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시쯤에 모닝콜이 울렸으나 집에서 편하게 지내오다 오랜만에 무리를 해서 그런지 일어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결국 반쯤 깨서 앉아서 졸다가, 물 마시고 또 졸고, 빨래가 다 마른 걸 보고 기뻐하다가 또 거실에서 졸고 하다가 8시쯤에나 일어났다. 어젯밤에 비가 많이 오고 천둥번개도 쳤는데 바로 근방에 벼락이 떨어졌는지 자다가 꽝!, 하는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폭탄 소리인줄 알고 기겁을 하고 필자와 사촌동생이 동시에 일어났다가 서로를 바라보곤 다시 잠들었던 기억이 잠결에 어렴풋이 남아있는지라 바깥 날씨가 걱정됐는데 창 밖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조금 늦어서인지 배가 무척이나 고팠기에 씻지도 않고 어제 받아둔 식권(동남아 쪽 호텔에선 아침 식사는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을 들고 호텔 내의 Cafe Mhakota로 가서 햄에그, 토스트, 샐러드, 오렌지 쥬스 등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씻고 호텔을 나서려니 다행히 가는 비만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호텔을 나와서 어제 받은 지도만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지도가 잘 되어있어서인지 아님 우리가 방향 감각이 뛰어나서인지 아무튼 오래 걸리지 않아 Porta De Santiago 요새를 찾아낼 수 있었다.
1.Porta De Santiago 요새
A Famosa라는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1511년에 만들어진 요새로, 한때는 난공불락의 성채로써 그 위용을 과시했으나 침략에 의해 파괴되었다. 1670년에 화란(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복원이 되었고 1807년에 또다시 말라카를 공격한 영국군에 파괴도어 사라질 운명에 처했으나 1808년에 스탬포드 래플즈 경(동남아에선 이 사람 꽤 유명하죠, 영국 사람인데... 이 사람 이름을 딴 거리와 호텔이 여기저기에 수두룩하답니다.)의 명령으로 이 성채의 완전한 파괴는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정문만이 남아있다. 산티아고는 포르투칼의 수호 성인 성 야곱을 가르킨다.
요새라길래 많은 걸 기대했는데 정문 한 개만 달랑 있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했다. 앞에 모형 대포를 두어개 가져다 놓고 주변 조경에도 나름대로 신경 쓴 듯했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동대문이 문만 달랑 남아서 시내 한복판에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해서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멋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정문 하나의 크기만으로도 요새의 크기를 짐작할 만한 상당한 크기였으니까. 독특한 양식(포르투갈 양식이겠지)의 성문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문 안쪽으로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으나 장사꾼들이 판을 벌여놓아서 붙잡을까봐 한번 쓰윽 보고 나와버렸다.^^;;
Porta de Santigo 요새 뒤쪽의 언덕을 보니 잘 닦여진 계단이 산 위로 길게 뻗어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 올라가보자 싶어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사촌동생을 끌고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무덤 같은 것도 몇 개 있고 더 위쪽에는 무슨 건축물이 있는 듯했다. 올라가서야 안 사실이지만 거기가 바로 다음 목적지인 St. Paul’s Church였다.
2.
포르투갈인들에게 “Our lady of the hill”로 알려진 이 교회당은 포르투갈 통치 시대인 1521년에 Duarte Coelho가 세웠으며 후에 네델란드인이 ‘St. Paul’ 교회로 개칭하였다. 원래는 죽은 귀족들의 묘지로 쓰였었고, 후에 동방 선교를 위해 몸 바친 프란시스코 자비에르(Francisco de Xavier)가 죽었을 때, 그의 유해가 인도로 옮기기 전 이곳에 임시로 매장되어있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이냐시오, 로욜라와 함께 예수회를 창설했다. 교황으로부터 동양 일대의 선교와 관리를 명 받고 중국의 광둥항에 도착했으나 열병으로 사망했다.
들어서는 입구 앞에는 인자한 모습의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신부님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동상이 있고 그 뒤로 커다란 교회당이 보였다. 앞에서 보면 완연한 교회당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험난한 세월 탓인지 지붕과 창틀이 없고 지금은 약간은 쓸쓸한 모습으로 관광객만을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청동판들을 지나 교회당 안쪽으로 들어가면 철망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어른 키만한 구덩이가 파져 있고 예전에 자베에르 신부님이 묻혀 있었다는 터가 있었다. 신기해서 안을 좀 더 들여다보니 관광객들의 소행인지 동전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여긴 무덤터지 분수대가 아닌데,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하여간 TV가 애들(?)을 망친다니까…;;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어서 꽤나 신비한 기분에 취해 교회당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우르르 들이닥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흥취가 약간 상했다. 이른 아침 대중 목욕탕에 갔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느긋하게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지르며 냉수 마찰하는 아저씨를 만난 기분이랄까…-_-;;; 어쨌든 시끄러운 사람들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밖은 언제 비가 왔냐싶게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걸어 다니기 딱 좋은 날씨다.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 편으로 난 길을 쭈욱 따라 올라가니 시계탑과 작은 분수 공원이 하나 있고 그 뒤편으로 Christ Church와 Stadthuys가 보였다.
