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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진보
어쨌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타이타닉 현실주의’가 사실 전 세계에서 정치` 경제의 키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진화주의’는 하나의 종교적 광신이라고 해도 좋다. 이 때문에 매년 2만 5천여 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 멸종으로 인한 생태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걸리는 생태 진화의 시간은 적어도 500만 년에 이른다고 한다. 이토록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의 ‘느림’이 바로 진화의 본질이다. 우리들은 문명의 짧은 역사를 가리켜 ‘진화’라는 이 의미심장한 말을 너무 가볍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한 의미에서 ‘진보’는 실로 위험한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20세기의 과학기술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기술의 발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허술한 예측 능력밖에는 지니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전통 사회의 생활 기술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라는 아주 시간의 채종` 선별` 품종 개량을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한 느림은 바로 문화의 본질에 뿌리내린 `느림`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문제
느림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남북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북’에 있어서의 고속 생활은 ‘남’의 희생 위에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수치를 통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세계 20퍼센트의 인구가 80퍼센트의 자원을 소비하고, GDP의 86퍼센트, 이산화탄소 배출의 75퍼센트, 전화 회선의 74퍼센트를 점하고 있다. 특히 세계 인구의 5퍼센트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는 세계 자동차의 32퍼센트를 소유하고 있고 이산화탄소의 22퍼센트를 배출하며,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을 가축 사료로 소비하고 있다. 1940년까지 인류가 사용한 것과 동일한 양의 광물 자원을 미국인들은 지난 60년 동안 소비했다. 미국인은 1인당 방글라데시인 168명 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지구상의 인간 모두가 북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구 네 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더 빨리, 더 많이’의 현실 사회가 낳은 이토록 그로테스크한 격차를 보라. 국제 평화라든가 정의` 평등` 민주주의 등을 말하는 사람은 ‘슬로다운’, 즉 ‘느리게, 적게’의 생활 방식에 관해서 이제 슬슬 심각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노안 - 어린이
우리 사회에서 노인과 아이는 우리가 처리해야 할 문제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늙음과 어림 모두, 누구나 맞이하는 인생의 한 단계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한 사회에서 일단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회 존재 방식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닐까?
철학자인 와시다 키오카즈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바로 노인이나 아이의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와시다는 늙음과 어림의 공통점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 존재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은 보호라든가 간호라든가 양호라는 말로 불린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생명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자 우치야마 다카시에 따르면, 근대 사회란 무엇보다 근대적인 시간 질서를 바탕에 두고 만들어진 구조다. 그곳에서의 시간이란 직선적이고 균질하며, 객관적이고 계측 가능하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이러한 시간을 기준 삼아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언제나 시계를 가까이 두고, ‘시간이 자신을 쫓고 있는 듯’ 살아가는 사회인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경제와 산업, 비즈니스의 시간이 현대인의 생활을 제어하는 주요한 틀이다. 노인과 젊은이를 가릴 것 없이 동일한 시간의 틀 속에 자신을 두고, 성장과 효율성, 생산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사회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성장과 생산성을 축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이미 생산적인 시기가 지나버린 늙음은 쇠약의 프로세스로 여겨지며, 노약` 노추` 노쇠와 같은 말의 이미지가 보여 주듯이 부정적이고 퇴행적이며, 가능하면 멀리하고 싶은 것, 회피하고 싶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을 사회의 ‘현역’ 이전 혹은 이후라는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로 강요한다.
노인에게 살기 힘든 사회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살기 힘든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재촉당하고 있다.
와시다는 이노우에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인과 아이의 격세대적인 유대가 실은 직선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에 기초한 사회 질서를 흔들고 무너뜨릴 만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숙한 사회란 늙음이나 어림, 이 모두를 포함한 다양한 시간을 인정하고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상호의 관계를 배양해 나가는 사회라고 말이다.
