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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10. 11. 27(토) 23:00~11. 28(일)
□ 곳 : 소백산 이어걷기[고치령(해발 760m)~마당치~늦은맥이재(해발 1272m)~상월봉(1394m)~·
국망봉(國望峰, 1420.8m)~비로봉(1439.5m)~제1연화봉(1394m)~연화봉(1383m)~죽령(해발 696m)]
(북쪽→남쪽, 남진)
□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이어걷기 9기-20구간
□ 걷는 데 걸린 시간 : 02:55~12:30(고치령~죽령)⇒9시간 35분
(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길 안내판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거리
○ 고치령--11.1km--국망봉--3.1km--비로봉--11.3km--죽령(총 25.4~25.7km)
※ 0.3km 쯤 차이(길 안내판이 들쭉날쭉함)
△ 고치령--2.8km--마당치--8.3km--국망봉--3.1km--비로봉--2.5km--
제1연화봉--1.8km--연화봉--2.7km--제2연화봉--4.2km--죽령
※ 고치령--11.1km--국망봉--3.1km--비로봉--11.5km--죽령
※ 국망봉--5.6km--제1연화봉
※ 국망봉--14.4km--죽령
※ 비로봉--4.3km--연화봉--7.0~7.2km--죽령(연화봉~죽령 사이 0.2km 차이)
※ 비로봉--11.4km--죽령(비로봉~죽령 사이 11.2~11.5km 표기한 것 있음, 0.3km 차이)
※ 연화봉--7.0km--죽령(연화봉~죽령 사이 6.9km 표기한 것도 있음 0.1km 차이)
※ 제2연화봉--7.0km--죽령주차장
□ 간추린 일정(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55 고치령(해발 760m) 나섬
○ 03:39 해발 1032m 지점, 형제봉 갈림길
○ 03:55 마당치
○ 05:09 해발 1015m 지점, 연화동 갈림길
○ 05:25 신선봉, 구인사 갈림길
○ 05:34 늦은맥이재(1272m)
○ 07:04 상월봉(1394m) 바로 오른쪽[북서쪽] 5~7m쯤 아래
○ 07:25 국망봉(國望峰, 1420.8m)
○ 07:30 초암사 갈림길
○ 08:07 아침밥
○ 08:34 아침밥 먹고 나섬
○ 09:04 비로봉(毘盧峯, 1439.5m)
○ 09:15 천동리 갈림길(해발 1385m)
○ 10:00 제1연화봉(1384m)
○ 10:41 연화봉(1383m)
○ 11:31 제2연화봉 아래, 푯돌
○ 11:32 제2연화봉. 중계 시설 갈림길
○ 11:38 해발 1200m 지점
○ 11:53 해발 1040m 지점
○ 12:00 해발 980m 지점
○ 12:08-40 해발 910m 지점
○ 12:13 해발 880m 지점
○ 12:20-20 해발 780m 지점
○ 12:27-30 죽령 탐방지원 센터
○ 12:28-30 죽령 휴게소, 아스팔트 2차선 길
○ 12:30 죽령(해발 696m)
고치령 산령각
고치령
고치령
고치령 푯돌
고치령
고치령 푯말
고치령 나서 마당재[마당치] 가는 길
마당재[마당치]
마당재[마당치]에서 늦은맥이재 가는 길
국망봉
국망봉
초암사 갈림길(국망봉 지나 비로봉 가는 길)
국망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비로봉이 얼마 안 남았다)
비로봉 코 앞
비로봉
비로봉
비로봉
비로봉 푯돌(뒷면)
비로봉 푯돌
비로봉에서(뒤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은 태백산인 것 같은데...?)
