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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스님 ‘즉문즉설’ 부산법회 | |||||
“산과 바다를 살려야 인간도 산다” | |||||
지난 3월1일부터 ‘생명평화’를 주제로 길을 걷기 시작한 도법스님이 지리산, 제주를 거쳐 부산지역 탁발순례를 마쳤다. 부산지역 탁발순례를 마치며 스님은 지난 13일 부산 소림사에서 ‘생명살림 불사를 위한 즉문즉설 법회’를 열었다. 도법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지만 대부분 왜곡되거나 과장된 얘기”라며 “순례 길에 오른 것은 수행자로서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열린 즉문즉설법회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더 부자가 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믿고 있다. 부자가 되면 행복하고 부자로 살면 행복한 세상인가? 이 말이 맞는다면, 미국은 얼마나 더 부자가 돼야 ‘이제 됐어’라고 생각할까. 부자만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도몽상이다.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자고 하는 것이 불교다. 삶의 현실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눈여겨서 살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직면해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지 못하면, 불교교리를 아무리 공부해도 소용없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참선하는 것은 세상이 도둑놈 판인지 양반 판인지 읽어내기 위해서다. 도둑놈 판이면 속지 말고 바꿔야 하고, 양반 판이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삶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기르기 위함이다.” 달리 표현하면 사실을 제대로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라고 하겠다. 흔히 ‘아는게 뭐 중요해 실천하는게 중요하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제대로 알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한다. 부처님이 자비의 삶을 위해 자기 인생을 걸었던 것이나 사랑을 위해 예수가 자기 생을 걸었던 것은 참된 앎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부처님은 참되게 알아야 할 것을 연기법이라고 했다. 왜 혼자 있으면 상대를 그리워할까.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은 너에 의지해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생명에 대한 갈망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너 없으면 나도 죽는다’는 진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자연을 상대로 공격하고 파괴할 수 있을까.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나를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종단의 높은 자리에 앉아서 생명운동을 펴는 것이 더 효과가 크지 않을까. 조계종단의 권력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총무원에서는 불교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곳에서는 생명평화에 대한 얘기를 할 새가 없었다. 누군가 부처님처럼 훌륭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를 이용해 많은 것을 펼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가면 그 사람이나 종단이나 모두 죽는다. 사실 나는 많은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늦게 시작한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그렇지만 순례하는데 체력과 기술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혜와 자비, 흔히 말하는 진실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온 세상을 짊어질 수도 있다.” 환경단체나 불교에서는 제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부산의 강과 바다, 산이 저렇게 철저하게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는지 먼저 부산시민에게 묻고 싶다. 과거에는 우리가 환경생태에 대한 중요성 모르고 개발 성장으로 일관해왔다. 지금은 달라졌다. 환경문제를 중요시하면서 부산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부산시민이 다 가만히 있다. 어쩌면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천성산은 뚫리고 낙동강은 죽고 있다. 부산시민이 생명의 터전인 산의 가치에 대해 눈뜨고 절대 안 된다고 들고 일어나면 공사는 멈출 것이다.” 우리의 똥이 비료가 되고 먹거리가 되는 것에 새삼 놀랐다. 낙동강 하구둑을 보면 둑 때문에 물의 흐름이 막혀 생명질서가 단절됐다. 모든 생명의 순환질서가 인간들의 편리욕구에 의해 철저하게 차단된 것이다. 우리가 맛있다고 먹는 밥이나 떡이나 김치나 하는 것이 다 우리의 똥을 먹은 것들이다. 이것이 순환질서다. 현대 서양화장실에서는 그런 순환계가 다 차단된다. 똥이 생명을 생산하는 거름으로 순환되지 않고 오염물로 전락하고 있다. ‘생명의 분단벽’을 허물고, 생명의 순환 질서를 회복해보자는 뜻에서 만든 것이 실상사 생태화장실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것 중에 최악의 물건이 ‘서울’이다. 서울은 나라의 불균형을 가져왔고, 지역과 농촌을 무너뜨렸다. 부산 역시 제2의 수도답게 서울이 가고 있는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산에 올라가서 부산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산과 강, 바다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부산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학장천 살리기, 도시 속의 작은 학교, 차없는 거리 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불교신문 2040호/ 6월18일자] |
첫댓글 자연과 문명간의 조화와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할텐데...
유구무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