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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간은 있다. 남미에서 냉동닭고기를 싣고 가자면, 6월은 넘아야 한다. 자신부터 각오를 굳힌다. 부딪쳐 보자. 직접 총을 들고 전쟁터에 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유탄(流彈) 혹은 떠돌아 다니던 어뢰(魚雷)에 받치는 일뿐이 아니겠나.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했거늘 거기 아니라도 얼마든지 내 목숨은 하늘이 보관하고 관리할 것 아닌가. 설사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 운명이다. 1기원은 인생살이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협조해 준 모든 선원들에게 감사하며 길어야 1주일이면 된다. 3등항해사는 기어이 탈락시키기로 한다. ㈜대아에 전문을 보내 결원으로 하겠으니 가급적 빨리 후임자를 보내라고 했다.
이왕 가지 않을 사람은 일찍 보내버려야 남은 사람에게 영향을 덜 미친다. 이상하게도 사람의 사고(思考)란 한번 외곬으로 흐르면 흐를수록 깊어 빠져 간다는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자. 우리만 가는 것도 아니잖은가. 결국 한 사람의 이탈자가 생겼다는 그 사실에 대하여 내 자신의 반성도 해본다. 과연 내 방법이 옳았고 ‘최선을 다했던가? 더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인가.’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요할 수 없는 어떤 한계가 근본적인 문제였고 바로 그것 때문에 막힌 것이다.
즉 내 자신의 ‘현재’를 완전히 잊었다는 의미다. 하기야 그럴 수만 있다면 좀 더 두둑하니 볼에 살이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지금이다. 보다 둔하고 무딘 감각,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그래서는 내 자신은 물론 나를 쳐다보는 모든 선원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보장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느낌은 언제나 코앞에 닥쳐와 있다는 환상 같은 것이 있다.
생활의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다 보면 이상보다 현실이, 꿈보다는 생활 그 자체가 절실하기 마련이다. 그저께부터 다시 시금털털한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는다. 눈, 특히 오른쪽 눈의 피로가 심하다만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의 하나일 것이다.
「가기 전에 몇 마디 훈계를 하마. 단단히 명심해서 실행해야 하느니라.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함부로 발설치 말 것이며 설익은 아이디어를 곧장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된다. 친구를 사귀되 잡놈을 가려야 하며, 일단 쓸만한 녀석이면 단단히 잡아둬라. 단, 별 볼일 없는 놈들과는 악수도 삼가 할 일. 공연히 손바닥 가죽만 두꺼워 지느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싸움박질은 하지 마라. 불가피해서 싸우는 경우라면 아주 철저히 이겨 다음엔 절대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라. 누구의 말에나 귀를 귀울이되 네 의견을 까놓지 마라. 즉 남의 의견을 들어주되 시비판단은 삼가란 말이다. 의복 사는 데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돈을 써도 좋지만 괴상하게 치장해서는 못쓴다. 그리고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아라. 빌려주면 돈과 사람 둘 다 잃고 빚을 지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어지느니라. 이상이다. 가거라.」
마치 우리 아버지가 집 떠날 때 해 주신 평범한 말씀 같지만, 실은 섹스피어의 걸작품인 ‘햄릿’에 나오는 간신 폴로니어스가 프랑스로 유학가는 아들에게 주는 말이란다. 플로니어스는 햄릿의 아버지를 살해한 클로디어스 왕의 심복이다. 이런 얘기를 희대의 간신인 폴로니어스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문제가 된다. 갑자기 이 글이 생각이 난다.
파란선이 전쟁구역
퇴선 훈련을 몇 차례 더 실시하고 페르시안 걸프의 주의 사항과 앞으로의 훈련 계획도 얘기했다. 단 1%의 위험이 99%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 Time지(紙)에 실린 ‘Stark’함의 피격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작전상(Operational)으로 되어 있는 버젓한 미사일 장치를 1분 30여 초 사이에 왜 작동치 않았는가?’가 Key Point 인체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에 따라 지휘관이 군사재판에 회부된다고……. 혹시 방심! 바로 그것은 아니었을까? 매일 조금씩이나마 읽어 나가는 ‘Time’지에 그래도 재미를 붙인다. 갈수록 쉬어지기는 커녕 답답해져가는 것은 또 뭐람. 그래도 더듬거리는 횟수는 분명히 줄어들고 있다. 영어! 이놈을 그냥 ‘오기’로 책을 씹어 먹는다면……. 빌어먹을! 이 판에 눈에 다래끼, 그것도 이번에는 다래끼의 차원을 넘어 소쿠리 정도는 되는 것이 난다.
