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나는 당신 남편의 친구 홍00입니다.
천상에 오른 다음 하늘나라 생활도 궁금하고
당신 아들과 신랑 얘기도 들려주려고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아이디는 0000000이고요
비밀번호는 000000000라는 것
알고 계시지요? 시간 날 때 천천히 열어 보세요.
길 떠나신 지도 한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곳은 봄이 지나고 이제 여름으로 접어듭니다.
하느님의 나라 안에 계시니 안부는 여쭐 필요 없겠지요?
당신 떠난 빈자리에서 허락도 없이 당신 신랑과 함께
두 번이나 잠을 잤어요. 그래서 나는 간 큰 남자입니다.
집 안 구석구석이 아직도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두 남자들은
당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그런대로 지내고 있습니다.
열흘 전에 당신 아들과 마주 앉아
메추리알을 까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지요.
몸만큼이나 훌쩍 자란 속마음을 보고는
이제는 됐다 싶었습니다. 듬직하데요.
엄마 생각나서 울었니? / 아니요, 그날 다 울었어요.
생각나면 엉엉 울어라, 누구 눈치 보지 말고. / 네.
사내가 너무 자주 울어도 그렇고, 엄마도 원치 않겠지? / 그럼요.
당신의 작은 남자는 초등학생이라도 이미 아이가 아니었답니다.
큰 남자는요. 하늘로 오르시면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결식장에서는 목이 메어 유족인사도 제대로 못 하더니
홍성 추모공원에서는 관을 부여잡고 꺼억꺼억 울더군요.
사랑하는 아내 지켜주지 못한 자책은 한으로 남을 겁니다.
당신 떠나기 보름 전쯤에 내가 병실 찾은 것 기억하나요?
영혼이 육신을 벗고 나오는 그 고통의 와중에도
온화한 미소를 보내던 모습에 나는 명치끝이 시립디다.
말없이 눈으로 인사했지만 당신 손을 잡아 주고 싶었었습니다.
그날 복도에서 당신 남편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괴롭다.”
당신과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그 힘들었던 과정을 저도 압니다.
일찍 올 이별을 알면서도 당신 남편은 당신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면서 얼마나 힘드셨나요?
손길이 더 필요한 아들 두고 그렇게 떠나야 하는 당신,
천상에서 다시 만날 잠시의 작별이라 하더라도
두 남자를 돌아보느라 발걸음이 떨어졌겠습니까.
당신들 사랑은 참으로 슬프고 아름다운 순애보입니다.
그렇게 훌쩍 떠나신 후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생깁디다.
당신의 큰 남자 주변을 맴돌며 유심히 살펴보았지요.
그 길을 따라가고 싶은 엉뚱한 생각이 왜 안 들었겠습니까.
깊은 밤 당신이 사무쳐도
혹시나 아들이 들을까 봐
마음껏 울지도 못하고 베갯잇만 적시는,
말하지는 않았어도 나는 압니다.
그러면서도 이 남자는
언제라도 당신을 맞을 수 있도록
손길 그대로 무엇 하나 바꾸어 놓지 않고
당신을 만나러 새벽마다 교회로 달려가더군요.
엊그제는 당신 남편과 술 한잔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당신 남편 손잡고
어쩌다가 자네가 이 지경이 됐냐고 펑펑 울었습니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당신의 자리였던 그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당신 신랑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네요.
집을 나설 때까지 두 시간 동안 내내 웃었습니다.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당신과 함께 그렇게 신랑이 되고 신부가 되어
아름답고 참된 사랑, 소중한 정을 나누면서 살았던 것을.
곱디고운 그 손으로 남편 출근길 넥타이 매어주고,
궂은일 도맡아 하는 그 애틋한 마음으로 살면서,
알뜰하고 살뜰해서 빈구석 없는 살림에 나는 감탄했지요.
당신들의 사랑은 몇 백 편의 동화가 담긴 열두 폭 수채화입니다.
당신 신랑 이제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슬픔도 웬만큼 수습했고 아들과 살려고 영어학원도 열었습니다.
능력남에 부족한 것 없고 모난 데 없으니 걸릴게 뭐 있겠습니까?
△△암도 치료 마치고 안정기에 접어들어 관리만 잘하면 되고요.
돌이켜봅시다, 식장 사회를 보았던 나.
“신랑에 이어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당신은
면사포보다 더 화사한 순백이었습니다.
부천이던가요? 신혼집이었던 곳이.
창원에 있을 때는 ○○이도 태어나서 졸졸 따라다녔고.
10년 전엔 시아버지 회갑이라고 스리랑카에서 먼 길 오셨잖아요.
그러고는 건강이 안 좋다고 시부모님이 말려서 출국하지 못했지요?
저는요, 당신의 경상도 사투리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부천에서 받았던 저녁상도 아직 기억하고 있구요.
창원에서 아침에 먹었던 그 사골국 맛은 못 잊을 겁니다.
투석하면서도 내게 생선 자반 구워준 것은 3년 전 여름이던가요?
해로(偕老) 못하고 당신 서둘러 가신 거야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둘 사이에 찾아온 이별은 인연의 끝이 아니고
세상 바꾸어 다시 만나 살아갈 땅에 한 사람 먼저 가서
함께할 집 짓고 정원 가꾸며 기다리는 것임을 나는 압니다.
하○○!
당신은요,
다정한 엄마요 사랑스런 아내로
그들의 유일한 아이디이며 영원한 비밀번호입니다.
두 남자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 가슴속에서 함께하고 있으니
당신은 그렇게 떠났어도 이렇게 남아 있는 겁니다.
이제 이곳 걱정은 그만 접으시고
천상의 평화를 마음껏 누리소서. 이만 줄입니다.
(20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