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조끼를 입을 수 없는 노동자들
공계진 사단법인 시화노동정책연구소
6월 말이니 금속노조의 임단투가 후반기로 접어들 시점이다. ‘금속노동자’에 따르면 노조는, 사용자협의회가 6월 21일 10차 중앙교섭에서조차 ‘금속산업 최저임금과 노조의 요구안의 핵심내용에 대한 안을 제출을 하지 않아’ 중앙교섭을 결렬시키고, 7월 1일 쟁의조정신청, 7월 4~6일 쟁의행위찬반투표에 들어간다. 아마도 사용자협의회가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노조는 파업에 돌입할 것이 예상된다.
바야흐로 투쟁시기. 노동조합의 투쟁하면 떠오르는 것이 투쟁조끼이다. 조끼입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늘 아름답다. 조끼입고, 팔뚝을 휘두르며 투쟁을 외치거나, 행진하는 모습은 언제나 멋지다. 세상의 그 어떤 패션 모델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조끼패션을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멋진 투쟁조끼를 입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50인 이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 노동자들’의 99% 이상은 공장 내에 노조가 없고, 금속노조에도 개별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투쟁할 권리가 없다, 아니 투쟁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노동자들은 멋진 패션의 투쟁조끼를 입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시화공단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조끼를 입을 수 없는 ‘그들 노동자들’이다. 입기는커녕, ‘그들 노동자들’은 그것을 구경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시화공단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이 있지만 투쟁하는 노조들이 아닌,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이기 때문에 조끼 입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시, 이제 ‘그들 노동자들’이 투쟁조끼를 ‘구경’하거나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금속노조의 과제가 될 때이다.
‘그들 노동자들’에게 투쟁조끼를 ‘구경’시켜주기 위해서는 금속노조 노동자들이 조끼를 입고 ‘그들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단이나 지역에 가서 ‘홍보하거나 투쟁해야’ 한다. 이를테면 시화공단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 또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시화공단입주기업대표자회의 등을 대상으로 시화공단에서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집회를 한다면 ‘그들 노동자들’은 투쟁조끼를 구경하게 된다. 투쟁은 아니더라도 노조 조합원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그들 노동자들’이 식사하러 나오는 식당 주변에서 ‘노조할 권리’ 등에 대해 홍보하는 것도 ‘그들 노동자들’에게 조끼를 구경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경이 아니라 ‘직접 입어보게 하는 것‘. 이것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지역노조 등으로 모아내고, 그들의 요구를 담아 해당 사업장 사용자 또는 사용자협의회 등과 교섭과 투쟁을 하면 ‘그들 노동자들’도 투쟁조끼를 입을 수 있게 된다. ‘그들 노동자들’의 조끼입은 모습은 매우 늠름할 것이다. 아마도 여기까지 간다면 ‘그들 노동자들’은 감격에 젖을 것이며, 투쟁조끼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열심히 담아낼 것이다. 그리고 뿌듯해하며 자식, 배우자, 친척, 친구들에게 SNS질을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상상이지만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엔돌핀이 돈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돌던 엔돌핀이 바로 멈춘다. 왜냐하면 노조가 ‘구경시키고, 입혀주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를테면 50인 이하 사업장 밀집지역인 시화공단(시화공단이 아니어도 좋음)의 문제를 몇가지로 정리하고, 시화공단에서의 홍보 및 집회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시흥안산지역지회에서 작은 단위의 홍보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조끼를 구경시켜 줄 수준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그 ‘구경’을 현실화시키려면 작은 지역지회가 아닌, 노조가 보다 큰 규모로 나서야 한다.
또한 조끼를 입히기 위해서는 50인 이하 사업장 밀집지역인 시화공단을 전략조직화 단위로 설정하고 “찔끔”이 아닌 대규모집중투자를 지속적으로 추진, 노동자들을 노조로 모아내고, 그들과 함께 ‘그들 노동자들’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하지만 노조는 이런 투쟁조직에 대한 구상이 없어보인다. “찔끔”해보고 어렵다며 회피하기 일쑤이다.
‘구경’이나 ‘입히는 것’을 추진하지 못하는 유일한 근거는 ‘어렵다’는 것. 그 어렵다는 것을 필자가 몰라서 이런 말을 해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노동조합 만들고, 또는 민주화시키는 사업을 수십년 해왔다. 매시기 어렵지 않은 적은 단한번도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금속노조가 존재한다.
50인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투쟁조끼를 입히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