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대역사] 시베리아 횡단철도
==동토(凍土)를 깨운 대동맥 9446㎞ ==
시베리아 횡단 철도(러시아어: Транссибирская магистраль, 영어: Trans-Siberian Railway)는러시아의 첼랴빈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1905년에 연결한 대륙횡단철도입니다. 정식명칭은 ‘대시베리아철도’인데 이 철도는 1850년 극동지방의 군사적 의의의 증대,식민, 대중국무역 등을 목적으로 계획되었어요.예정선은 시베리아 가도를 따라 건설하기로 계획하고 1887년에 조사해, 1891~1892년에 걸쳐 착공하고 1897년 부분적으로 개통되었어요.. 9288km를 운행하는 열차로세계에서 가장 긴 직통열차로 유명합니다.철도의 전철화는 1929년에 개시되었으며, 2002년에 전 구간이 전철화되었어요
▶“7박8일 쉬지 않고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이제 꿈의 여행을 즐기세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무수한 자작나무 숲과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 그리고 광활한 스텝지대를 통과하면서 9446㎞를 7박8일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이 모든 것은 흰 눈을 뒤집어쓴 수빙으로 바뀐다. 열차는 시베리아의 장관인 바이칼호를 지나 이르쿠츠크, 라마교의 흔적이 있는 울란우데를 지나 끝없이 서쪽으로 달려간다. 열차는 거기서 노보시비르스크, 도스토예프스키의 유형지로 유명한 옴스크, 시베리아의 마지막 역인 스베르들로프스크 등 58개 역을 지나 7일째가 되는 날 종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한다. 장장 7박8일간의 대장정이다.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붉은 화살호’를 타고 여행을 계속하면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여행하려는 관광객은 ‘러시아호’의 4인1실 침대차에 몸을 싣고 차량당 2명씩 배치된 역무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만족해야 한다.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길밖에 달리 선택이 없다는 것뿐이다. 열차는 상행과 하행, 모두 매일 출발한다. 식사는 식당차에서 해결할 수 있다. 전구간을 달린다면 바뀌는 시간대만도 8개나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단일 철도 시스템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자 북유럽과 동유럽,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를 잇는 세계 최대의 물류 동맥이다. 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작은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겠다는 정복의 꿈을 담고 있었다.
러시아는 대륙국가다. 엄청난 규모의 영토를 거느렸으나 주위엔 얼지 않는, 괜찮은 항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북극과 가까운 탓이었다. 18세기 초 피터 대제는 오랫동안 왕도 역할을 해왔던 모스크바를 버리고 발트해 연안의 네바강 하구에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유럽으로 난 창’이란 별명이 붙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그것이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나자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720만달러에 미국에 팔아 넘겼다. 그리고 1858년에 하바로프스크를, 1860년엔 밍크 사냥 기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를 태평양 연안에 대규모 함대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로 개발했다.
다음 과제는 국토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잇는 철로를 부설하는 일이었다. 이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사이에는 철도가 부설(1842~1851)되었으니 이번에는 모스크바에서 태평양까지만 연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러시아의 교통부가 설립(1865)된 직후인 1867년에 나왔으나 재원 부족으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다 농노해방 군주인 알렉산더 3세가 1891년 마침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road) 건설을 명했다. 양쪽 끝에서 각기 공사를 시작하여 중간에서 만나는 방법을 취했다. 이 기간 중인 1896년 서울에선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옮기는 아관파천이 일어났으니 당시 러시아 제국의 힘은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막강했다.
드디어 1905년 알렉산더 3세의 뒤를 이은 전제군주 니콜라이 2세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장장 9297㎞에 이르는 TSR를 완공했다. 물론 단선이었고 만주를 지나는 형국이었다(이를 모두 수용하여 최종 완성된 해는 1916년). 공사가 채 마무리 되기 전 러일전쟁이 일어나 차질이 빚어지긴 했으나 결국 해냈다.
바로 이 기간(1895~1905) 사이에 횡단철도의 부설로 러시아 철도는 두 배로 늘어났다. 러시아는 또 국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함과 동시에 만주와 중국, 한국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확보했다.
▶전철화 서둘렀지만 2002년에 겨우 끝내
이 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는 우선 재무장관으로 재정 안정, 중공업 발전, 금본위제 확립 등 철도건설에 힘을 보탰던 위테를 꼽을 수 있다. 그 다음은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자신의 대표작 ‘언덕 위의 구름’에서 그를 일러 “러시아의 앞길을 연 사람”이라고 했던 철도장관 일코프다. 여기에 한 사람을 더 보탠다면 멜리니코프 정도다. 그는 광궤철로(1524㎜)를 주장했던 토목기사로 수많은 교량과 역사를 설계했다. 철로 건설에는 측량과 지도 제작이란 작업도 매우 중요한데 러시아는 멜리니코프 같은 인재가 있어 그걸 쉽게 해낼 수 있었다.
TSR의 개통으로 시베리아 모피 생산이 크게 늘어났고, 철로를 따라 해방된 농민의 유입이 촉진됐으며, 금은ㆍ철강ㆍ석탄 광산이 속속 개발돼 잠자는 땅인 시베리아를 깨우는 전기를 제공했다.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난 창’을 마련하면서 아시아 국가로 등장하게 됐다. 나아가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500여개의 철도 지선을 구축했으며 전통 경제체제에서 근대경제로의 이행도 이루었다. 지금에 와선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TSR 주변도시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경제의 70% 이상을 이 TSR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만큼 일찍부터 전철화를 서둘렀으나 2002년에야 모두 끝났다.
전문가들은 철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육상 교통기관으로서 일정한 부지를 점유하고 레일, 침목, 도상으로 구성되는 궤도에서 기계적ㆍ전기적 동력을 이용하는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이나 하물을 운반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레일이다. 육중한 기관차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씨에 관계없이 언제나 안정적으로 떠받칠 수 있는 강한 레일. 두 가닥의 선로로 이루어져 늘 평행선으로만 달리는 레일은 1600년경 독일에서 등장한 목제를 시초로 하여 선철, 강철로 그 재료가 발전돼왔으며 그 위를 달리는 열차는 176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에서 출발하여 그후 기계 동력 방식, 전기 동력 방식으로 진화했다.
철도의 역사에 방아쇠를 당긴 나라는 산업혁명의 종주국인 영국이다. 1825년 조지 스티븐슨이 시승객과 석탄을 탑재한 로코모션호 35량을 이끌고 시속 16㎞로 달렸다. 미국(1830), 프랑스(1832), 독일(1835), 러시아(183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소국 기니가 1848년에 철도를 갖게 됐다는 점은 놀랍다. 중국은 1883년, 한국은 1899년에야 철도가 부설됐다. 그것도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미국 발전에 큰 영향 끼친 것도 철도
철도의 시작은 영국이었으나 지금 세계 철도대국은 미국이다. 그 중심축은 다름 아닌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을 연결한 대륙횡단철도. 미국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는 ‘대륙횡단철도’란 저서에서 “미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서 남북전쟁보다 대륙횡단철도가 더 큰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도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동부와 개척지인 서부를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대의 삶으로 이어주었을 뿐 아니라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해주었으며, 나아가 미국을 태평양국가로 발돋움시켰기 때문이다.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성공케 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노다지의 발견이다. 밤새 물살에 떠밀려온 사금(砂金)은 서부가 버려진 땅이 아님을 일깨워주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서부로, 서부로 밀려들었다. 골드러시! 이를 위해 건설된 게 바로 대륙횡단철도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캘리포니아는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가 됐고,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가 발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인부들이 작업복 바지로 즐겨 입었던 청바지가 미국의 상징으로 등장했고, 철도 건설 인부로 동원된 중국인 구리(苦力)의 보금자리이자 상권인 차이나타운이 탄생됐다.
또 하나는 미국 철강산업의 고속 성장이다. 서부에서 새로운 철광이 발견된 데다 펜실베이니아 철도국 직원이었던 카네기가 1865년에 들어 제철산업에 집중 투자한 지 얼마 안돼 철교, 레일, 기관차를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1875년엔 미국 최대의 제철소를 소유하게 됐고, 이어서 코크스 제조 시설과 탄광, 철광, 철도 사업에도 손을 대 미국의 공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의 사업적 성공이 없었다면 대륙횡단철도 건설도 그만큼 늦어졌을 것이다.
세계는 이제 고속철도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속 200㎞ 이상을 달리는 고속철도는 최첨단 기술의 총아로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한국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 1970년 개통된 고속도로가 남한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면 2004년 4월 개통된 KTX는 반나절 생활권으로 단축시켰다. 한국은 남북한 철도 연결 사업을 통해 TSR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만일 이게 성사된다면 부산에서 중부유럽까지 배로 40일이 걸리는 수송기간이 15일로 단축돼 우리는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
글=권삼윤 역사여행가
■러시아 연해주 지역 여행지들
▶블라디보스토크
- 러시아 연해주의 항만도시로 극동 최대의 도시이다. 구한말부터 한인들이 많이 이주하여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촌을 이루었으며,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발점이다.인구는 약 65만명으로 제정 러시아시대부터 극동정책의 중요한 기지로 발전했다. 마을은 1992년 1 월에 개방되었다. 관광은 중앙역에서 시작하면 쉽다. 중앙역, 중앙광장, 금 각만의 항근처 잠수함 박물관, 스베도란스카야 거리, 향토박물관, 전망대 까지의 코스이다.
1) 블라디보스콕 중앙역
엷은 녹색이 아름다운 품격있는 러시아 건축양식의 석조로 된 驛舍이다. 1912년의 건축물로 러시아 제정시대의 영화로움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철 도의 동쪽의 시점으로 여기부터 모스크바까지 9,297㎞의 여행이 시작된다.
2) 중앙 광장
정식으로는 소비에트 정권을 위해 싸운 병사 광장이라고 한다. 일반 시민사이에는 중앙 광장이라고 불리고 휴식처가 되고 있다. 옆의 흰 고층 건물은 시청이다. 중앙 광장에서 금각만으로 향해 올라가면 블라디보스토크 125주년 오벨리스크(방첨탑)가 있다.
3) 잠수함 박물관
상선부두 바로앞의 높은 단에 제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이 그대로 놓여 있 는 박물관이 있다. 내부의 천정은 낮지만 잠수함을 견학하면서 소련시대의 태평양함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월 요일, 화요일은 휴관이다.
4) 향토박물관
1906년에 건설되었고 1층은 러시아 혁명전의 연해주의 역사와 우수리 지방 의 동물생태에 관하여 전시하고 있다. 또 화폐를 모은 것이 있고 진귀한 동 전 등도 볼 수 있다. 2층은 혁명시대 해양의 역사코너이 . 3층은 회화전시 코너로 되어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30까지이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5) 해군박물관
1908년에 만들어진 루델 교회 자리를 박물관으로 한 것이다. 17세기 중엽 부터 극동에서 활약한 태평양 함대의 역사전시관이 있다. 또 정원에는 대포, 전차, 어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시간은 9:00에서 17:45까지이고 월요일, 화요일, 월말의 금요일은 휴관이다.
6) 전망대
블라다보스토크 호텔에서 차로 20분, 금각만을 바 보는 높은 단이 있 다.(120m) 오른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코트 반도와 페르보마이스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금각만의 전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야간에는 灣내에 정 박하는 선박이나 민가의 등불이 네온이 되어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것은 루스키 섬이다.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가 있지만 지금은 휴업중이다.
7) 나호트카
프리모리스키 지구 남부, 표트르 대제만의 지항인 나호트카 항에 위치하는 항만도시이다. 나호트카는 러시아어로 '얻은 것'이라는 의미로 1859년 이 해역으로 조난된 러시아 함선 아메리카 호가 우연히 파도가 잔잔한 이 바다 를 발견하고 나호트카로 이름지은 것에 유래한다. 러시아 군함에 아메리카 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이상하지만 이 지방의 사람들은 나호트카의 바다 를 아메리카 호와 관련지어 아메리카 만이라고 부른다.
