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예수 나를 위하여 144
김인식 작사 · W.H.Doane 작곡; 《통일 찬송가, 1983》 144장
1.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 하셨네
2.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3.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4.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
후렴.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멘
이 찬송은 한국 찬송가역사상 최초로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한 찬송이다. 근대 서양음악의 개척자인 김인식(金仁湜, 1885 ~ 1962)이 작사한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양악계의 선구자로서 일찍이 1914년, 한국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가 세우고 목회하는 새문안교회에서 집사가 된 사람이다.
김인식은 「예수 나를 위하여」와 같은 명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가장 많은 차나송가를 번역하였지만 그 이름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부름 받아나선 이 몸」(323장)의 작곡자로서 감리교 장로인 이유선(李有善, 1911 ~ 2005)교수는 그의 저서《韓國 100年史》(113p)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찬송가는 선교사들의 서툰 번역 가사를 사용했는데, 김인식(金仁湜)은 번역에 재능도 있어, 많은 찬송가를 반역하기도 하였다. 그 후 장로교 찬송가 속에 그의 번역 가사가 많지만, 번역자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던 그 시절 풍습에 따라던 까닭에, 어느 것이 그의 번역인지 모르게 되었다."
김인식은 숭실학교 시절 선교사 집에 있는 낡은 오르간이 너무 갖고 싶어서, 기숙사 동료 세 사람과 함께 돈을 추렴해 12원을 주고 사 가지고 돌려가며 연습을 하였는데, 친구들은 별로 안 치기 때문에 거의 혼자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쳤다. 기숙사 학생들이 수면 방해라고 항의하는 바람에 그는 기숙사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였다. 3학년이 되자, 그는 오르간 실력을 인정받아 그레이엄(1861 ~ 1916)목사에게 코넷을 배웠다. 바이올리니은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서 혼자 사흘간 연습하고 찬송가를 연주하자 선교사들은 모두 놀랐다. 음악교사가 없던 당시 그는 상동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상동청년학원」중학부를 시작으로 기호 · 진명 · 오성 · 경신 · 배재학교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1910년 이화학당 대학부(현 이화여대 전신)에 음아구가 생기기 한 해 전인 1909년, 한국 최초의 음악전문 교육기관인 조양구락부(朝陽構樂蜉)가 생겼다. 그런데 양악과에는 미국인 선교사에게 배워 미션스쿨에서 가르친 경험이 인정을 받아 김인식 단 한 사람만이 교사로서 채용되었던 것이다. 양악과에는 풍금(風琴), 사현금(四鉉琴 = 바이올린), 성악(聲樂), 악리(樂理)등 4과가 있었는데, 정원은 5099명이었으나, 27명으로 시작하였다. 입학 자격은 15세 이상, 중학 이상 학력이 있는 자요. 월사금(月詐金)은 매월 1원이지만, 양악생은 50전이었다. 양악부 성악과 제 1회 졸업생인 하대홍(河大弘)은 졸업하자 곧 보조교사로 시무했고, 제2회 졸업생 이상준(李常俊, 1884 ~ 1948)은 국악과에서 가곡창을 전공하였다. 홍난파(1898 ~ 1941)는 먼저 성악과를 졸업하고, 다시 사현금을 이상준에게서 배워 제3회 졸업생이기도 하였다. 홍난파는 김인식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 거금 7원 50전을 들여서 악기를 샀는데, 당시 김인식의 월급은 100원이나 되었다. 《찬송가, 1908》중 100여 편이 그의 번역이라 한다. 《신정 찬송가,1931》서문에 보면 「고열은 ㅍ피득 목사 부부와 김인식 씨가 하였고....」라고 기록에 남겨 김인식이 악보 교정을 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 나를 위하여」에 붙어 있는 곡명 「십자가로 가까이」'NEAR THE CROSS'는, 본디 크로스비가 작사한 439장 「십자가로 가까이」'Jesus, Keep me Near tbe Cross'를 위하해 하워드 돈이 작곡한 것이다. 곡명'NEAR THE CROSS'는 이 영문 가사에서 딴 것이다.
이 찬송은 브래드버리와 로우리가 곡동편찬한 「빛나는 보석, 1869」 제 130장에 처음 실렸다. 이어서 하워드 돈(1832 ~ 1915)이 편집 출판한 「헌신의 노래들, 1870」 232장에도 실렸다.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의 《성가와 독창곡 750곡집》'Sacred Songs and Solos: With Standard Hymns, Combined,1889' 127장에 처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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