비로봉에서 바라본 제1연화봉(가운데), 연화봉(왼쪽), 제2연화봉(뒤쪽 시설 2개 보이는 곳)
비로봉에서 바라본 제1연화봉(가운데), 연화봉(왼쪽), 제2연화봉(뒤쪽 시설 2개 보이는 곳)
도솔봉(뒤쪽 가운데)과 삼형제봉(도솔봉 오른쪽)
비로봉에서 바라 본 제1연화봉 쪽으로 가는 산등성(이)
천동리 갈림길
천동리 갈림길
천동리 갈림길
천동리 갈림길
천동리 갈림길
눈을 이고 있는 조릿대 밭(천동리 갈림길에서 제1연화봉 쪽으로 가는 길)
천동리 갈림길에서 제1연화봉 쪽으로 가는 길
천동리 갈림길에서 제1연화봉 쪽으로 가는 길
천동리 갈림길에서 제1연화봉 쪽으로 가는 길
천동리 갈림길에서 제1연화봉 쪽으로 가는 길
제1연화봉 푯말(봉우리는 푯말 뒤에 있다)
제1연화봉 푯말 있는 곳
제1연화봉을 나서 연화봉쪽으로 가면서 본 연화봉과 소백산 천문대(연화봉 오른쪽)
소백산 천문대(왼쪽)와 제2연화봉(가운데, 새 시설물을 짓고 있었다) - 제1연화봉을 나서 연화봉 쪽으로 가면서
연화봉, 소백산 천문대, 제2연화봉(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화봉(오른쪽) - 제1연화봉 아래에서
제1연화봉 아래에서 경북 영주시 쪽 마을을 내려다 보며
연하봉 쪽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비로봉
연하봉 쪽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비로봉
제1연화봉에서 연화봉 쪽으로 가는 길
소백산 천문대로 바로 가는 길(오른쪽)과 연화봉으로 가는 쪽(왼쪽) 갈림길
연화봉 아래
연화봉(왼쪽)과 소백산 천문대 바로 가는 쪽(오른쪽) 갈림길
연화봉 갈림길
연화봉 바로 아래에서 뒤돌아 본 제1연화봉(왼쪽)과 비로봉(오른쪽)
연화봉 바로 아래
연화봉 바로 아래
연화봉
연화봉에서 뒤돌아 본 제1연화봉(왼쪽)과 비로봉(오른쪽)
연화봉에서 뒤돌아 본 비로봉(왼쪽)
연화봉
연화봉
연화봉
연화봉
연화봉에서 바라본 제2연화봉(건축 중인 시설물까지 뚜렷이 보인다)과 소백산 천문대(오른쪽)
연하봉에서 본 소백산 천문대
연하봉에서 본 도솔봉과 삼형제봉(도솔봉 오른쪽)
제2연화봉(오른쪽)
연화봉에서 바라본 제2연화봉
연화봉에서 뒤돌아 본 제1연화봉(왼쪽)과 비로봉(오른쪽)
연화봉 아래에서 뒤돌아 본 제1연화봉
소백산 천문대 조금 위
소백산 천문대 조금 위
소백산 천문대 조금 위
소백산 천문대 관리 건물(천문대 조금 위)
소백산 천문대
소백산 천문대
소백산 천문대에서 바라본 제2연화봉
소백산 천문대 조금 아래
제2연화봉 푯말 조금 못 가서
제2연화봉 아래 푯돌
제2연화봉 쪽으로 가는 갈림길(중계 시설이 있어 갈 수 없다)
(오른쪽 시멘트 길이 연화봉과 통신 중계 시설로 가는 길이다)
제2연화봉 쪽으로 가는 갈림길(중계 시설이 있어 갈 수 없다)
(오른쪽 시멘트 길이 연화봉과 통신 중계 시설로 가는 길이다)
연화봉 갈림길에서 죽령으로 가는 길
연화봉 갈림길에서 죽령으로 가는 길
연화봉 갈림길에서 죽령으로 가는 길
연화봉 갈림길에서 죽령으로 가는 길
연화봉 갈림길에서 죽령으로 가는 길
연화봉 갈림길에서 죽령으로 가는 길
죽령 탐방지원 센터
죽령 탐방지원 센터
죽령 탐방지원 센터
죽령 찻길 옆 등산로 들머리
죽령 찻길 옆 등산로 들머리
죽령 찻길 옆 등산로 들머리
죽령 찻길 옆 등산로 들머리
죽령휴게소 옆
죽령
죽령
죽령(충청북도 쪽)
죽령
□ 줄거리- 산꼬대(했다)(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산꼬대 : 밤중에 산 위에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워짐. 또는 그런 현상.