1869년 최초의 입주자가 살게 되었고 선박 수리업이나 어업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후에는 극동의 무역항으로 발전되었다. 나호트카 시가 탄생된 것은 1947년으로 역사는 50년 정도에 불과하고 현재의 주민들 도 젊은 사람들 뿐이다. 시민들의 평균 연령은 30세 정도이다. 2차 대전 후 시베리아에 억류된 일본인은 전후 이곳에서 일본으로의 귀국길이 열렸다. 당시는 수용소에서 사망한 사람도 많아 500여명이 잠들어 있는 묘지가 시내 에 있다. 나호트카는 활모양의 도시로 치하오케안스카야 역 부근이 도시의 중심이다.
역에서 영화관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걸으면 이카리 거리가 나온다. 이 카리 거리에는 베료스카, 잡화점, 식료품점 등의 상점이 모여 있다. 이 거 리에는 쥬스,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노점도 있다. 이 거리를 지나가면 광장 이 나오는데 광장의 안쪽에는 항구도시답게 큰 선원궁전이 있다. 나호트카 최대의 쇼핑 센터인 굼 백화점으로 가려면 역 앞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하바로프스크
- 러시아연방 하바로프스크 지역의 행정중심도시. 인구 약 61만(1993). 러시아연방 극동지방의 최대도시로서, 우수리강(江)과의 합류점에 가까운 아무르강(江) 중류 우안(右岸)에 있다. 17세기 중엽 러시아 탐험가 E.P.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현대적인 도시는 1858년에 군사전초기지로 세워졌다.
소련 체제하에서는 줄곧 극동지방의 중심지였다. 주요산업 중심지로서 케이블 ·터빈 ·디젤기관 ·정유 ·목재가공 ·식품 등의 공장이 있다. 시베리아 철도상의 큰 역이 있으며, 아무르강 수운의 중심을 이루는 하항(河港)이 있다. 철도관리국, 아무르강 항행관리국 등이 있다.
- 하바로프스크는 시베리아 하늘의 현관이다. 어느곳으로 가든지 이곳이 기점이 된다. 중국 국경에 가까이 있는 아무르 주와 바시리 주가 합류하는 곳 에 위치하는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다. 러시아 극동부 경제의 중심부이기도 하다. 인구는 약 60만명이다. 대표적인 관광코스는 향토박물관, 극동미술관, 전망대, 무라비요프 아무르 스키 거리의 산책이다. 또 일본인 억류자 묘지는 시내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도중 오른편 러시아인 묘지 근처이 있다. 레닌 광장에서 아무르 주로 향하 는 콤소몰 광장까지의 부분을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거리하고 부른다.
1) 향토박물관
붉은 색의 오래된 건물로 러시아 지리학회 아무르 지부의 박물관으로 1895 년 설립되었다. 1층은 하바로프스크 지방의 생태계에 관해 전시하고 있다. 1975년에 발견된 맘모스, 아무르 호랑이 등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선주민족의 자료,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들의 이주의 역사를 볼 수 있 다. 3층에는 탐험가인 알제니에프와 델스부자라의 시베리아 극동 탐험사가 전시되어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화요일은 12:00까지이 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2) 극동미술관
원래는 노동조합의 건물로 1992년 5월 미술관이 되었다. 특히 3층의 러시 아 미술의 수집품은 훌륭하다. 이콘이나 레핀, 크라무스코이 등 러시아 거 장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아트 살롱으로 되어 있고 민예품이나 회 화를 팔고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화요일은 12:00까지 이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3) 지리학 박물관
19세기 호상의 집이었던 곳을 1977년 박물관으로 한 것이다. 역사는 짧지 만 하바로프스크 주에서 나는 광물을 수집해놓은 것이 특이하다. 달 표면 탐사기인 루나가 가져온 달의 흙이나 1947년에 시포테아린 산 중에 떨어진 운석의 파편 등도 전시되어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휴일은 없다.
4) 전망대
일출이나 일몰의 아름다움이 각별하다. 전망대 뒤에 서있는 상은 동시베리 아 총독이었던 무라비에프 아무르스키이다. 비문에는 "아무르岸에 최초로 발을 디딘 러시아의 명예로운 아들에게 바친다"라고 새겨져 있다. 전망대 밑에는 카페도 있다.
5) 아무르강
크루징 강을 따라 내려가면 웅대한 아무르주를 약 1시간 반동안 유람할 수 있다. 선착장 2번 창구에서 표를 살 수 있는데 모스크바 75나 모스크바 83의 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요일 날씨 좋은 날은 표가 금방 팔리기 때문에 빨 리 가는 편이 좋다. 코스 거리는 15㎞이다.
▶사할린
- 러시아연방 사할린주(州)를 이루는 섬. 면적 7만 6400 km. 인구 약 67만(1993). 남북길이 948 km. 최대너비 160 km, 최소너비 26 km. 최고봉은 로파틴산(1756 m).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에 위치하며, ‘사할린’을 일본에서는 ‘가라후토[樺太]’라고 부른다. 남북으로 길쭉한 섬이며, 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싸여 있고, 대륙과의 사이에는 최단거리 약 8 km의 타타르 해협이 있다. 남부에는 서(西)사할린산맥(최고봉은 1,375 m의 주라블료프)과 동(東)사할린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그 사이에 길쭉한 평야가 자리잡고 있다. 북부는 북단의 슈미트 반도에만 산지가 있다. 북부에는 낙엽송 ·가문비나무 등이 많고, 중부와 남부에는 전나무류가 많다. 또 북부의 해안지대에는 툰드라가 있다. 기후는 냉온대 기후에 속하며, 여름에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약간 습윤하지만,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몹시 춥다.
북부 연안은 12∼4월에 결빙하며, 대륙과의 빙상교통이 가능하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금속 ·수산물 ·임산물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주민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며, 한국인은 소수민족 중 최대이다. 한국 교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 및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종전을 맞이하였다. 현재 사할린섬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 등 약 4만 3000명이 살고 있으며, 귀환을 바라는 사람은 7,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원주민은 아이누 ·길랴크(니브히) ·오로크인(人)이며, 소수의 일본인이 있다. 섬의 60 %가 숲이기 때문에 목재 가공과 펄프 제조가 주요공업이며, 수산업도 활발하다. 석유와 석탄도 러시아연방 극동의 주요산업을 이루며, 북부의 오하 유전으로부터 콤소몰리스크 ·하바로프스크에 송유된다. 농산물은 자급자족을 할 수 없으나, 감자밭과 목초지가 많다. 축산으로는 순록 ·젖소 ·여우 등이 사육된다. 교통은 코르사코프와 모스칼보를 잇는 남북선이 이용되며, 대안(對岸)의 바니노와 사할린의 여러 연안항구 사이에는 정기선이 다닌다.
관광 명소
- 한국인에게 사할린은 상당히 복잡한 역사 감정이 있는 곳이다. 북해도에 서 50㎞도 되지 않아 공기가 맑은 날이면 산들이 바라보이는 이 곳은 제 2 차 대전까지 남쪽의 절반을 일본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후 동서의 냉전으로 사할린은 먼곳이 되었다. '망향의 섬'이라고 불리며 참배 를 제외한 외국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이었으나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 노스트의 영향으로 개방되어 지금은 개인도 갈 수 있다.
사할린은 자연의 보고로 도시를 나가면 계류가 흘러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유혹한다. 겨울 이 되면 뜻한 남쪽에서 날아오는 겨울철새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온천 으로도 유명한데 온천수 풀과 요양실 등의 시설도 충분하다. 사할린의 창구는 유즈노사할린이 된다. 남북으로 긴 사할린에는 철도가 있 고 유즈노사할린스크 역이 발착의 기점이 다. 북 사할린 방면으로는 철도 가 유일한 수단이다. 노그리키까지 매일 야간열차가 한번 출발한다.
1) 유즈노사할린스크
크 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사할린주의 주도로 인구는 약 18만명이다. 일 본통치시대의 이름은 豊原(고코하라)였다. 마을은 스스나이스카야 저지에 펼쳐져 있다.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철도의 동쪽이 시의 중심이다. 일본 시대의 건물로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은 향토박물관과 미술관이다. 예전의 일 본신사는 돌단만이 남아 있다. 시내는 하루면 걸어서 충분히 볼 수 있다.
- 향토 박물관
일본의 통치시대인 1937년에 건설된 舊樺太박물관이다. 석조건축으로 일본 의 성을 연상시킨다. 사할린의 자연, 역사, 경제, 문화에 관하여 약 8만점 의 풍부한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자연의 보고인 추레니 섬이나 오 보츠크해에 생식하는 생물의 생태, 사할린과 천여개의 섬의 역사나 소수 민 족의 생활, 아이누의 자료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위 50도선의 일본와 러 시아의 舊국경에 위치한 표석도 있다. 2층은 20세기에 들어서부터 할린의 역사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정원에는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사용 된 러시아와 일본의 대포가 늘어서있다. 또 오하, 노그리키에도 분관이 있 다. 관람시간은 11:00에서 18:00까지이고 화요일은 17:00까지이다. 월요일 은 휴관이다.
- 예술박물관
도서관에 인접해 있는 미술관은 舊척식은행의 건물이다. 현재는 미술관으 로 사할린의 내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미술공예품 등이 판매 되고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일요일, 월요일은 휴관이다.
- 전망대
고르누이 보스토프라고 불리는 標高 600∼800m의 전망대이다. 스스나이스 카야 저지에 펼쳐 있는 유즈노사할린스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편 에 작게 보이는 것이 브라지미로프 촌으로 1882년에 만들어진 사할린 최 초의 마을이다. 전망대 근처에는 70∼90m의 캠프대가 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오는 방문객으로 번잡한 리조트가 된다.
- 가가린 공원과 아동철도
아이들이 운전지시를 하는 실물크기 철도이고 동물원과 연못이 있어 시 민의 휴식장소가 되고 있다. 안쪽의 산으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버섯을 채 집할 수 있다. 여기서 채집하여 자유시장에서 파는 사람도 있다. 평화대로 북쪽으로 가면 사할린스카야 거리를 넘어 왼편에는 사우나가 있다. 영업시 간은 목요일, 금요일은 14:00에서 20:0까지, 토요일, 일요일은 17:00에서 20:00까지로 1회 이용시간은 2시간이다.
2) 홀름스크
사할린 남서안의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5만 2,000명이다. 러시아어로 '언 덕'을 의미하는 이 마을의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서 북쪽으로 90∼100㎞에 있다. 차로 가면 북 홀름스크 역앞이 입구가 된다. 견학은 항구에서 시작하여 남 홀름스크 역 방면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 일본의 통치시대의 왕자제지 공장은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지 등을 생 산하는 콤비나트로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3) 코르사코프
사할린 남쪽 현관인 코르사코프는 아니바 항의 로츠시 강 입구에 면하고 있는 인구 약 4만 6,000명의 항만도시이며 국무역항으로 활기찬 마을이 다. 유즈노사할린스크의 남으로 약 45㎞ 지점에 있다. 도중에 밍크교육장이 있는 사라비프카 마을을 통하여 간다. 주 생산물은 주민의 4분의 1이 종사 하고 있는 어업이다. 볼거리로는 항과 아크차프리스카야 거리가 있다. 코르사코프지점은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일본통치시대는 舊척식은 행지점이 있었다. 오호츠크해에 면한 아름다운 호수인 츠나이차 호수에 발 을 담가보는 것도 좋다. 오호츠크까지 코르사코프에서 37㎞, 차로는 약 50 분 거리이다.
