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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판도라 항아리가 열리며)
한 송이 엄마 고아라가 대전 언니네 집 앞에 이니셜별 머리핀을 떨어뜨리고 온 날이었다.
딸이 소중히 여기는 별을 잃어버렸지만 어디에서 잃어 버렸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전을 가려고 대구 터미널에 앉자 있다가 머리를 만질 때 본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송이가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추궁을 했지만 언니네 집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만은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쌍둥이 딸 자매의 탄생비밀이 밝혀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언니와 절대 비밀로 약속했고 자매의 관계까지 인위적으로 끊으며 만나지 말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깨어지면
언니가 큰 화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송이자매 탄생 비화는 영원히 가슴에 묻어두어야 하는 엄마자매의 특급비밀이었다.
고아라는 그 비밀을 지키려고 성격까지 움츠려 들고 작은 일에도 입조심을 하는 성격으로 바뀌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베일에 감춰진 삶을 살았다.
송이는 엄마의 성격을 알기에 잃어버린 자신의 소중한 머리핀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고도의 삼단논법을 농담처럼 물었다.
“엄마가 어디를 갔다 왔는지 알아야겠는데 엄마는 핸드폰도 없으니 위치추적을 할 수도 없고.....”
“정말 모르겠다니까 왜 그래~”
고아라는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했다.
송이는 더 이상 묻는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 방법을 바꾸었다.
“그러면 그건 차차 생각해보고, 내가 물어 볼 말이 있는데?”
“뭔데?”
“응~대학 2학년 때이던가? 엄마가 아빠 생각이난다고 보현산 천문과학관에 갔다가 쓰러졌을 때 본 사람이 있었지?”
“어? 그 그게...”
“엄마. 이건 엄마 건강 문제니까 바른대로 말해야돼 알았지?”
그날은 송이가 2년이나 떨어져 있었던 환희를 보고 싶은 생각에 의기투합하여 함께 갔던 날이었다.
고아라는 차마 그날에 관련된 말을 하지못했다.
남편이 죽고 외로움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언니에게 주었던 큰 딸 함 송이가 보고 싶고, 그런 날이면 대전언니네 집에는
갈 수 없어서 대신 과학관으로 향했다.
남편 한국남과 블루문을 보러 갔던 아름다운 추억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었기에 가끔 남편의 흔적을 찾아 갔었다.
그런데 과학관 주차장에 도착해서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모녀 앞에 낯익은 두 사람이 보였다.
고아라는 백미러를 닦고 있는 환희 아버지 성 한남 씨가 보였고 송이는 천문관 관장님이 보였다.
같은 장소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아직 택시에서 내리지 않아 듣지 못했다.
관장이 조크를 했다.
“관리실장님 관광버스를 샀어요?”
“아 아뇨~ 서울서 오신 분인데 백미러가 더러워서 닦아주다가.”
“아이구 오지랖은 여전하시네요. 자기들이 알아서 할 건데 암튼 못 말려요. 하하하.”
순간 고아라는 너무나 닮은 환희 아버지 모습을 보고 남편이 살아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착시일까 환영일까? 밤이라면 꿈이겠지만 현실이었기에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이곳에 오면 너무나 보고 싶은 남편이라 마음속으로 그리는 상상이라고 단정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현실이라 알 수 없는 현실 앞에
심장이 쿵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정신이 흐려지는 상태로 문에 힘을 가하여 문이 열리고 쓰러지며 말했다.
“송이야 아빠가 살아 있다.”
“엄마~왜 그래~”
송이는 아빠가 살아있다는 말보다 쓰러지는 엄마에 놀라 택시 안으로 엄마를 밀어 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잘못되면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때 본 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람이 아빠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송이의 기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 기억을 엄마에게 미끼로 던져 이니셜별의 행방을 유도했던 것이었다.
고아라는 창문에 손을 짚고 그 사람을 보고 싶은 생각에 실눈을 힘껏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체격도 남편을 닮은 그 사람.