※ 산꼬대-하다 : 밤중에 산 위에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워지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교만하기 쉽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자연의 도전은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자연의 힘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얕잡아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데, 일상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상대로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이룬 작은 성취에 도취되어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깊이 생각지도 않고 살아간다.
이번 산행에서 나도 그랬지만, 몇몇 대원들도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나 철저한 대비를 갖추지 못하고 산행에 나섰다가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자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이번 산행 구간 내내 세찬 바람이 불었는데, “산꼬대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말이다.
고치령에서부터 연화봉까지 구간 바람이 강력했다. 특히 국망봉을 지나 비로봉 오르는 길, 그 가운데서도 비로봉 300m쯤 앞에서 비로봉에 오르는 구간에서는 몸을 가누기 힘들만큼 태풍에 버금가는 오히려 태풍을 능가하는 바람이 불었다.
권투에서 약한 주먹도 계속 맞다보면 나중에 힘없이 쓰러지는 것처럼 보통 바람이라도 계속 맞으면 몸 온도[체온]가 내려가고 차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태풍에 버금가는 바람을 5~6시간(출발부터 해 뜰 때까지) 맞았으니 자연에 견주어 연약한 사람이란 존재가 받을 차가움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산행에서 위험한 상황인 저체온증은 이런 상태에서 오기 쉬울 것이다.
2010. 11. 27(토) 기상청 일기 예보를 들으니 “토요일(11/27) 강릉 따위 영동 지방에 5cm쯤 눈이 오고, 중부 지방에 1cm쯤 눈이 오는 곳이 있을 것이고, 일요일(11/28) 아침 기온은 서울 1℃, 낮 8℃쯤(?)“이라는 요지로 발표하여, 사갈[아이젠] 따위 겨울 장비를 다 챙겼으나, 눈이 안 오거나 와도 아주 적은 양일 것으로 생각하고, 발싸개[각반, 스패츠]는 준비하지 않았다.
좌석리에 내리니 눈이 조금 있었고, 고치령 올라가는 길에도 눈이 제법 있었고, 고치령을 나서 산행을 시작했을 때는 눈이 2cm 이하 쯤으로 생각하고 안심을 했는데, 갈수록 눈이 조금씩 많이 쌓여 있더니, 마당재[마당치]를 넘어서서는 10cm쯤 눈이 있는 것 같더니 더 갈수록 서쪽에서 부는 세찬 바람으로 눈이 산등성(이)에 밀려 어떤 곳은 무릎 가까이 쯤 쌓인 곳도 있었다.
발싸개[각반, 스패츠]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해도 때는 늦었고, 하필 좀 두꺼운 바지를 입고 갔는데, 바지 가랑이 끝이 등산화를 충분히 덮지 않을 정도로 약간 짧게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등산화 발목 위쪽으로 눈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걱정이 되었고, 길을 걸을수록 눈이 자꾸만 신발 위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심상치 않았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소백산 칼바람에 기온과 몸 온도[체온]는 자꾸만 내려가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등 가방[배낭]에 예비 양말도 넣지 않았으니 꼼짝없이 걷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산행에 나서면서 소백산 칼바람에 대비하느라, 나름대로는 낮에 걸을 때 더우면 재킷과 조끼를 벗더라도 찬 바람에 팔이 시릴지도 모르므로 사 놓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얇은 윗 내의도 입고 바지도 두툼한 것으로 입었다.