▶캄차카 반도
- 러시아 연방 극동에 있는 반도. 주도(州都)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 면적 37만 km. 행정적으로는 캄차카주(州)와 코랴크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돌출해 있으며, 길이 1,200 km, 최대너비 480 km, 반도와 연결되는 지협부(地峽部)의 너비 100 km이다. 서쪽의 오호츠크해 연안은 굴곡이 적지만, 동쪽의 태평양 연안은 굴곡이 복잡하며, 반도 내부에는 산이 많다.
해발고도 2,000∼3,000 m의 스레딘니(중앙)산맥 ·보스로츠니(동부)산맥이 나란히 뻗어, 그 사이에 캄차카강(江) 유역의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화산이 많아서 모두 120여 개나 되는데, 특히 동해안과 보스토츠니산맥 사이에 집중해 있고, 22개는 활화산이다. 최고점은 원추화산(圓錐火山) 클류체프스카야(4,750 m)이다. 기후는 냉량(冷凉)몬순형으로 1월 평균기온 -12∼-15 ℃, 8월 평균기온 12∼16 ℃이며 서해안은 기온이 더 낮다. 연평균강수량은 600∼1,000 mm이며, 산맥은 아름다운 타이가로 덮여 있다. 천연자원은 미개발상태이지만 석유 ·석탄 ·금 등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온천도 각지에서 솟아나오고 있다. 해안에서는 청어 ·대구 ·연어 ·송어 ·왕게 등의 어획이 많아 러시아 연방 총어획량의 10 % 안팎을 차지한다.
캄차카강의 평야는 약간 건조한 기후로 반도의 주요 농업지대를 이루며, 감자 ·목초의 재배, 순록 ·은여우 ·담비 ·젖소가 사육된다. 교통은 수상교통을 주로 하며, 내륙에서는 말 ·순록 썰매가 큰 역할을 한다. 주도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와 블라디보스토크 ·코르사코프 ·마가단 ·쿠릴스크 등과의 사이에 항로 ·공로(空路)가 열려 있다.
러시아인에 의한 캄차카의 조직적인 탐험은 1725∼30년, 33∼43년의 캄차카 대탐험이 유명하다. 1860년 이후에는 러시아 외에 미국의 모피회사 등이 이곳에 상륙하였으며, 1905년의 러 ·일전쟁 후에는 일본이 연안의 어업권과 육상의 수산가공소 부지를 차지하여, 연간 1만 명 이상의 계절노동자가 이른바 캄차카 어장에서 일하였다.
관광 명소
-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크게 하늘로 나온 캄차카 반도는 일본과 같이 환태 평양화산대에 속한다.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9시간이고 러시아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곳이다. 별명 화산열도로 불리기도 한다.
2) 페트로하바로프스크 캄차카
캄차카주의 주도로 인구 30만명이다. 반도의 동남부 아바친스카야 만 입구에 위치한 항만도시이다. 제정 러시아시대부터 동진정책의 기지이기도 했던 이 지역은 베린그를 시작으로 많은 나라의 항해가들이 자취를 남기고 있 다.마을은 소프카라고 불리는 언덕에 펼쳐져 있다. 남북으로 긴 마을이므로 차를 이용한다. 하루 관광코스는 레닌 광장에서 베린그 기념비, 향토박물 관, 아바친스카야 만에 면한 높은 곳인는 니코리사카야 소프카까지이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화산학연구소 등도 좋다.
- 향토 박물관
1912년 당시의 캄차카 주지사인 모노마포그의 문서보관소로 건설되었다. 지하 1층에는 캄차카, 마가단 지방의 동물의 생태, 화산활동의 분포, 소수 민족, 캄차카 탐험의 역사, 크리미아 전쟁이나 러일전쟁때의 귀중한 자료 등의 전시장이 있다. 1층은 소수민족의 진귀한 수공예, 의장을 전시하고 있 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9:00까지이고 월요일, 화요일은 휴관이다.
- 화산학 연구소
과학 아카데미의 시베리아지부의 하나로 1962년에 설립된 화산학과 지질학 의 연구기지이다. 아바차 화산 그룹에서 20㎞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견학 은 사전에 현지의 호텔에서 예약해야 한다. 연구원의 설명과 귀중한 화산학 의 료, 비디오를 볼 수 있다.
- 베린그 기념비
작은 기념비로 비명에는 '페트로프브로프스크의 창시자인 베린그에게 바친 다'라고 쓰여 있다. 베린그는 1725년, 1733년의 2번 캄차카를 탐험해 아시 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해협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탐험중 아바친스카야 만 입구에 '성 사도 베드로', '성 사도 바울'이라는 작은 배로 입항하였다. 1740년에 이 땅을 작은 배와 같이 '성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라고 이름을 붙여 기념하는 베드로바울로프스크의 탄생이 되었다. 작은배는 지금도 마을 의 상징이다.
- 예배당
레닌 광장에 면하고 있는 극장의 뒤에 있다. 크리미아전쟁 중 캄차카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가 들어와 1854년 8월 24일에는 격전을 치루었다. 여기는 이 전쟁에서 사 한 러시아, 영국, 프랑스 3국의 병사가 잠들어 있다. 해안에 면하고 있는 니코리스카야 소프카에는 당시의 격전을 말하고 있는 대포가 있고 캄차카 상륙을 저지하는 병사의 기념비가 있다.
- 파라톤카
온천을 이용한 휴양지가 있는 리조트이다. 휴양지에는 유료 온천 풀이 있 다. 숙박 가능한 곳도 있지만 시내에서 하루에 돌아오므로 충분히 온천기분 을 느낄 수 있다. 온천의 온도는 38∼39℃ 정도이다.
2) 야쿠츠크
레나 강 왼쪽 河港에 펼쳐 있 는 도시로 시베리아 교통의 중심지이다. 러시 아 공화국 극동지역의 야쿠트 자치공화국의 수도였지만 1990년 9월 27일의 공화국 선언으로 사하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지표는 약 1m의 지층이 있는 영구동토대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는 농경이 보급 었고 정착하는 인구가 증가하여 현재 인구는 약 18만 7,000명이다. 짧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도 지나가 버리면 길고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영 하 50℃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모든 것이 얼어붙고 도시 전체가 하얗게 흐려 져 5m앞에 걸어가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다. 이런 짙은 안개는 하루종일 계속된다.
이것은 거주무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스 증기가 얼어 대기를 떠 다니는 것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두터운 모피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다닌다. 시가에는 빌 이 있지만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오래된 목조가옥들이 펼쳐져 있다. 영구 동토도 여름이 되면 지표에서 2∼ 3m까지 녹는다. 그때는 무거운 물건이 놓여져 있던 곳이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겨울이 되면 그대로 얼어붙고 다음 여름에는 또 녹는다. 고층 물은 이 런 이유로 이유로 굵은 기둥을 땅속 깊숙히 박고 그 위에 건물을 설계한다. 야쿠츠크의 대표적인 토산물은 맘모스의 상아 세공품이다.
- 레나 강
크루징 레나 강은 겨울에 동결되지만 여름에는 크루징이 인기가 있다. 강의 양편 에 세워져 있는 벽은 레나의 기둥이라고 불린다. 또 양쪽 강변에는 캠프장 이 있다.
- 북방민족의 역사, 문화박물관
야쿠트인의 역사나 생활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이다. 토나카이 사육에 대 한 전시나 전 적인 주거내부의 일용품 등이 있다. 장례식은 조로아스터교 형식으로 하는 등의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다. 또 북방에서 사는 생물, 야쿠트의 자연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인접하여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약 400년전의 목조의 요새로 유르타라는 옛거주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름 동안은 창문을 유리를 끼우고 겨울이 되면 얼음으로 대체한다.
- 영구동토 연구소
영구 동토는 지구 전체 육지의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 47%가 구소련 내에 있다. 그 외 알래스카, 캐나다, 중국, 몽골령 등에도 있다. 이러한 연 구소는 캐나다에도 있다.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한 번도 녹았 던 적이 없는 영구동토는 항상 영하 4℃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레나 강 하류는 얼지 않는다. 또 언 그대로여서 기둥이 없는 터널을 만들 수 있다.
- 향토박물관
혁명전에는 유배지였던 지역으로 1891년 유배되었던 정치범이 박물관을 건 설하였던 것이 시작이었다. 볼만한 것은 맘모스의 전체 골격으로 높이 3.5m, 무게 3톤, 상아만 300㎏이나 된다. 1만 5000년전에 죽은 맘모스는 내 장이 동토안에서 보존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물에서 맘모스의 식생활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북극의 동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다람쥐, 흑담비, 담비, 사향쥐, 북극곰, 붉은 사슴 등 극지에서 서식하므로 좋 모피를 가진 동물 들이 있다. 이들을 잡아 생계를 잇는 야크츠크인들의 생활양식도 전시되어 있어서 그들의 일상을 알 수 있다.
▶이르쿠츠크
- 동 시베리아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인구 약 65만명이다. 바이칼 호수의 서쪽 65㎞, 안가라 강과 이르쿠츠크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아름다운 시베리아의 오래된 도시이다. 바이칼 호수 관광의 기점이고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철도의 중단점이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 도시의 풍경은 비경의 땅이 있다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가로수로 꾸며진 마르크스의 거리를 중심으로 벽돌건물이 이어진다. 골목으로 가면 창이 아름다운 목조주택이 줄지어 있으며 러시아정교 수도원이 몇군데 있어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 도시는 데카브리스트 의 난으로 폭동을 일으킨 귀족들의 유배지였던 역사도 갖고 있다.
관광 명소
1) 향토박물관
앙가라 강에서 마르크스 거리로 향하여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건물로 1782년에 설립되었다. 러시아에 표류한 일본인 大黑屋光太夫 일행의 귀국을 실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락스먼이 이 박물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가 하여 많은 전시품을 수집하였다. 시베리아 선주민의 무기, 생활일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시베리아 동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그릇, 어린이들의 완구, 민속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 세레호프가 탐험에 사용하였던 짐승가죽으로 만든 카누 등이 볼만하다. 1층 표를 파는 장소옆에는 선물상 점이 있고 시베리아에서 산출되는 돌에 그린 인형 등을 팔고 있다. 박물관 앞의 흰 건물은 화이트 하우스라고 불리는데 동 시베리아 총독부가 있었던 장소이다. 현재는 이르쿠츠크 대학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월요일, 화요일은 휴관이다.
2) 테카브리스트 박물관
S. 토 베초코이는 데카브리스트의 당원으로 난의 주모자로 간주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감형되어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 1845년부터 1856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당시 그대로 현재 박물관이 되었다. 부인인 에카테리나 도르 베츠카야 공작부인의 묘는 즈나멘스크 사원에 있다. 데카브리스트 관에는 보르콘스키의 관도 있다. 관람시간은 10:0에서 18:00까지이고 월요일은 휴 관이다.
3) 즈나멘스키 수도원
브나코프카 강을 건넌 곳에 있다. 1762년에 건설되어 현재도 쓰이고 있는 교회로 일요일에는 미사도 행해지고 있다. 사원의 정원에는 데카브리스트의 난 후에 시베리아에 유배된 데카브리스트들과 그 가족의 묘가 있다. 또 러 시아의 콜롬부스라고 불리는 제리포프의 묘가 있다. 항해사이고 상인이었던 제리포프는 북 아메리카, 아루잔 열도에 최초의 러시아 거주지역을 조성하 였다.
4) 시베리아 철도 건설기념 오벨리스크
앙가라 강에 면한 가가린 거리에 있다. 주변은 앙가라 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공원으로 되어 있다. 1891년에 기공된 시베리아 철도를 이르쿠츠크 에서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으로 최초의 열차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1898년 8월의 일이었다. 오벨리스크에는 시베리아 개척에 공헌한 3명의 영 웅인 엘마크, 스페란스키,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5) 미술관
석조건물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1870년대의 이르쿠츠크 시장이었던 스카 초프의 회화 수집품을 기초로 창설되었다. 시베리아 각파의 이콘, 러시아 회화, 중국의 도자기나 회화의 수집으로도 유명하다. 관람시간은 10:00에서 18:00까지이고 화요일은 휴관이다.