고아라는 남편과 오버랩 된 그 사람을 보자 손이 바르르 떨리고 얼굴과 입술이 실룩거리고 경련이 일어났다.
송이는 먼저 급한 불을 꺼야하기에 엄마의 몸을 주물러주었다.
이런 경련이 일어나면 늘 하던 일이었다.
송이는 그때야‘엄마가 왜 그랬지?’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멀어져간 두 사람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잊혀졌다.
환희 아버지가 멀어져 가고 고아라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걸어가는 뒷모습도 남편을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딸 송이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정확한 이유는 남편이 아닌 그 사람 모습을 상상으로 기억하고 저장해 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보는 빛바랜 앨범속의 사람으로 지내는 것이 오히려 좋을 듯싶었다.
마치 마음속에 간직한 첫사랑처럼 남겨두고 마음의 위로를 삼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무척 보고 싶고 간절히 생각나면 그때마다 꼭 오리라 마음먹었다.
고아라는 판도라의 항아리가 열리듯 괴롬, 슬픔, 아픔 등등 그동안 불행들이 사라지고 얼른 뚜껑을 덮어 가두어 놓은 ‘희망’이라는
기대만 부풀어 항아리 안에 가득했다.
그런 생각이 위로가 되었는지 다른 때보다 정신이 번쩍 든 고아라가 말했다.
“돌아가자.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냥 가는 게 좋겠다.”
“응 그래 너무 피곤해 보여.”
송이는‘과학관에 들어갔더라면 환희를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하고 무척 아쉬웠다.
2년 전쯤 마지막으로 만나 마음의 선물이자 정표인 이니셜별을 받고 이후로 엄마 돌보미로 살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보고 싶어 했는데 오늘은 엄마 때문에 무산 되었다.
고아라는 그날 이후로 그때 본 남자를 상상하며 과학관을 찾기도 했지만 용기를 낸다고 말을 걸 수도 없고 그저 모습만이라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나 번번이 허탕치기 일수였다.
그런 날 집에와 혼자 덩그렇게 앉아 있으면 그는 남편이 아닌 남이었기에 언니에게 준 딸이 더욱 생각이 났다.
그렇게 외로움에 쓰러져 잠이 들면 남편을 만나는 기분 좋은 꿈과 악몽을 번갈아 꾸며 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환영에 시달려
두려운 밤도 보냈다.
몸이 나른할 때면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지고 수시로 피로감에 잠자리가 편치 않아 뒤척이다가 머리카락이 심하게 흐트러졌다.
송이는 쓰러져 잠든 엄마가 측은해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자신이 차고 있던 이니셜 별 머리핀으로 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언제 시내를 나가면 머리핀을 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 엄마의 상황이 알려지면 어쩌나 하고
외출도 두려웠다.
하는 일이라고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 정각리 드라이브 스루 나물 시장을 운동 삼아 다녀오거나 요리를 배우러 다녀오거나
도서관을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고아라는 딸이 어디를 다녀왔느냐는 계속되는 물음에 작은 결단을 했다.
이젠 건강 상태도 전으로 돌아오고 남편이 생각난다고 허상으로만 살수 없으니 이젠 끊자고 생각하니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응~ 그때 누군지는 몰라도 너희 아버지를 너무나 닮은 사람을 보아서 깜짝 놀라서 쓰러진 거야.”
“그랬어? 그러고 보니 나도 언뜻 본 것 같은데?”
“그래? 나는 가끔 아빠 생각이 나면 거길 갔다 오는데 마치 느그 아버지가 일하는 직장엘 갔다 온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마음에
위로를 받아서 기분이 업 된 것도 사실이야.”
송이는 엄마의 말을 듣다가 측은하다는 생각에 알리바이를 캐려는 것을 망각해 버렸다.
“아하 그랬구나~ 나는 엄마가 외출 후에 기분이 좋아 진 것 같으면 나도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그 사람이 아빠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
“응~이젠 나도 이렇게 건강하고 몸과 마음도 완전히 정상이야 하하하하.”