좌석리에서 짐차를 타므로 전에 경험에 비추어 짐차를 타고 가면 매우 추우므로 조끼와 재킷을 그대로 입고 나섰다. 걷다가 땀이 나면 재킷과 조끼를 벗을 생각이었는데, 걸어도 땀이 나지 않아 재킷과 조끼를 그대로 입고 걸었고, 걷다 보니 세찬 바람에 팔이 시려 내피까지 껴입고, 손이 시려 재킷 지퍼를 채울 수 없어 그냥 걸었는데, 팔이 시린 것은 겨우 면하였고, 재킷 지퍼를 안 올려도 추위를 느끼지는 않았다.
고치령을 나설 때부터 얼굴 가리개를 하고 귀마개 모자와 재킷에 달린 모자를 썼는데도, 볼이 차가웠다.
등 가방(배낭)에 눈만 빼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건[두건, 바라크라바]과 두터운 귀마개 모자도 있었는데, 추운 날씨에 꺼내기도 귀찮아 계속 가는데, 얼굴이 점점 차가와져서 국망봉 지나서는 결국 두꺼운 귀마개 모자와 건[두건, 바라크라바]을 꺼내 얼굴과 귀를 단단히 가렸더니 한결 추위를 덜 수 있었다.
겨울 날씨에 특히 추위가 심할 때는 이처럼 추위에 노출되기 전에 미리미리 장비를 갖추어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게으름 탓(?)으로 실행을 잘 안 하여 이번에도 게으름을 피우다가 추위에 된통 당했다.
대원들 몇몇은 고치령을 나선지 얼마 안 되어 되돌아 내려갔고, 연화동 쪽으로 몇 명, 국망봉 지나 초암사 쪽으로도 몇 명 등 모두 열댓 명 쯤 중간에서 산을 내려갔다고 하는데, 흔히 말하듯이 “산은 그곳에 있으므로 다음에 가면 된다”는 말대로 이번에 안 가도 소백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므로 무리하지 않고 도중에 내려간 것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현명한 판단으로 끝까지 걸어야 하나, 중간에 내려가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다가 과감한 결정을 내린 대원들의 올바른 선택이 참으로 훌륭한 선택이었다.
마음이 조금 아쉬웠겠지만, 기상 조건이 좀 좋을 때 다음 기회에 가면 될 것이다.
아마 그 대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날씨 변덕이 심한 겨울 산행, 그 가운데서도 칼바람으로 악명 높은 소백산 이어걷기에 나서면서 충분한 겨울 장비를 세심하게 꾸려오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앞으로 기온이 더 내려갈 날이 많을 대간 길 이어걷기에 보온, 안전 장비를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온도계가 없어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해뜨기 전 기준으로 소백산 일대 기온은 영하 10도 이하쯤, 세찬 칼바람 눈바람으로 체감 기온은 영하 15도 이하 어쩌면 영하 20도쯤까지 내려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몇 번째 하는 소백산 종주지만 한 번인가 빼놓고는 늘 그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하여 둘레[주위]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고, 악천후에 고생 아닌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둘레[주위]는 잘 볼 수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한가하게 구경을 즐기고 있을 계제는 아니었고, 극한 상황에서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으로, 세상일이란 것이 모두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이번에도 새삼 느꼈다.
이번 산행에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쌓인 눈이 우리 앞에 밟고 지나간 사람이 없었고, 며칠 전 다른 사람들이 밟은 뒤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 매끌매끌한 얼음으로 변하지는 않아 미끄럽지 않아 사갈[아이젠] 없이도 불편을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점이다. 만약 얼음으로 변한 길이었다면 사갈[아이젠]을 준비해 가지 않은 대원들이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2010. 11. 28(일) 02:06쯤 우리를 태운 버스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닿은 뒤 길 떠날 준비를 하고 02:38 짐차[트럭]를 타고 고치령 쪽으로 향한다.
1톤 짐차는 스무 명을 태우고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에 눈이 내려 차가 오르내리면서 눈이 다져지면서 얼음으로 변한 눈길, 얼음길을 가쁜 숨을 토해내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올라간다.