퇴선훈련은 평소와 달리 잘들 한다. 하기야 이번은 훈련이 아니고 바로 실전이다. 제 목숨을 위한 것인데 소홀히 할 수야 없지. 출항한지 2주일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기도 한다. 담맘항은 상륙금지항이라나 가나마나겠군. 제기랄.
7월 9일(목) 08:00시, 드디어 호르무스 해협으로 진입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낌새도 없다. 지난 밤부터 양쪽 구명정(Life Boat) 모두를 수면 가까이 내려 둔 체, 의심스러우면 저속항해와 코스변경을 하기도 했다. 구명조끼, 헬멧 등은 각자가 알아서 조치하고 근무자는 반드시 착용하게 했다. 1시간 남짓하여 무사히 통과했고 16:00 아랍에미레이트의 자벨 알리(Jabel Ali)항에 도착했지만 긴장이 연속된 시간을 꼬박 선교(Bridge)에서 보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을런지 모르지만 또 그래아먄 하지만 속으론 신경이 바짝 죄이고 머리 속이 하얗게 되듯도 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몇 번인가 왕래한 길인데도 그 놈의 ‘전쟁 구역(War Zone)’이란 말 때문이었다.
빨간 원은 한 번 혹은 여러번 들어가 본 항구
덥다. 우선. 자벨 알리항, 의외로 우람하고 큰 항구다. 20만 톤의 거선 Tanker들이 수월케 접안하고 이안(離岸)한다. 석유를 팔아 그 돈으로 흙과 돈으로 바꿔 묻은 꼴이다. 생각보다 수월했다. 전부가 인도 사람들이다. 이러다가 왠통 땅덩어리를 까만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인가(人家)는 60km를 나가야 있고 항내에 선원클럽이 있으며 샤틀버스를 운행했다. 덥다. 땀을 빨래 짜듯 짜냈다. 그냥 주위가 펄펄 끓는다.
남은 사우디의 담맘항까지 그리고 다시 Hormuz 해협을 벗어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여전히 가끔씩 유조선들이 불의의 습격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돈보다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절실히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
다소 깨름직함도 없진 않았으나 그래도 사우디의 담맘(Dammam)항까지 항해. 밤 11시경 도착. 00:50시에 닻을 던졌다. 일단은 안도의 숨을 내 쉰다. 계속 더운 열기가 바깥쪽 살갗 뿐아니라 콧구멍과 허파, 위장을 통해서도 온몸 구석구석까지 바늘처럼 찔러든다.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 아무런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원인이 된다. 전쟁이 터졌거나 말거나 수많은 Oil Fields(유전)에서는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 올리면서 열기를 토한다. 이런 땅에 석유를 주셨으니……. 두 번째로 와보는 담맘항이다. 전보담 많이 수월해진 느낌이다만 여전히 상륙과 술은 일체 금지다. 꼬박 35일간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감옥 바로 그것이다. 한 발짝도 배 밖으로는 못 나가게 하는 나라다. 이렇게 폐쇄적일 줄은 생각질 못했다. 생각 외로 늦은 하역. 화물이 염려되어 Agent에 Protest하고 용선자에게도 Telex했다. 아마도 17-8일은 돼야 끝이 날 것 같다. 온 몸의 수분 아니 피 마져도 그간 마셔댄 쥬스, 콜라, 7-up 혹은 물로 바뀌어 버리지 않았을까 염려스럽다. TV라는 것이 좆도 재미없었다. FM Radio에서는 종일 알지도 못하는 팝송만 쉬지도 않고 틀어댄다. 간혹 News라도 해주면 소리로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짐작이나 할 것도 같다만. 전신이 파김치다. 그 놈의 물건도 마치 뜨거운 물이 담갔다 건진 산나물 모양 퍼질고 늘어졌다. 저게 아무래도 다시 살아날 것 같지가 않다. 꽉 쥐어도 보고 슬슬 간지러 봐도 묵묵부답이다. 작년엔 그래도 상대가 가끔 있어 제법 싸움질도 했었는데……. 정신적 문제일까? 그래도 물리적으로라도 가끔은 불끈불끈 용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뜸하기는 하다만 이곳 TV에 비치는 조국, 대한민국의 모습이 여전히 한심스럽다. 연일 데모의 난장판인 현장이 세계 구석구석 비쳐졌으리라. 자벨 알리항에서 만난 젊은 Panama 부영사의 나라도 오십보백보. 서로 서글픈 조국의 현실들을 두고 어쩌면 돌아갈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추측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헤이, 당신이나 내가 여기 나와 있으니 이 꼴이잖소” 했더니 고갤 끄덕이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호르무즈 입구의 오만의 무스카트 외항에서 본 전경
피장파장이다. 하루 $40의 전시수당이 붙기는 한다만 수당은커녕 하루의 밥값도 제대로 못 한 어제고 오늘이 아닌가. 흐르는 시간과 함께 몸도 마음도 선박도 모두 뛰고 움직이고 달려야만 한다. Radio에서 달러화(貨)의 시세 상승. 그리고 그저께 다시 페르시아만에서 프랑스 국적선이 Iran의 공격으로 손상을 입었다는 단편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어정쩡하고 씁쓸하다.
