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보면 억보질하는 일이 많다.
특히 학자라면서도 지식의 탈을 쓰고 지식을 무식으로 만드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우리는 <룡비어천가>를 알고 있다. 그 125장은 참으로 황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각 장마다 그 분량이 들쭉날쭉이다. 게다가 가장 의미가 있고, 뜻 깊은 말로써 자랑스러워야 할 제1장과 제2장에는 딸랑 넉줄뿐이다. 역사적 배경의 설명이 송두리째 빠져있다. 도대체 정상일 수 없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번역한 한가지를 보자.
(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므로 ... [根深之木 風亦不扤 ...]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것이 정말일까? 사실 가능한 상황일까?
어떤 나무도 바람이 불면 가지부터 흔들린다. 센바람이면 뿌리채 뽑히기도 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뿌리까지 뽑히지는 않아도 기둥 같은 나무가 많이 흔들린다.
그래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뽑히지 않는다'거나, '꺾이지 않는다'고 해야 말이 된다. 아무리 문학적으로 서술햇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본다.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2) 불휘기픈간바라매아니뮐쌔[밑줄친 글의 아래 ㅏ는 ㅏ로 썼다]
현대 글로 바꾸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쌔'이다. '뮐쌔'의 본디 말은 '뮈다'이다.
그렇다면 '뮈다'는 무슨 뜻일까? 그 <룡비어천가>에 주석에 해당되는 말이 들어 있는데, '扤'은 "五忽切 動也'이다. '움직이다/흔들리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본디 글자가 '扤'[올]일까?
'뿌리 깊은 나무는 센바람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꺽이지 않는다'로 보면, '扤'은 '抏'[완]이거나, '拔'[발]일 것이다.
그 어원과 뜻을 보자.
뮈다>무이다>믜다>미다 : 빠지다. 털이 빠져서 살이 드러나다.
여기에 '빠지다'가 있다. 이것은 '뽑히다'와 같은 말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꺾이다'와 같다.
<룡비어천가>에 '扤'[올]은 '抏'[완]을 왜곡했다고 본다.
어쨌거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다. 그러나 바람에 뽑히지도, 꺾이지도 않는 뿌리깊은 큰 나무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