이번 산행은 눈과 얼음으로 꽤 고생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10분쯤 오르다 쉬면서 우리를 내려놓고(02:46?) 남은 사람들을 실으러 가고, 우리는 고치령을 향해 200m쯤을 걸어 고치령(해발 760m)에 닿았다.(02:51-30)
고치령에는 고치령산령각(古峙嶺山靈閣)이 있고, 고치령 남쪽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북쪽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가 있고, 고치령에서 북쪽 마락리 쪽으로 30m쯤 가면 샘이 있다고 하는데, 고치령에 10번 쯤 갔는데 2번인가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이른 새벽에 갔고, 죽령에서 고치령으로는 두어 번 갔는데,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 샘을 확인해 볼 생각을 않고 그냥 지나쳐 아쉽는데, 다음 언제 죽령~고치령으로 걸을 기회가 있다면 꼭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고치령에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경계는 다음에 가게 될 백두대간 고치령~선달산~(도래기재) 구간으로 바로 갈리지 않고, 고치령에서 1.9km쯤 서쪽으로 가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 헬기장에서 북쪽 약 2.5km쯤에 있는 형제봉을 거쳐 형제봉에서 거의 동동동북쪽으로 980.5봉을 거쳐 어래산(1063m) 좀 못 미쳐서 충북과 경북이 갈라지는 곳이 끝나고, 어래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는 강원도와 경북이 갈라진다.
강원과 경북 갈림길은 선달산(1236m, 고치령~도래기재 구간)으로 이어지고 다시 박달령~옥돌산(도래기재~화방재 구간)~부쇠봉(도래기재~화방재 구간)으로, 부쇠봉에서 문수봉~연화봉~삼방산으로 삼방산에서 면산(낙동정맥 구간)~응봉산(999m)을 거쳐 동해로 이어진다.
고치령에서 사진도 찍고 다시 한 번 길 떠날 채비를 한 뒤 왼쪽[서쪽]으로 국망봉, 비로봉 쪽으로 고치령을 나섰다.(02:55)
고치령에서 국망봉 쪽으로 나서면 구조 표시 번호가 소백10-03~소백10-01로 이어지고, 고치령을 나서 44분쯤 가면 형제봉 갈림길인 해발 1032m 지점인 헬기장에 닿는데(03:39), 여기서 북쪽으로 2.5km쯤 가면 형제봉으로 갈 수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도 경계는 죽령~연화봉~비로봉~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고개~마당치를 거쳐 이곳에서 형제봉을 거쳐 980.5봉을 거쳐 백두대간 길에서 북쪽으로 한참 멀어졌다가 선달산(1236m)에서 다시 백두대간 길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1032m 지점을 지나고 나서 그 뒤로는 구조 표시 번호는 소백01-40~소백01-08로 이어진다.
헝제봉 갈림길에서 15분쯤 가면 마당치에 닿고(03:55), 마당치에서 7분쯤 가면 헬기장에 닿고(05:02), 여기서 5분쯤 장비들을 다시 꾸리고, 간식도 먹는 등 잠깐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서(05:07-30), 1분쯤 가면 해발 1015m 지점인 연화동 갈림길에 닿고(05:09), 여기서 몇 사람이 산을 내려갔다고 한다.
연화동 갈림길에서 16분쯤 가면 신선봉과 구인사 갈림길에 닿고(05:23), 이곳에서 오른쪽[북서쪽]으로 가면 바둑판바위, 신선봉(1389m), 먼봉(1361.7m), 1244봉을 거쳐 구인사로 내려 갈 수 있다.
