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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_소통의 영이 내리다!
사도행전 2:1-8
1.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5. 그 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6. 그 소리가 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리므로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7. 그들은 놀라고 또 한편 신기하게 여기며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는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셈인가?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故 칼 세이건은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61억km 떨어진 명왕성 궤도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며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그네들의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고 말하면서,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칼 세이건의 이 말은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에도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며 증오로 가득찬 역사를 만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을 것입니다. 그는 “작은 생명체로서 우리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우주의 광대함을 견딜 수 있다”고 일갈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오순절이라고도 하죠. 예수께서 부활한 지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순절 날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강림 사건은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공생애 3년을 같이 하며 그분의 말씀과 삶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승천을 직접 목격하였지만 권세자들의 박해에 여전히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담대히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전혀 배우지 않았던 각종 언어로 방언을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할 때 한 번에 수천 명이 회개하는 이적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니 마가의 다락방에 약속하신 성령이 오신 날은 교회의 공동체의 출발을 알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오순절을 ‘칠칠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초실절로부터 칠칠(7*7=49)일, 즉 49일이 지난 그다음 날입니다. 이날은 초실절에서 시작한 추수가 모두 끝나는 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확물의 십일조를 가지고 성전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날이 가지고 있는 더 중요한 의미는 이스라엘이 탄생한 날이라는 점입니다. 즉 이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한데, 출애굽 후 50일째 되는 날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하여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탄생한 날이었습니다.
이처럼 오순절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날이며 신약에서는 교회 공동체가 시작된 날로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대해 알아 봅시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예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곳이죠. 120여 명의 제자가 함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행 1:8)”이라고 한 약속을 기다린 겁니다.
모여 있던 제자들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죠.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운 것입니다. 그리고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제자들이 각자가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을 봄으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은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각각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때 예루살렘에는 칠칠절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각각 자기 지역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는 신기해하며 놀라죠.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제자들과 다 같은 유대인이었지만, 그들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달랐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를 떠나 산적도, 각 지역의 언어를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이집트,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아라비아 등 이방인과 타국에서 오랫동안 이민자로 살아온 유대사람들이 제자들이 하는 말을 자신이 사는 나라, 사는 지역의 말로 알아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저 사람들이 지금 하느님께서 하신 큰일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저마다 자기네 말로 듣고 있지 않은가?(행 2:11)"하며 놀라워했다는 것이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며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120명의 제자들이 체험한 내용들은 모두 말(語)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체험한 세찬 바람, 불, 방언은 모두 ‘성령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2절에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3절에는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4절에는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소리, 혀, 외국어는 모두 ‘말, 언어’와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한자로 ‘믿을 신(信)’은 사람의 말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을 신(信)’의 옛글자는 말씀 언(言) 밑에 마음 심(心)을 씁니다. 마음이 담겨있는 말이라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이죠.
옛사람들은 모름지기 사람이 하는 말이란 마음이 담겨있어 믿을만해야 한다고 본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되자 제자들은 자기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배하에 있었고 예루살렘에는 총독이 파견되어 직접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고관대작,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며 자신들의 영달을 꾀했죠. 그러는 사이 백성들의 삶은 점점 더 비참해져 갔습니다. 무거운 세금과 빚에 자식들을 종으로 넘겨 주거나 스스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은 고향을 떠나 도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불만이 가득한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당시 종교는 교묘한 언변과 거짓 교리를 내세워 이스라엘 민중들을 협박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백성들을 현혹시켰죠. 백성들은 무엇이 바른 율법해석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성령충만한 제자들이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을 했다는 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친 거짓 율법과는 다른 진실된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시키는 말은 생명을 살리는 말이요, 참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각자의 방언으로 전한 말은 ”하느님께서 하신 큰일(행 2:11)“입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를 보면 그 큰일은 예수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이었습니다(행 2:2-24). 그러니 제자들 각자가 전한 말 또한 베드로의 설교처럼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관한 말이었을 겁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제자들이 각자 이방인의 언어로 ”하느님께서 하신 큰일“을 전했고, 각 지역에서 온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그 가운데에 바벨탑을 세워 하늘에 닿게 하자는 욕망을 품습니다. 하느님처럼 이름을 날려 보겠다는 것이죠. 인간의 교만과 헛된 욕망을 목도 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7절). 사람들이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그 욕망의 끝이 어딘지 염려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6절)”라고 생각하셨다고 말합니다. 언어가 달라져 서로 소통이 불가능해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이 세우던 도시 건설은 멈췄습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아져 이름을 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 섭리는 예수의 성육신, 성령강림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만물 사이의 막혔던 벽을 부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 소통은 언어뿐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구현되었죠. 초대교회 공동체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보고 감동해,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제자 수에 관한 것입니다(행 1:15). 한글 번역 개역 개정판에는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번역입니다. 공동번역을 보면 “어느 날 교우가 백 이십 명가량 모여 있었는데”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원어 성경의 의미와 더 부합된다고 보여집니다. 이 말은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120명이라는 숫자가 작은 것인지 큰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개역 성경은 마치 누가가 많은 무리가 모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이 번역했다는 것이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40여 일 동안 만난 제자의 수가 대략 600여 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바울의 증언에 따르면, ▲열두 제자 ▲오백 형제 ▲야고보(예수님 동생) ▲모든 사도(70문도) ▲바울 등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죠(고전 15:4-8).