-모모 – 시간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는 현대인의 시간을 둘러싼 불행을 그린 우화다. ‘어른들은 시간 은행에 시간을 맡기면 그것이 몇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정체불명의 회색빛 남자들의 말에 속아서 엄청나게 바빠지고 일에 짓눌려서, 가족도 친구도 돌아보지 않게 된다.
그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어리석은 일이라 여기던 아이들도 마침내는 ‘어린이 집’이라는 이름의 교정 시설에 수용되고 아이다움을 잃어버리면서 점차 ‘어른스럽게’ 되어 간다. ‘놀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취급된다. 슬프게도 그러한 모습은 바로 너무 바쁘게 일과 시험 공부에 쫓겨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 그대로다.
-놀기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전화 통화가 길고 쇼핑 중에 우연히 만난 친구와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그 내부로부터 샘솟아 오르는 유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에 서서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마 잡담으로, 내용 자체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문제는 대화의 내용이 아닌 것이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특별한 목적 없이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 여기에 바로 놀이의 원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에서만큼은 아이들을 당해 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바로 놀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바로 일상의 현실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합목적으로부터 자유롭기에 빛나는 것이다. ‘헛되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조차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든가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늘 주문한다. 즉, 이런 것이다. 경제성장과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이렇다 할 경제효과도 없고 돈이나 생산성, GDP로도 연결되지 않는 활동은 2차적, 3차적인 것으로 폄훼되다가 결국에는 배제되고 마는 것이다.
-에도
어떤 연구조사에 따르면, 무게로 본 수출입 균형 면에서 현대 일본은 수출이 1인데 반해 수입은 8이라고 한다. 즉, 이 열도에는 매년 그 7만큼의 차이가 쌓여 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쓰레기다. 이에 반해 에도 시대는 재생은커녕 쓰레기와 폐기물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고도로 정제된 순환형 사회였다. 수천만 년의 시간에 걸쳐 축적된 화석 연료를 불과 수십 년 만에 소진해 버려야 유지되는 현대사회와 달리, 그 시대의 사회 구조는 태양 에너지만으로 충당될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었다.
이와 같은 선조들의 삶은 얼마나 여유롭고 자유로운 것인가, 그들 역시 돈을 좋아했던 점은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돈 외에도 좋아하는 것이 매우 많았고, 도 ㄴ이상으로 좋아하는 것 또한 매우 풍부했다는 점이다. 현대의 자립이 종종 고립을 의미하는 데 반해, 에도 시대 때의 자립은 자연스럽게 인간과 다른 생명체,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고 마음의 균형 감각에 따라 상대를 돕고 싶을 때는 돕고, 도움을 받고 싶을 때는 기꺼이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그 시절 일본에서는 가난하다고 해서 비인간적으로 비참하지 않았고, 가난이 인간답고 만족스러운 생활과 충분히 양립 가능했다고 이방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플러그 – 언 플러그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환경이란 과거의 공유지, 즉 사람들이 일정 지역에 모여 살기 위한 기반이자 공동의 공간이다. 과거 각 가정은 주변 공유지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은 ‘공동체의 주거’라고 할 만한 공동 생활의 장이며 경제적 기반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유지가 자원으로 여겨지고 상품으로 경제 시장에 편입되면, 공동체는 기반을 잃고 와해되며 각각의 가정은 고립된다. 그리고 그곳에 몇 세대에 걸쳐 육성되어온 ‘사는 기술’도 급속히 사라져 가게 된다.
사람들은 소비자가 되어 거대한 시장-화폐경제 시스템 속으로 편입되고, 그러한 시스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곳에서는 ‘비와 이슬을 피하려는’ 욕구조차도 경제학적으로 정의된 ‘필요’가 되며, 상품 가치를 띠게 된다. 주택은 전선, 가스관, 전화선, 수도관, 하수관 등의 다양한 선과 관이 깔리고, 그것이 연결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주택이라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 희소한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서는 열띤 경쟁이 따른다. 그 경쟁에 참여하는 것조차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되어, 설사 3대에 걸친 부채를 지게 된다 해도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감지덕지하게 여긴다.