신선봉 갈림길에서 9분쯤 가면 늦은맥이재(해발 1272m)에 닿고(05:30), 늦은맥이재에서 26~30분쯤 가면 상월봉 바로 아래에 닿고(07:03), 여기서 상월봉으로 바로 오를 수 있는데, 어떤 때는 밧줄이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밧줄이 없기도 하던데, 밧줄이 없을 때는 오르내릴 때 조심해야 한다. 상월봉을 바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매우 추워 상월봉에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상월봉 바로 오른쪽[북쪽]을 둘러(07:04) 조금 가면 평평한 곳에 작은 바위가 있는 곳이 나오는데(07:06), 여기서 더러는 사갈[아이젠]을 신기도 했다.(07:09)
이곳 작은 바위에서 15~16분쯤 가면 국망봉(1420.8m)에 닿는데(07:25), 국망봉 푯말에는 국망봉은(國望峰)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상북도와의 도경(道境)을 이루며, “신라 마지막 56대 경순왕이 나라를 왕건(王建)에게 빼앗기고 천년 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을 찾아 제원군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저(東京邸)라는 궁을
짓고 머물러 있었다.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곳 국망봉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는 연유로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단양군지와 호서읍지에 적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명조 1년 배순이라는 사람이 순흥배검에 와서 대장간을 차려놓고 좋은 철 물건을 만들어서 양심적으로 수요자에게 공급하였다. 특히 행실이 차가고 어버이에게 효와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지극하여 퇴계선생께서 불러 “과연 들은바와 같다” 하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 후 퇴계선생이 돌아가심에 철물로 상을 만들어 놓고 3년 복을 입었으며 선조대왕이 승하하시자 매월삭망(每月朔望)에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을 들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성을 향해 곡제사(哭祭祀)를 3년 동안 지냈다. 그 슬픈 소리가 궁 안에까지 들리어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리게 되었다고 하며 당시 그가 음식을 들고 올라 궁성을 바라보며 곡(哭)을 했다는 산을 국망봉이라 한다.“고 풍기읍지에 적혀 있다고 한다.
“기타 고려 공민왕 때 이의(李議)가 선왕을 경조하는 4배를 올렸다고 하여 그 산 정상을 국망봉이라 불렀다고 한다.“고 적어 놓았다.
※ 정려(旌閭)를 정여(旌閭)로 잘못 표기
※ 정려(旌閭) :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국망봉에서 3~4분쯤 가면 초암사 갈림길에 닿고(07:30), 초암사 갈림길에서 35분쯤 가서 비로봉을 1.5km쯤 앞둔 지점에 돌 산등성(이) 아래 세찬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앞서 간 사람 10명쯤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산이조아(조배연) 님이 엉거주춤 서서 밥을 먹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나도 너무 추워 밥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아 초콜릿과 과일만 먹으려고 생각하다가 추운 날씨에 먼 길을 가야 하므로 배까지 고프면 안 되겠다 싶어 귀찮았지만 밥을 먹었다.(08:07)
밥 먹기 전 신발을 벗어 보니 양말에 얼음이 끼어있었는데, 등산화 위쪽으로 들어간 눈이 얼음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양말에 붙어 있던 얼음을 털어내고 예비 양말이 없었으므로 젖은 양말 그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손은 물론 발까지 얼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다.
아침밥을 먹고 길을 나서니(08:34),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고, 25~30분쯤 가면 비로봉(毘盧峯, 1439.5m)에 닿았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앞서 간 사람들 누구도 그곳에서 둘레[주위] 구경을 하거나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 혼자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비로봉을 나서(09:07) 나무 계단을 거쳐 조금 가면 |/ 갈림길인데, 오른쪽으로 가면 주목 관리 시설이 있는데 바람을 피할 수 있어 그곳에서 밥을 먹었으면 추위에 덜 떨고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산등성(이)을 따라 바로 갔고, 비로봉에서 7~8분쯤 가면 천동리 갈림길(해발 1385m)에 닿고, 여기서 40~45분쯤 가면 제1연화봉(1394m) 푯말이 있는 곳에 닿는데(10:00), 제1연화봉은 이 길 안내판 뒤로 보이는 자그맣게 보이는 봉우리로 10m쯤 떨어져 있는데, 소백산 이어걷기 때마다 갔으나, 이번에는 날씨가 추워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왔다.