6) 드라마극장
향토 박물관 옆에 있다. 이 일대는 밤이 되면 연극을 관람하러 온 시민들 로 떠들석하다. 극장안에는 노동 스타디움이 있는데 겨울에는 실외 스케이 트장이 된다.
7) 영화관
마르크스 거리에는 몇 개의 영화관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야간에는 어 디나 성황을 이루며 다음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로비에서 쉬고 있 다. 내부장식이 화려하고 조각도 꼼꼼하게 되어 있다.
8)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는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의미이다. 시베리아 사람들 은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부르고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또 겨울의 결빙 된 호수도 아름다우며 호수위를 산책할 수도 있다. 호수의 면적은 31만 5,500㎢, 남북의 길이는 636㎞, 최대폭은 86.6㎞나 된다. 여름의 호수는 그 투명도가 약 40m라고 하며 가장 깊은 곳은 1,637m이다.
세게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은 동식물의 보고하고 할 수 있다. 1,085종의 식물, 1,550종 이상의 동물들 중 60%는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동물은 바이칼제라시이다. 어류도 풍부하여 오무리나 하리우스가 잡힌다. 호수의 내부에는 27종의 섬이 있고 호수의 북쪽 최대의 섬인 오리온 섬의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바이칼 수에는 336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흘러들 어오고 있지만 나가는 것은 에니세이강에 있는 앙가라 강 뿐이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동쪽으로 70㎞에 있는 바이칼 호반의 리스토비얀카까 지는 차나 배로 간다. 차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승선장은 시내의 남 쪽, 악차프레스키구의 소네추누이에 있다. 오후 각 2회, 총 4회가 있다. 호 수내를 유람하는 유람선은 1시간 코스, 2시간 코스가 있다.
9) 리스토비얀카
리스토비얀카는 바이칼호에서 앙가라 강이 흘러나오는 곳에 있는 바이칼 호반의 작은 촌락이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로 이르크츠크에서 하루 관광으로도 갈 수 있고 바이칼 호반에 있는 바이칼 호텔에서 1박을 하 고 방문하는 것도 좋다. 호텔에서 리스토비얀카까지는 도보로 1시간 거리이다. 간판에 마가진이라고 쓰인 잡화점이 보이면 이 마을이다. 그 건너편에는 녹색 지붕이 드문드문 보인다. 청색이나 녹색으로 칠해진 목조주택이 즐비한 것은 마치 작게 축소한 작은 정원의 느낌을 준다. 조용한 전원지대에 목조가옥이 있어 러시아의 농촌 분위기가 느껴진다. 촌락의 안에는 작은 교회가 있고 들어갈 수 있다.
10) 시베리아 철도
거대한 시베리아 타이가 지대와 러시아의 평원을 밤, 낮을 쉬지 않고 운행 하고 있는 철도이다. 길이는 9,297㎞이고 세계최대의 횡단철도이다. 1992년 블라디보 토크가 개방도시가 되어 전선주파할 수 있게 되어 철도를 좋아하 는 사람에게는 시베리아 철도여행이 매력있는 여행이 된다. 1891년 시베리아개발과 극동의 군사강화를 목적으로 시공되었다.
전선의 개통은 1904년에 하였다. 여객열차로 '러시아호'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 스크바간을 매일 1편씩 운행하고 있다. 통상 17∼18량 편성되고 식당차나 비디오카가 연결되어 있다. 차내는 2인실의 '소프트 클래스'와 4인실 방인 '하드 클래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레스토랑의 메뉴는 그다지 풍 하지 않 으므로 도중에 정거장에서 과일 등을 사두는 것이 좋다. 각차량에는 여성 차장이 승차업무를 하고 있고 차나 서비스 등 여행중의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모스크바까지 9,297㎞로 횡단철도의 동쪽 시점이다. 시 베리아 철도의 기공식은 일본으로 향하는 도중에 니콜라이 2세가 있던 자리 에서 행해졌다. 하바로프스크는 모스크바에서 8,531㎞로 중국과의 국경이 가깝다. 아무르 강은 중국에서는 흑룡 강이 된다. 아무르 강의 대철교는 시 베리아 철도에서 가장 긴 다리이다. 끝까지 건너는 데만 4분이 걸린다. '치 타'는 모스크바에서 6,204㎞ 떨어져 있다. 치타주의 주도이고 데카부리스크 의 난의 유배자와 그 가족이 살았다는 곳으로 유명하다. 교회가 데카브리스 크 박물관이 되었다. 바이칼 호까지는 야부로노부산맥의 웅대한 산들을 넘어간다.
'울란 우데'는 모스크바에서 5,647㎞ 지점에 있다. 바이칼호의 남동쪽 약 110㎞의 곳에 위치하는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의 수도이다. 울란바토르를 경 유하여 북경으로 통하는 철도의 분기점 다. 라마교의 총 본산인 다츠안사 원이 있다. 이르쿠츠크는 모스크바에서 5,191㎞거리에 있다. 바이칼 호반에 있고 호반을 따라가는 구간도 있다. 여기서 하차하여 관광하는 경우도 있다. 타이제토는 모스크바에서 4,522㎞ 거리이다. 침엽수림과 습지가 교차하여 펼쳐지는 가운데를 가로질러가면 밤 철도의 시점인 이 곳에 도착한다.
우랄산맥에 가까이 가면 창밖의 풍경도 침엽수에 서 스텝으로 변해간다. 추누니는 서시베리아 평원에 위치하고 석유, 천연가 스 등의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에카테린부르크는 모스크바에서 1,818㎞ 거리이다. 舊스베르 로프스크이다. 우랄지방의 과학문화의 중심지로 여기부터 우랄산을 넘어가면 산맥의 낮은 부분을 지나가기 때문에 산을 넘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1) 브라츠크
이르쿠츠크의 북서쪽 480㎞, 앙가라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1955 앙가라 강이 막히고 댐 옆에는 출력 450㎾의 브라츠크 인조호반 수 력발전소가 건설되었는데 이 건설에는 무려 59개의 민족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 건설로 타이가가 개척되어 도시가 만들어 진 것이 브라츠크로 댐에 서 시작되었다. 도시의 역사가 짧아서 인구 약 25만명, 평균 연령은 30세 정도로 젊다. 도시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잘 정비되어 있다. 광장과 거리를 따라서 고층아파트가 늘어서있어서 신흥도시의 분위기가 드는 곳이다.
12) 노보시비르스크
오비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시베리아 도시중의 하나이다. 러시아어로 '새로운 시베리아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시베리아 철도의 건설로 만들어진 마 을로 1917년 혁명 이후는 현대적인 공업도시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새 로운 도시의 역사는 100년이 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학술연구의 중심지이 자 과학도시인 아카데미고로도프가 교외에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인구는 150만명이다.
시내에 있는 집들은 현대적인 건축기술과 시베리아의 서정성을 절충시킨 모습이다. 건물은 참신한 디자인으로 지은 것이 많고 규 모도 크다. 시의 중심은 철도역이 있는 오비 강변 오른쪽에 있다. 그라스누이 대로는 길이 14㎞, 폭 70m의 시의 주요 거리로 레닌 광장에 면하고 있다. 이 주변 에는 관청, 향토박물관, 과학기술도서관, 미술관 등이 있다. 바그세리나야 거리에 면한 향토박물관에서는 시베리아 철도건설에 관계된 사람들의 모습 이나 초기 주민의 생활을 소개하고 있다.
미술관은 러시아의 저명한 화가인 니콜라이 레리프가 시에 기증한 60점의 회화를 시작으로 오래된 시베리아 이콘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국립과학도서관은 소장하고 있는 수가 500만 점 이상된다. 러시아에서 처음 인쇄된 표트르의 책 등이 전시되고 있다. 5-12-1. 향토박물관 노보시비르스크 역 근처에 있는 박물관이다. 철도건설에 관계된 사람들의 당시 모습, 건설전의 노보니콜라에프스크라고 불리었던 시대의 생활이 소개 되고 있다. 시베리아의 동식물의 표본도 많이 있다.
13) 주젠스코에
러시아 공화국 바카스 자치주의 주도인 나하칸 남쪽의 에니카이강 유역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19 기 말 레닌이 유배수로 새로운 부인 쿠르프 스카야와 3년간 지냈던 곳이다. 그가 살았던 가옥이 그대로 박물관이 되었 다. 20대 무명의 청년이었던 레닌은 여기서 대저인 '러시아에 있어서 자본 주의의 발전'을 완성하였다.
이 책은 '이린'의 필명으로 출판되었다. 레닌 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은 그 이후이다. 배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에니 세이 강을 올라가면 사야노주젠스코에 수력발전소가 있다. 양 강변의 돌벽 에는 유명한 비루진스키 동굴이 있다. 기원전 7∼6세기 여기서 생활하였던 사람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미노진스크시의 향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 지만 이 박물관 도서관은 유배중이었던 레닌도 자주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바카스 미노진스크지역은 기후조건과 강력한 전원, 충실한 공업기반과 연결 되어 있어 발전하고 있다.
14). 밤 철도
바이칼 아무르 철도간선의 하나로 이르쿠츠크 북서쪽 약 560㎞의 지점에 있는 타이제토역을 시발하여 시베리아 철도의 북측을 평행으로 동으로 나아 가 극동의 바다의 현관인 소비에츠크야가바니에 이르는 총 연장 4,300㎞의 철도이다. 밤 철도의 연선에는 바이칼 호수의 동쪽 부도칸의 철광이나 남야 쿠츠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다.
1932년 밤 철도국의 창설을 시작으로 건설 된 이 철도의 완공에는 일본인 억류자의 노동력도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1950년부터 일부 운행이 개시되었으나 상시 영업운전에 들어간 것은 1989년 10월이다. 연선의 대부분이 영구동토지대에 있고 지진다발지대도 있는 등 공사진행상 어려움이 있었다. 全선에 있는 다리의 총 수는 2,000개이다. 터 널은 9개에 총 연장 30㎞나 된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곳이라고 불리는 바 이칼 호 북부의 동쪽 사보로무이스키 터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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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유럽의 모스크바와 아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총 길이 9,466㎞로서 우리 나라 경부선의 20배가 넘으며, 지구둘레의 4분의 1에 가까운 거리며, 거쳐가는 중요한 역만 하더라도 59개나 있으며, 시간대는 7번이나 바뀌는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생긴 동기는 무엇보다도 군사적인 면과 경제적인 이유이다. 18세기 이후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진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난관은 자연적 환경이었다. 러시아는 1858년과 1860년 청나라와 맺은 아이훈 조약과 북경조약으로 시베리아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이 지역은 청나라의 지배력이 매우 약했던 곳이었으며, 군사적 저항은 전무하였다. 러시아는 태평양에 부동항을 개척하고 시베리아의 모피 등 물산을 조달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1891년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위원회(The Committee of the Siberian Railroad)를 조직하고 위원장에는 당시 23세인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취임하였다. 당시 재무장관에 취임한 위테는 유럽에서 들여온 차관을 이용하여 철도 건설을 강행했는데, 아시아로 상품을 수출하여 이익을 얻고 차관을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1903년 첼리야빈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철도가 완공되었고, 최종 완성은 착공 25년 만인 1916년에 이루어졌다. 이 철도의 등장과 함께 지구의 최대 자원보고인 시베리아도 본격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철로를 따라 인구 유입이 촉진돼 철로변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도시가 등장했고 대학, 도서관, 극장 등이 들어서 문화적 대변혁을 가져왔다.
