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약이 없는 것인가?' 그런데 '약은 2천500년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우린 왜 이렇게 아픈 것인가? 2천5백년 전에 약이 있다는데
왜 이제 약이 없다고 하는건가?
요즘 우리가 믿었던 젊은이들이 하루 또 하루 죽어가는 소식이 참 아프다.
한쪽에선 약이 없다고 한다. 지도자는 적응 못하는 젊음을 나무라고
시스템을 정비하자. 군대 내 인간성 회복 운동을 외치는 소리도 있다.
세들어 산 가족이 엄니편 아비편으로 나뉘어 싸우다가
주인네가 헛기침 두어번 하니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나라가 그 정도 꼴인가 싶어 서글퍼진다. 애초에 우리가
쪽박차고 남북으로 세들어 사는 떠돌이도 아니었고 반만년을
이땅의 주인으로 살아 왔는데 볼수록 세들어 눈치 보는 꼴이 서글프다.
군대와 젊은 분노에 약이 정말 없는 걸까? 그래서 유마경과 시경을
오락가락 해본게 다음 방송글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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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약을 구하는 마음으로 不可救藥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초란 고전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옛 성현들 말씀을 보면 약을 구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병든 사람들 돌아보고 보살피는 뜻을 전했거든요.
초란 약을 구한다. 그럼 몸이 아픈데가 있겠구나.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되거든요.
놀보 한걸음 더 나가면 몸이 아픈데 약은 많지만 정작
마음이 아픈데 약은 구하기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초란 아하, 오늘은 마음이 아픈데 약을 구하는 그런 주제군요.
놀보 많은 사람들이 아픈걸 구경만 할 수 없어서
유마경이란 불경에는 이런 구절로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병으로 여기고 함께 약을 구하고자 했거든요.
여기 유마경 한구절 읽어 보시겠어요.
초란(낭송) 모든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 역시 병들었으며,
모든 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내 병도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에 들기 때문이다.
놀보 보통 사람은 내 한몸의 병을 우선 걱정하고
내 한몸의 아픔을 낫게 하고자 약을 찾게 되는데
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나의
병으로 여기며 같이 아파하고 약을 찾게 되는거거든요.
초란 병든 사람이 많은데 자신만 건강하고, 자신만 안전하고
자기만 아무 상관없이 병든 사람을 바라 봐야 하는가?
그런 눈길로 돌아보게 하는 유마경 한구절이군요.
놀보 약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자신을 약으로
쓰겠노라 나서는 마음이 모든이를 사랑하는 자
마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정말
약이 없구나. 이 일은 어찌할 방도가 없구나. 그런
절망을 하게될 때고 있거든요. 오경 중에 시경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 한구절 읽어 보실까요?
초란(낭송) 하늘마저 가혹하게 벌을 내린듯 한 시절인데/
두려움 없이 히히덕 거리고만 있을 일인가?/
어른들 정성으로 말해도 젊은 사람 들은체도 아니하며/
농담삼아 웃어 넘기니/ 마침내 활활 불꽃 같이 타올라
약을 쓸수 없을 지경이면 걷잡을 수 없으리라/
놀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포악한 짓을 하는 사람들
어른이 말을 해도 히히덕 거리고 웃어 넘기며
자기 하고픈 대로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이
치닫고 있는 그곳에 무슨 약이 필요할까.
이미 약을 쓸 수 없이 혼란하고 공포스럽게 됐더라.
초란 해설서에 보면 시경 대아에 나오는 판이란 시는
폭군의 폭정을 비판하는 시라고 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약을 쓸 수 없이 방탕하고 혼란한 때를 탄식한 대목아닌가
놀보 그래서 나온 말이 ‘불가구약’이라. 약을 구할 수 없더라.
그런 탄식이었는데요. 자 지금 약을 구할 수 없을지경이 된
곳이 어디 같습니까? 한 해병용사가 또 목숨을 끊었지요.
초란 과연 무적해병이 다시 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런 일을
두고 우리는 약이 없구나. 불가구약일세 탄식만 해야할까요
놀보 그럼 다시 유마경으로 돌아가 이렇게 풀어보는건 어떨까요
‘전우의 아픔이 내 아픔이기에/ 전우의 눈물이 사라져야
내 눈물도 그치리라/ 전우의 목숨이 내 목숨이기에
전우의 목숨도 내가 지키리라/ ’
초란 우린 정말 약이 없다 탄식만 하고 있어야 할까요.
놀보 ‘전우의 아픔과 눈물이 내 눈물이기에’ 이 한구절만
실천할 수 있다면, 그래도 약이 없는 겁니까?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불가구약’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마는 속세에 살면서 탈속한 부처의 수제자들보다 더나 아픈 사람이었다.
재산도 넉넉하고 인품도 덕성도 수련도 원만했던 유마가 왜 부처를 따르는
삭발한 수행자 보다 더나 아팠을까?
조금은 철없이 젊었던 시절, 유마가 멋지다. 부러울 때가 있었다.
그리고 살면서 유마야 말로 가장 중생을 위해 아팠던 수행자임을 알고 부끄러워졌다.
그는 이미 2천5백년 전에 나를 향해 말했던 거다.
그대가 아파해서 나도 아프오. 그대가 잠못 들어 나도 밤을 지켰고
그대가 울어 꿈속으로 찾아가 불렀나니
내가 그대 대신 아플 것이니 그대여 눈물을 멈추라.
