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에서는 제사 때 동물 태우고 남은 재로 만들었어요
비 누
"올바른 손 씻기, 비누로 30초 동안!"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27일 이런 표어를 발표했어요. 공중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비누로 손 씻는 비율이 성인의 29.4%밖에 안 된다는 지난해 조사 결과 때문입니다. 옷이나 몸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비누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인류 최초의 비누는 기원전 2800년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만들어졌어요. 바빌로니아 왕국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물에 재와 육계나무의 향유를 섞으면 만들어지는 덩어리로 옷감을 씻어냈다고 해요. 이때 비누는 사람의 몸을 씻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어요.
비누를 영어로 'soap'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는 고대 로마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동물을 불태워 바치는 풍습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사가 끝나고 걸레를 빨던 사람들이 시커먼 재가 묻어 있는 걸레일수록 때가 더 잘 빠지는 것을 발견했어요. 재는 염기성 물질인데, 빨래 때의 주성분인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로마인들이 동물을 잡아 제사를 지내던 곳이 사포(sapo) 언덕이었는데, 언덕의 이름이 곧 비누의 어원이 됐다고 합니다. 이후 유럽에서 재를 이용해 비누를 만드는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을 태우지 않고도 염기성 물질을 인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재 없이도 비누를 만들 수 있죠. 이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 프랑스의 화학자 니콜라 르블랑(1742~1806)이에요. 당시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섬유 산업을 위해 옷 세탁에 필요한 비누를 대량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소금에서 염기성 성분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고 공포했죠.
르블랑은 소금에 황산을 섞으면 황산나트륨과 염산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여기에서 얻은 황산나트륨에 석회석을 넣고 목탄으로 가열하면 화학반응을 통해 황화칼슘·탄산나트륨·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죠. 탄산나트륨이 바로 오늘날의 '세탁 소다'입니다.
르블랑은 상을 받았을까요? 그때 하필 프랑스혁명이 진행 중이라 상은 못 받았다고 해요. 하지만 르블랑이 발견한 탄산나트륨 제조 공정은 비용도 저렴하면서 간편했어요. 비누의 대량생산이 시작됐죠. 이후 1811년에는 프랑스의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1786~1888)이 비누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유럽산 비누는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졌어요. 비누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입니다.
당시 비누는 쌀 한 말보다 비싼 고급품이어서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비누 냄새가 난다는 것은 곧 부유층이라는 의미였어요.
당시에는 비누 냄새를 '멋쟁이 냄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멋쟁이임을 강조하기 위해 맨얼굴에 비누를 발라 냄새가 나게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