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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포엠아트 원문보기 글쓴이: 이혜정(나팔꽃)
⁂ 2015년 제7회 지리산시낭송대회 ⁂
제1부 허영자시낭송상
제2부 장순하시조낭송상
대상 100만원x2
금상 50만원x2
은상 30만원x2
동상 20만원x2
장려상 200만원(10x20)
✽ 일시 : 2015년 6월 8일(월, 개관6주년기념일) 오후 2시(한국시낭송문학상 시상식, 지리산시낭송대회)
✽ 장소: 지리산문학관(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201)
✽ 주최: 경남시조시인협회, 지리산문학관, 계간 시낭송
✽ 신청기간: 2015년 1월 15일(목) 0시~31일(토) 24시, 본 게시판
✽ 신청자격: 성인남녀, 시낭송가 자격증 소지자(복사 첨부)
✽ 낭송요령: 1인 1편만 선정하여 낭송합니다.
총 참가인원 30명 중 15명은 허영자시를 선택하고 또 15명은 장순하 시조를 선택하되, 서로 시가 중복되는 것은 금합니다.
따라서 선정시 1편을 선착순으로 접수하며 먼저 접수하신 분께 우선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사봉 장순하 시조는 본 게시판 <공지사항>에 올린 25편 중에서 선정하시면 됩니다.
* 시인 허영자 시는 각자 본인이 좋아하는 시를 찾아서 선정하시면 됩니다.
문의사항은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되도록 빨리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시낭송대회에 많은 관심과 참여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윤숭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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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봉 장순하(1928~) 시조 25편
1. 간이역에서 / 장순하
2. 이스터섬의 모아이 / 장순하
3. 시간의 얼굴 / 장순하
4. 로제타돌 사설 / 장순하
5. 지리산 기행 / 장순하
6. 바람을 주제로 한 정읍삼절(井邑三絶)휘몰이조調 / 장순하
7. 난 요새 별꼴 다 보고 삽니다요 / 장순하
8. 인연이야기 그 넷째 · 아프리카의 눈 / 1990년 여름 - 장순하
9. 기원(起源)의 장 / 장순하
10. 탄천 소요(炭川逍遙) / 장순하
11. 앵두나무는 / 장 순하
12.관도(觀圖) - 통일대한 / 장순하
13. 개벽하는 이슬방울 / 장순하
14. 묵계(默契) /장순하
15. 문법(文法)하는 계절 /장순하
16. 징검다리 / 장순하
17. 긴 동반同伴 / 장순하
18. 고향길 / 장순하
19. 강물처럼 흘러간다 / 장순하
20. 숨 죽인 바람 / 장순하
21. 시데기네 가승(家乘) 엮기, 그리고 그 행간(行間) 읽기 / 장순하
22. 실의 시대失意時代 / 장순하
23. 천지天池에 올라 / 장순하
24. 시조사(時調史) 절요(節要) / 장순하
25. 패자는 말이 없다 / 장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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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이역에서 / 장순하
집 잃은 갈가마귀빈 가지에 나래 접듯
두메 한촌 간이역에작정 없이 내려서다
설핏한 플랫폼 위에길게 누운 그림자.
반백(半白)의 역무원은날 본 체 만 체하고
기름 전 신호기만버릇으로 흔든다
저 건너 외딴 주막집푸른 연기 한 줄기.
언젠가 한 번 왔지 싶은언젠가 다시 오지 싶은
왜 그런 데 있잖은가베낯설지 않은 이 간이역
못 본 체 역무원 하며먼 주막 연기 하며.
2. 이스터섬의 모아이 / 장순하
실타래 얼기설기 얽히고 또 꼬이고한가닥 실마리조차 가늠하지 못할 날은소리 내 책장을 덮고 훌쩍 떠나 버릴꺼나.
남태평양 거센 물결에 잠기락 뜨락하여지도에도 점 하나 있기도 없기도 하는세계의 배꼽 이스터 거기에나 가 볼꺼나.
바다를 등에 지고 넌지시 고개 들어산호 눈 부릅뜨고 저녁노을 지켜보는 거대한 석상 모아이 그 곁에나 서 볼꺼나.