2000년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과 2001년 한러 정상회담 이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부상하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한반도를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의 출현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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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무수한 자작나무, 끝이 없는 숲들, 통나무 정착촌, 광활한 스텝지대를 통과하면서 9,446km에 달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기차에서 시베리아의 장대함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시베리아 소나무, 낙엽송, 전나무 등 울창하게 우거진 침엽수림이 계속되며 가끔 초원도 나타난다. 이 울창하고 푸르른 침엽수림은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수빙으로 뒤바뀐다. 열차는 시베리아의 장관인 바이칼 호수를 지나 이르쿠츠크, 라마교의 흔적이 있는 울란우데(Ulan Ude)를 지나 끝없이 서쪽으로 달려간다. 철로는 노보시비르스크, 도스토예프스키의 유형지로 유명한 옴스크를 지나 시베리아의 마지막 역인 스베르들로프스크역 등 58개 역을 지나 7일째가 되면 종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에 도착하여 6박7일간의 대장정은 끝나게 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여 하바로프스크를 거치는 노선과 베이징에서 시작하여 몽고의 울란우데를 거쳐 이루쿠츠크를 향하는 두 가지가 있다. 두 노선은 각기 특징이 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는 열차는 그 울창하고 차가운 타이거의 장관을 느낄 수 있으며 러시아에서 시작하여 러시아에서 끝나는 정통적인 향취를 지니고 있다. 베이징에서 시작하는 울란우데 노선은 황량한 고비사막을 횡단하며 몽고의 수도 울란바토르 국경을 거쳐간다.
이 두 노선은 거대한 바이칼호 입구인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만을 목표로 일주하려는 여행광들이 많이 있지만 이 철로의 전 노선을 한 번에 여행한다는 것은 거의 초인적인 인내를 필요로 한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 열차의 전노선을 여행하기보다 바이칼호 주변을 집중적으로 여행하는 것이 휠씬 유익하고 재미 있다.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올란우데를 출발해서 몇 시간 후면 오른쪽에 바이칼호가 보이는데, 이 구간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우랄 산맥에서 모스크바로 들어가거나 블라디보스트크에서 시베리아로 진입하는 구간은 지극히 단조로운 구간이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구간을 이용하면서 각 도시에서 하루 정도 묶으면서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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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는 우리 나라 새마을호 정도의 크기로 객차 안에 들어가면 화장실과 차장실이 나란히 있다. 차장실 맞은편에는 러시아 특유의 구리주전자인 사모바르가 설치되어 언제든지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화장지와 컵은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따로 준비해야 한다. 더운물은 항상 끓고 있으므로 인스턴트 라면이나 인스턴트 죽 등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
열차에는 칸마다 두 사람의 차장이 배정되어 승객들의 불편을 덜어주고 있다. 차안에서의 식사는 식당차, 차내 판매, 중간 역에서의 매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식당차는 열차 중간쯤에 연결되었고 메뉴는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요금이 표시되어 있는 것만 주문 가능한 요리이다.
차가 역에서 정거할 때는 잠시 나가서 바깥구경을 하거나 매점에서 음식물을 살 수도 있다. 역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감자나 계란 우유 등을 판다. 외국 여행자들은 대개 식당이나 매점에서 사먹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도시락을 많이 장만해 온다. 흑빵과 치즈, 베이컨과 버터 그리고 러시아 차를 테이블 위에 놓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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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 간을 6박 7일 동안 블라디보스톡 →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일정으로 횡단하며 도중에 울란우데, 모스크바 바로 앞의 '황금의 고리'로 유명한 야로슬라블 등 60여 개의 역에서 정차한다. 아직 한국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시베리아의 열차여행.눈덮인 설원에 닥터지바고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영욕의 땅"'으로 변할 그 날을 기대하면서 러시아 겨울 여행의 진수를 만끽하여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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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반도 남단 구릉지대에 위치한 극동 최대의 도시로 인구는 약 65만명이며 군항, 산업 항,어항으로서뿐만 아니라 조선이나 수산가공 등 공업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시내를 중심으로 제정시대부터 지어진 개성적이며 예술적인 건물들과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아서 산책하는 즐거움이 큰 곳 중 하나이다.
향토 박물관 : 적색 벽돌 구조의 건물로 시베리아 소수 민족의 의상이나 일상용품 등이 다수 전시되어있다.
수족관 : 아무르 만의 면한 해변에 있는 수족관으로 이 곳에서는 용상어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근처에는 고래의 사육장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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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를 흐르고 있는 '아무르 강'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 경치가 빼어나 이 강을 보기 위하여 이 곳에 온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수리 강과 아무르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하바롭스크는 1649년에 엘로페이 하바로프라는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6세기 중엽부터 극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858년에 하바롭스크라고 명명되었고 역 앞에 서 있는 그의 동상은 이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시베리아의 대자연 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곳이 안성맞춤이다.
아무르강 : 하바롭스크를 대표하는 아무르 강가에 가면 시베리아의 대자연과 만날 수 있다. 강을 바라보고 서면 아득히 보이는 건너편 강가의 건물들은 그 형태조차 알 수 없을 정도 이다. 아무르 강은 동시베리아와 중국 동북지방의 경계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흑룡강'으 로 불리며 북쪽으로 흘러서 오호츠크해로 이어진다. 여름이면 모래사장에서 수영과 썬탠을 즐기는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극동 미술관 : 작은 미술관이지만 레핀의 작품을 비롯하여 성화, 조각 등 흥미로운 작품들 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그 지역 어린이들의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향토 박물관 : 아무르 강가에 위치하고 있는 오래된 벽돌 건물로 1896년에 러시아 지리학회 의 아무르 강 유역지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극동이나 연안주의 역사, 풍속, 자연에 관한 자 료에서부터 맘모스의 상아, 고대 원주민의 생활양식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적군 박물관 : 적군의 극동전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으로 구만주를 점령한 일, 중, 소련군의 전투자료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2층 미술공예품 매점에선 시베리아 소 수 민족의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리스트뱐카 : 리스트뱐카는 바이칼 호수에서 앙가라 강이 흘러나오는 곳에 있다. 삼면이 산 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며 이르쿠츠크에서는 하루 코스로도 갈 수 있다. 리스트뱐카 마 을의 산 경사면에는 목장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청색이나 녹색의 목 조 주택들은 마치 작게 축소한 정원을 연상시킨다. 이 마을의 명소는 1864년에 세워진 센트 니콜라스 교회이다. 벽은 연한 벽돌색이고 녹색의 둥근 지붕이 얹혀 있다. 마을에서 제일 높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보이며 시간이 맞으면 종소 리도 들을 수 있다. 또 한가지 절대로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은 바이칼 호수에 지는 저 녁해이다. 가슴이 설레일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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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에서 열차로 18시간 떨어진 거리(1.013km)에 있는 칫타는 1825년 뻬쩨르부르그에서 전제정치에 반대해 거사를 일으켰던 12월 당원(제까브리스트)들이 유배를 오면서 세워졌다. 칫타는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예로부터 군사산업이 발달해왔으며 불교 사원, 러시아정교 사원 등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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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우데는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의 수도로 1666년 바이칼 호수의 동쪽에 있는 러시아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시베리아 철도상의 기점 중 하나로서 특히 몽골로의 분기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화국을 구성하는 소수 민족은 브리야트인, 오로치인 등 한국인들과도 닮은 민족 들이다. 도시의 남쪽으로는 몽골에서 계속되어 온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초원의 마을인 이보르긴스크 마을에 있는 티베트 불교와 라마교의 총본산인 이보르긴스키다찬 사원은 매우 동양적이다. 한편 도시 북쪽에는 시베리아의 타이가가 펼쳐져 있어 울란우데는 기후의 경계를 이룬다. 타이가 맞은 편에는 '시베리아의 푸른 진주'라 불리는 바이 칼 호수가 있어서 동쪽 호반을 바라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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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우는 이 도시의 시내에는 바이칼 호수의 근원인 앙가라 강이 유 유히 흐르고 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폭풍을 일으킨 귀족들의 유배지였다는 어두운 역 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분위기는 매우 조용하며 비경의 땅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특히 키로프 광장 근처에는 세 개의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데 그 중 두 개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내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광장 주변에 잇는 빨간 벽돌의 폴리스키 교회와 흰색과 녹색의 대비가 아름다운 스파 스카야 교회, 보고야브레니에 사원 등이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 우샤코프카 강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데카브리스트 난으로 처형된 귀족 들의 묘가 있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성가의 메아리 속에서 향로를 흔들며 걷고 있는 러시 아 정교 신부를 볼 수 있다. 황금색 테두리의 돔과 여러 가지 성화로 장식되어 있는 아름 다운 건물이다.
이르쿠츠크 국립 연합 박물관 : 발리샤야 거리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로 1층에는 시베리아 동부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그릇, 어린이들의 완구, 민속 의상, 샤면의 전시품 등이 전시 되어 있다. 2층에는 혁명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국가 건설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 고 사진촐영 코너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세레호프가 시베리아 탐험에 사용한 짐승가죽으로 만든 카누가 볼 만하다.
오벨리스크 : 거리 남쪽 끝에 있는 첨탑비로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최초로 제안한 무라비요 프 아무르스키 백작을 기념하기 위한 비이다. 주변에는 앙가라 강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 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 1852년, 뻬쩨르부르그에서 일어난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유배되어 온 귀족들이 살았던 집으로 당시의 목조 건축양식을 그대로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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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0만명의 지리적 위치상 러시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러시아내에서 가장 큰주를 가지고 있는 도시. 371년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러시아내의 최대의 중화학 공업도시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실질적으로 엄청난규모의 알루미늄공장과 니켈 공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10루블 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큰 규모의 수력 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 도시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아름답고 뛰어난 자연풍경을 자랑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쉬로까야)예니세이 강을 끼고 있어 낚시나 이곳 사람들의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굴뚜르느이 첸뜨르(레닌 박물관이라고도 불림): 매달 새로운 전시회가 열리며 주로 그림이 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전쟁 물관으로서 레닌에 대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띠아뜨르 이 오페르 발렛 : 오페라나 발레등을 볼수 있는 극장으로서 러시아(시베리아)의 예술적 경지를 맛볼 수 있다.
수리꼬프 박물관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 수리꼬프의 집으로서 그가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그의 많은 작품이 모스크바의 뜨리찌에꼬프스꼬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긴 하나 이곳에선 그의 생활도구 하나하나를 엿볼 수 있다.
역사 박물관 : 13년 동안 잠겨 있던 역사 박물관이 2001년 3월 22일 문을 열었다. 옛날 의 상들이나 생활 용품등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치소브냐 : 10루블짜리 지폐에 나와 있는 언덕 위의 교회. 그곳에선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전 경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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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50만명의 노보시비르스크는 1893년에 개설된 시베리아 철도의 오비강 철교 공사와 함 께 개발이 진행된 도시이다. 1917년의 혁명 이후에는 현대적인 공업도시로 급속도로 성장, 현재 오비강 호반에 과학 연구도시 아카뎀고로드크가 건설되면서 시베리아의 과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내에 있는 집들은 구소련의 현대적인 건축 기술과 시베리아의 서정성을 절충시킨 모습이다.
