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솔잎땀 내는~청산애황토구들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김춘수 시 모음
과꽃 추천 0 조회 44 08.05.24 22:1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꽃을 위한 서시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거리에 비 내리듯                                     


거리에 비 내리듯
비 개인 다음의
하늘을 보라.
비 개인 다음의
꼬꼬리새 무릎을 보라. 발톱을 보라.
비 개인 다음의
네 입술
네 목젖의 얼룩을 보라.
면경(面鏡)알에 비치는
산과 내
비 개인 다음의 봄바다는
언제나 어디로 떠나고 있다.
        

 

 

 

가을 저녁의 시                                        


누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시 1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를 밟고 갈 때
허물어진 세계의 안쪽에서 우는
가을 벌레를 말하라.
아니
바다의 순결했던 부분을 말하라.
베고니아의 꽃잎에 듣는
아침 햇살을 말하라.
아니
그 울음과 굴뚝을 말하고
겨울 습기와
한강변의 두더지를 말하라.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를 밟고 갈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네가 가던 그날은                                


네가 가던 그날은
나의 가슴이
가녀린 풀잎처럼 설레이었다


하늘은 그린듯이 더욱 푸르고
네가 가던 그날은
가을이 가지 끝에 울고 있었다


구름이 졸고 있는
산마루에
단풍잎 발갛게 타며 있었다


네가 가던 그날은
나의 가슴이
부질없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능 금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이미 가 버린 그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만이
익어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며는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분 수                                                    

 

 1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2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 보내는
이별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가.

 

3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처 용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 밟히며
잠을 깬다.
숲 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인동(忍冬) 잎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近郊)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越冬)하는

인동(忍冬)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처용단장(處容斷章)                                  

 

- 1의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근골(筋骨)과 근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꼬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히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 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 1의 2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내가 만난 이중섭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부두에서                                                

 

바다에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셔지지 않는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김춘수 金春洙 (1922.11.25~   )                                                                   
  
본관은 광산이며, 경상남도 충무시 동호동에서 출생하였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3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학과 3학년에 재학중 중퇴하였다. 통영중학교와 마산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5년 경북대학교 교수, 1978년 영남대학교 문리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및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에 시 〈애가〉를 발표하였으며, 대구 지방에서 발행된 동인지 《죽순》에 시 〈온실〉 외 1편을 발표하였다. 1948년에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내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산악〉 〈사〉 〈기(旗)〉 〈모나리자에게〉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주로 《문학예술》 《현대문학》 《사상계》 《현대시학》 등의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초기의 경향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 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도 일컬어진다. 시집으로 첫 시집 외에 《늪》 《기》 《인인(隣人)》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시선》 《김춘수전집》 《처용》 《남천(南天)》 《꽃을 위한 서시》 《너를 향하여 나는》 등이 있으며, 시론집으로 《세계현대시감상》 《한국현대시형태론》 《시론》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한국의 문제시 명시 해설과 감상》(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과 1959년 자유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문화훈장(은관) 등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

 

<나의 문학 실험>

 

- 시인 김춘수의 말

                                                                                   

 

40년대 후반은 나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습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암중모색의 시기다. 남의 시를 모방하면서 어떻게 쓰면 시가 되는가 하는 것을 나대로 습득해가는 과정이었다. 50년대로 접어들자 나에게 비로소 길이 열리는 듯 했다.

나는 남의 시의 압력으로부터 풀려났다. 그러자 내가 시도하게 된 시는 관념적인 색채를 띠게 되고 몹시도 과작이 되어갔다. 1년에 한 편 정도가 고작이었다.

꽃 연작시에 있어서의 꽃은 단지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꽃에 빗대어 관념(사상이나 철학)을 드러내려고 했다. 나는 그때 실존주의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고, 학생때 읽은 릴케의 관념시가 새삼 새로운 매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60년대로 접어들자 시에 대한 또 한번의 회의와 반성이 왔다. 한 3∼4년동안 새로운 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무렵 시는 관념으로 굳어지기 전의 어떤 상태가 아닐까 하는 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관념을 의미의 세계라고 한다면 시는 의미로 응고되기 전의 존재 그 자체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인식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시에서 관념을 빼는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이 한 3∼4년 걸렸다. 시에서 관념, 즉 사상이나 철학을 빼자니 문체가 설명체가 아니고 묘사체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존재의 모습)을 그린다. 흡사 물질시의 그것처럼 된다.묘사라는 것은 결국 이미지만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때의 이미지는 서술적이다. 나는 이미지를 비유적인 것과 서술적인 것으로 구별하게 되었다. 서술적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이미지다. 말하자면 이미지가 무엇을 비유하지 않는 이미지다. 무엇을 비유한다고 할 적의 무엇은 사상이나 철학, 즉 관념이 된다. 그러나 서술적 이미지는 그 배후에 관념이 없기 때문에 존재의 모습(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즉 그 이미지는 순수하다.이리하여 나는 이런 따위의 이미지로 된 시를 순수시라고도 하고, 무의미의 시라고도 하게 되었다.

 

무의미한 관념, 즉 사상이나 철학을 1차적으로는 시에서 빼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아무리 순수하게, 즉 서술적으로 쓰인다 해도 이미지는 늘 의미, 즉 관념의 그림자를 거느리게 된다. 이리하여 이미지도 없애야 되겠다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내 무의미 시의 둘쨋번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없애고 리듬만이 남게 한다. 흡사 주문과 같은 상태가 빚어진다. 음악을 듣듯 리듬이 빚는 어떤 분위기에 잠기면 된다.

 

 

 

 

 

 



Return to Love

 

 

 
다음검색
댓글
  • 08.05.25 13:02

    첫댓글 한때 김춘수님의 '꽃' 참 좋아 했었는데... 잊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새롭네요. 친구들과 조잘조잘 시 외우던 때가 그립네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