네 온 데도 갈 데도 몰라 천년을 서 있느냐희로애락 오욕칠정 부질없다 서 있느냐신의 뜻 거역하느라 꿈쩍 않고 게 섰느냐.
얼마를 인고하면 돌로 굳어지더냐심장 뇌수 간과 쓸개 모든 허상 다 떨치고투명한 자유 속에서 저리 편안하더냐.
3. 시간의 얼굴 / 장순하
너는 바람인가
움직일 뿐 얼굴이 없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머리도 꼬리도 없다
휘둘러 서발 막대에
거치는 것이 없다.
너는 쏜살인가
나아갈 뿐 멈춤이 없다
뒷걸음도 게걸음도
부지런도 게으름도 없다
이정표 없는 네 길엔
발자욱도 없다.
널 지은 창조주도
어찌하지 못하는 너
절대의 권능 쥐고
생사조차 주관한다
인정도 사정도 없고
예외도 실수도 없다.
만인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닌 너
너와 나는 이인삼각
애환 함께 하였건만
어느 날 고개 돌릴 너
끝내 얼굴 없는 너.
번지 없는 빈 집에
문패 달랑 걸어 놓고
온데간데 없는 너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너
그러나
천지에 꽉 차서
없는 곳이
없는 너.
4. 로제타돌 사설 / 장순하
만상(萬象)은 의미 없는 점(點)의 집합이요, 각 점은 숨겨진 우연의 선(線)으로 연결되어 비로소 의미를 가지고 다시 만상으로 기능하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1799년 7월 19일, 이집트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 로제타에서 나폴레옹 원정군의 여단장 앙드레의 휘하 병사가 납작한 현무암 비석 하나를 캐냈다. 이 돌은 미구에 파리로 옮겨질 예정이었으나 그 사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영국군 사령관 허치슨의 전리품이 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로제타 스톤’이다.
이 비는 고대 이집트 마케도니아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송덕비로서 기원전 196년 신관이 제작 건립한 것이 홍수에 휩쓸려 내려오면서 이지러진 채 모래 속에 묻힌 것이리라. 비면에는 같은 내용의 글이 옛 이집트의 성각문자와 민중문자, 그리고 그리스 문자 등 세 가지 글자로 새겨졌는데, 유럽의 여러 석학들이 도전했으나 아무도 그 비문을 해독하지 못했다.
그것을 약 2천년 뒤인 1808년, 당시 18세의 한 로마 소년이 로제타석의 사본을 손에 넣고 주야로 각고하기 15년 만인 1822년 마침내 옛 상형문자의 해독에 성공했으니 그가 곧 뒷날 이집트학의 개조(開祖)가 된 샴폴리온이다. 그는 비문 중 타원형으로 두른 말이 왕의 이름일 거라고 추리하고, 그 비문의 주인공인 프톨레마이오스 5세 왕과 천하일색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이름을 대비함으로써 해독의 실마리를 풀어간 것이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가려진 짙은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고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의 본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일대 쾌사였다.
그 동안 의미 없는 점일 뿐이었던 사물들, 곧 기원전 196년과 기원후 1799년과 1822년, 파리와 로제타와 런던,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와 나폴레옹과 샴폴리온 등과 같은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로제타석과 선으로 서로 얼크러지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위대한 역사의 새 장을 연 것이다.
그러면 지금 21세기 첫머리 한국 성남시에서 빛바랜 한 시인이 밤을 새워 이 글을 다듬고 있는 것도 어쩌면 로제타석과 함께 만상에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5. 지리산 기행 / 장순하
날마다 새날이나 겪고 보면 쳇바퀸데
그 지겨운 일상들을 단칼에 베어내고
잠시간 졸다 깨보니 지리산이라한다.
단오절 지리산은 어디나 수채화다
먼 산의 능선빛은 차례로 묽어 가고
그 위에 계신 하늘은 칠할 빛이 없어라.
초여름 한나절에 지리산을 걷는다
스쳐가는 소나기는 초록을 덧칠하고
솔바람 나지막 음계 눈으로나 들어라.
6. 바람을 주제로 한 정읍삼절井邑三絶 휘몰이조調 / 장순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정읍 고을에 바람이 분다.