향토 박물관 : 시베리아 철도 건설 즉 시베리아의 자연, 역사에 관한 자료들과 민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카뎀고로도크 : 오비강 호반의 인공 호수 근처에 있는 과학도시로 1958년에 건설되어 지 금은 4만여명 이상이 살고 있다. 러시아의 과학 아카데미 시베리아부 등 모든 분야의 과학 연구소가 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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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3번째로 큰 대도시이지만 모스크바나 상트 뻬쩨르부르그에서 느껴지는 도시적 이미지 대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예까?린부르그는 우랄산맥의 동쪽, 이세트 강변에 위치해있으며 타이가 숲과 아름다운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이 도시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로마노프 가의 니콜라이 2세와 그의 황족이 최후의 비극을 맞이한 곳으로 유명한데, 예까쩨린부르그란 도시이름은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의 부인인 예까쩨리나 1세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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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열차의 종착역이자 러시아의 수도이다. 육중한 스탈린식 건물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현대식 상점들 사이로 메르세데스, 포르셰, BMW 등 세계적인 자동차들이 거침없이 누비는 걸 볼 수 있다. 게다가 찬란한 문화를 뽐내듯 유명한 인물들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으며 발이 닫는 곳마다 극장, 콘서트 강당, 미술관, 박물관으로 문학, 예술, 정치, 경제의 중심인 모스크바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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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대부분 장거리 침대열차다. 차량 한 칸마다 보통 두 사람의 차장이 타고 있으며 차장은 차내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기차가 역에 정차해 있을 동안 차장은 책임맡은 객차의 출입구에 서서 수상한 사람이 타려고 하지 않는지 주의해서 살펴보면서 손님을 맞이한다. 승객이 오면 신분증(여권)과 차표를 일일이 대조하여 확인한 후 승차를 허락한다  기차표는 차장이 보관하며 하차할 때 승객이 머물고 있는 바곤(열차 칸)에 가서 직접 돌려준다. 이는 승객이 머물 지역에서의 거주등록증과 같은 것이니 잘 보관하도록 하자. 기차가 출발하면 차장은 손님에게 베개커버, 침대시트,수건 등을 나누어 주며 이때 승객은 약간의 이용료-기차의종류에 따라 다름-를 지불해야 한다. 객차마다 물통(사모바르)이 비치되어 있고 물을 뜨겁게 끓여 놓는다. 따라서 손님들은 필요시 차장에게 컵을 받아 따끈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화장실 문은 잠그었다가 출발 30분 후에 열어 주며 정차역이 가까워 오면 다시 잠근 후 출발 후에 열어준다. 화장실에는 세면대밖에 없어 샤워를 할 수가 없고 세면시에도 수도를 누른 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기차는 요금에 따라서 침대가 마련된 소프트 클래스(2인 1실), 꾸페(4인 1실), 6인 1실, 좌석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위의 도면은 일반적인 꾸페의 모습으로 좌석과 같이 각 침대마다 일련번호가 있다. 열차 중앙에는 빨간색의 차량이 연결되어 있는데 바로 식당차이다. 실내는 하얀 식탁보와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청결한 느낌이 들고 메뉴는 러시아어로 쓰여있다. 메뉴 중에서 가격이 표시되어 있는 것만 준비할 수 있는 음식이므로 그 수는 한정되어있다. 수프에는 치킨 수프와 보르쉬 등이 있고, 고기요리는 비프스트 로가노프, 돈까스, 치킨 프라이, 비프스테이크 등이다. 빵은 라이보리 빵으로 딱딱하고 시지만 익숙해지면 먹을 만하다. 열차의 정차시 각 플랫폼에서 파는 식료품들을 미리 구입하여 식사, 간식으로 먹는 것도 좋다. 승객의 하차역이 가까와 오면 차장은 보관하던 차표를 돌려주면서 하차할 역이 가까왔다고 알려 내릴 준비를 하게 한다. 따라서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자기가 내릴 역을 지나쳐 버릴 염려는 없다. * 열차실내온도 22°C 이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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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무척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시베리아. 동토의 땅, 죄수 유형소, 혹한, 불모지 등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시베리아가 우리와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친근해지고, 드넓은 자연을 보게 된다면 또 하나의 낙원을 보게 될 것이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되면서 시베리아가 인류의 발생지라는 고대사의 학설 이반증되었으며 특히, 이 곳은 우리 민족의 발생지로서 북방기원설에 유력하게 지목되는 지역으로 많은 유적과 풍습, 토테미즘, 샤머니즘도 엿볼 수 있다. 지난 세기 많은 조선 사람이 이곳으로 건너왔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던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원주민으로서는 몽골계, 브랴트인, 고아시아인들이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며 거주하고 있다.외부와의 접촉은 11세기 무렵부터 교역을 통해 시작되었는데 모피류가 그 주종을 이루었으며이 시대부터 식민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베리아는 우랄산맥 넘어 유시아인들이 자원확보를 위하여 원정과 점령을 통해 자원확보를 위하여 식민통치를 함으로써 고착화되었다. 노브고르트 대공국 시대에는 발달한 상공업과 우세한 권력을 배경으로 시베리아 안쪽 깊숙이 식민지진출을 꾀하였고 그 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식민활동의 패권을 장 악하고 있던 노브고르트 대공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480-1500년까지 일련의 시베리아 원정을 통하여 시베리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16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그 세력 범위가 현 시베리아 전역에 미쳤으며 이는 러시아 재정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 재정러시아시대의 예르마크 시베리아 원정 이후 시베리아 점령이라는 식민지 국면이 정착되었다. 시베리아로의 초기이주는 열악한 환경조건으로 인해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 의 땅으로 인식되어 군대, 정부관리자, 상인들이 주로 진출하였으나 18세기부터는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강제노동과 정치범의 수용목적으로 강제유형이 늘어났다. 레닌도 ``미누신스크 ``지역으로의 유배경험이 있으며 소련 시대에도 집단화를 거부했던 부농과 정치범들이 시베리아에 수용되었었다. 1917년 혁명 이후, 자원 보고로서의 가치와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한 후 후진산업에서 탈피하고자 중공업정책의 일환으로 시베리아 개발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면모를 이루게 되었다. 시베리아는 지리적으로 우랄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며 전세계 육지면적의 10%를 차지하여 중국과 몽고를 합친 땅보다 더 넓은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북극해, 남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그리고 북한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 연방의 경계지역 구분과 통계에 의하면 시베리아는 서시베리아와 동시베리아 그리고 극동(편동) 이렇게 세지역으로 구분된다. 북극해(가라해)로 흘러 들어가는 예니세이강의 서쪽부터 우랄산맥(또는 오비강)을 포함한 지역을 서시베리아로 칭하고, 예니세이강과 레나강 사이를 동시베리아라 일컫는다. 한편, 극동(편동)지역은 레나강 동쪽으로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의 사할린, 쿠릴열도를 포함하고 있다. 시베리아에는 약 3,000만여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러시아인은 시베리아에 약 400여년 동안 거주하고 있어 토착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시베리아 원주민은 몽골계와 브랴트인, 고아시아인들이지만 이들의 수는 많지 않다. 시베리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동시베리아를 살펴보면 북위 50~70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몽골과 중극의 만주지역에서부터 북극의 랍테프해까지 약 2,000~2,500Km이다. 면적은 412만3천800미터로 남한 면적의 41배이며 인구는 서울보다 적다. 1994년, 당시 총인구는 920만명이었으며 도시와 농촌의 비율은 71:29였다. 동시베리아 지역의 3/4은 대략 5000~600m 고도의 산악지역으로 기후는 건조하며 온도에 비해 체감온도는 양호한 편이다. 겨울철은 11월부터 4월까지이며 대체적으로 눈에 쌓여 있다. 평균기온은 -15C정도이며 가장 추울때는 -40C 까지 내려가지만 추운감은 생각보다 적다. 반면, 여름은 6월부터 8월까지이며 일조량이 많고 강렬한 태양이 18시간 동안 작열한다. 여름철의 평균 기온은 20C이며 최고 38C까지 올라간다. 기후가 건조하여 햇빛 아래서는 뜨겁지만 그늘 아래서는 상쾌한 여름을 즐길 수 있다. 연간 강수량은 600mm이하로 적은 편이다. 행정구분은 4개의 공화국과 2개의 주, 그리고 4개의 자치관구를 가지고 있으며 민족정치단위로서는 하기스 공화국에 하기스인 7만1천, 예벤크 자치관구에 예벤크인 2만8천, 투바 공화국에 투바인 16만5천, 브랴트 공화국에 브랴트인 약 35만5천명 그리고, 러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암울하고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는 있으나 시베리아의 성공적인 도시정책과 원활한 교통수단,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이제 시베리아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새로운 땅으로서의 마지막 처녀지이며 자원의 보고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이 평가된다. 시베리아는 모든 종류의 지하자원과 타이거 산림지대에서의 산림자원 등으로 미래에 이 지역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바로, 이 미래의 시베리아가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시베리아 관광의 시작은 이르쿠츠크의 이르쿠츠크시에서 시작되며 이를 위한 항공편은 서울에서 주1회 운항되는 크라스노야르스크항공사(이하`크라스항공`)의 항공기로 서울을 출발, 크라스노야르스크를 경유하여 이르크츠크에 도학할 수 있다. 철도로는 북경과 모스크바간의 철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브스크, 모스크바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열차의 중간역으로 하바로브스크에서 상행 2박3일, 모스크바에서 하행 3박4일 여정이다. 서울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직항기로는 약 4시간 소요되며 모스크바행 항공 기도 이르쿠츠크 상공을 경유한다 이제 시베리아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느껴보도록 하자. 먼저,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입국신고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은 다음 세관신고서를 작성한다. 보통 러시아내에서 영어가 잘 통하지 않으므로 여행사에서 간단한 생활노어를 한글로 옮긴 것을 미리 준비하면 편리하다. 세관 신고는 정확히 해야하며, 특히 현금($)기재사항은 정확히 기재하여 출국시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 세관신고서는 통과 후 다시 돌려주는데 출국시 제시해야 하므로 잘 보관하도록 하자. 입국절차가 끝나면 눈앞에서 이르쿠츠크가 여러분을 반긴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도시로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조용하면서도 깨끗한 이미지를 간직한 도시이다. 또한, 교육, 관광, 문화의 도시로서 시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 도시의 풍경은 비경의 땅에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가로수로 꾸며진 마르크스 거리, 그 거리를 중심으로 고색창연하게 이어져 있는 벽돌건물들, 골목골목 들어선 아름다운 창들의 목조주택들,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러시아정교 수도원들……. 그러나, 이 도시는 19세기초 제까브리스트의 난으로 폭동을 일으킨 젊은 귀족들의 유배지였다는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도시 관광으로는 장엄한 분위기의 즈나멘스키 수도원, 소수민족의 주거생활을 통해 옛러시아 농촌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향토시 박물관, 시베리아철도 건설에 관계된 오벨리스크, 시베리아 연극이 공연되는 드라마극장, 유배된 귀족들이 살았던 제까브리스트 기념관, 러시아정교 건물 등을 추천하며 이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 관광에서의 핵심은 단연코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우는 바이칼호수 일 것이다. 이르쿠츠크주와 브랴트 자치공화국의 경계에 놓인 바이칼호수는 그 규모와 경관에서 단연 세계 으뜸의 호수임을 자랑한다. 남북 길이 636Km, 최장폭79.5Km, 최단폭 27Km, 둘레길이 2,000Km, 깊이는 1,637m로 세계 최고의 호수이다. 입수되는 강은 336개이나 출수되는 강은 단하나 앙가라강뿐이다. 수온은 4.2C~16C이며 호수 주변에 수많은 휴양시설이 있어 관광을 하다보면 원시 자연 속의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수량 23,000㎢의 바이칼 물은 지구상 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수로 음용이 가능하며 산소 함유량이 많고 각종 미네랄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희귀어종이 다양하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떼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수영복 차림의 쎈탠객들로 하여금 마치 해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세계적인 휴양지로서 각나라의 인종들을 만날 수 있는 바이칼 호수는 또한 그 규모, 위용만큼이나 많은 전설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바이칼 호수 주변으로 수많은 관광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몇 군데 들어 여행방법을 소개해 본다.
리스트비얀카 이르쿠츠크에서 자작나무 숲을 보며 40분 정도 달리면 이곳에 도달하게 된다. 입구에 도착하면 앙가라강의 시작을 보면서 사랑의 바위전설을 들어보도록 하자. 언덕 위에는 현대적 고급호텔이 있으며 바이칼 박물관에서는 바이칼 고대사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유물들과, 공룡화석 등을 볼 수 있다.
