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왕 만두
이 청 재
우리 동네에는 만두 가게가 두개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느티나무가 있는 만두가게를 가끔씩 들린다.
만두와 찹쌀 도넛 찐빵을 판매하는 가게인데 이 집에 만두가 너무 맛있다.
특히 절친한 초등학교 모임 때는 친구들과 가게에 들러 어린시절 추억을 회상하며 만두를 먹곤한다.
어느 날, 오후 가게에 가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님이 정담을 나누며 만두를 드시고 계셨다. 할머니가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면 할아버지는 눈을 지긋이 감고 만두를 드신다. 할아버지의 모습이 철부지 어린아이 모습처럼 너무나 평온하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아마도 첫 사랑때 헤어진 만남을 황혼길에 다시 찾은 것 처럼 느껴졌다.
그래 맞아! 첫사랑의 연인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나이 들어 사이좋게 연인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거든. 이제 사실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황혼녁에 첫 사랑의 연인과 즐기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보기 좋지..
젊은 시절 살기 어려웠고 자식들 뒷 바라지 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는데 황혼기에 다시 만나서 얼마나 좋으실까?
만두를 남겨 놓고 나가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흘러간 세월 속에 초등학교 시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해방 된 후 6·25 사변이 끝이 난 60년 대는 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좋아하는 만두를 자주 사먹을 형편이 못 되었다.
만두가게 앞을 지날때면 구수한 왕 만두와 찐빵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며 나를 유혹 하지만 냄새 만을 마시며 만두 가게를 지나치곤 하였다.
큰 느티나무가 집 앞에 있는 만두 집에는 동갑내기 여학생이 있었는데 같은 웅변반원인 내가 가면, 아저씨는 만두를 하나 더 주셨다. 배고푼 시절 하나 더 공자로 얻어 먹는 만두 맛은 꿀 맛 같이 맛이 있었다. 그녀도 보고 맛 좋은 만두를 하나 더 먹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였다. 그 때는 웅변 대회가 전국에 열리곤 하였는데 나는 겨우 지역 예선을 통과 했지만 그녀는 전국 대회에 나가 입상을 여러번 했다. 웅변 실력도 뛰어났지만 얼굴도 귀염성이 있고 예뻐서 심사위원들 에게 크게 어필 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에 일이었다. 웅변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비 온 뒤에 개울가에 너무 많이 불어나서 다리 위로 물이 넘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다리는 시멘트 다리가 아닌 흙다리였다. 10여 미터의 흙다리를 건너다가 그녀는 그만 발을 헛디뎌서 개천가로 빠지려고 하였다.
나는 황급히 개천으로 빠지려는 그녀를 안아 언덕으로 밀치고 내가 대신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깜짝 놀라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생쥐 같은 모습으로 인근에 농막으로 달려갔다.
한 시간쯤 있으니 젖은 옷이 거의 마르고 문득 그녀와 책가방이 생각나서 개천가로 달려가니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잃어 버렸으니.. 당장 책 살 돈도 없는데 무슨 낯으로 아버지한테 이야기하지 하며 수심에 잠겨 있는데 누가 청재야! 하고 부른다.
뒤돌아 보니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맙다 청재야! 네가 나대신 물에 빠져서 나도 당황했다. 네가 물에 젖어 달려가는 모습이 생쥐 같아 보였다. 호! 호! 호! 네 책가방 집에가서 말리고 오는 길이야! 자 옷 갈아 입어! 우리 오빠 추리닝이야! 배고프지 왕 만두 가져 왔다. 어서 받아! 세개야 하면서 만두를 나에게 내민다.
나는 무안하고 창피해서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만두와 옷 가지를 받고 있는데 그녀의 따스한 손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건지 내 손을 더욱 꽉 잡는다, 나는 정전이 된 긋 짜릿했다. 왜 그래! 너 어디 아프냐? 대 낮에 물 벼락 맞더니 감기 걸렸냐? 얼굴 표정이 안 좋아! 응! 아냐? 잘가! 하며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나는 네가 좋다. 는 말 한 마디 못 한 쑥맥이였다. 웅변 할 때 많은 청중 앞에서 열변을 초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그 날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고 이제야 표현하는 내 첫 사랑의 그녀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물 안개 되어 떠오른다.
그 날이 그녀와의 만남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웅변 실력이 중안 무대에 알려지며선 특기생으로 시내에 초등학교로 스카웃 되어 떠나 버렸다.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동네를 떠나던 날 느티나무 뒤에 숨어서 울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에 옛날 살 던 동네에 만두 가게를 찾으니 느티나무도 없어지고 가게 인근이 대형 빌딩 숲으로 변하여 그 옛날의 아기자기한 정경은 추엇으로 남아 있었다.
빌딩 앞에 서서 만두 가게의 추억을 되새기며 웃음 짓는 그녀의 미소 속에 흘러간 세월 속에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교 앞 만두 가게에서 들러 왕 만두를 사서 먹으니 너무 맛이 없다. 추억 속에 꿀 만두 맛은 어디로 가고 씁슬하고 텁텁한 맛이 난다,
세월 속에 만두 맛이 변한 것 인가 내 입 맛이 변한 것인가. 청순한 모습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반기던 초등학교 시절의 그녀가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첫댓글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은 듯 합니다. 참 좋은 글 올리셨어요. 더욱 정진하시고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흘러간 어린시절의 추억이 간직된 수필 이군요.. 너무나 정감잇고 내용도 좋군요. 청재님 수필가로서의 재능이 였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수필 많이 올리세요..^^
만두와소녀...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롬새롬 기억될 정도로 좋은글입니다. 아름다움 추억이 있다는것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