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49,1-6, 사도 13,22-26, 루카 1,57-66.80):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인들 가운데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기억되는 분을 기립니다. 교회는 순교자와 성인들의 세상을 떠난 날을 축일로 기념합니다. 그것은 그날이 하늘나라에서의 참된 탄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 요한 세례자만큼은 예외입니다. 주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교회는 그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대축일로 기립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의 탄생 자체가 이미 구원의 역사 안에 깊이 새겨진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첫 울음이, 그의 첫 숨결이, 이미 하느님의 뜻을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총의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그 신비 앞에 잠시 머물고자 합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루카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이웃들과 친척들이 아기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고 전합니다. 얼마나 인간적인 질문입니까. 새 생명 앞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경이로움, 기대, 그리고 사랑이 이 한 문장 안에 담겨 있습니다.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아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것입니다. 그 작고 따뜻한 무게 안에 얼마나 큰 가능성이, 얼마나 큰 이야기가 접혀 있는지를.
그런데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들은, 그 질문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놀랍게도, 요한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이사 49,1)
이 말씀 앞에 잠시 멈추십시오. 모태에서부터, 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기 이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기 이전에, 심지어 우리가 빛을 보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고, 이미 우리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요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사야는 계속합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이사 49,3) 그리고 5절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종을 모태에서부터 빚으셨다고 말합니다. 빚으셨다, 는 말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도공이 흙을 다루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손으로 직접 빚으셨습니다. 우리의 기질, 우리의 상처, 우리의 재능, 우리의 이름,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 기억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다." 그의 이름 자체가 이미 복음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신다고 해서, 그 길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소명은 종종 광야를 통과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광야에서 자랐고, 광야에서 선포했으며, 결국 권력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가 사도행전에서 다윗을 가리켜 한 말이 마음에 울립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사도 13,22)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세상의 눈에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요한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로 여기려 할 때,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가 아닙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발에서 신발을 벗겨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사도 13,25) 이것이 요한의 위대함입니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충실히 사는 것. 더 커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이 커지시도록 스스로 작아지는 것.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말씀들은 오래전 요한에게만 향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이 강론을 듣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같은 말씀이 향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모태에서부터 부르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의 상처도, 당신의 두려움도, 당신이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 깊은 갈망도, 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한 분이 계십니까? 오랜 시간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는데, 지쳐버린 분이 계십니까? 내가 과연 이 길이 맞는지, 이 선택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이 그 분들의 마음에 조용히 닿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모태에서부터 빚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불확실함이 그 진리를 지우지 않습니다. 요한도, 다윗도, 이사야도, 그들의 길이 환히 보여서 걸어간 것이 아닙니다. 부르시는 분을 신뢰했기에 걸어간 것입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에게, 지금 새로운 시작 앞에 선 모든 이에게, 이 질문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과나 능력이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이름을 지어 주시고, 손수 빚어 만드신 그분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고, 요한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그리고 기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을 기념하며, 우리도 함께 청합시다. 내 삶의 모든 순간 안에 이미 먼저 와 계신 하느님을 알아뵙는 눈을. 광야의 길도, 불확실한 기다림도, 그분의 손 안에 있음을 믿는 신뢰를. 그리고 우리 곁의 새 생명들을, 주님께서 빚으신 그 신비로운 존재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주님은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모태에서부터 알고 계신 그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