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11 - 푸츠먀오 夫子廟(부자묘) 를 보고는 나와 명나라시대 정원인 잔웬으로!
난징(南京 남경) 의 남문인 중화먼 中华门(중화문) 에서 걸어 공자의 사당인 푸츠먀오 夫子廟
(부자묘) 에 도착하니 진회하 운하에 정박중인 유람선이며 건너편 벽에 조각된 큰 용
두 마리 그림을 구경하고 부자묘 로 들어가는데 여기도 학생과 60세 이상은 50% 할인입니다?
벽에 仁(인)과 禮(예) 라는 글씨가 선명하고 마당에는 공자의 제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가운데
大成展(대성전) 앞에는 공자의 동상 이 보이며 사당에는 萬世師表(만세사표) 라는 글귀아래
공자의 초상화 가 그려져 있는데 사람 들이 초상화에 엎드려 절하며 기원을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벽에는 공자의 일대기를 자개로 표현한 그림이 있으니 세상을 주유 하며 뜻을 펼치려고 애쓰던
모습으로 보이니 중국에서는 산동성의 공자묘 외에 아마도 가장 큰 공자 사당이지 싶은데
외국에 공자학원 까지 성행하지만 내겐 옛날에 “비림비공” 운동이 떠올라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모택동은 대약진운동 을 개시하였으나 대기근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아사하자 1959년에 열린
루산회의에서 국방부장 펑더화이는 마오를 비판하지만 해임당했지만 국가주석에 취임한
류소기 는 대약진운동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이후 등소평과 함께 경제개혁을 주도하게 되었다.
류소기와 등소평이 국가주석과 당서기 를 맡아 대약진운동의 뒷수습을 하면서..... 마오(모택동) 를
제치고 실권자로 떠오르니 마오(모택동)는 1966년 문화대혁명 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으니 전국에서 마오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홍위병들이 일어났고 중국은 대혼란에 빠집니다.
류소기와 등소평은 실각하니 마오는 권력의 전면에 나서고 국방부장 린뱌오(임표) 는 마오의
후계자로 떠오르지만 마오는 린뱌오를 신뢰하지 않았고 1971년 마오가 남중국을
시찰하면서 린뱌오를 비난하자 린뱌오(임표) 는 쿠데타 시도에 실패하고 망명하다 죽습니다.
마오를 대신해 정치실권은 혁명원로들을 제치고 처 강청과 사인방이 장악해 임표(린뱌오) 와 공자를
비난하는 "비공비림" 운동을 전개하니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공산당내에 끌어들여
자본주의 부활을 꿈꾸며 반혁명 수정주의자라 못박으니 "공자와 유학도 수난" 을 당했던 것이라?
공자의 아버지는 대부이며 무예가 뛰어난 숙량흘 叔梁紇 인데.... 70세에 안씨의 딸인 16세 징재
와 야합하여 공자 를 낳았는데 본부인은 시씨로 딸 아홉에, 둘째 부인은 다리를 저는
아들 하나를 낳았다는데 남편이 죽자 본부인 시씨는 사망사실 을 안씨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아버지 묘소 위치 조차 모르고 성장했으니 어머니 안씨가 죽자 거리에 빈소를 차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일이 벌어졌으니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꽃그림으로도 유명한
천경자 씨가 죽은후 장남과 차녀 그리고 배우자들이 무덤 위치를 알려달라고 기자회견을 엽니다.
천경자씨는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그림 93점을 기증하고 뉴욕 으로 건너가 장녀 이혜선씨와 살다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져 91세로 죽으니 장녀는 뉴욕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른후 유골을 들고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는데 장남과 차녀는 은행의 예금계좌 해지 동의 전화를 받고 엄마가 죽은줄 알았다나요?
장녀는 엄마가 치매에 뇌출혈로 쓰러져 12년간 투병 하는중 형제들이 나몰라라 했으니.... 간호의 수고를
감당한지라 형제들은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고, 형제들은 누나가 엄마와 작품을 독점해 차단막 을 치는
고집을 피우다가 이제 사망사실과 무덤 위치 까지 알려주지 않으니 기자회견에 법적 조치까지 하겠다나요?
공자는 훗날 동네 늙은 여인이 아버지의 묘소를 일러주니 늦게나마 어머니 시신을 아버지
묘소에 이장 합장 했다는데 하늘나라에 간 천경자씨의 자식들도 법정 에 까지 갈게
아니라 조금 양보해서는 역지사지 하여 화해하고 잘 마무리 짓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고는 공자 사당 푸츠먀오 夫子廟 (부자묘) 를 나오니 다시 진회하 운하
인데.... 밤에 이 일대의 야경 은 난징 최고의 볼거리로 친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문까지 걸어 나와서는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물어
가며...... 명나라 정원인 잔웬 瞻園(첨원) 을 찾아갑니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묻습니다. 잔웬 짜이날? 瞻園 在 哪儿
여긴 거리에 골동품등 가게가 줄지어 서 있어 구경하느라 심심치가 않습니다!
여긴 명나라때의 중국 정원이라고 하는데 태평천국의 난때 천왕부 가 자리한 곳이라
입구에는 정원인 잔웬(첨원) 간판 보다는 남경시박물관 총관 간판이 먼저 보입니다.
그리고 옆에 金陵第一園 (금릉제일원) 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데 30元(학생과
경로 15원) 을 내고 입장해서는 박물관을 보고는 다시 정원으로 나갑니다.
여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원나라를 쳐서 북경을 빼앗은 일등 공신이자
오랜 옛날 부터 동지였던 서달 에게 하사한 저택인데...... 훗날
청의 건륭제 가 방문해 구경하고는 잔웬 膽園(첨원) 이라 명명했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