장돌뱅이 지어미가 망부석 오른 밤에 구름 헤쳐 달 밝혀서 멀리멀리 비춘 바람,
시름 잊은 늙은이가 거니는 봄 동산에 꽃내음 머금어다 도포 자락 날린 바람,
미물같이 엎드려서 죽으라면 죽어 살던 순하디 순한 백성 다독여 잠재운 바람. 죽다죽다 못다 죽어 더 죽을 것 없는 날에,
일어나라 사발통문 고을 고을 바람모아 회오리로 뭉친 날에,
손에 손에 가래 쇠스랑 죽창 별러 치켜들고 제폭구민 나선 날에,
황토재 언덕 높이 동도대장군 흰 깃발 펄럭이고 여시재 마루에서 큰 의리 외친 날에,
귀신 우는 만석보 일격에 무너지고 버러지나 잡아먹던 독 버러지 철커덩 간 떨어지고 넘어져 고꾸라져 천방지축 줄행랑치고 백성이 하늘인 것을 비로소 깨우친 날에,
잃을 것 다 잃었어도 내 잃은 것 없노라고 껄껄 웃고 간 녹두장군 큰 바람.
오늘은 서리 친 날에 내장(內藏)에서 불도다.
7. 난 요새 별꼴 다 보고 삽니다요 / 장순하
여행에서 돌아오니 웬 개가 나와 짖습니다요. 안방에 앉아 있으면 부엌문으로 들여다보며 짖고, 마루에 나가면 뜰팡에 와서 짖고,
뜰에 내려서면 모퉁이로 돌아가면서 컹컹 짖어대니, 이거야 원 누가 주인인지 어리둥절해집니다요.
큰 도적 좀도둑 세상에 널린 게 도둑인데요, 장독 위의 간고등어 제놈이 슬쩍 했으면 했지,
남의 참외밭에 한발짝 넣지 않은 꽁생원을 보고 자지러지게 짖어대니, 이것이 당신이라면 기가 차지 않겠어요?
‘히피’라면 또 몰라도 꼴에 이름이 ‘해피’라나요? “해피 예쁘지” 어쩌고 하면서 뒷목이라도 간지러 주면 곧 친해질 거라고,
우리 수정이가 내 팔꿈치를 흔들지만요, 주인의 체통이 있지 어찌 개에게 아첨을 한답니까요.
칵 한 대 쥐어박았으면 속이 후련하겠는데요, 백일도 채 안 된 옆방 인석이 선잠 깰까봐,
제 놈 짖는 소리 다 참고 들어야하니 이 무슨 꼴입니까요,
난 요새 이런 별꼴을 다 보고 삽니다요.
8. 인연이야기 그 넷째 · 아프리카의 눈 / 1990년 여름 - 장순하
그것은 왕매미 쓰르라미 소리 쏟아지는 여름 저녁나절이었다. 이제는 이름조차 아물아물하는 두 문학청년과 어울려 익산(益山)에서
선화공주 묘라고 전해지는 무덤을 찾아 모주 한 잔 붓고 돌아오던 길에,
벼이삭 패는 논 물꼬에서 두세 마리 물고기가 게으른 헤엄을 치는 것을 보았다.
그들도 흰자위 검은 동자로 우리를 흘끗 흘겨보았다.
그것은 겨울 바람 매서운 아프리카 남단이었다. 대서양 푸른 물결이 케이프 만 모랫벌에 허옇게 부서지는데,
손발이 얼어붙는 테이블 산 정상 바위틈에는 진주황빛 알로에 꽃이 만발해 있는데,
그 곁에서 한 흑인이 흰자위 검은 동자로 우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것은 30여 년 전 익산의 벼논 물꼬에서 본 그 물고기의 눈이었다.
9. 기원起源의 장 / 장순하
먼 그날, 우리들의 기름진 텃밭에는
온갖 아름다운 사연을 대신하여
귀엽고 작은 씨앗들이 실눈을 떴다.
그들은 오보록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운영 방석 같은 성좌(星座)로 흩어지고, 산호 가지로 돋아나고, 광맥으로 벋어나고,
그리고 잔디로, 놀로, 큰애기의 꿈으로 익어가고
어시와 새끼를 위해 창문들을 밝혔더니,
빛, 빛, 빛의 난무여, 빛의 현기여 --
남실대는 혓바닥, 정에 주린 손톱들이 활활 모닥불로 타오르는 둘레를
비잉빙 너울거리는 선무당의 쾌자 자락.