한국의 남부 지방에 태풍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이 더위만큼이나 답답하다. 이래저래 ‘South Korea’는 유명해지고 있다.
예정보다 이른 7월 18일 드디어 양하를 끝냈다. 도중 닻을 내리고 잠간 머물까 하다가 그냥 계속 항해. 한시라도 빨리 War Zon을 벗어나기로 했다. 돈 문제가 아니다. 안절부절하면서도 주간 항해의 안전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신과 확신을 가지고 밀어 붙인 것이다. 나갈 땐 다소 수월했다. 항해하는 선박도 정박하는 배들도 올 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항해등(航海燈) 조차 끄고 다니는 선박들도 있다. 여간 위험하지가 않다는 의미리라.
거대한 유조선들의 동정에도 신경이 쓰인다. 가급적 그들은 피하기로 했다. 그들이 곧 타켓이 아닌가. 19:00 Hormuz 해협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 우선은 안도의 숨을 내쉼과 동시에 무사히 마쳤다, 아니 살아났다는 해방감 같은 것을 가진다. 내일 새벽 다시 북위 24도 선을 지날 때까진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만. 지난 10여일 무척이나 마음이 초조했던 기간이었다. 무엇보다 ‘죽음’이란 것을 보다 더 가깝게 그리고 실감 나게 생각해 본 기간이기도 했다. 참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었으나 그렇게 연연하기만 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종교란 것이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항차가 고비가 되어 남은 7개월은 보다 수월하리라 여겨진다만 그렇다고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10여 일간 무사하기를 간원했을 아내와 모든 선원들의 가족들에게도 마음의 감사를 드렸다.
7월 19일 새벽 06:10시. 북위 24도선을 통과함으로 War zon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선주와 용선자 그리고 대아에도 무사히 마쳤음을 알렸다. ‘협조 감사’의 문구를 넣어서……. 모두 푸근한 마음으로 쉬게 했다.
그러나 연이어 조우한 맹폭한 남서 계절풍, 꼬박 40여 시간을 앓았다. 배도 사람도……. 바람은 파도를 흥분시켰고 바다를 휘몰아쳤다. 올라올 때 순조롭던 뒷바람이 이번엔 앞바람으로 뱃전을 때리고 홡기만 하는 고약한 것이 된 셈이다. 멀찌감치 항로를 정남으로 잡았다만 예상보다 빨리 북위 9도 정도에서 숙으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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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중동 전쟁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최신 미사일 또는 드론에 의한 초정밀의 포격이다. 아직도 그 안에 갇혀 있는 많은 선박, 선원, 특히 책임자인 선장들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일전 TV에 어느 넘의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식품과 물이 충분하니 염려 없다는 소릴 했다.
옆에 있다면 뺨이라도 한 대 쳐주고 싶다는 심정이다. 물과 식품만으로 사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미사일이 작열하는 전쟁구역에 갇힌 사람들의 심정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당사자 이외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빨리 종전(終戰)과 더불어 활짝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운 항해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첫댓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얼마나 긴박한 건지 읽으면서 몸이 오싹했습니다.
그 시절 그 마음은 얼마나 긴장 속에서 보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용감하게 현명하게 살아오신 선배님들의 고역이 이 나라가 우뚝설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고 영원히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조마조마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서 선배님의 생생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하시는 동안에는 생명과 관계되는
절박함이 있었을 줄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