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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9:14
변화산은 머물러야 할 곳이 아니라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와야 하며 주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주님은 산 아래 세상이 어떤지를 보여주면서 왜 자신이 갈보리 산을 올라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영광 이전에 십자가를 져야 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엇인가? "Mountain Byeonchaek" is not a place to stay, but to come down to the world under the mountain and work with the Lord. The Lord shows what the world is like under the mountain and teaches you why you have to climb Mount Galbori. What is happening in a world where you are supposed to take a cross before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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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이자 마지막 귀신 축출스토리는 변화 산상의 영광스런 경험 후에 바로 이어집니다. 산 위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았는데, 산 아래에서는 한 아비의 아들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는 비참한 지경에 있는 상황입니다. 산 위에서는 하늘의 영광, 신뢰, 경배가 있었다면 산 아래에서는 고통, 탄식,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The fourth and last ghost eviction story follows right after the glorious experience of the mountains of change. On top of the mountain, the son of God was honored, and on the bottom of the mountain, the son of a father was captured by a ghost and destroyed the image of God. On top of the mountain, if there was glory, trust, and reverence in the sky, then below the mountain was full of pain, sighing, and dis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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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예수께서 영광의 산을 내려와 갈보리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 아래 인류의 죄와 질고를 지고 돌아가셔야 아들도 온전해지고 산 위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일 테지요. 제자들의 실패에 의심이 깃든 아비는 예수님께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소서(22)." 라고 애원 합니다.
This is why Jesus must descend from the Mount of Glory and climb up to Mount Galvori. Because you must die of the sins and sufferings of mankind under the mountain so that your son can be intact and participate in the glory of Jesus on the mountain.The father, who was suspicious of his disciples' failure, implores Jesus, "If you can, please pity us and help us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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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그 마음에 있는 신앙과 불신앙을 동시에 간파하시고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23)" 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24)"라는 고백을 했으니 자신의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이제부터 온전히 믿겠다는 말로 믿고 싶습니다. 저는 귀신 축출 본문이 나오면 괜한 닭살이 돋는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전의 이야기와 사뭇 다른 초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If you can, then you will be able to do everything you can to those who believe in you," he says the Lord, 'There is nothing you can't do.' Then the father said, "I believe in you. Please help me with my faith, 24." I want to accept that I have no faith in you and believe that I will trust you completely from now on. I get goose bumps when the text of the ghost ousting comes out. If you take a closer look at the text today, you'll find a very different focus from the previou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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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 이야기(1:27,5;7)는 귀신들이 울 주님의 정체를 알았으나 어쩌지 못하는 예수님의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세 번째 구신 축출 내러티브는 이방 여인의 믿음에, 그리고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이 초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믿음이없는 세대(19)"라고 책망하십니다.
The first two stories (1:27,5;7) focused on the ability of Jesus, who knew the true nature of the Lord, but couldn't help it, the third outcast narratives were in the faith of the Gentiles, and today's text is about the faith of the disciples. So he reproaches them as a generation without faith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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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묻자(28)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9) 솔직히 저는 오늘 본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믿음 없는 기도를 한 것 같긴 한데 뭐 제자
들이나 저나 믿음 없는 기도를 어디 한두 번 했습니까? 본문이 마가복음 판에 나오는 4번의 귀신 축출 기사 중 가장 빈야드 성향이 짙다는 생각입니다.
When asked why they couldn't drive out ghosts, they said, "We can't go beyond praying (28) to this kind of thing. Hashinira (29) To be honest, I don't really like today's text. It seems that the disciples did not pray, but they did pray without faith. How many times have they and I prayed without faith? I think the text is the most vinyard-like in Mark's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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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그 사람들이 "이적 행함-하나님 나라의 임함-그리고 제자라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까지 나아가는 근거 본문이 되고는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자인 마가는 우리 주님의 반응이나 무리의 반응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자들의 귀신 축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거두절미하고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서론 본론이 모두 생략된 뜻한 인상이듭니다.
