@chosun.com
◆외모와 자기혐오
바야흐로 루키즘(lookism)의 시대다. 이는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나눈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외모 지상주의를 뜻한다. "쟤, 얼굴 완전 조각이네"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학생들에게 지나친 외모의 집착은 '헷갈리는 공식으로 세상을 대입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손석한(41·연세 신경정신과) 박사는 "청소년기는 자의식이 발달하는 시기라서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을 많이 쓴다"며 "뇌 발달 측면에서도 청소년기는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이 왕성하게 성장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에서 학생들은 외모에 더욱 집착하고 화려한 것에 감성적으로 동조해 끌려 다닌다. 대구지역 청소년상담원을 찾은 혜미(17)는 자신의 몸과 몸무게를 끊임없이 트집 잡는 스타일이다. 음식 한 숟가락에 든 열량에 집착하며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면 참담함과 자기 혐오에 빠진다. 그녀는 "나를 가장 괴롭히는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며 "스스로 못났다고 느낄때가 괴롭다"고 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박관성(52) 선임상담원은 "아무리 짙은 메이크업을 하더라도 수두 자국을 덮을 수 없듯이 외적인 아름다움이 정서적 불안을 감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성적이 나빠질수록 외모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박 상담원은 "공부보다 외모 가꾸기가 이목을 끌기 더 쉽고 또래들에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화로 외모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들어야
외모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학생답게' 또는 '학생의 본분에 맞게'라는 말로 막으면 오히려 반발심만 생긴다. 손석한 박사는 "작은 키(165㎝)가 고민인 고1 남학생에게 '키가 작으니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라'거나 '세상 살다 보면 키 작은 게 더 좋아'라는 식으로 말하면 역효과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신 "키 작은 것이 약점이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설명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미운 오리새끼'라 혐오하지 말고 나중에 '백조'로 자라기 위해 내면을 발전시키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억지로 외모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이든 강제로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박관성 선임상담원은 "자녀가 부모와의 약속을 무조건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부모도 참는 인내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외모에 관련된 부모들의 잘못된 상식도 고쳐야 한다. 많은 부모가 '학생은 학생다운 머리와 복장을 해야 공부를 잘한다'고 믿는다. 또 '멋을 못 부리게 막으면 꾸밀 생각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청소년시기에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외모를 꾸민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 정화여중 이용미 진로상담부장은 "지나치지만 않다면 청소년들이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에 제약을 둘 필요는 없다"며 "단, 교복이나 두발 문제에서 학교와 학생들이 함께 만든 교칙 기준은 서로 합의한 최소한의 학교생활 기준이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