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온종일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늦은 오후에는 어제 심어둔 토마토와 고추모종들을 위해 영양 흙을 사러 꽃집에 갔다가 또 다시 나를 유혹하는 꽃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만져보다 빈카 모종들을 사서 돌아오는 그 길목에서도 너는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내 시야에는 모든 사물들이, 모든 풍경들이 그림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일까? 하는 일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너에게 오랜만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밤 늦은 시간에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까지도 너를 내 마음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낳아 키울 때도 그랬던 거 같다.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 온 아름다운 열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이 들 그 때까지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았던 그 모성애가 나를 부지런하게도 만들었고, 행복하게도 만들었던 것이다. 유달리 열정적이던 딸 아이가 먼저 대학으로 떠났고 아들 녀석 역시 힘에 버겁게 공부, 바이올린, 테니스, 봉사활동들 까지 감당해 낸 후 마침내 대학으로 떠나갔다.
유화를 시작하면서 내가 첫 번째로 엄마와 딸이 말을 타고 시냇물을 건너가는 이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엄마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다. 아이의 호기심과 열정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주면서도 그들의 안전과 평안을 가슴 조이며 지켜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잠들지 않는다. 가까이에 있던지 멀리 떨어져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할지라도 엄마의 마음은 늘 아이 곁에서 기도처럼 함께 따라 다니는 것이다.
나의 두 아이들 역시 유난히 호기심도 많았고 열정 또한 대단했다. 학창시절에 공부에 열중하지 못했던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뒤늦게 이차방정식을 풀어야 했고 영어공부를 시작했으며 vocabulary 들을 외워야만 했었다. 직장생활과 가사일로 때로는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시간에 아이들이 끝낸 숙제들을 꺼내어 틀린 것은 없는지를 체크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뿔싸!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 온 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내 math 숙제 답을 고친 바람에 다섯 개나 틀렸어" "엉?? 뭐라 구?" "나는 분명 맞게 풀었는데 왠 일이야" 하며 부랴부랴 알아보니 반올림을 배우는 중이라 딸아이가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 한 것을 틀렸다고 내가 고쳐놓은 것이다.
영어가 서툴렀던 자그마한 한인엄마가 자녀를 낯선 미국 땅에서 마약과 탈선으로부터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쏟아 부었던 어설펐던 열정들이 결실로 다가와 미소 지을 수 있음은 저 그림 속에 담긴 엄마처럼 아이와 함께 말을 타고 걸어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위험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붙잡은 저 굵직한 밧줄의 힘은 무엇일까? 위험한 길이라고 도전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엄마의 지혜로움이 돋보인다.
나의 생일 날, 나의 손안에서 떠나간 우리아이들이 마음을 모아 유화도구 일체를 선물로 보내왔었다. 남편은 내가 유화를 배울 수 있도록 선생님을 만나 시간을 예약해 주었고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던 날, 나는 아이처럼 설레었고 가슴이 두근거렸으며 모든 것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이제 나는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해 주었던 첫 작품의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너무 어려운 사진을 선택해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후회를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 그림을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우리아이들은 엄마와 함께했던 그들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추억하며 엄마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 가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아들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병원에서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 받질 못했는데......
이렇게 문자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Hey mom, I saw something that made me think of you and I just wanted to say I love you."
"고마워~♡ 나도 많이 사랑해! I love you too!"
배민서 / 본보 칼럼니스트
배민서 happynews9400@hanmail.net
첫댓글 엄마와 딸은 같은 마음 다른 빛깔이기도 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에 엄마가 살아있기에 기운 차릴 수 있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