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은 인조의 아버지다
원종은 선조의 5남 정원군으로 선조와 인빈 김 씨 사이에 태어났다
선조는 대군인 영창대군과
여러 후궁사이에 1남 임해군, 2남 광해군, 3남 의안군, 4남 신성군,5남 정원군,6남 순화군,7남 인성군,8남 돈창군,9남 경창군, 10남 흥안군, 11남 경평군,12남,인흥군,13남 영성군으로
14명의 왕자를 생산했다
그러면 선조의 선대를 잠깐 살펴보면 추존 덕종의 아들인 성종과 연산을 쫒아내고 반정에 성공한 중종의 가계를 살펴봐야 한다.
중종의 왕자는 1嗣 인종대왕 2嗣 명종대왕 1남 복성군, 2남 해안군, 3남 근원군, 4남 영양군, 5남 덕양군, 6남 봉성군, 7남 덕흥군,으로 9명의 왕자를 두었다
인종이 재위 1년만 붕어하고 명종이 후사 없이 붕어하니 왕실은 급히 왕재 목으로 중종의
7남 덕흥군의 셋째인 하성군를 옹립하여 선조로 등극시키면서 죽은 아버지가 덕흥대원군으로 추존된다.
명종과 문정왕후까지는 왕권이 그런대로 명령이 잘 먹히던 시기인데 임난 이후 인조 재위 시는
신권이 더 말발이 점점 세지는 시기된다.
인조는 정원군과 인헌 군부인 구씨 사이에 큰아들인 능양군으로 태어난다.
어머니는 능성구씨 구사맹의 딸이다 동생인 능원대군과 광해가 강화도에서 위리안치 독살시킨 능창대군이 있다,
인조반정으로 등극한 인조의 과업은 출신성분을 그레이드 압하여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는 과업이었다,
그는 이 과업을 성공하는데 무려 10년이 걸린다.
즉위 4년차인 1626년 정월14일생모인 인헌 군부인 49살에 죽는다. 인조는 이 기회를 살려 생모를 왕비수준으로 장례를 치르라 지시한다. 신하들의 반대가 들 꿇는다. 인조는 선조에 출계되었기 때문에 생모를 위해 상주가 될 수 없고 상주는 출 가전 동생인 능원 군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의정 오리 이원익외 다수 신하의 주장임 . 맞는 말이다 양자 간 아들이 생모가 죽었다고 상주는 될 수 없는 것이 백성들에게도 바른 예법이 아닌가.
정통성이 약하고 이 약점을 만회하기위한 인조의 의도 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1627년 정묘 년에 금나라가 쳐들어왔다 인조의 왕위계승이 부당하고 폐왕인 광해를 복위해야한다는 주장으로 칩입한 후금군대3만 대병력이 일거에 쳐내려 왔다 인조반정시 당연1등공신 반열에 오를 줄 알았던 이괄이 밀리면서1624년 반란을 일으켜 공주까지 피난을 간다 간신히 환궁하니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괄 잔당들이 후금에 첩자가 되어 길안내를 하면서 패악 질을 하니 일거에 평산 까지 쳐 내러 온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가기에 바쁘다. 그런데 병력이동을 무력의 공백으로 균형이 깨진 후금이 조선과는 화약이란 는 문서를 남기고 명의 목줄을 치려 퇴거를 한다.
조선의 추존왕 元宗편 첫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