‘언플러그’. 이반 일리히가 1970년대에 제창하고 그 후 한동안 잊혀진 것처럼 보였던, ‘플러그를 뽑는다’는 뜻의 이 말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물결이 전 세계를 뒤덮여 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 앞에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이나마 줄여가면서 자족적인 생활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는 것이다. 또 남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에게는 세계화의 압력과 유혹에 저항하여 자발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고지하는 것의 의미한다.
-비전화
비전화라는 테마 아래,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청소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흔들어 주기만 하면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전지 등이 발명되었고, 시제품도 만들어졌다. 필터 없는 정수기, 제습기, 커피 메이커들은 이미 제품화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비전화 기기를 제품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러한 물건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기 제품보다 얼마쯤은 느리고 사용이 번거로워서 ‘불편’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전화 제습기의 경우 어느 한도까지 흡습시킨 뒤, 그 다음에는 이불을 말리는 식으로 볕에 말려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 주면 제습 능력은 몇 번이고 회복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비전화 제품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선진국에서야말로 꼭 필요한 물건이다.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실감해 왔기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전기 소비량이나 화학 물질 사용량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보급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전거
자동차는 산업사회의 발전을 보증해 주는 기동성의 비약적인 향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사회가 도시화되고 세계 인구의 절반이 도시 인구인 오늘날, 자동차를 둘러싼 문제들은 심각해져 가기만 할 뿐이다. 교통 혼잡, 소음,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 오염, 운동 부족에 의한 비만 등이 전세계 도시인을 괴롭히고 있다.
레스터 브라운의 보고에 따르면, 런던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는 100년 전 마차의 속도와 거의 차이가 없다. 1999년 방콕의 경우, 운전자들은 교통 정체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 안에서 연 평균 44일의 노동 시간을 허비했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에서 자전거로의 슬로다운이 느림을 의미하자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미국에서는 관할 지역 인구가 25만 이상인 경찰서에서는 자전거로 순찰하는 경우가 96퍼센트에 달한다. 당연히 자전거를 탄 경관이 더 기동성이 높고, 사고 현장에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전거는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탄소 배기량을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대안이다. 이는 매년 300만 명의 생명을 빼앗는 대기 오염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자동 판매기 – 물통
지금 일본은 23명당 한 대 꼴로 자판기가 할당된 이른바 자판기 왕국이다. 총 550만 대의 자판기 가운데 냉장기능을 갖춘 ‘청량음료’ 자판기만 약 260만 대이다. 그러한 것들을 24시간 가동하여 대기시켜 두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 1기 분의 전력이 들어간다고 한다.
자동판매기 대신 물통을 가지고 다닌다. 한 사람이 매일 사서 마시는 페트병이나 캔 음료 두 개를 사지 않는다면, 1년이면 730개, 돈으로 치면 약 8만 7천원이 절약된다. 또 에너지 절약과 이산화탄소의 배출 감소에도 공헌할 수 있다. 보온 물통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담아가지고 다니면 기분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친환경적인 삶이 바로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이며, 세계를 환경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 역시 사랑이다.