내가 그대 대신 죽기라도 할 것이니 그대여 사는 날 앞에 서라.
어느날인가 그대 편한 미소에 함께 웃으리니
너인들 어떠하며 나인들 어떠하랴.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나 보다. 유마는 이미 2천 5백년 전에
나를 불렀는데 오래 도록 만나지 못하고 오늘에야 불현듯 그가 노래한 구절이
불러 돌아서 본다.
모든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 역시 병들었으며,
모든 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내 병도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에 들기 때문이다.
아래 유마경 문질품 몇구절 참고로 돌아보며
철없이 젊었던 한 시절 잠깐 만난 유마힐을 다시 불러본다.
그대가 나 대신 불러 준 세월에 감사 드리며.....
누군가는 불교를 믿느냐 묻는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반길 것이요
누군가 개종했느냐 묻는다면 노장의 휘파람으로 웃으며 갈 일이다.
종소리는 사원에서만 울리는 게 아니다.
아낙네 다듬이질 소리도 잠을 깨면 빨래 법문소리 인것을......
중생이 앓으니 보살도 앓는다 〔維摩經 問疾品〕
문수보살은 유마힐을 문병하기 위해 여러 대중과 함께 베살리로 갔다.
그때 유마힐은 문수보살 일행이 오고 있는 것을 알고 가루를 치우고
시중 드는 사람들을 내어보내 홀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문수보살이 들어서자 유마힐이 말했다.
"어서오십시오, 문수보살님.
올 것이 없는데 오셨고 볼 것이 없는데 보십니다."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거사님.
왔다 해도 온 것이 아니며 간다 해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와도 온 곳이 없고 가도 간 곳이 없으며,
본다는 것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병환은 좀 어떠십니까?
부처님께서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병은 어째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됐으며,
어떻게 하면 낳을 수 있겠습니까?"
유마힐은 대답했다.
"내 병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애착이 일어 생겼고,
모든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고 있습니다.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에 들고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게 마련입니다.
중생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병은 대비심(大悲心)에서 생깁니다."
첫댓글 대기업수퍼 옆 동네슈퍼가 문 닫는건 장사를 못해서고, 근로자가 정리해고 되는건 일을 못해서고, 젊은이가 취업을 못하는건 눈이 높아서고, 조폭수준 병영문화에 젊은 병사들이 죽어나가는건 자유롭게 성장한 젊은이들이 적응 못하는거고.....아무리 개짓거리해도 무조건 지지율 30%유지하는 이 시대 대텅의 말쌈이랍니다.. 그런데도 그 묻지마 지지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외계인인가요?..................... 젊은 병사의 목숨보다 내 손톱밑에 가시가 박힌것이 더 아프다는게 범인들의 심정이라지만 나랏님은 그런맘 가지고 얼굴 들이밀면 안되리라 생각합니다....ㅜㅜ
세상은 상식이 통해야 정의로운 사회가 일궈진다고 봅니다.
결국 정의로운 사회는 국민이 궁민의 가면을 벗어야 하는데
묻지마 궁민들땜시 세계는 하나로 외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고 있습니까?
왜? 우리나라 군대는 아군이 아군을 잡아야 하는지
그 근본을 도려내지 못하고 아나로그 시대의 케케묵은
방법을 답습하고 있는지 모를 일 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영특합니까.
사랑과 희망이 찬 병영문화로 바뀌지 않는한
사고 또한 첨단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군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지요.. 이쯤되면 해병대에 문제가 예사롭지 않네요. 근원적인 문제을 바꾸지 않고는 또 무슨일이 일어날지 걱정입니다. 아들 가진 부모들은 군대에 실상을 알면서도 보내야하는 군방의 의무마저 의심이 되겠지요. 지금이 21세기인데 사는 것은 독재에 방탕에 조선시대 같습니다. 다음 선거엔 약자편에서 일할수 있는 지도자들을 뽑아야할텐데 이익 관계가 얽히는지 요상합니다. 남아플때 너무 아파하진 말아야해요.. 그것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병과 육신의 병..그리고 염색이 되듯이 ..마음에 전염병 ..육신에 전염병..
둥굴게 같이 돌아가는 사회..돈,,썩은 물로 염색된 사회..기생에게 쌀..9말 줬다가 파직된 사또..그다음은 노예로 보내자는 상소들이..지금 한국에 진정한 공권력은 있는가 싶어요..
참으로 걱정입니다. 사고를 일으킨 병사나, 당한 병사나 다 내 아들, 내 가족으로 생각하면 답이 금방 나오는데요...
동물의 세계에선 생긴 모양이 무리와 다르거나 약한 개체는 도태됩니다.
엄청 무리들이 왕따시키고 괴롭혀 무리에서 쫓아내거나 말라죽게 하더라구요.
우리 인간만이 약한 자를 보호하고 지켜서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으로 배웠고 그럭저럭 실천하며
사는 걸로 압니다. 한데, 동물성이 야성이 고개를 드는 건 아니겠죠? 인간이 인간다운 것, 동물과 다른 것이
앞서 하우님이 올렸던 글 '박노자'씨의 주장처럼 '동류사랑'의 정신이 있어선데.... 인간성회복에 중점을 두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사회적분위기도 그렇게 돌아가야 할것 같습니다.
2천 5백년전의 '유마거사'의 이웃사랑 정신이 절실한 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