가랴친스크 온천휴양 마을로 사나토리(요양지)가 유명하다. 요양지에 숙박하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온천욕을 즐기며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 숲 속에 자리잡은 요양지는 모든 잡념을 없애주고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교통은 울란우데로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약 50분) 기차로(약 8시간) 바이칼 주변을 관광하면서 울란우데에 도착, 차량을 이용하여 3시간 정도 가면 된다. 이곳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행을 할 만한 곳이다. 사나토리에서 걸어나가면 원주민 마을이 있으며 바이칼호수 해변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소요된다. 해변가에서는 고기를 굽거나 생선훈제를 하는 가족단위의 소풍객들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접근하여 말을 걸어보도록 하자. 정이 많은 그들과 금방 친해져서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비르 바이칼스크 '북쪽바이칼'이라는 작은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빠른 쾌속선(시속 70~80km)으로 바이칼을 종단하면 10시간 가량 소요된다. 관광거리는 그리 많지가 않으나 꼭 가보고 싶다면 그 도시를 관광한 후 기차로 브리스크로 가서 고대유적지 박물관, 시내관광 등을 하고 다시 유람선을 이용, 앙가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것도 권할만하다.
꿀 뚝 바이칼호수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소도시. 최남단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바이칼호를 바라보는 것 또한 일품이다.
바이칼스크, 슬류잔카 바이칼 남단의 도시로 뒤쪽에 사이안 산맥이 펼쳐져 있으며 등산코스가 많다. 2,000m 이상의 봉우리가 많아 3일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등반을 시도해 볼 만하다. 하산시 에는 급류타기를 할 수 있지만 워낙 난코스이기에 추천하지 않는다.(급류타기 세계적 전문가도 여러 명 사망)
아르샨 이르샨으로 향하는 넓은 초원길을 달리다 보면 저멀리 펼쳐진 마치 알프스를 연상케하는 산맥도 볼 수 있다. 아르샨에 도착하면 마치 남설악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르샨은 온천 관광지로서 구소련 시절 고위관리자들이 속병을 고치던 곳으로 유명하며 그 옛날 칭기스칸이 요양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칭키스칸의 후예들이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가랴친스크와 같이 사나토리(요양지)가 많이 위치해 있어 의사의 지시대로 온천욕과 약수를 마시며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등반코스도 여러 곳이 있으며, 정상을 정복고자 하면 전문등산 안내자를 따라 장비를 갖추고 산행을 할 수 있다. 마치 설악산 계곡과 같은 이 곳에서 러시아식 꼬치구이(샤슬릭)를 직접 해 먹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저녁에는 마을을 산책하며 바(BAR)에서 보드카 한 잔 하는 것도 멋!!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은 단연 기차여행의 꽃이다. 시베리아 철도는 착공후 11년째인 1916년에 완성된 총 길이 9,297 킬로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다. `지구의 크기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려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라'는 말이 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두번 왕복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라고 한다. | |
HOME>시베리아횡단기행>시베리아를 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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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으로 잊혀졌던 또 다른 대륙 시베리아가 남북 화해의 바람과 함께 망각의 저편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9300㎞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SR)'가 남북한 철도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산발 열차가 유럽까지 달리게 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21세기의 실크로드'로 거듭날 것이 다. 그 날이 오면 '망각의 대륙' 시베리아는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꿈의 대륙'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블라디보스토크역. 수도 모스크바까지 장장 9300㎞를 달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가 시작되는 곳이다. 경원선이 이어지면 부산을 출발한 기차가 두만강을 건너와 이곳에서 TSR와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러시아호는 꼬박 6박7일을 달려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오케안(대양)호는 13시간30분을 달려 하바로프스크까지 간다. 모두 시베리아의 광활함을 실감케하는 여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는 지구의 3분의 1을 돌아가는 TSR의 첫 역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아담하다. 그러나 대장정의 꿈에 부푼 사람들이 넘친다. 중국인 '보따리 장사부대', 휴가를 받아 집으로 가는 태평양함대의 수병, 도시에 사는 자식을 만나러 왔다가 시베리아 벽촌으로 돌아가는 촌로, 오붓한 기차여행을 즐기려는 연인들. 매년 1억5424만명이 갖가지 사연을 품고 TSR를 이용한다. TSR의 요금은 기차 종류와 좌석, 계절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상상외로 싸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4인실을 이용하면 단돈 1000루블(약 4만2000원). 비행기 요금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6인실이나 침대가 없는 칸은 훨씬 더 싸기 때문에 보통 러시아인들에게 TSR는 없어서는 안될 젖줄이다. 한번 타면 며칠씩 기차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승객들은 짐이 많다. 긴 여행이라 어려운 점도 있다. 화장실에 세면대밖에 없어 샤워를 할 수 없고 식당차가 있어 끼니걱정은 없지만 비슷한 음식에 질리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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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포함한 시베리아 취재팀은 6박7일 동안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열차에서 모두 150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출발해 기차 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10시간 안팎의 짧은(?) 구간도 있었지만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 구간은 무려 60시간(2박 3일)을 달려야 했다. 60시간 동안 취재팀이 탑승한 열차의 이름은 시베리아호. 차장인 옐레나 바베슈카의 안내로 객차에 오르니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복도 한편으로 늘어선 10개의 객실이 보였다. '쿠페'라고 부르는 4인용 객실에는 2층 침대 2개가 양쪽 옆으로 붙어 있고 침대 사이에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다. 옆의 객차는 객실이 모두 2인용인 '룩스(고급)'. 러시아 서민들은 1칸에 침대 6개가 있는 값싼 '플라취'를 주로 이용한다. 혼자 여행할 때는 물론 낯선 사람과 객실을 함께 써야 한다. 난생 처음 만난 남녀가 2인용 객실에서 며칠 밤낮을 함께 지 내는 야릇한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기차가 출발한 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사람들이 곧 친해져 맥주나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객실을 옮겨 다니며 끼리끼리 어울리는 모습도 보였다. 화장실의 세면대는 좁고 물도 조금씩 나와서 머리 감기도 불편했다. 그러나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물을 채워 넣기 때문에 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차를 마시거나 컵라면을 먹고 싶어 차장에게 부탁하면 언제든지 뜨거운 물을 가져다줬다. 객차마다 2명씩 있는 차장은 교대로 승객을 돌봤다. 열차가 역에 정차한 동안 누가 몰래 타지 않는지 감시하는 것도 차장의 몫. 승객들은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내려서 음식 등 필요한 것들을 샀다. 상인들이 플랫폼까지 들어와 찐 감자나 달걀 과일 등을 팔았다. 이틀째 되는 날 KBS카메라기자가 갑자기 설사와 복통을 호소했다. 차장에게 도움을 청해 무선으로 의사를 불렀다. 다음역인 카름스카야 역에서 할머니 의사가 기차에 올랐다. 진찰 결과 병명은 이질. 의사는 주사를 놔 준 뒤 약을 처방했다. 진료비는 3루블(130원).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의사가 기차에 올라 치료하는 '릴레이식 진료'가 목적지까지 계속됐다. 하나같이 여의사들이었다. 밤이나 새벽에 역으로 달려온 그들에게 따로 사례를 하려고 해도 한결같이 사양하면서 푼돈을 진료비로 받았다. 며칠씩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시간을 잊어 버린다. 더구나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는 7개의 시간대가 있어 TSR 위에는 7개의 시간이 존재하는 셈. 다른 시간대를 통과할 때마다 시간이 바뀌는 혼란을 막기 위해 열차 관련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취재팀은 양해를 얻어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바이칼호의 기관차에 2시간 동안 동승할 수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비좁은 조종실에서 기관사와 조수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관사는 수동운전으로 출발했다가 속력이 붙자 자동운전으로 전환했다. 최고 시속은 150㎞였지만 보통 80∼90㎞를 유지했다. 이따금 무전기 소리만 울릴 뿐 적막이 흐르는 조종실에서 바라본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과 그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철길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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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R열차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특히 같은 객실을 쓰는 사람과는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기차여행 동안 사랑이 싹트기도 해 TSR열차에서 생긴 로맨스는 러시아 영화나 소설의 영원한 소재가 된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시베리아호'에서 만난 미국인 레이몬드 더키(55)는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여행광인 그는 "학창시절부터 시베리아여행을 꿈꿔오다 올 여름에야 소원을 이뤘다" 며 들뜬 표정이었다.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체홉의 드라마에 매료돼 시베리아와 러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이번 여행을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는 등 준비를 많이 했다.그는 "시베리아의 거대한 자연과 여행에서 만난 러시아들의 순박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그동안 인터넷으로 사귄 러시아인 음악가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인과 일본인도 여러 명 만났다. 그러나 한국인은 보이지 않아 아직 시베리아는 우리에게 먼 곳으로 남아있음을 절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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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하바로프스크와 적잖은 인연을 맺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 총리를 지낸 이동휘(李東輝)선생이 1918년 한인사회당을 조직하는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을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활용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극동러시아공화국의 수도였던 이곳에서도 많은 한인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위해 ' 백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전사한 한인 김유천을 기려 중심가 거리 이름이 '김유천 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바로프스크의 가장 큰 상가인 중앙시장을 찾았다. 한인동포 아다 김이 동생 나탈리아와 함께 중앙아시아식 김치를 팔고 있었다. 양배추와 당근 오이 등으로 만든 김치는 매운 맛이 없고 샐러드에 가까워 러시아사람들도 잘 먹는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로프스크로 온지 20년이 된 이 자매는 남편과 사별한 뒤 힘들게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바로프스크시에만 4000여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주 전체에는 1만9000여명이 산다. 한인들은 출신지에 따라 달리 불린다. 그래서인지 전체 동포가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사할린 출신은 '화태치'로 불린다. 일제 때 강제로 사할린으로 끌려갔다가 해방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일제가 주로 영남지방에서 노무자를 징용했기 때문에 60%정도가 남한 출신이며 아직 1세대가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조국은 물론 일본과 구 소련 정부로부터도 외면받아 상당수가 무국적자 신세다. 사할린 밖 이주가 금지되다가 20여년 전부터 본토로 옮기는 것이 허용됐다. 화태치는 러시아 정착 역사가 짧고 1세대는 러시아어에 능통하지 못해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화태치들은 시내 북쪽에 모여 사는데 근교에서 야채를 가꿔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큰땅치'는 중앙아시아 출신을 일컫는다. 스탈린 시절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가 다시 극동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2, 3세로 러시아어도 유창하고 이름도 러시아식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 전문직 종사 자가 많은 등 한인 가운데 가장 번듯하게 살고 있다. '북선치'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다. 하바로프스크시 남쪽에 약 200여명이 모여 산다. 이들은 벌목장이나 광산 어장 등에서 일하러 왔다가 러시아에 눌러앉았다. 이들은 당연히 북한과 가깝다. 하바로프스크 인근의 벌목장 등에는 아직도 북한 노동자들이 많다. 취재팀은 시내 공사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발견하고 말을 걸려 했으나 안내인이 만류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무표정하게 취재팀을 쳐다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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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로프스크에서 남서쪽으로 70㎞ 떨어진 뱌트스코예 마을. 아무르강변의 원시림 속에 묻힌이 작은 마을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1940년대 흔히 '김일성부대'로 불리던 88특별저격여단이 바로 이 마을에 주둔했다. 정확히 말하면 김일성부대는 중국인 러시아인 한인 등으로 구성된 88여단의 대대격인 제1교도영. 김일성은 제1교도영장으로 300여명의 한인부대를 지휘했다. 차에서 내려 달려드는 모기와 하루살이 떼를 쫓아가며 숲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농가사이에 통나무로 지은 카페와 레스토랑 방갈로가 나타났다. 한편에는 철창 안에 곰이 묶여있고 고급 승용차 몇 대가 서 있었다. 이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 아나톨리 코르베코프(70)는 "마을이 몇 년 전부터 하바로프스크 등 도회지 부자들이 주말이나 휴가를 보내는 별장촌과 유원지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몇몇 촌로의 안내로 60여년 전 부대 주둔지로 갔다. 막사로 쓰던 통나무집 몇 채가 폐허로 남아 있었다. 만저우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김일성부대는 일본군의 추격이 심해지자 1940년말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왔다. 