아, 어느 세월을 닦으면 숯도 희어지는가?
태양은 잠들고 광녀(狂女)도 늘어진 자리에 만법(萬法)은 하나로 --
밤마다 은하(銀河)의 물방울에 멱 감고 제풀에 피어난 목화송이로,
이름도 물감도 없는 다만 태초의 바탕이여!
10. 탄천 소요(炭川逍遙) / 장순하
삶의 짐 하 버거워 감당할 수 없는 날은
지팡이 하나 끌고 탄천에나 나가 보소
천하의 모란시장도 건너가면 한 장 구름.
밤하늘의 별빛 정기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여기 모여 흐르면서
생명의 푸른 광장을 질펀하게 펼쳤나니.
언덕 위엔 여뀌 억새 물가엔 버들 갈대
부들은 부들끼리 창포는 창포끼리
모여서 사는 이치를 새삼 배워 가시소.
옅은 데선 피라미떼 은비늘로 팔딱이고
깊은 데선 참붕어들 유유히 헤엄친다
누구나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저 이치.
흘러가다 멈춘 들엔 왜가리 해오라기
목 꼬아 날개에 묻고 외다리로 졸고 있다
세상사 한 장 접으면 저리 편안한 것을.
둑 위의 잔디밭은 연인들의 돗자린가
산책길 자전거길 소풍객이 줄을 잇고
곳곳의 운동장에는 젊은 피가 솟는다.
여수교 아래에는 농짝만한 징검다리
마흔 한 개 세고 가며 묵은 허물 빨아내고
되짚어 건너오면서 온갖 잡념 씻어 내소.
온몸을 덮은 먼지 가슴속에 찌든 땟국
층층보 흰 거품에 말끔히 헹구어서
심령을 재충전하고
새 삶터로
나가 보소.
11. 앵두나무는 / 장순하
무료(無聊)하다 하다 못해 던져 본 돌팔매가
커다란 바다에서 잔물결로 갔다 오고
칠성단(七星壇) 정화수(井華水)에서 달빛을 쪼개듯.
어느날 이름도 성도 모를 씨알 하나
헐었다 쌓았다 무심한 흙장난이
한 그루 앵두나무를 여기 서게 한 것이다.
꽃철이면 꽃잎 따라 구름으로 피다가
여름이면 열음 따라 보람으로 익다가
착하디 착한 것들을 둘러 모아 살다가.
칭얼대는 꿀벌떼 나비떼 다 먹이고
발돋움 개구장이 다 맡겨 먹이고
말마디 고운 이들을 다 불러 먹이고.
개구장이 도령(道令) 되어 그 아래서 읊조릴 때
말 고운 이의 처자(處子) 그 곁에 볼 붉힐 때
아이는 씨알 하나 주워 또 하루를 보낸다.
12. 觀圖 - 통일대한 / 장순하
정적(靜寂)이 아람처럼 또옥똑 여무는 밤
결코 복수일 수 없는 나의 눈발 한 가닥이
지그시 과녁 안으로 죄어드는 저 초점
강이며 산맥이며 짚어가던 고 손가락
이건 무어냐고 재쳐 묻다 잠이 들고
호젓이 벽을 바라고 몰아쉬는 숨결이여.
화랑 젊은 손은 세 나라도 모았거니
만이 삼천이면 하늘인들 못 돌리랴
두둥둥 북을 울려라 메아리도 울어라!
이제 벽은 무너지고 하늘 다시 열리는 날
열두 줄 가야금의 청아한 목청이랑
닐니리 새 옷 바람에 덩실덩실 춤추리.
13. 개벽하는 이슬방울 / 장순하
하늘이 토란잎에 사뿐히 내려앉고
올망졸망 아손들 치마폭에 거느리고
거니는 실바람 결에
자리 잡은 천지 자연.
깜박이는 밤의 손이 흩뿌리는 이슬 가루
오긋한 손바닥에 거르며 쏟아내며
청순한 정기만 모아
수정 알을 빚는 뜻은.
새 아침 해돋이에 한 가닥 빛화살로
구르는 알구슬에 부서지는 대폭발
개벽의 장엄한 역사
동참하려 함이렷다.
