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의 생일은 1999년 1월 1일이다. (실제로 유로 지폐와 동전이 시중에 풀린 건 3년 후였다.) 20세기가 다 저물어가던 1998년 12월 31일 11개국(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핀란드, 포르투갈,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통화와 유로의 교환비율이 최종 확정되면서 유로권(eurozone) 내 각국 간 환율변동 위험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그리스(2001년), 슬로베니아(2007년), 키프로스, 몰타(2008년), 슬로바키아(2009년)가 새로 가입함에 따라 유로를 쓰는 나라는 16개로 늘었다.
유로권 인구는 3억3,000만명 가까이 된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2008년 전 세계 명목국내총생산(GDP) 60.5조달러 가운데 22%(13.5조달러)를 차지했다. 미국의 23%(14.2조달러)와 맞먹는 비중이다. 덴마크와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는 자국 통화 가치가 유로를 따라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화동맹이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 폴란드,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들까지 가세하면 유로권은 세계 최대 단일통화권으로서 영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유로를 쓰는 나라들은 자발적으로 통화주권을 유럽중앙은행(ECB)에 넘겨줬다. 유로권 내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내 경제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들과 같다. 독일 번영의 상징이었던 마르크화는 탄생 50주년인 1999년 사실상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하느님은 믿지 않아도 마르크는 믿는다던 독일인들이 자국 통화를 포기한 것은 유럽이 또 다시 전쟁의 참화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비전 때문이었다. 헬무트 콜(Helmut Kohl) 독일 총리를 비롯한 유럽 지도자들은 경제통화동맹(Economic and Monetary Union, EMU)이 유럽의 정치적 통합도 앞당겨줄 것으로 믿었다.
출범 후 10년 간 유로는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플레이션은 연 평균 2% 남짓한 수준에서 안정됐다. 1999년 초 1유로의 가치는 1.17달러였다. 2000년 10월 한 때 0.82달러까지 떨어졌던 유로는 2008년 7월 1.59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럽 경제와 통화동맹의 구조적 문제가 부각되자 다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권이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재정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유로권의 내분으로 통화동맹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는 암울한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통화동맹은 그토록 위험한 도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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