제1연화봉에서 30~35분쯤 가면 Y 연화봉 갈림길인데(10:35) 여기서 연화봉은 왼쪽으로 오른다. 갈림길에서 4~5분쯤 가면 연화봉(1383m)에 닿고(10:41), 연화봉에서 4~5분쯤이면 소백산 천문대에 닿고(10:48?), 소백산 천문대는 요즘 개방해 놓아 누구도 들어갈 수 있다.
시간이 없어 천문대 마당을 거쳐 그냥 지나쳤다.
소백산 천문대에서 20분쯤 가면 제2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 산등성(이)인데(11:09), 대간 길은 바로 나아가야 하는데, 시설이 있는 곳이라 바로 오르지 못하고, 오른쪽 산길[임도]를 따라 갔다.
여기서 20~22분쯤 가면 커다란 「제2연화봉」푯돌이 있는 곳에 닿고(11:31), 바로 옆에 중계 시설로 오르는 갈림길(해발 1270m)이고(11:32), 제2연화봉과 중계 시설은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 하고, (11:09) 지점에서 산등성(이)을 타고 올랐다면 제2연화봉을 거쳐 이곳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1시간쯤 가면 죽령 탐방지원센터에 닿고(12:27-30), 여기서 2분쯤이면 죽령휴게소를 거쳐 죽령(해발 696m)에 닿는다.(12:30)
죽령은 동쪽으로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서쪽으로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5번 국도인데, 이 길 아래로 중부고속도로 죽령터널이 뚫리면서 통행량이 아주 적어졌다.
이곳 죽령에서 이번 산행을 마친다.
□ 주요 시간대 별 이동 구간 따위(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저의 블로그 참조
△ 다음(daum) 블로그에서 angol-jong 또는
△ http://blog.daum.net/angol-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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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선생님의 후기를 봐야지 마무리가 되는듯합니다
ㅋㅋ~(중독성)
추워서 그냥 지나친 (연화봉)정상까지 편안히 앉아
염치없이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참고서를 보듯이 꼼꼼히 잘 보았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꼼꼼하게 빠짐없이 정리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히 머물다갑니다
수고 많이 많이 하셨습니다(꾸~뻑)
11월은 아직 가을인데 한 겨울 추위를 겪었는데, 이제 12월 지금부터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다들 세찬 바람과 추위에 몸이 움츠러 들었을 텐데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싱싱한 모습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앞에는 소백산 칼바람 못지 않은 눈더미와 그보다 더한 매서운 추위,
험한 바위 구간도 있지만 9기 대원들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거뜬히 넘을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 두툼한 장갑 벗기가 싫어 그냥 지나친 곳이 많은데,
복받..님은 대원들 생기 발랄한 모습 이모저모를 꼼꼼히 사진에 담아
마치 활동 사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추운데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소백구간의 칼바람.....잘읽고갑니다 선녀예요
함께 갔으면 좋았으련만...,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 드니까 따뜻하고 안전한 장비 잘 챙겨 산행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숱한 날들이 지났지만 태백산, 덕유산, 주흘산 눈 많고 추웠던 기억이 새로운데,
금남정맥. 호남정맥 구간 눈이 많은 구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지난번 추위에 넘 고생을 해서 오늘 등산매장 가서 겨울 준비를 좀 더 하고 왔읍니다..지나온 사진을 돌아보며 그날의 세찬 바람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소백산 칼바람 많이 들었고 몇 번 경험해봤지만, 태풍에 버금가는 세찬 바람이었습니다.
강원도 구간 대간 길이 동고서저형이어서 다른 구간도 길게 뻗은 산자락을 타고 오는 바람이 매섭습니다.
준비를 단단히 하여 손해보는 일은 없을 터이니 우리 대원 모두 혹독한 겨울 추위에 대비를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