14. 묵계(默契) /장순하
뭔가 있지 싶은 우수절(雨水節) 이른 아침
신선한 한 젊은이 모자 벗어 손에 들고
한 발짝 물러선 곳에 다수굿한 새색시.
그들은 의논스레 날 넌지시 건너다보고
나는 벌써 요량한 듯 가벼이 점두(點頭)했다
그렇지, 까치저고릿적 그 전부터의 친구들.
하여, 내 하늘 한 귀에 둥지 틀고
두세 마리 새끼 쳐서 요람 위에 얹어 두고
신접 난 젊은것들은 죽지 쉴 새 없구나.
이제 저 어린것들 재 너머로 날려 보내고
저것들도 머리 세어 제 곳으로 돌아가면
난 다시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겠지.
15. 문법(文法)하는 계절 /장순하
부시시 자리를 털고 동사들이 일어난다.
굼벙이는 땅 속에서 경칩알은 물고에서
저마다 기지개 켜고 활용(活用)들을 시작한다.
형용사도 일제히 활용을 시작한다.
민들레는 길섶에서 산수유는 가지에서
비단필 마름질하여 끝동 대고 고름도 달고.
철 아닌 강추위에 강물은 되얼어도
매운 바람 사이 모닥불 나는 불티
보아라 변칙 속에도 어김없는 저 이법(理法).
16. 징검다리 / 장순하
바람이 흘리고 간 시영내 징검다리
구름 흐르는 물에 사변(思辨)의 발 담근 채
반백(班白)의 분별을 이고 고즈너기 앉았다.
점(點)도 선(線)도 아닌 논리 밖의 저 실존
한낱 돌멩이도 놓일 데 놓이고 보면
시 한 수 허자(虛字)랑 섞여 관주(貫珠) 비점(批點) 되는 그것.
어느 세월이라 갖신 꽃신 밟았으리
나무꾼 심메마니 짚신짝도 뜸하거니
한물에 쓸리고 나면 다시 놓을 뉘 있을지.
* 시영내 : 충북 단양천 하선암 근처의 한 지점. 내가 한 때 그곳에 작은 초박 한 채를 가지고 있었다.
17. 긴 동반同伴 / 장순하
흐릿한 쪽지나마
내 손에는 없었지
늘어진 금줄 젖히고
운수만리(雲水萬里) 나선 아침
오솔길 네 한 가닥이
등대하고 있었지.
오늘 가리 내일 가리
차마 못 뜬 소박데기
담 넘는 호박 넝쿨
물끄러미 바라보듯
미우니 고우니 해도
예까지 함께 왔네.
만둥이 꼴뚜기들
모로 세로 뛰던 시절
술덤벙 물덤벙에
상기 아니 걷힌 하늘
너와 난 이인 삼각(二人三脚)
어찌 못할 긴 동반(同伴).
18. 고향길 / 장순하
꽃시절 꽃가마 타고
넘어온 고지냇재
오늘은 요령 소리
어여라 넘자 고지냇재
셈 다한 치부책인 양
길은 도로 비었네.
저 건너 다냥한 데
새로 돋은 봉분 하나
되었느니 못됐느니
소문 많던 소꿉동무
뜬구름 짐 다 부리고
돌아와서 쉰다는군.
애닯다 애닯다 한들
요즘 고향만큼 애들프리
여남 채는 터만 남고
너댓 채는 비어 있고
센머리 한둘이 나와
퀭한 눈으로 본다.
19. 강물처럼 흘러간다 / 장순하
길은 외길
무리들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하나같이 흰옷 입고
하나같이 빈손 펴고
한일자 입을 다문 채
앞만 따라 흘러간다.
백발 노인, 홍안 소년,
어린 아이, 사산 태아
성현, 영웅, 도둑, 살인자
영광, 치욕, 환희, 비통
남은 건 뉘우침 하나
훌훌 털고 흘러간다.
어디로 왜 가는지
아는 이도 없는 이 길
차별 예외 없는 이 길
다시 못 갈 절대 이 길
헛개비 허수아비들
꾸역꾸역 흘러간다.
20. 숨 죽인 바람 / 장순하
바람이 없는 날은 공연히 불안하다.
