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체육시설을 만난다.
경사가 커진 오름이 시작된다. 길 양쪽으로 우회하는 완만한 길도 있어 S자를 그리며 느긋하게 올라간다.
여기도 체육시설이다.
다시 숨차게 올라가니 벤치가 자리한 봉.
나무에 걸린 표지가 반갑다. 전화기로 하는 셀카는 아런 모습이구나.
<대니산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김굉필에서 유래했다. 대니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있었지만 한자가 바뀌었다. 대니산(代尼山)이란 이름은 김굉필이 이곳에 살면서 공자의 자인 중니(仲尼)에서 니(尼)는 두고 대신할 대(代)를 일 대(戴)로 고쳐 ‘공자를 받드는 산’이라는 의미인 대니산(戴尼山)으로 바뀌었다. 또 김굉필 이전에 재니산(載尼山)으로도 불렸는데 이 이름은 국립지리원 지형도에 남아 있다. 대니산 정상에서 도동서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왕령지맥 구간이기도 하다. 산을 좀 다닌다는 이에게도 낯선 이름인 왕령지맥은 낙동정맥에서 갈라져나온 비슬지맥에서 다시 갈라진 지맥으로 서쪽으로 달려 진등산(284m)을 지난 뒤 도동서원 서쪽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왼쪽으로 진행한다. 살짝 내려섰다 올라가니 통신시설. 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차량도 있다. 시설물보수작업 중이란다.
건물을 뒤로 보내니 산악자전거길 이정표도 만난다.
이어서 활공장이다.
의자도 있어 낙동강을 굽어보며 점심.
가운데 오른쪽으로 구지면사무소. 그 왼쪽으로 올라온 능선이 드러난다.
통신탑오른쪽은 대니산.
여기도 표지가 걸렸다.
포장임도로 내려와서 임도를 따라간다. 오른쪽으로 기지국건물을 만나고 왼쪽 산길로 올라가니 널찍한 시멘트바닥 헬기장이다. 비슬산에 눈을 맞춘다. 그 아래는 현풍시가지.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45번고속도로. 아래로 오산마을.
그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래는 자모리. 낙동강저쪽은 고령군개진면.
여기도 활공장이다. 가운데로 멀리 보이는 봉도 나중에 지나야 할 길이다.
지나온 통신탑을 돌아본다.
진행방향으로 하나의 리본이 보이지만 흐릿한 길이라 임도로 되돌아와서 임도를 따라간다.
진행하다보니 헬기장에서 직진해도 임도로 내려선다. 지나갈 산줄기가 아래로 드러난다.
왼쪽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하다 오른쪽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임도는 능선을 따라간다. 체육시설이 있는 수리리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입한다.
능선은 왼쪽 어깨위로 이어진다. 자모리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이정표는 대니산에서 2.3km왔고 오른쪽으로 자모리 1.5km다.
오설리갈림길을 만난다. 이정표의 숫자가 믿음성이 없다. 조금 전 이정표는 대니산-도동서원거리가 8.1km였는데 400m가 늘어났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굽이굽이 돌아간다. 겹겹이 포개진 오른쪽 위 봉우리도 나중에 올라설 길이다.
돌아보니 가운데 능선위에서 고개를 내민 407.1봉.
고개에 올라 돌아보니 여기선 대니산도 보인다.
오른쪽으로 크게 돌며 올라간다. 다람재갈림길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다람재0.9km. 여기서도 도동서원까지의 거리가 늘어났다.
오설리갈림길. 왼쪽으로 오설리0.9km.
100m 진행하니 석문산성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리본이 여럿 보여 올라갔더니 삼각점이나 표지는 없지만 왕령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진등산이다.
임도로 돌아와서 가던 방향으로 진행한다. 여기도 체육기구. 왼쪽으로 희미한 길엔 호야식당500m 라는 표지도 보인다. 임도에 안전난간도 만나며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나무에 걸린 리본들. 진등산에서 직진하면 여기로 이어지겠다.
왼쪽 산길로 들어서며 임도와 헤어진다. 오른쪽으로 전망바위를 만난다. 아래로 낙동강과 강변도로. 도동마을도 조금 보인다. 오른쪽산허리에 줄지어 선 전봇대왼쪽에 정자쉼터가 보이는데 도동마을에서 현풍을 잇는 도로가 저곳으로 지나간다.
오른쪽으로 건물도 보이는데 건물을 앞둔 마당에서 왼쪽 강변도로로 내려선다.
전망바위에서 보였던 그 건물인데 철거대상인지 주위엔 버려진 쓰레기도 보인다.
강변도로에 내려선다.
도로따라 오른쪽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낙동강. 강의 끝에 흐릿하지만 현풍시가지.
도동1리마을회관을 오른쪽 뒤로 보내니 도동서원 앞 광장이다. 버스정류장도 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버스가 몇 시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손님이 없어 운행을 중지했단다. 안내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도동서원은 5대 서원인 안동의 병산서원 도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존속된 47곳 가운데 하나다. 도동서원에 배향한 한훤당 김굉필은 연산군 때 갑자사화에 연루돼 극형을 당했고 이후 오현에 추증됐다. 현풍은 그의 증조부가 터전을 마련한 곳으로 한양서 태어난 김굉필은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서원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낙동강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자리에 그의 묘소가 있다. 전체가 사적인 도동서원에서도 중정당과 사당, 담장이 함께 보물로 지정됐다. 서원 앞 수령 400년을 넘은 은행나무는 서원의 역사를 대변하는 명물.>
오른쪽은 도동서원의 수월루.
도동서원의 명물 은행나무.
도동서원으로 향한다. 수월루를 통과하면 환주문.
환주문을 통과하니 정면에 기와집.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던 강당, 중정당이다.
중정당 마루와 현판.
돌아 나오며 다시 만난 400살 은행나무.
나가는 승용차로 다가가서 시내버스가 지나는 정류장까지 편승을 청했더니 흔쾌히 받아준다. 8순의 부모님과 함께 낙동강 나들이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란다. 보기 좋은 그림이다. 덕분에 교통연결이 쉽게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