엄마가 정상이라는 말에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알리바이를 캐는 유도 직언이 다시 튀어 나왔다.
“엄마~ 근데 정상이라면서 아빠도 아닌데 왜 또 그 사람을 보러 갔다가 머리핀을 잃어버리고 왔어?”
“어? 아니야 내가 거기 가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대전에. 아 아냐 아니다.”
고아라는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지만 이미 대전이란 말이 나왔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송이는 엄마가 이모 집엘 다녀왔다고 생각에 따지듯 물었다.
“엄마. 내 눈치가 백단이거든? 대전 이모네 집에 다녀오다가 잃어 버렸지?”
“아니라니까 안 갔어~”
“괜찮아 다녀왔어도.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말을 안 해?”
“어?”
“엄마. 이모님도 두 분만 사시는데 외롭잖아 엄마도 언니를 자주 만나야 정이 들지 그렇게 안보고 살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어?”
“맞잖아~나도 언니가 있다면 엄마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
“어? 어~”
고아라는 딸의 입에서 나온 ‘언니가 있다면 엄마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말에 무척 놀랐다.
하지만 포커페이스를 했다.
송이는 수능을 앞두고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궁금했던 대전에 사는 이모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모는 딸이 하나 있다고 지나가듯 말한 것 같은데 송이는 가끔 예단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이모가 3번이나 유산을 했다는
말을 미루어 짐작하고 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송이 언니의 이야기는 비밀로 하는 것이 마음에 편할 것 같았다.
남편 생각에 사무쳐 딸이라도 볼까하고 대전을 갔지만 언니에게 호된 소리만 듣고 쫓겨 왔다는 이야기나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는
사실은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송이는 결국 머리핀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하고 화재를 돌렸다.
“엄마 여기 옥계마을 핑크 집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답답하지? 이젠 엄마 건강도 많이 좋아 졌으니까 우리 여행이라도
한번 할까?”
“어? 좋지 한 번도 멀리가 본적이 없으니까. 이왕이면 해외? 하하하.”
“좋았어. 엄마.”
모녀는 여행의 꿈에 부풀었다.
송이는 유럽여행 가이드 책을 사와서 유럽 여행을 계획을 짜고 여권도 만들고 바쁜 시간을 보냈다.
건강을 생각해서 먹을거리와 숙박에 최우선을 두고 걷기는 많이 생략하고 피로 도를 가장 줄여주는 방법으로 잡았다.
집은 이웃 할머니에게 맡기고 며칠이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고 살펴보아 달라고 했다.
며칠 후.
아점을 먹고 송이는 여행 준비를 위해 대구를 다녀온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 간식은 알아서 챙겨 드세요 내가 좀 늦을지도 모르니까.”
“응 알았다. 잘 다녀와라~”
딸이 사라지자 고아라는 갑자기 외로워졌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졸리고 간밤에 남편과 대전의 딸 꿈을 꾼 것이 생각났다.
고아라는 간밤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조금 전에 졸면서 꾼 꿈을 간밤이라고 착각했다.
딸이 잠깐이라도 외출을 하면 마음이 반사적으로 충동질을 해댔다.
고아라는 이때다 하고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숄더백을 메고 큰길까지 걸어 나가 택시를 기다렸다.
옥계마을 앞 정각 길은 부름택시가 아니면 지나가는 택시를 잡기에도 힘든 곳이었다.
과학관이 그리 멀지는 않지만 걸어서 가기엔 너무나 먼 거리였다.
30분이나 기다려 겨우 택시를 잡고 과학관으로 향했다.
30분정도 기다렸는데도 피로가 몰려와 몸을 택시 의자에 파묻었다.
택시에서 내려 근처 벤치로 걸어가서 앉았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잎이 적게 달린 나무가 해를 가려 주었다.
피곤했지만 작은 그늘에서 남편의 그림자인 백미러를 닦던 그 남자를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콩콩 뛰고 마치 도둑질을
하려는 사람처럼 주변을 살폈다.