3.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는 엽서나 기념품 같은 걸 파는 상인들이 두어명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 곳인가 했더니 현재 교회로 사용중인 건물이란다. 제단 앞쪽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관광객도 보였다. 나도 종교가 있는 만큼(카톨릭) 다른 종교도 존중하는 마음에 교회 내부에선 사진을 찍지 않았다.
먼저 문에서 네 걸음 정도 걸어 들어가면 바닥에 광택 타일을 이용하여 아르메니아 체(Armenian Script)로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성경 글귀가 빽빽히 적혀있었다. 앞쪽 제단에는 놋쇠로 된 성경 받침대에 성 요한의 첫 구절이 새겨져 있었고, 양쪽 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기리는 성화(聖畵)가 주욱 늘어서 걸려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다른 관광객들마저 분위기에 젖어든 듯 꽤나 정숙했다.
4. Clock Tower
교회에서 나와서 아까 전에 본 멋진 분수대 앞을 지나는데 일본인 여자들 셋이 사진 한 방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분수대를 배경으로 한 방, 찰칵. 오른편에 있는 시계탑 앞에서 또 한 방 찰칵. 고마워하며 우리도 찍어준단다. 카메라를 맡기고 한 방 찍은 다음,
“아리가또”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본어 중 한마디를 하자, 지내들끼리 엄청 좋아한다. 그러더니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답한다. 꽥, 간 떨어질 뻔했네. 아, 사실 한국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묻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
그러자 약간 특이한 영어로 대답한다.
“아이 깬따루 스피꾸 꼬리안.(I can’t speak Korean.)”
에겅, 일본 사람 맞구나. 알고보니 그 사람도 나처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는 한국어라고 한다..^^;
어쨌든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 시계탑도 크리스트 교화, 스타더이스와 더불어 말라카의 기념비적인 건물에 속한단다.
5.Stadthuys
1650년 네델란드 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Stadthuys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 스타일의 건물이다. 이 붉은색의 긴 건물은 원래 네덜란드 총독과 관리들의 공관으로 사용되기 위해 건축되어졌는데 건축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는 역사 박물관과 인종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전통 혼례복과 각종 유인물이 계속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사촌 동생이 갑자기 반대한다.
“어차피 들어가봤자, 말레이시아 역사하고 베이징원인이니, 네안데르탈인이니 하는 것밖에 없을건데… 게다가 10RM(3500원)이면 여기 물가치곤 넘 비싼데… 돈 주고 들어가 볼 가치가 있을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결국 사촌은 앞에 있는 벤치에 앉혀 놓고 나 혼자 들어갔다왔다. 필자는 어떤 시련(?)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한국인이 아니더냐… ㅎㅎ 아님 단순한 고집쟁이인가.-_-;;; 할 수 없지 뭐… 커험…
자, 여기서 필자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요약해본 말라카의 역사를 감상(?)해 보자.
<15세기 초 수마트라 파라메스와라(Sumatra Parameswaha)에서 추방당한 한 왕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한 조그만 어촌까지 흘러들어왔다. 그가 한 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 쉬었는데 그 나무 이름이 말라카 나무란다. 왕자는 그 이름을 따 나라 이름을 말라카로 명명하게된다. 말라카 왕국은 아랍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는데, 이 시기에 거의 모든 말레이계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후 말라카는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성장, 남미와 유럽에서 유입된 금, 비단, 차, 담배, 향수 등 많은 물품이 말라카에서 거래되었다. 말라카가 무역 중심지가 되자 이를 탐낸 서구 세력이(못된 양놈들 같으니…-_-+) 말라카를 침입하기 시작한다. 1511년 포르투갈, 1641년 네덜란드, 1824년 영국까지… 결국 1957년에 독립하면서 정권을 넘겨받게되고 현재 말라카에는 각각 다른 나라의 특징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이다.>
별로 재미없다고? 그래도 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번역한건데…ㅡ.ㅜ 암튼 외세에 침입을 받았으면서도 그 당시의 독특한 건축 양식 같은 걸 그대로 보존해서 후에 관광 상품으로 팔아먹는 것도 능력이다 싶었다. 우리 나라는 뛰어난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관리 및 홍보 부족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편인데… 본받을 점인 것 같다.