김일성부대는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이곳에 훈련기지를 세우고 국내진공을 준비하다가 광복을 맞자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갔다. 마을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농가 몇 채가 강제 수용됐고 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이 부대를 '중국인 부대'라고 불렀다며 부대 접근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부대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막사 등은 폐허가 됐다. 길이가 20m가량 되는 가장 큰 막사는 그 후 한때 고아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북한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공식적으로는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있으나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이곳이 출생지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김국방위원장이 이곳에서 세살 무렵까지 살았던 것은 확실하다. 코르베코프 할아버지는 10여년 전 북한의 고위인사를 태운 헬기가 근처에 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책, 최용건 등 훗날 북한정권을 탄생시킨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88여단 출신이기 때문에 이곳은 북한정권의 산실이기도 하다. 그들 중 누군가가 러시아 방문길에 옛 생각이 나서 들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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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장장 60시간을 달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가 새벽녘에 발샤야 레취카(큰강)역을 지나자 열차 안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푸른 타이가(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거대한 호수가 조금 씩 자태를 드러내자 '아, 바이칼'이라는 탄성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침대차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가로 모였다. 창을 열어제치자 물비린내가 물씬 풍겼지만 공기는 오히려 상쾌했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바이칼호는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같았다》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의 바이칼호는 한반도 넓이의 7분의 1인 3만1500㎢. 오이 모양으로 호수의 폭이 가장 넓은 곳은 79㎞나 된다. 호수 안에 20여개의 섬까지 떠 있으니 말이 호수지 웬만한 내해(內海) 못지않다. 열차는 이르쿠츠크까지 7시간 동안 바이칼을 따라 바람처럼 달렸다. 정차하는 역마다 상인들이 말리거나 구운 생선을 플랫폼에 들고 와 팔았다. 바이칼호에서 서쪽으로 65㎞떨어진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강은 바이칼호의 물이 흘러나오는 유일한 강. 1918년 세워진 이르쿠츠크국립대를 비롯한 대학과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은 바로 바이칼호이다. 이르쿠츠크국립대 환경연구소장인 그리고리 슈페이제르 교수는 평생을 바이칼호 연구에 바친 '물박사'로 통한다. 그는 "바이칼은 세계가 힘을 모아 보전해야 할 인류의 자산"이라고 말했다.연구기관들이 수십년 동안 바이칼을 연구하면서 수자원관리, 생화학, 생물학 등 관련 분야가 자연스레 발달했다. 슈페이제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몽골 카자흐스탄 중국 등에서 수질을 분석하고 지하수를 개발하는 사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그는 "서울의 수질을 분석해본 결과 오염도가 상당히 심각했다"며 한국과 수질 관리나 지하수 개발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길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칼호의 수량 (水量·2만3000㎦)은 발트해와 비슷한 규모. 앙가라강 등에는 초대형 수력발전소가 즐비하다.TSR의 전철화도 풍부한 전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동쪽으로 70㎞ 떨어진 리스트뱐카. 바이칼이 앙가라강과 만나는 이 마을은 바이칼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 천혜의 관광지로서의 조건을 가졌지만 바이칼은 아직 관광지로 충분히 개발되지 못한 상태. 호텔이나 교통 등 기본 시설도 미비하다. 이르쿠츠크 주정부 관계자는 98년부터 관광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으나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은 미미하고 그나마 중국 일본 몽골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해결책은 대규모의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것. 알렉세이 소볼 주정부 부지사는 "2001년 서울에서 열리는 관광박람회에 참가해 바이칼을 알리고 외자도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 추위가 닥치면 바이칼도 꽁꽁 얼어붙는다.겨울에는 높이 4m까지 치솟는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어 호수면이 울퉁불퉁한 얼음판으로 변한다. 얼음 두께는 150㎝ 정도. 청정호수답게 얼음도 맑아 8∼10m아래까지 볼 수 있다. 안내인은 "겨울에는 얼어붙은 호수위로 철도가 깔리고 호수 위를 다니는 차들을 위해 교통표지판까지 선다"고 설명했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망망대해 같은 호수로 나갔다. 배가 일으키는 포말 때문에 수심 40m 밑이 보일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물은 한없이 맑고 깨끗했다. 하늘과 숲 호수 건너편에 깎아지른 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관은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별명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바이칼호를 위협하는 것은 주변의 펄프공장. 러시아정부는 공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다. 슈페이제르 교수는 "한국 등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의 신비로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이칼호의 역사는 무려 2500만년. 보통 호수(수명 3만년 정도)의 800배가 넘게 장수하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호수 내 200m 이하의 깊은 물에서 항상 4도 정도의 수온을 유지하는 점을 들고 있다. 다른 호수들이 수온이 올라가 결국 늪지로 변해버리는 것과는 달리 바이칼은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바이칼이 늘 깨끗한 것은 이와 함께 이 곳에서 사는 '보코플라프'라는 1.5㎜ 크기의 새우같이 생긴 갑각류 때문. 보코플라프는 지저분한 것들을 잡아먹는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바이칼호는 보통 호수와는 달리 200m가 넘는 깊은 곳에서도 사는 생물이 있다. 호수 주변에는 2600여종의 식물과 동물이 사는데 이 중 3분의 2는 이 곳에만 사는 진귀한 것들. 민물에 사는 유일한 물개인 바이칼 물개는 수명이 40∼50년이나 된다. 20∼30년을 사는 장수 물고기 '오물'은 관광객들이 즐겨 먹는 별미. 바이칼이 항상 소금기 없는 민물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다. 350여개 하천에서 바이칼로 물이 흘러들어오지만 바이칼호의 염분은 항상 유입 강물들보다 낮다.학자들은 "호수 바닥에 담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샘이 있는 것 같다."고 추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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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는 러시아 땅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인구는 겨우 17%가 모여 사는 오지(奧地). 그러나 석유와 가스 목재 등 엄청난 천연자원으로 러시아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수출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는 시베리아산이 70∼80%에 이른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시베리아의 경제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단순히 '자원의 보고(寶庫)'라는 차원을 넘어 문화적으로도 모스크바 등 유럽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색깔과 체취를 지닌 독특한 사회다.》 시베리아에서 2년째 살고 있는 박상범(朴相範)대우전자 노보시비르스크 법인장은 시베리아의 자연과 사람, 이들의 삶에 흠뻑 빠졌다고 털어놓았다.박씨는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와 비교해 '정말 같은 러시아인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베리아 사람들은 다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서구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스크비치에 비해 시베리아 사람들은 순박하면서도 인정 많고 강인한, 아직 발길이 닿지 않는 '타이가(시베리아의 울창한 침엽수림)'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80도 가까이 되는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한결같이 강인하고 생활력이 있다. 박씨는 "집에 초대하고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기를 즐기는 것을 보면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있는 시베리아 사람들이 동양적인 정서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시베리아식 만두인 '펠메니' 등 입맛도 서양보다는 동양 쪽에 가깝다. 이르쿠츠크대 법학부에서 유학하는 정정길(鄭挺吉)씨는 시베리아에 눌러 앉을 결심으로 아예 집까지 사버렸다. 시베리아는 경제적으로 유럽 러시아에 비해 뒤떨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사냥과 낚시 등 자연을 즐기며 여유 있게 살아간다. 취재팀은 바이칼호 근교의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없는 바냐(러시아식 사우나)를 체험했다. 바냐는 강가의 통나무집에 벽돌로 화로를 만든 것이 전부. 장작불을 지펴 열이 오르면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사우나를 즐긴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작나무 줄기를 물에 적셔 아플 정도로 세게 온 몸을 때리는데 이것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사우나를 하다가 강으로 달려가 물에 몸을 담그고 다시 사우나를 하는 것을 반복한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강에 뛰어들거나 눈 속을 뒹굴기도 한다. 시베리아의 웬만 한 집들은 '다차'(교외의 텃밭이 딸린 별장) 옆에 조그마한 바냐 하나씩은 갖고 있다. 16세기부터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카자흐 기병대의 뒤를 따라 온 러시아인들은 삼림을 개간해 마을을 만들고 슬라브정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바이칼호와 타이가 등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자연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게 됐다. 시베리아는 '전 세계 샤머니즘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미신과 무당이 많다. 정교도인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에서도 다수를 차지하지만 불교와 이슬람교 라마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것도 시베리아의 특징이다. 노보시비르스크대의 황 타티아나 박사(경제수학)는 "삼엄했던 소련시절에도 시베리아는 지리적으로 중앙과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문연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시베리아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학문세계에도 자유롭고 독자적인 학풍이 유지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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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오브강 철교를 지나자 그 동안 볼 수 없던 대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베리아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는 인구 150만으로 러시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 1893년에 세워진 ‘새로운 시베리아’라는 뜻의 이 도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역사를 함께 한다. 시베리아의 개척사가 웅변하듯 타이가(시베리아 침엽수림)를 베어내고 수많은 강과 호수를 헤쳐 TSR 건설에 착수하면서 노보시비르스크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철도박물관의 아나톨리 쿠락신 선임학술연구원은 "TSR 건설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 (役事) 중 하나"라고 말했다. 후진국이던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를 건설해 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쿠락신 연구원은 "TSR는 건설 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전체주의 체제가 아니었다면 대규모 노동력의 동원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TSR는 역설적으로 차르(러시아 황제) 체제가 남긴 위업인 셈이다. 노보시비르스크는 학문의 도시이기도 하다. 물리, 화학, 지질학 등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 분야도 학문전통이 깊은 '시베리아학파'를 형성할 정도로 독자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에는 노보시비르스크항공기제작소(NAPO) 등 대규모 공업단지도 있다. 수호이 전투기를 만들던 NAPO는 소련붕괴 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 중심가에서 30㎞ 떨어진 과학센터. 이 곳은 아카뎀고로독(학문의 도시)으로 불린다. 옛 소련이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 50년대에 건설한 대규모 연구단지. 이곳에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소와 노보시비르스크대 등 30여개의 대학 연구소가 모여있다. 취재팀이 탄 차는 예상과는 달리 검문소 하나 거치지 않고 숲에 둘러싸인 아담하고 깨끗한 아카뎀고로독에 들 어섰다. 아파트단지와 백화점 영화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아카뎀고로독은 생활기반 시설을 빠짐없이 갖춰 도시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노보시비르스크대 생물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유학생 박해조(朴海朝)씨는 "이 곳을 벗어날 필요가 없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58년 설립된 핵물리연구소(INP)는 직원만 2900명(연구원 400명)에 이르는 물리학 분야 중 러시아 최대의 연구소. INP는 입자물리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아카뎀고로독의 차분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는 시베리아의 천연자원 못지 않게 러시아의 저력을 보여줬다.
### 위의 기사는 '미래의 대륙 시베리아를 달린다'는 제목하에 동아일보사 (//www.donga.com)에 연재(노보시르스크=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된 것으로서 동 아일보사 '21세기 평화재단'과 서울대 러시아연구소 국제문제연구소, KBS가 공동으로 실시 한 한-러 수교 10주년 특별기획 시베리아 횡단철도편을 부분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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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러시아전문 여행사 세명투어(www.russiago.com) --
위 본문에 링크가 깨져 사진이 안나오는게 있는데 원래 출처인 아래 링크로 가서 확인바랍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내 : http://russiago.com/siberia/index.asp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