-자동차
20세기를 대표하는 테크놀러지는 자동차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매년 4천만 대의 신차가 생산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매년 140억 달러의 광고비를 들여 자동차를 팔아 치우고 있다. 그 자동차가 온 세상에 불러일으키는 제반 문제의 심각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길 위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세계적으로 매년 88만 5천 명, 대기 오염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연간 추정치는 300만 명, 그밖에 지구 온난화의 영향, 도로 혼잡에 따른 손실, 운동 부족으로 인한 비만 증가, 폐기물 증가, 도로 건설에 따른 환경 파괴...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50년 전에 자동차로 1년간 평균 2천 킬로미터를 달렸던 독일인의 경우, 현재는 1년간 평균 1만 5천 킬로미터를 달린다고 한다. 자동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온갖 신기술로 인해 ‘벌어들인 시간’이 이제 더 먼 거리로, 더 큰 출력으로, 보다 많은 비즈니스 미팅으로 전환된다. 그러니 아무리 도로를 더 만들어도 혼잡은 해소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동차 없이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일본의 경우도 특히 시골에서는 점점 더 그런 추세가 되어 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나 컴퓨터가 없는 사람은 점점 더 살기 불편해지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어째서 그럴까? 새로운 제품들을 사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어려운 방향으로 사회의 틀 자체가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친환경 주택
‘슬로 하우스’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는 데 좋은 힌트가 되는 것은 ‘스트로베일 하우스’다. 이 집은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서 짓는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북미나 호주 등지에서 궁극의 친환경 주택으로 불리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발군의 단열성이다. 일반적인 고단열 주택에 비해 두 배에서 세 배 이상의 단열성을 자랑한다. 한겨울 바깥 기온이 5도일 때 실내 온도는 40도였다. 반대로 40도에 이르는 한여름 날씨에도 실내는 냉방이나 블라인드 없이도 24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단열성과 함께 방습성, 방음성도 뛰어나서,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도 쾌적한 생활이 가능하다.
내구성, 내진성, 방충성도 북미와 호주에서 검증을 거쳤으며, 이미 일부 주에서는 법적으로 허가되었다. 화염 방사기에 의한 연소 실험에서도 난연성을 검증받은 바 있다.
또한 건축 방법이 비교적 단순해서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설계나 건설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미덕이다.
-잡곡
잡곡은 수전, 수답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한랭지나 산간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보존성도 좋아 생태계에 대단히 포용적인 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양 균형 면에서도 쌀을 능가해 인간 생명 활동에 필요한 대부분의 성분을 지녔고 면역력을 높이는 미네랄, 섬유질도 풍부하다.
각 나라와 지방이 같은 세계화로 인해 한층 더 균질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세계는 쌀과 밀, 옥수수라는 세 가지 곡물로 온통 뒤덮히려 하고 있다. 게다가 농업은 점점 더 공업화되고, 생산자는 종자를 공급하는 다국적기업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농산물은 국제 시장에 지배 당하게 되었다. 각 지역 생태계 속에서 전통 농업으로 유지되고 길러진 종자의 다양성은 급속히 사라져 가고, 식생활은 날로 비슷해져 간다.
전통적인 잡곡식의 부활은 세계 각지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특히 육식을 줄이고 잡곡식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할 수 있고 기아나 남북 격차, 물 부족 해소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육식
세계 인구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북반구 사람들이 필요 없이 빠른 삶을 유지하고 더 한층 가속시키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자연 자원의 80퍼센트 가량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식육 생산량은 과거 50년 사이 다섯 배 이상 증가했으며, 그 신장세는 인구 증가율을 약 두 배 상회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인구 한 명당 연간 식육 소비량은 17킬로그램에서 38킬로그램으로 증가했다. 세계의 대두 생산량은 지난 50년간 아홉 배로 뛰어올랐으나, 그것은 가축과 가금의 사료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체중 1킬로그램을 늘리기 위해 사육장의 소는 약 7킬로그램, 돼지는 4킬로그램 남짓, 닭은 2킬로그램의 사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료에는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물이 필요하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닭고기 1킬로그램에는 4천900리터, 돼지고기 1킬로그램에는 1만 1천 리터, 쇠고기 1킬로그램에는 무려 1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쌀 1킬로그램을 수확하는 데는 5천 100리터, 밀은 3천200리터, 옥수수는 2천 리터, 대두는 3천4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40퍼센트 수준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이상하리만큼 낮은 수치는 ‘푸드 마일리지’의 높은 수치와 표리 관계에 있다. 푸드 마일리지란 자신의 식탁에 놓인 음식물이 얼마나 멀리서부터 운반되어 왔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자신들의 식생활이 얼마나 환경에 부담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육식 1인분의 단백질은 채식 20인분의 단백질에 맞먹는 것이라고 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신들의 식생활이 환경 파괴와 세계의 불안정화를 가속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뺄셈의 발상
더글러스 러미스는 ‘물건을 조금씩 줄여 가면서 그러한 물건이 없더라도 태연한 사람이 되어 보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인간의 능력을 대신해 줄 기계를 줄이고, 인간의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도구를 늘리자. 텔레비전을 켜고 ‘문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자. 즉, 문화의 본래 뜻인 스스로 사는 것을 즐기는 능력을 되찾자는 것이다.