6. The Baba Nyonya heritage Museum
Stadthuys 건너편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다리가 놓여있는데 강물을 보니 갑자기 목이 더 탔다. 거의 똥물 수준인데도….-_-;;; 필자가 더티해서 라기보다 그만큼 목이 말랐다는…;; 하여간 그래서 길가 노점에서 물(1.2RM)과 펩시(1.2RM)를 하나씩 사서 손에 들고 다리를 건넜다. 갈림길이 나오길래 왼쪽으로 꺽어서 주욱 늘어선 집인지 가게인지 하여간, 2층 건물들의 거리(퉁탄챙로크 거리 Jalan Tun Tan Cheng Lock)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The Baba Nyonya heritage Museum가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커다란 저택인데 입구는 철창살로 된 문으로 막혀있다. 문을 닫았나싶어 어두운 창살 안을 들여다보니 갑자기 어떤 아줌마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불쑥 들이밀어진다. 기겁을 한 필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려다 다행히 억누르고 간신히 체통을 지킬 수 있었다…-_-;; 간 떨어질 뻔했네.. 어쨌든 거기가 입구가 맞았다. 그 중국식 고전(?) 복장을 한 아줌마는 입장할꺼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며 16RM(일인당 8RM)을 내밀자 철문을 열어주며 입장권을 내민다. 안으로 들어서자 유럽 관광객들과 중국계 같이 보이는 사람들 여러 명이 의자에 앉아있다. 아까 그 아줌마가 다시 다가오더니 영어 해설로 된 집안 투어(?)는 1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문가에 있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앉아 쉬다 보니 방금 그 아줌마가 다가와 집안을 안내하며 설명을 한다. 뇨냐란 중국인들을 가르키는 말이고, ‘바바 뇨냐’는 이 지방에서 태어난 중국인들을 뜻한단다. 집 안을 둘러보니 영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꽤나 부유층의 집이었던 것 같은데 이주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가구와 결혼 예복 등이 전시 되어있었다. 한국인인 우리들에게야 우리랑 그렇게 많이 다르진 않은 문화인데다가 무협이나 황비홍(;;)같은 영화에서 많이 봐 오던거라 감흥이 그리 크진 않았는데 서양인들은 안 그런가 보다. 밥그릇이나 중국 전통 예복 같은 걸 보더니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고개를 기웃기웃 거리며 그야말로 신기하고 좋아서 죽을라고 한다. 이거보고 놀라면 우리나라 와서 제대로(!) 보고 가면 까무러치겠다. ㅋㅋ 왜 제대로 옆에 느낌표를 붙였냐고? 우리가 우리 주변 환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봐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TV에서 본 내용인데 어떤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 서울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택시 바가지의 어택이 들어간다. 울 나라에는 택시 바가지가 없다고? 천만의 말씀, 자국인한테는 감히 바가지 씌우기가 힘들뿐이다. 할아버지의 손님이 일본에서 오셨을 때 5000원 나온 걸 5000엔(우리 돈 5만원)달라고 한 적도 있단다. 일단 우리말 못하면 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소위 우리보다 못산다는 나라(특정 국가를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 수준과 의식 수준의 비 매치랄까… 쩝… 어쨌든 예의 그 외국인이 그럭저럭 호텔을 잡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경주의 민속촌이란 데가 참 볼만하단다. 그래서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한국말로 뭐라고 대답한다. “Hello” 한마디 꺼내자마자 전화를 부리나케 끊는다. 또 다시 전화를 걸어 영어로 말하자 또 부리나케 전화를 끊는다. 보다 못한 FD가 대신 전화를 걸어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버스를 예약할 수 있겠냐고… 그러자 부끄러운지 이제 영업 안 한다고 말하고 또 끊어버린다…-_-;;; 결국 어찌어찌해서 경주로 가는 버스 터미널을 알아낸 외국인,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로 가는데 도전해 본다. 근데 표기가 어찌나 엉망인지 인터넷 관광청과 지하철 노선도, 버스 앞 등 모든 표기가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대구를 ‘TAE-GU’, ‘DAE-GU’ 등으로, 부산을 ‘PUSAN’, ‘BUSAN’ 등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아마 여러분도 알게 모르게 이런 예를 많이 보아왔으리라. 결국 천신만고 끝에 역까지 가서 표를 구입, 경주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는 더 막막하다.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묻기도 하고 복잡한 버스 노선표 앞에 붙어서(당연히 우리 나라엔 영어로 된 시내버스 노선표가 없다…-_-;;;) 낑낑대며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고, 결국 취재진들의 도움으로 민속촌에 도착하지만 이미 날은 어둑어둑, 입구를 지키던 사람이 문 닫을 시간이라고 나가란다. 이게 우리나라 관광의 현실이다. 한국인인 내가 봐도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썩히고 있는 우리나라와 어떻게 보면 별볼일 없는 것들을 끌어 모아 놓고도 외국 관광객들을 무수히 끌어들이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을 비교해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7. Cheng hoon teng Temple
1646년에 건립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 사원이다. 관음보살과 어민들의 수호신인 조상을 모시고 있는데 모든 건축 재료를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들어왔다고 한다. 힘들었겠다…;; 안으로 들어가자 향 냄새가 확 풍겨왔다. 마침 가운데의 제단에서도 한 중국인이 손에 향을 들고 꾸벅 절을 하면서 예를 올리고 있었다. 왠지 그럴듯해 보이길래 필자도 향 한 대 사서 해볼까 하다가 가짜인 거 들통나면 혼날까 봐 그만 뒀다.^^;; 제단 뒤쪽에도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는데 방마다 관음보살과 다른 부처들, 조상들의 위패 같은 것들이 모셔져 있고 그 앞에는 여지없이 향이 살라져 있었다. 왠지 기분 좋은 향 냄새에 취해 이 방 저 방을 구경하고 다니다가 나왔다.
