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우리 집 애물단지 딸내미가 네 살쯤 되었을 때였으니 44여 년 전 얘기랍니다.
똘방똘방한 딸내미를 문경 가은 고향동네에 살고 계시는 어른들께 데려다주고, 어눌해 빠진 여섯 살짜리 아들 녀석을 데리고 오려고 딸아이 손을 잡고 점촌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는 잘도 달렸지요. 버스는 장수를 지나고 감천을 지나 예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사전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길을 나섰기에 아이에게 과자 한 개 못 사 먹인 것이 맘에 걸렸습니다. 딸아이를 쳐다보며 얘길 했습니다.
"선아야, 아빠가 과자 사 올게 꼼짝 말고 여기 앉아서 기다리거래이!"
딸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정류장 문을 나가면 곧바로 매점은 있었답니다. 과자를 사가지고 불이 나게 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지요. 근데 버스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기사 아저씨께 부탁 안 하고 다녀온 게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사 아저씨도 잘못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00분 후에 출발합니다. 용변을 보시거나 기타 용무가 있으신 손님께서는 시간 늦지 않게 다녀오십시오." 라는 안내방송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아이가 없어졌으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한달음에 2층 버스역 사무실로 뛰어올라갔습니다. 그리곤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네 살배기 똘방똘방한 딸아이가 버스에 혼자 타고 있으니 점촌역에서 보호 좀 하게 해달라고요. 사정을 들은 사무소 직원은 점촌 사무실로 연락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천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점촌까지 달려갔습니다. 고향마을에 다녀올 여비를 택시요금으로 거의 날렸습니다.
있었습니다. 버스정류장 2층, 경북여객 사무실 한편엔 빨간 원피스를 입은 똘방똘방한 우리 집 딸아이가 직원이 마련해 준듯한 커다란 의자에 동그마니 앉아서 과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과자 먹는데 정신이 팔렸겠지요. 딸아인 아빠가 들어섰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답니다. "아이고, 요것아!" 딸아이를 품에 꼭 안고 뺨을 비벼댔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를 보호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자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경리 여직원이 생긋 웃으며 손을 날름 내밀었습니다.
"아저씨, 과자값!"
난감했습니다. 예천에서 점촌까지 택시비로 많은 돈을 지불했는지라 주머니엔 가은까지 갈 여비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사례를 할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해서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사정을 듣고 난 여직원은 아까처럼 생긋 웃으며 "다음에 들리시면 이자까지 붙여주셔야 돼요."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여직원의 가슴에는 '김경숙'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습니다.
김경숙! 나는 그 여직원의 이름 석 자를 나이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을 수가 없으니까요.
집사람이 일하는 시니어 일터에 김경숙 씨라는 담당자가 있다기에 44여 년 전의 그 여직원이 생각나서 몇 줄의 글로 엮어봤습니다.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떠 올리며 빙그레 웃어봅니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가슴이 찡 합니다.
응원의 댓글 감사합니다. 그때의 딸아이가 마흔여덟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계실, 점촌 경북여객 사무실에 근무하셨던 김경숙 님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김경숙님, 진정 고맙습니다.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니어클럽에서 주관하는 노인일자리에서 2여 년 일한 문경아재 김동한 소설가입니다.
시니어클럽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