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충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위 말씀에서 베드로가 회개하게 된 것은 자기가 겪은 충격에 진실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충격을 주신다.
이는 마치 심정지한 중환자를 살리려고 의사가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과 같다.
그 충격에 반응을 하면 살아나는 것이고, 끝까지 반응이 없으면 죽는 것이다.
베드로는 다행히 하나님의 영적인 충격에 반응하여 회개함으로 그 영이 살아날 수 있었다.
이처럼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충격을 피하거나, 그 충격에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많은 충격들을 겪었고, 그 충격들에 대부분 잘 반응했기에 구원 받고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충격은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서 만난 내 또래의 아이들은 폭력, 욕, 불순종, 이기적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조용하라면 조용하고, 앞을 보라면 앞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재미로 반항하는 것처럼 보였고, 선생님 말대로 하는 나를 비웃었다.
어린 시절의 이런 충격들은 곧 나에게 두 번째 충격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렇게 악하고
자기 위주의 사람들과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알게 된 세상은 나같이 연약하고 원칙대로 하는 사람은 살 수 없는 곳이 분명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때 이른 삶의 허무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기보다 약하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가 않았다.
다행히, 나의 이런 충격은 나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나는 10살 경부터 이미 신을 찾고 있었다.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서 이런 세상에 살게 한 신이 계시다면 나를 만나서 나를 도와달라는 마음으로
날마다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느껴지는’ 신에게 기도했다.
결국, 나는 이런 류의 충격들이 연속되면서 잘 반응했기에 그토록 찾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인생 문제에 대한 충격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장래 희망이나 꿈도 없이 그저 취미로 만화를 그리며 막연하게나마 만화가가 될까 했던 나에게 우연히 듣게 된 아버지의
음악 테이프 하나는 나에게 엄청난 예술적 충격을 주었다.
그 음악은 프랑스의 편곡, 지휘자 폴 모리아(Paul Mauriat)의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음악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그 때까지 좋다고 생각하며 들어오던 다른 영화 음악이나 클래식, 그리고
만화 삽입곡들은 음악으로 치지도 않게 될 정도였다.
이 때 받은 음악적 충격이 너무나 커서 나에겐 작곡가의 꿈이 생길 정도였으며, 가난했던 집안 형편으로 인해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심지어는 학교생활에 꼭 필요한 학용품, 그리고 피아노를 배울 기회도 다 포기하고 절제했지만,
폴 모리아의 음반을 사는 것이나 내한공연에 가려는 시도(당시에는 당연히 갈 수 없었지만)는 절제하지 않았다.
그 다음 엄청난 충격은 성경 말씀이었다,
교회는 어머니를 따라 어떻게 다니게 되었지만, 뭔가 잘 모르던 중3 때 여름 수련회에 가서 혼자서 이사야서를 읽다가
순식간에 받는 충격은 바로 ‘성경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도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성경통독을 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 되었다.
그 다음 충격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왜 울고불고 회개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굳이 예수께서 왜 죄인을
위해 죽으셔야 하는지, 또한 성경의 인물들이 어떻게 그렇게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주님을 위해 살게 확 변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죄인인 것, 그것도 엄청난 죄인인 것과 수천 년 전의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
어떻게 오늘 이 시간 나의 죄 문제에 역사하는지가 갑자기 확 깨달아지면서 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진정한 회개와 거듭 남이 있은 후 나는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리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다.
이것 또한 놀라운 충격이었는데, 성령을 받을 때의 느낌은 마치 방대한 우주의 모든 것이 내 작은 몸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나는 ‘찬양’의 충격을 받았다.
찬양의 능력과 가치를 제대로 알고나니 그때까지 내가 좋아했던 모든 음악은 음악도 아니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그 당시 소장하고 있던 나의 LP와 테이프를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중고로 판매하고 그 돈으로 찬양 음반을 샀다.
그런데, 진짜 충격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신앙 생활과 음악 사역을 오래 해 왔지만, 요즘도 날마다 충격을 받고 있다.
세상이나 교회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받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계속 충격을 받고 있다.
내가 생각보다 좋은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훌륭한 사역자도 아니고, 뛰어난 음악가도 아니고,
괜찮은 남편도 아들도 오빠도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한편에선 내가 정말로 그 정도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나의 잘못에 비해 내가 당하는 고난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쁘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말세가 될수록 세상은 점점 영적인 충격에 둔해져서 하나님의 이적과 진리의 말씀 앞에서도 회개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나는 종종 출애굽기의 바로 왕에 대해서 신기하게 생각한다.
나 같으면, 그 무섭고 놀라운 열 가지 하나님의 이적 앞에, 아니 첫 번째 이적만 겪어도 당장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을 텐데, 어떻게 그는 하나님의 충격들에 그렇게 둔하고 무반응일 수 있었을까?
충격에 무반응한 것은 멸망과 심판의 길로 가는 증거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더 큰 충격들을 내려주소서.
저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면, 저를 사랑하시기에 내리는 그 아픈 충격들을 더욱 더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