‘그 남자가 언제 나올까?’
그렇게 30분쯤 흘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이는 사람 중에 백미러를 닦던 그 남자의 모습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들어가 볼까 했지만 맞닥뜨리면 어쩌나하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설렘은 지루함으로 지루함은 피곤함으로 피곤함은 헛소리처럼 말했다.
“내가 왜 또 여길 왔지.....”
머릿속까지 까마득하고 도대체 자신이 왜 여기를 왔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숄더백은 벤치에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끈이 풀려 땅에 닿더니 주인하고 똑 같이 슬며시 누어 버렸다.
그때!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산나물을 캐서 백 백에 메고 출근을 하던 그 남자 환희 아버지 성한남씨는 주차장을 지나다가 누어있는
사람과 백을 보았다.
“백을 흘렸는데 모르나 보다.”
산나물을 요리하라고 주방에 두고 간밤에 이상이 없었는지 둘러보려다가 누운 여자와 백이 생각이 나자 오지랖이 발동했다.
“가볼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벤치에 누운 여자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잠을 자는 건지, 잠을 잔다고 하기엔 옷차림이 반듯하고 그렇다고 기절을 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평온한 50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의 옷이 몸에 달라 붙어있고 코스모스 같이 가는 몸매로 누어 있는데 마른 손목과 발목이 측은해 보였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온 한남씨는 괜스레 얼굴이 코스모스처럼 발개졌다.
여자를 빤히 쳐다보자니 깨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칠 것 같았다.
심장은 쿵쿵.....
'너무나 말랐다.근데 왜 여기에 누어있지?’
혼자 속 말을 하자 마른 몸이 더욱 측은해 보였다.
이런 몸으로 여기 와서 잠이 들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병중이거나 회복중인 여자가 기운이 없어서 잠깐 쉰다는 것이
깊이 잠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냥 돌아가려고 생각 했지만 무성하지도 않은 나뭇가지로 해를 가려주기엔 이파리가 너무 모자라서 얼굴이 타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과학관을 찾아 온 관광객에 불과한 사람의 얼굴까지 신경 쓴다는 것은 너무 오버한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정쩡
한 시간이 흘렀다.
채 2분도 되지 않았지만 길게만 느껴졌다.
단순히 마른 몸의 코스모스 여자가 측은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20여 년 전에 사별한 아내가 자꾸만 생각났다.
'고물 푸드 트럭을 하루만 빨리 바꾸어 주었어도 브레이크 고장으로 보현산 정각 길을 내려가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건데....'
한남씨는 혹시 여자가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깨워보기로 했다.
심장은 더 떨려 왔다.
“여보세요~”
작은 목소리라서 듣지 못했나 싶어 조금 크게 불러 보았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순간 이상한 생각에 흔들어 깨워 볼까 하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관장과 박 하순 교수였다.
“환희 아버님 무슨 일이세요?”
“아 예. 이분이 아까부터 여기누어 계셔서...”
“예?”
박 하순 교수는 살며시 몸을 흔들어 깨우는데 아주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만을 확인 시켜주는 미세한 숨소리에 박 교수도 여전히 눈도 뜨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실신했나?119를 부를까?”
세 사람은 동시에 119를 떠 올리고 박 교수는 몸을 세게 흔들어보았다.
“여보세요 내말 들려요 여보세요.”
여자는 몸이 흔들리자 팔이 벤치 아래로 툭 떨어졌다.
세사람은 순간 두려운 생각에 119는 오는 시간도 있으니 빨리 싣고 영천 시내로 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박 교수는 재빨리 차를 가져왔다.
“환희 아버님 같이 가요 어서 태우세요.”
늘어진 여자를 뒷좌석에 눕히고 영천 시내로 달렸다.
환희 아버지는 앞좌석에 앉아서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교통사고가 났던 날 119에 함께 타고 울면서 달리던 그때가 어제처럼 생각났다.
‘여보 다 왔어 죽지마 제발. 여보.....’
