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제4조가 된 도신은 선종의 수도원을 공식적으로 개설하여 부처님의 후계제자로 활동하였다. 그 중에서 선종의 지침서인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불도에 들어가 마음을 안주시키는 중요한 방편법문이라는 뜻이다.도신의 수도원에는 언제나 500명이 넘는 눈 밝은 제자들로 붐볐다. 수행도 몸소 모범을 보이려고 60년 동안이나 장좌불와를 하였다. 장좌불와는 등을 바닥에 대지 않고 수행하는 고행방법이다. 그러므로 잠을 잘 때도 앉아서 자거나 서서 잔다.그런 그에게 볼품없는 형색의 도승 한 명이 방문했다. 나이가 80이라고 했는데 유불선을 통달했다고 했다. 그는 도신에게 달마로부터 전해 받은 해탈법문을 죽기 전에 꼭 듣고 싶다고 했다. 도신은 그가 예사의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했다.하지만 가르치기에는 너무 연로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에게 사실 달마로부터 내려온 해탈법문이 있는데 가르쳐주고 싶어도 당신이 늙어서 전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정히 듣고 싶다면 몸을 새롭게 바꾸어 오라고 했다.도승은 알겠다고 하면서 山門을 나갔다. 그리고 개울가에 가서 몸을 씻었다. 그때 젊고 아름다운 처녀 하나가 빨래를 하러 강가에 왔다. 노승은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당신의 몸을 좀 빌리자고 했다. 그러자 처녀가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라며 걱정스레 되물었다.도승은 천하의 선지식을 낳은 과보로 오랫동안 천상의 복을 받을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12살까지만 키워달라고 했다. 그 때가 되면 누가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노승은 그 처녀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처녀는 무염수태를 하게 된 것이다.엉겹결에 수태를 한 처녀가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말했다. 부모는 남들이 알면 뭐라 하겠느냐 하면서 도망치듯이 야반에 그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범상치 않은 아이 하나를 낳았다. 그 아이가 바로 홍인대사다.홍인이 12살 때 그곳을 들러 볼일을 보러 가던 도신의 일행과 필연적으로 마주쳤다. 그는 비록 어린 소년에 불과했지만 그 풍모가 빼어나고 인물이 수려해서 그들 일행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신과 홍인의 눈동자가 마주치자 순간 번갯불이 튀었다. 도신이 물었다.''성이 무엇이냐?''''佛性입니다.''이 한마디에 도신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지고 가슴은 천둥이 치듯이 뛰었다. 그의 성이 周씨인데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佛性이라고 답했던 것이다.도신은 전생에 약속했던 대로 미처 가르쳐주지 못했던 법을 전해주고 후계자로 삼기 위해 그가 머물고 있는 쌍봉산으로 그의 어미를 대동해 데리고 갔다. 거기서 홍인은 도신을 30년이나 지극히 모시면서 대소승경전의 내용에 이어 달마선과 조사선을 깊이 있게 두루 익혔다.참고로 홍인은 원효성사보다 17살이 많다. 현장은 성사보다 16살이나 많고 혜능은 20살이나 적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48살이나 많다. 6세기를 넘어가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같은 당대에 태어나 제각기의 민족 속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떠나갔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그 처녀다.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성녀라는 호칭으로 2천년이 넘도록 동서의 수많은 신자들이 아베마리아를 부르면서 그녀를 찬미하고 찬송하는데 홍인을 낳은 그 처녀는 이름조차 남김없이 너무나 조용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예수는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끌어넣었고 홍인은 하나님 같은 것은 원래 없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 내었다 하면서 인간들을 하느님으로 부터 해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홍인은 달마로부터 내려온 대승불교의 소의경전인 능가경을 반야부 경전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즉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 신행의 시초도 이 홍인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리고 달마선을 버리고 조사선을 만들어 조사불교를 부흥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스승인 도신이 먼저 이러한 시도를 하였지만 그 결실은 홍인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던 것이다.그리고 홍인은 동아시아 전체를 조사불교 천지로 만드는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그 중에서도 남돈북점의 거목들인 혜능과 신수를 탄생시켰다. 그분들의 가르침으로 우리나라의 조사불교도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출한 고승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면서 오늘날까지 왔다.누가 더 위대한 성자를 낳은 것인가. 한 처녀는 하느님의 자식이라는 예수를 낳았고 또 한 처녀는 이 마음이 곧 하느님이라는 선종의 대가를 낳았다.똑같이 무염수태로 위대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녀들을 대하는 후손들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그 처녀가 홍인을 낳아줬다고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그녀의 동상을 세우고 그녀를 찬탄하고 그녀를 추모하는 행사를 마리아처럼 거창하게 기념해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임제 같은 걸걸한 제자와 시도 때도 없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덕산같은 거친 후예들이 세기를 넘어 날뛰는 조사불교에서 과연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그녀를 보살의 화신으로 모시지 않은 것이 참 몰인정하고 예의없는 처세였다고만 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녀가 그냥 질투심 많은 보통의 여자였다면 그런 차별된 대우에 조금은 섭섭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마는.출처: 대승기신론 해동소 혈맥기 5_공파스님 역해_운주사
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The 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