This is why the people "should have the ability to carry out transfers, to serve in the kingdom of God, and to be disciples.""It used to be the basis for going all the way. Clearly, the author, Marga, does not report on the reaction of Lord Wool or the reaction of the pack. But Jesus did not hesitate to pray for the question of the exorcism of his disciples. It has a significant impression that the introduction has all been o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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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기사에 대한 저의 생각은 기적이든 이적이든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신비의 종교이니까요.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이라는 절대 단서가 붙어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니까요. My thoughts on the article of transfer have been in the past, and I think it can happen now, whether it's a miracle or a transfer. Because Christianity itself is a mysterious religion. But if God wants it, he must have the absolute clue. Because God is the God of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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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울 주님이 메시아로 인식 될 무렵 이적을 통하여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데몬스트레이션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 어디에도 귀신을 쫓아 낼 때 기도를 한다거나 주문을 외우는 구절이 없습니다.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오니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고 하면 귀신이 우리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지 않습니다. 절대로.
To sum up, isn't it because at the time when the Lord was recognized as a messiah, there was a need to demonstrate the kingdom of God, who is in power through transfer? There is no prayer or spell in this text anywhere in the text today. "I command you in the name of Jesus Nazarene, you dirty ghost," the ghost does not move from our church to another church.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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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관통하는 개념은 '믿음'이고 그 믿음의 표현이 기도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이 실제 상황에서 드러났어야 했는데 사실 믿음이 없으니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 무슨 놈의 믿음이 생길까? 나(교회)의 추락한 도덕성 때문에 복음을 가로막고 있지 않았는가? 나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과 탄식을 아는가? 도움을 얻기 위해 주님을 향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It's clear that today's concept of penetrating the text is faith and that expression of faith is prayer. It is faith that does not impose any restrictions on God's ability, and that belief should have been revealed in the real world, but what faith does it have, not praying, not praying? Wasn't I blocking the gospel because of my fallen morality? Do I know my father's grief and lament for the indifference and coldness of his family? What attitude should you have toward the Lord to get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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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는 세대(14-19)
a.논쟁:14-16
b.귀신들린 아이와 무능력한 제자들:17-18
c.믿음이 없는 세대:19
믿음의 문제(20-24)
a.예수와 귀신의 대면:20
b.하실 수 있거든:21-22
c.믿음과 능력:23-24
귀신 축출(25-27)
a.귀신을 꾸짖다:25-26
b.아이를 일으키다:27
기도(28-29)
a.질문:28
b.기도의 능력: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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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14a)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14b)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15a)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1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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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16)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17a)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17b)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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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18b)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18c)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18d)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1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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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19b)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19c)
이에 데리고 오니(20a)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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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20c)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21a)
가로되 어릴 때 부터나이다(21b)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2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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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22b)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23a)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23b)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2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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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24b)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25a)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25b)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2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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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25d)
귀신이 소리 지르며(26a)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26b)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2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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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27a)
이에 일어서니라(27b)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2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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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28b)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29a)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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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불신과 무능_ discredit and incompetence of disciples
아비의 불신과 믿음_father's distrust and faith
제자들의 믿음과 기도_Beliefs and Prayer of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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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절망도 아니고 오만도 아니고 믿음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줄 압니다. 변화 산의 영광을 경험했는데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과 회의로 가득한 세상에 대하여 아무런 대답도 처방도 내릴 수 없는 우리들의 믿음 없음을 용서 하옵소서. 성도의 진정한 힘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믿음의 삶을 실제로 살고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을 깨닫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가 되게 하옵소서. 저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살게 하옵소서.
You know, O LORD, not despair, not arrogance, but faith can save us. Forgive us for our faith in a world filled with distrust and skepticism, and for which we cannot answer and prescribe anything, even though we have experienced the glory of Mount Changjo. May the true power of the saints be the warriors of prayer who realize what is in play when they are actually living a life of faith in Jesus and pray for it. May I trust, rely, pray and live on your power.
2024.3.5.tue.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