일찍이 화랑 소년 향가 읊고 가던 바람 정음(正音) 짓는 세종임금 용수를 쓸던 바람 고산자(高山子) 짚신총에서 흙먼지 털던 바람, 춘향이네 뒷뜰에서 그넷줄 밀던 바람 이춘풍(李春風) 도포 자락 휘날리며 불던 바람 성불사(成佛寺) 추녀 끝에서 풍경 소리 울린 바람, 독야 청청 장송 위에 눈서리 날린 바람 장백산(長白山) 명월 아래 삭풍으로 불던 바람 동학군 「의(義)」자 깃발을 펄럭이던 그 바람,
대전통편(大典通編) 조목조목 무고한 백성 잡아 수갑 채고 작고 채고 큰칼 씌워 주리 틀어 망나니 칼춤 아래에 앉힌 옛바람, 기아 질병 환경 파괴 핵정쟁 별종 재촉 천산을 불태우고 만해를 뒤집는 바람 천재(天災)와 인재를 한데 부어 반죽하는 이제 바람.
종말의 잔치 빚느라 숨 죽였느냐 바람아!
21. 시데기네 가승(家乘) 엮기, 그리고 그 행간(行間) 읽기 / 장순하
인생이란 한 조각 구름으로 떴다가
한 조각 구름으로 사라진다 했던가.
손때 절고 좀이 쏠고 먹물 밴 붓글씨에
주먹만한 관아(官衙) 도장 꾹꾹 찍힌 옛 문서 다발
그것은 230년 전 건륭(乾隆) 30년 음 2월 이래
전라도땅 정읍현 남이면 상부암리 제3통 제4호(戶)의 한 홍성 장씨네 호적 단자.
그 끝의 ‘천구(賤口)’ 자리가 시데기네 둥지였다.
2
그것은 차라리 사슬에 얽힌 한 조각의 재산 목록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 사슬들을 꿰맞추어 너의 가승(家乘)을 엮는다.
계집종(婢) 시데기(時德)는 종그래기 열한 살, 그 동생 사내종(奴) 시남이(時男)는 코흘리개 여섯 살이라
아비는 쉰세 살의 도망종(逃奴) 가오쇠(加午金)요 어미는 양녀(良女) 끝상이(末叱尙)요 고모 하나 마흔 살의 가오데기(加午德)이고
할아비는 새경종(秩奴) 날진이(羅乙辰)요 할미는 양녀 옥상이(玉尙)요 할미의 아비 어미는 양인(良人) 정명선이(鄭明先)와 양녀 예상(禮尙)이고 증할아비는 양반종(班奴) 태선이(太先)요 증할미는 양반종(班婢) 오목개(五目介)요 오라비 오목쇠(五目金)는 도망종이라.
윗대와 아랫대 끊긴 종토막
겨우 4대(代) 여남 명이라.
3
상전 호적 끝자리에 앉은 시데기가
좁은 행간 비집고 소리없이 울먹인다.
종비(婢)자 멍에 메고 반길 이 없이 태어나서 한창 뛰놀 나이에도 눈치코치 살피다가 무고한 매나 맞는 아기종 시데기였다오
봉숭아꽃 피어나고 동산에 달이 뜨면 분홍 가슴 설레건만 눈빛 주는 임도 없이 마소처럼 일만 하는 가시내종 시데기였다오
낭군 위해 밥을 짓고 자녀 위해 옷 깁는 게 세상 아낙 낙이지만 한 맺힌 씨종 신분 다시는 대물림 말자 독하게 다짐하여 서방 자식 외면하고 어금니로 고독 씹은 늙은 종 시데기였다오
엉성한 살붙이들 시나브로 사라지고 홀로 남은 외기러기 그나마 가경(嘉慶) 21년 예순두 살을 마지막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천한 종년 시데기였다오.
4
아득한 세월 저편
풍지박산한 시데기 일가.
이제 와 옛둥지는 챙겨서 무엇하리 사람들아 웃지 말소
한 평 무덤 한 잔 술 나래 접을 가지 하나 천상 천하 기댈 데 없이 무주 구천 떠도는 가엾은 시데기
넋이나마 의지가지 한데 모여 볼 부비면 조금은 덜 시리리 우리 시데기.
