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
박기옥
중국발 진드기가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여러 명이 사망했다. 진드기 서식지인 숲이나 풀밭에는 출입을 자제하라는 당국의 홍보다. 마당의 잔디에 살충제를 뿌린다. 손자들이 마음 놓고 뒹굴라고.
매일 아침, 진딧물과 전쟁을 벌인다. 대문 앞 채소밭에 김장용 배추를 심었다. 잎을 채 열기도 전에 진드기가 극성을 부린다. 겨우 잎을 여는 가녀린 배춧잎에 그놈들이 고물고물 기고 있다. 손톱만 한 이파리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살충제를 뿌려보지만, 연방 달라붙는다. 독성은 약해지고 진드기의 내성이 강해졌을 모양이다. 친환경 정책을 펴지만, 농약이 없는 수확은 기대하기 힘이 든다.
진드기란 말 자체가 거부감을 일으킨다. 진드기는 동물의 피나 식물의 즙을 빨아 먹으며 세포 조직을 해체하는 좀 같은 존재이다. 사람과 동물, 식물에 빌붙어 배를 채운다. 진드기는 가려움과 반점·부스럼·딱지를 만들면서 옴을 일으킨다. 사람에게 침입하는 털 진드기는 기다란 지렁이 모양으로 지방 분비선을 파고들어 생명까지 위협한다.
소에게 달라붙은 진드기를 떼어 내는 것이 어릴 적 나의 몫이었다. 진드기는 감나무 그늘에서 휴식하는 소를 그냥 두지 않는다. 똥파리와 진드기가 괴롭혀도 휘두르는 꽁지는 마냥 여유롭다. 적당하게 빨아먹으라는 듯 태평스럽다. 검붉은 진드기의 피 주머니는 포도 알처럼 팽팽해야 떨어져 나간다. 포식한 놈은 쉬 침을 뽑아내지만, 배를 채우지 못한 놈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진드기와 전쟁은 그뿐만 아니다. 초가집의 너덜너덜한 벽지 속은 그놈들의 보금자리다. 벼룩은 뜀뛰기 선수처럼 곡예하고, 반달 같은 빈대는 헤어진 틈 속에서 스멀스멀 기고 있다. 자주 감지 않은 더벅머리는 이와 서캐가 꼬물거렸다. 변변한 약이 없어 원조로 들여온 디디티 가루가 또래의 머리 위에 허옇게 휘날렸다. 내의의 터진 틈도 놈들의 보금자리였다. 놈들을 흔들리는 호롱불에 갖다 대면 '따다닥' 따발총 소리를 방불한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와 어우러져 온 방을 진동한다.
진드기 이야기는 H그룹 회장의 일화가 있다. 유명한 '빈대론'이다. 공사판에서 막노동할 때란다. 먹을 것을 찾아 벽을 타는 빈대를 향해
"하찮은 미물도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쓰는데 만물의 영장이 못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라며 빈대를 보고 교훈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삶도 그러할 터다.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근성이 없으면 무한경쟁 사회에서 뒤처지기 마련이다. 한두 차례 두드려 문이 열린다면 부자 안 될 사람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진드기 작전을 펼친다. 이 공장 저 공장 방문하며 틈새가 보이면 진드기처럼 달라붙는다. 명분만 생기면 끈질기게 파고든다.
"진드기처럼 끈적한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다."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목표를 이뤘을 때 얻은 자신감은 무형의 재산이다.
문제는 '진드기 같은 인간'이다. 진득한 프로 정신은 외면하고 하릴없이 진드기 같은 무리가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권력에 빌붙어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진드기의 근성이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어제의 우군이 오늘은 적군이고, 어제의 언행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세상이다. 약점을 들춰내어 돈으로 흥정하는 악덕 진드기가 문제이다. 남의 다리를 걸고넘어진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물귀신 작전도 불사한다. 오죽하면 진드기 같은 인간이라 하겠는가.
나라를 통치한 사람이 오랜 세월을 진드기처럼 버텨왔다. 추징금 공소 시효를 학수고대했으리라. 오랫동안 진드기처럼 버텨냈다.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니 쇠고랑 차기 직전에 항서를 썼다. 어디 그뿐인가. 법을 만드는 의원이란 사람이 법을 예사로 어긴다. 국가를 부정하고, 내란음모란 죄목으로 추궁을 받고 있다. 묵비권을 이용하여 진득하게 입을 닫고 있다. 세뇌된 사상은 진드기를 능가한다. 메뚜기를 진드기 떼로 묘사한 펄벅의『대지』가 떠오른다. 비슷한 무리가 활개친다. 무서운 세상이다.
진드기는 익충益蟲도 있고 해충害蟲도 있다. 착한 진드기가 발 뻗고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할 터이다. 권력에 빌붙어 약자를 괴롭히는 진드기는 독성이 강한 살충제로 제압함이 마땅하다. 약을 뿌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았건만 배춧잎에 진드기가 솔솔 긴다. '물 한 말에 약 한 봉지'이라고 적힌 안내문을 무시하고 두 봉지를 털어 넣었다. 도망가는 놈을 향해 마구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