박 교수는 블루문이 뜨던 날 천문대 연구원이 잡아 온 조개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제일 가까운 변두리 작은
병원으로 향했다.
“환희 아버님 백을 열어서 혹시 핸드폰이나 연락처 있는지 찾아보세요.”
한남은 어떻게 여는지 조차 모르는 여자의 백 손잡이를 비틀어댔다.
얼마간의 돈과 손수건 그리고 포스트잇이 들어 있는데 포스트잇에는 같은 전화번호만 여러 장이 기록되어 있었다.
“교수님, 같은 번호만 적힌 포스트잇이 여러정이 있는데요?”
“아~혹시 길을 잃을까봐 가족이 그렇게 메모를 했나 보네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럼 빨리 전화해 보세요. 전화 여기 있어요.”
한남은 전화번호를 머리에 입력하고 박 교수가 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3차례나 걸었지만 깜깜 무소식이었다.
답답한 박 교수는 한남에게 문자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예. 조금....”
자신감 없는 대답에 간단한 문자를 불러 주었다.
“전화요망 그렇게만 넣으세요.”
“아 예.”
한남은 한참이나 걸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넘겨주었다.
병원에 도착해 바로 응급실로 향하고 환희 아버지는 따라 들어가서 상세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박 교수는 문 밖에서 몇 차례나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조하게 환자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박 교수는 2시에 강연이 있어 가봐야 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떨어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주머니께서 쓰러져 있어서 포스트잇을 보고 전화를 했는데 이분과 어떤 사이 입니까?”
“예? 우리 어머니인데 어디세요?”
놀란 상대에게 자초지종과 병원을 알려 주었다.
박 교수는 환희 아버지에게 곧 오게 되는 가족에게 인계하고 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의사가 나와서 말했다.
“지금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올 때부터 지금까지 잠든 상태인걸 보면 환자 분이 램 수면으로 수면 마비도 의심되고 또 기면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발작수면이나 뇌 전증도 생각해봐야 하니까 정밀 검사를 위해서 대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소견서를 써 드리겠습니다.”
한남은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큰 병원이라는 말에 심상치 않다고 느껴 박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교수님 환자분 소견서를 써 준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예? 그렇게 하시고 천천히 오세요.”
병원에서 제공한 엠블런스를 타고 박교수의 아내가 근무하는 경북대 병원으로 갔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여자의 옷소매 끝에서 가녀린 팔뚝이 보였다.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또 밀려오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자꾸만 엠블런스에 실려 가던 아내 생각이 났다.
보현산 아래 정각길 구 도로에 드라이브 스루 나물시장을 개설해 놓고 천문데 주방일도 바쁜데 오지랖 넓게 동네 사람들
나물 보따리와 농산물 심지어 개까지 실어다 주다가 난 사고였다.
오래된 푸드 트럭 전복 사고로 은하마을 하늘 위에서 은하수 무리에 섞인 별이 되어버린 아내.
‘왕 별꽃’의 애칭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여왕 별꽃님아.”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삼키려고 천정을 보고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 삼킬 듯 눈물을 부수었다.
큰 눈에 담긴 눈물 량이 많은지 그 시간은 30여초나 흘렀다.
작은 소리라 예민하게 반응하여 더 잘 들었을까? 아니면 흔들리는 차가 깨웠을까?
고아라는 순간 희미하게나마 정신이 들고 눈을 살며시 떴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물체가 점점 선명해 보이더니 물체는 사람의 얼굴로 보이고 비몽사몽간에 남편 '한 국남’으로 보였다.
아라는 확인을 위해 힘없는 전신의 기운을 모두 짜내 눈으로 집중시켰다.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마치 곁에서 잠깐 잠들었던 자신을 바라보다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없는 힘을 모아 불렀지만 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국남 씨~”
엠블런스 ‘삐뽀 삐뽀’ 소리에 한남은 듣지 못했다.
삐뽀 소리에 아라는 자신이 실려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딜 가지? 왜? 어디가 아픈가? 남편이 곁에 있으니 안심이다.’
