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은 동이족이었다
73년,진시황릉을 재조사한 바 있는 전 북경대 화춘구교수(당시62세)는 74년 중국제1의 언론사인 신화사통신 사회부 이귀형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진시왕은 동이족이었고, 유적은 모두 동이족 유적임을 확인하였다" 고 인터뷰한 사실이 당국에 보고되어 74~75 당국으로부터 당국에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간 감금되었다가 하남지방 관리직으로 전출된 후, 5년후인 80년에 폐암으로 사망한 바 있습니다.
79년4월,이분을 만난 삼우선생은 "중국대륙에서 우리 화하족역사는 천년이 안된다. 중국역사 4천년중에 조선(단조선)의 역사가 3분의 2가 넘으니 중국역사는 동이족의 역사다" 라고 하면서, "당국은 역사조작을 하려하는데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 이다. 라고 말한사실이 육성녹음되어 있습니다.
상투는 한민족의 문화
상투는 동이족만의 문화이며...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진시황릉과 시안의 피리미드들은
모두 발굴중단 된채 지금까지 유지되고있다.
지구상에서, 상투를 튼 민족이 우리 한민족(韓,夷,이) 말고,어디 또 있을까?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길렀다.
처녀총각들은 머리를 땋아 늘어트리고 생활하다가, 혼인을 치르면서,
여자들은 쪽짓고 비녀꽂아 단장하고,남자들은 상투틀어 품격을 갖추고 성인의례를 치루었다.
옛 문헌에 의하면, 고조선,삼국시대 이전부터 근세까지 상투머리를 고수해왔던 것으로 나온다.
상투문화는 배달민족만이 지닌 고유풍습과 전통사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몇천년 동안 한가지 머리모양만 고수해온 민족은 세계적으로도 오직 유일한 우리 단일민족 뿐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생명과 신체발부(身體髮膚,몸,머리털,피부)를 그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는 자연과의 조화정신..,댕기머리,상투머리,쪽진 머리,그것은 수만년을 이어오며 우리 배달민족을 지구상에서 살아 오늘처럼 번성할 수 있도록 지켜온 근원적인 혼이었다.
왕의 상투관(위), 반가(班家) 남자의 상투(아래)
상투, 티벳탕카-석가모니
상투,복희와 여와
상투,마하비로자나불
상투, 씨름하는 장사들, 고구려 각저총, 집안,길림성
아시다시피 석가모니도 동이족계열인 코리족입니다.
1920년대 후반 영국의 사학자 스미스는 석가부처는 동쪽에서 이주해 온 코리족 출신이라고 했다.
몽골리안 인종 중에 한민족의 일파인 코리족이 네팔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석가는 바로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불교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석가부처의 여려성姓도 그가 동방족의 혈통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준다(개벽실제상황 p263)
역사를 잘 살펴보면 중국의 5천년 역사에서 자기네 한족 출신의 왕이 왕조를 열어서 대륙을 통치한 일이 거의 없다. 한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 헌원을 비롯하여 오제五帝로 손꼽히는 소호, 전욱, 제곡, 요임금, 순임금과 그 뒤를 이은 3왕조의 개국조인 하나라 우임금, 상(은)나라 성탕, 주나라의 문황.무왕까지도 본래의 혈통은 100% 동방족이다.
중국의 삼황오제로부터 고대 하상주 3왕조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통치했던 왕조나 그들의 문화를 보면, 단순히 동이족이 문화를 전수해 준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민족이 직접 현지에서 나라를 건설한 창업의 역사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의 진秦나라, 오환선비족인 양견(문제), 양광(양제)의 수隋나라, 이연(고조)과 이세민(태종)의 당唐, 유율아보기의 요나라, 여진족인 아구타가 세운금金나라와 황태극皇太極의 청淸나라, 몽골족 징기스칸,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元나라, 고려출신 주원장朱元璋이 세운 명明나라도 모두 순수한 한족의 왕조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무엇으로 뒤엎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개벽실제상황 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