구름도 고개 마루서
쉬어 간다 했느니.
22. 실의 시대失意時代 / 장순하
아내의 손가방 속의 지갑 속의 곁주머니 속 깊이 숨죽인 백 원 한 장 우겨내어
담배 한 갑 방화(放火)하면 주머니엔 도로 부처님이 들어앉고, 종로를 청계로를 을지로를 명동 퇴계로를 뜨며 박으며 감치며 호며 발바닥에 싸이렌 울리다가, 생기면 먹고 아니면 먹은셈 치고 제법 호기 있게 돌아오면, 일제히 달려드는 탐색의 눈동자들 -
그 앞에 폭삭 꺼지는 내사 처마 밑의 물거품.
23. 천지天池에 올라 / 장순하
남의 하늘 남의 땅을
날고 밟고 기어올라
흰구름 머리에 인
하늘 아래 제1번지
이제야
당신 궁전의
섬돌 아래 섰나이다.
그날 천지(天地)를 울린 진노의 터전에는
공룡들 놀던 자리 용암의 덩어리뿐 몸 하나 가누지 못할 비수 비람
비안개, 병사봉 천문봉 창끝 세워 에운 속에 임의 뜨락 큰 연못은 신비
로운 한장 거울
이따금 운무 헤치고 쪽빛 얼굴 비칩니다.
거기 반만년 역사
새근새근 숨쉬고
해맑은 민족 정기
구슬구슬 샘솟으며
이나라
무궁한 천복
너울너울 춤춥니다.
천지天池에 올라 / 장순하
1.
남의 하늘 남의 땅을
날고 밟고 기어올라
흰구름 머리에 인
하늘 아래 제1번지
이제야
당신 궁전의
섬돌 아래 섰나이다.
2.
그날 천지(天地)를 울린 진노의 터전에는
공룡들 놀던 자리
용암의 덩어리뿐
몸 하나 가누지 못할
비수 비람 비안개,
병사봉 천문봉
창끝 세워 에운 속에
임의 뜨락 큰 연못은
신비로운 한장 거울
이따금 운무 헤치고 쪽빛 얼굴 비칩니다.
3.
거기 반만년 역사
새근새근 숨쉬고
해맑은 민족 정기
구슬구슬 샘솟으며
이나라
무궁한 천복
너울너울 춤춥니다.
24. 시조사(時調史) 절요(節要) / 장순하
소나기 개 인 하늘 무지개가 아니 로다
옛 선비 풍월 읊어 띄운 잎이 아니 로다
잔치에 빌려 온 접시 더더구나 아니 로다.
가야금 삼기시고 동활자 짓던 슬기
천년을 이은 손때 입김으로 다듬은 것
천하의 어느 구슬이 이다지도 옹골 차리
치마끈 곱 매듯이 매무시 매몰차도
흐르는 물결에는 거스리지 않는 여유
우리네 하고한 사연 다 거두고 남나니
만수산 드렁 칡도 얽지 못한 일편단심
만월대 저녁 답에 목동의 피리 소리
다정도 병 되는 삼경 자규새가 울었다
삭풍 부는 장백산 달 밝은 한산 섬
동창에 노고지리 강호에 해오라기
동짓달 기나긴 밤에 귀 세우는 신발소리
벚나무 두길 세길 자란 날의 뼈아픔
가시 울의 그믐 달 4월에 진 꽃망울들
이 겨레 밟아 온 자취 거울하여 뵈도다.
25. 패자는 말이 없다 / 장순하
1천6백37년
정축년 정월 그믐날
엄동 칼바람 속에
임금님이 나가신다
통한의 패전 군왕이
남한산성 나가신다.
행궁에서 북문까지
길 가에 엎드려서
흐느끼는 하얀 물결
백설인가 백의인가
온 성 안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산천초목 다 울고
임금님 세자 함께
민머리 상투 바람
탑하에 엎드리어
아홉 번 조아리고
항서를
올리는 모습
만세 남을 치욕이다.
무능 안일에 빠진 정부
태평성대 방심한 백성
지각 없고
방비 없고
요량 없고
마련 없어
마침내
나라와 민초
죽음으로 몰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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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포엠아트 원문보기 글쓴이: 이혜정(나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