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중섭(大鄕, 九寸, 1916-1956)의 생애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괘도를 같이한다. 그는 일제시대인 1916년 식민지 조선에서
유복한 도련님으로 태어나 1935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며, 거기서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라는 여학생을
만나 1945년 해방 직전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1950년에 터진 6-25로 인해 고행은 시작된다.
당시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서 둥지를 튼 이중섭은 온가족이 더불어 생활하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으나 그것도 잠깐 뿐,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한 그는 결국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홀로 떠돌이 생활을 하게된다. 그때부터 그는 오직 일본의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경제적 과실은 변변치 못했고 그럴수록 그의 육신은 서서히 황무지로 변해갔다.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던 이중섭은 끝내 정신 질환을 얻어 1956년 9월 6일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그의 시신은 무연고자로 처리돼 사흘간 방치되었다가 뒤늦게 지인들에게 수습되어 망우리공원에서 잠들고 있다.
이중섭은 천재적 필력과 처절한 생존투쟁 그리고 현해탄에 가로막힌 지고지순한 사랑 등으로 그는 이미 신화 속 인물로 변신했다.
그의 작품 소재는 소, 닭, 어린이 그리고 아내를 비롯한 가족 등이 주류를 이루는데, 각 작품에는 짙은 향토성과 자전적 요소가 내재(은유)된 것이다.
한편, 이중섭의 아내이자 영원한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는 생이별의 아픔을 보듬고 지난 70여 년간 홀로 살면서 중섭을 기리다가 2022년 8월 13일 101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