캐나다의 <애드버스터>지 는 ‘경제학자는 뺄셈을 배우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오랜 시간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국내총생산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여겨 왔다. 실제로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산림이 벌채로 인해 사라져갈 때마다 GDP는 올라간다. 석유가 새어나갈 때마다 역시 GDP는 올라간다. 누군가 암 선고를 받을 때도 올라간다. 이것이 진정으로 경제적인 진보를 측정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뺄셈을 배우자.
자동판매기를 사용하지 않고 물통을 갖고 다닌다. 나무 젖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젓가락을 가지고 다닌다. 전기를 켜지 않고 촛불을 켠다. 여기서 물통, 젓가락, 촛불 등은 모두 나의 뺄셈을 가능케 하는 도구들이다.
-지역 통화
지역 통화는 지금 전 세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징은 법정 통화와 달리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것, 에콰도르의 신토랄에는 이자가 없다. 눈에 보이는 사물로서의 지폐나 동전 대신 그저 소박한 수표의 주고 받기와 통장 상의 대차 관계만이 존재한다. 이들은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각 그룹은 인원을 50명까지로 제한한다. 이러한 그룹은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네트워크의 범위를 넓히며 자유롭게 교역한다.
신토랄은 자신이 사야 할 필요와 상태의 팔아야 할 필요가 일치하면 언제든 직접 발행할 수 있는 통화다.
신토랄을 사용하면서부터 커뮤니티에 활기가 넘치고 시장의 분위기 또한 흥겨워서, 흡사 축제같다고 한다.
-슬로 카페 선언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유기적인 카페입니다.
무농약, 유기농 커피의 보급을 통해 남쪽 생산자의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 그리고 일본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페어 트레이드 가게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부와 빈곤의 격차를 확대하는 일방적인 세계화 대신,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 남과 북,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 사람과 다른 생물들 간의 공정한 관계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푸드를 만듭니다.
안전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머니를 사용합니다.
이자를 낳지 않는 통화로서 지금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지역, 대체 통화를 받아들여 공정하고 활기찬 지역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느림보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다가오는 환경 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의 문화 위기이며 라이프 스타일의 파탄이라고 생각하여,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이고 친환경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마음 넉넉한 생활 문화를 제안합니다.
-대체 의학
근대 서양의 과학 사상은 자연 전체를 하나의 기계로 봄으로써 그것이 작동하는 법칙을 발견하려고 해 왔다. 이러한 발상에 기초를 둔 현대 의학은 신체를 기계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여겨 왔다.
대체 의학이란 이러한 현대 의학의 신체관을 대신하는 통합적인 신체관에 기초하여 폭 넓은 의료를 모색하는 움직임이다. 그것이 때로 보완 의학이라 불리는 것은 대체 의학이 현대 의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다른 방면에서 발전해 온 다양한 의료의 흐름을 연계하고 보완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 전통 의학에 ‘단전’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외부로부터 따로 약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잘 가꾸기만 하면 무한의 묘약(단0을 낳는 생명의 텃밭이 우리 몸 속에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경작하는 방법으로서 기공이나 요가 등의 신체 기술이 고안되어 왔다.
-촛불
전기를 끄는 일은 무엇보다 어둠을 되찾는 일을 의미한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 대다수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촛불 아래 모여서 성스러운 안식일의 시작을 축복한다. 종교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도 어릴 적의 안식일을, 촛불 아래 밝혀졌던 가족들의 얼굴을, 지금도 그리운 추억으로 떠올린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많은 가정들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의식을 지금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고 불빛에 둘러싸이는 것, 촛불을 밝히고 식사를 하는 행위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실현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문화의 3대 요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