8.Kampuung Kling Mosque
쳉훈텡 사원을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자 한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보였다. 혹시 이것도 유명한 건가 싶어서 지도를 펼쳐드니 Kampung Kling이라는 이슬람 사원이란다. 이곳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 중의 하나로 수마트라 건축의 영향을 받아 피라미드처럼 올라가는 3층 지붕과 아름답게 조각된 목재 천장을 가지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도 시간이 아닌지 텅텅 비어있다. 솔직히 이슬람 사원은 처음 들어가본거라 무척 궁금했는데 안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오른편엔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만 하는 예배당 같은 게 있고 다른 종교와는 달리 신상 같은 것은 모시지 않는 듯 했다. 또한 왼편에는 꼭 우리 나라의 대중 목욕탕처럼 생긴 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성수(聖水)로 영혼을 정화할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맨 오른쪽엔 탑 같은 게 있었는데 맨 꼭대기에 스피커가 달려있었다. 의도한 건 아닐지라도 이 스피커야말로 우리 가족들에겐 원흉 중의 하나다. 우리 집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슬람 사원에선 기도 시간이 되면 자기 신도들이 듣고 예배하라고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커다란 소리로 동네방네 노래를 부른다. 일종의 성가(聖歌)인 셈인데 쉬고 찢어지는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게다가 곳곳에 이슬람 사원이 있어서 기도 시간에는 3,4군데에서 동시에 서로 다른 노래 소리가 웅웅거리면서 들려온다.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새벽이든 저녁이든 계속 시달리다보면 이것도 노이로제다…-_-;;
9.Jalan Hang Jebat(Jonker Street)
Kampung Kling Mosque에서 나와 왼쪽 길로 접어들면 Jalan Hang Jebat이 있다. Jalan은 거리라는 뜻이고, Hang Jebat은 명예로운 결투 끝에 죽은 정의의 사자란다. 뭐 우리 나라 식으로 하면 ‘세종로(세종대왕의 길)’, 뭐 이 정도 작명법이 되지 않나 싶다. 히히… 어쨌든 이 거리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수집상들에게는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이란다. 양 좌우로 골동품 점이 있는 거리를 거닐다 보면 토인(?) 가면 같은 거부터 해서 도작, 조각, 그림 등 갖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다. 가격은 대체로 저렴한 편이고 거의 300년 전의 진품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여기까지 보고 나니 어느덧 12시가 지나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땡볕에 쉬지 않고 계속 걸었던터라 이미 옷은 땀에 절어있었고 배도 무척 고팠다. 일단 KFC로 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 샤워를 한 후, 징징거리는 사촌을 달래서 다시 나왔다…^^;;
+10박 11일 말레이시아로 무작정 떠나다! [Prologue]
+동남아식 수동(?) 비데 [1st Day, Johor Bahru->Melaka]
+말레이시아의 경주, 말라카에 가다! [2nd Day A.M. Melaka]
+물고기, 장군을 구하다! [2nd Day P.M. Melaka]
+국제미아(?)가 된 동생ㅜㅜ [3rd Day, Melaka-> K.L.]
+산꼭대기에 놀이동산이? O.O; 겐팅하일랜드~ [4th Day, K.L.]
+전갈과 놀지 마시오.-_-; [5th Day A.M., K.L.]
+한국 VS 일본 누가 빨리 짓나? [5th Day P.M., K.L.]
+논스톱 버스에서 배탈이..-_-; [6th Day, K.L.->Penang]
+산으로 올라가는 기차? 쿠리쿨라이! [7th Day A.M., Penang]
+미이라로 만든 불상, 미이라불! [7th Day P.M., Penang]
+난생 처음 가본 XX한(?) 술집..; [7th Day Night, Pen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