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 대변인 시절(7대) 당시 3선 개헌 반대 규탄 대회장에서 유진오 신민당 총재,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께.
1967년의 6ㆍ8 부정선거를 통해 원내 개헌선을 확보한 박 정권은 권력지향의 충성분자들을 동원하여 개헌에 관한 애드벌룬을 띄우기 시작했다. 1968년 12월 17일 공화당 당의장서리 윤치영은 부산에서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과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이같은 지상명제를 위해서는 대통령 연임조항을 포함한 현행 헌법상의 문제점을 개정하는 것이 연구되어야 한다” 라고, 3선개헌의 ‘물꼬’를 텄다.
첫댓글 국가의 위기가 도래하면 박정희는 그것을 독재 집권 강화로 활용했고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로 삼았다. 박정희는 오로지 자신의 독재정권 구축이 김대중은 민주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구축하기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안보가 나라을 지켰다기 보다는 박정희 정권을 지켜준 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