예수님이 승천한 날부터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며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순절 때 모인 무리의 수가 120여 명밖에 안 됐다는 점입니다. 부활후 40일간 약 600여 명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정작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사람은 120여 명밖에 안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강림은 승천하신 후 불과 10일 뒤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본 이들 중 5명 중 4명은 불과 그 짧은 시간동안 “기다리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 결과 480여 명은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는 요엘서 2장(28-32절)의 예언이 실현되는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큰 은총을 받았지만, 자신들의 욕망 때문에 하느님과 사람, 만물과의 소통을 끊은 것이죠.
총선이 끝난지 39일이 흘렀습니다. 정부 여당은 총선 대참패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의 회동, 기자회견 등을 하였지만 여전히 불통 그 자체입니다.
채해병 특검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거부권 행사를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에는 법무부가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품백 수수 사건' 등을 수사하는 검찰 지휘부를 전면교체하는 내용의 인사를 단행해 검찰 내부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방탄 인사라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총선을 통해 국민들이 국정 기조를 바꾸라는 데도 용산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부자 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부동산 떠받치기 위해 PF 건설사 지원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죠.
최근 네이버 라인 사태에 대한 대응도 그렇습니다. 일본 정부가 아시아에서 2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메신저 앱인 ‘라인야후’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보여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여론이 커지자 정부는 과기부를 시켜 ‘일본의 라인 지분매각 압박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네이버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회피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본은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압박하고 있는데 정부는 팔짱 끼고 구경만 하겠다는 것이죠. 작금의 라인사태는 한일간의 IT전쟁 입니다. 한국의 가진 유일한 글로벌 IT기업을 접수하려는 일본에 방관하거나 돕는 자는 신(新) 매국노입니다. 우리 정부와 여당이 그런 짓을 안 하길 바랍니다.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171석을 주며 권력의 독주를 막고 개혁을 이루라는 국민의 명령에 대해 작금의 민주당 당선자들의 행보 또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박찬대 원내대표 당선자는 1가구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종부세가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세금이라는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의 생각과 상통하는 발언입니다. 집 부자들을 달래서 무슨 이득을 얻겠다는 것인지? 이는 분명한 부동산 개혁의 후퇴입니다.
국회의장 후보 선거에서 민주당 당선자들은 당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있는 추미애가 아닌 우원식 당선자를 택했습니다. 22대 국회가 출발도 안 했는데 이쯤이면 21대와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국민이 많습니다. 나라는 망조로 가고, 국민들의 삶은 거덜 나는데, 지들 잇속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죠.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신 돈, 권력과 소통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저는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며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언어의 소통뿐 아니라 삶의 소통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해방을 말뿐만 아닌 삶으로 이웃들과 나누어야 하는 것이죠.
어제는 1980년 5.18민중항쟁 44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1,300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12.12 군사쿠데타의 진실을 보았습니다. 쿠데타의 수괴 전두환은 이듬해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우고자 광주사태를 기획하였고,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광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10일간의 항쟁기간 동안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살인마 전두환은 끝내 사과 한번 하지 않고 버티다 죽었죠. 아마 지옥불에 같혀 울부짖고 있을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 중에는 광주민중항쟁을 폄하하며, 북한군 개입 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이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육사에서 철거하려 하고, 일본을 옹호하며, 반공을 내세우며 전쟁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안위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영달만 추구하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국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합니다. 오로지 미국과 일본만 처다보고 있을 뿐이죠. 마치 예수시대의 사두개와 바리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뒤 예수처럼 진리의 길을 향해 담대히 걸어갔습니다. 이런 이들이 있어서 예수 정신과 가르침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 될 수 있었습니다.
불의한 세상을 거부하고 세상 만물과의 소통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능력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