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독 임헌정씨의‘대타’로 부천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은 지휘자 최희준씨./예술의전당 제공
대타는 야구장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해설자로 맹활약한 '전(全)방위 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은 25세 때
뉴욕 필하모닉의 부(副)지휘자로 임명됐습니다.
그해 11월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앓아눕자, 번스타인은 리허설도 없이 지휘대에 올랐습니다.
이 연주회가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전파되고 성공을 거두면서 청년 음악가 번스타인은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중국의 스타 피아니스트 랑랑(郞朗) 역시 '대타 출신'입니다. 17세 때인 1989년 미국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앙드레 와츠를
대신해서 시카고 심포니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Eschenbach)는 지금도 랑랑과 즐겨 협연하며 음악적 조언자를 자임하고 있으니, 랑랑으로서는
일거양득이 된 셈이지요.
목소리가 악기인 성악에서는 '언더스터디(understudy)'나 '커버(cover)'로 불리는 일종의 대타 요원으로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리허설부터 주역과 연습을 함께하면서 비상시 언제나 출동해야 하는 오페라의 '5분 대기조'인 셈이지요.
1968년 9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에서 테너 프랑코 코렐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공연을 취소하자, 당시 27세의
무명 테너가 명(名)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가 바로 지난해 메트 데뷔 40주년을 맞은 플라시도 도밍고입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역시 1963년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라 보엠》 첫날 공연 직후 출연을 급작스럽게 취소하자 나머지 공연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올해 부천 필은 임헌정씨의 병환으로 이병욱·구모영 등 젊은 지휘자들이 나머지 시즌을 맡아서 꾸려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대타'라고 할지라도 '내일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음악계의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