안심한 생각은 다시 온몸의 기운을 앗아갔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경북대 병원에 도착해서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그때 영천 병원에 도착한 송이는 간호사에게 소식을 듣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 어쩌지 걱정이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엄마의 침대 곁에 서 있는 분이 아버지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천문 과학관이 떠올랐다.
과학관 직원으로만 기억된 그 분은 전에 엄마가 쓰러 질 때 주차장에서 살짝 보았던 분이었다.
송이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엄마를 데려 오신 분 맞으세요?”
“아 예. 저는 과학관 직원인데 어머님이 벤치에 쓰러져 계셔서 모셔 왔는데 계속 주무시기만 하고영천에서 의사 선생님이
수면마비 그리고....기면증 그리고....발작 뭐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도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남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곧 깨어 날거라고 했으니까 따님이 의사 선생님과 상담해 보시고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아 예. 뭐라고 감사인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가려고 인사를 나누는 그사이에 고아라는 어렴풋이 눈을 떴다.
딸의 등 뒤로 덩치가 큰 남자의 눈과 얼굴이 들어왔다.
그것이 환상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남편얼굴이었다.
목구멍에서 나오지도 않는 소리로 힘없이 남편을 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소이 아버어 지....”
둘은 인사를 하느라고 듣지 못했다.
한남이 문으로 향하고 배웅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남편이 왜 가지?’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바쁜 남편이 회사에 볼일이 있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라는 눈을 감았다. 정신이 조금 들었다.
꿈인지 환상인지 현실과 과거가 함께 얽힌 복잡한 마음 상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여보 국남씨.....”
송이는 의사와 상담 후에 엄마는 1박2일을 수면검사실에서 보냈다.
저녁. 모든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이렇게 깊은 수면 상태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머리에 난 수술 자국을 보고 뇌수술 후에 충격으로 받은 충격으로‘기면증’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수면 중에 환각에 빠지기도 하며 주로 잠자리에서 환영을 보고 그것이 공포로 느껴지는 일이 잦아지면 심약한 사람은 심각한
정신적 장애가 될 수 있고 몸에 마비도 초래한다는 의사에 말에 고아라는 반 정도는 공감을 했다.
더욱 심해지면 혀를 날름거리거나 온몸을 통제 할 수조차 없이 변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는 놀랐지만 그 정도는
아닐 것 이라고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끝으로 조심스럽게 뇌전증도 정밀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일단은 충분한 안정과 수면을 취한 뒤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말했다.
입원실에서 벽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다.
마치 뇌수술을 하고 퇴원하여 정신적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시도했던 옥계마을 핑크 집에서 ‘베이커밀러 핑크’벽을 바라보던
그때가 떠올라 살짝 걱정이 올라왔다.
“엄마 괜찮아?”
“송이야 너 없는 사이에 괜히 천문대에 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든 것을 가지고 의사가 너무 확대 해석을 한 것 같다.
나 한 번씩 쓰러지면 그렇게 잠을 자잖아~”
“응 그렇긴 한데 너무 심했다는데?”
“그래 이번이 더 심했을 뿐이야 그만 돌아가자. 응?”
“아니야 엄마 이왕에 온 김에 며칠 더 있다가 정밀 검사를 하고 가자. 그래야 여행도 가지?”
“여행? 얼마나 갈 건데?”
“한 달?”
송이는 엄마의 정밀 검사를 위해 붙잡아 두려고 일부러 긴 날짜를 잡았다.
“엄마, 이대로 그냥가면 대전은커녕 대구도 못 벗어나요. 대전에 산다는 이모를 만나려면 먼저 건강부터 챙겨 두세요.”
“어?”
“엄마 내가 알아 봤는데 정밀검사를 마치고 한두 달 동안 공기 좋은 곳으로 옮겨서 지내요 그래야 대전여행도 할 수 있지 엄마.”
“어? 나 지금도 괜찮은데 공기 좋은 곳이 어디야 옥계마을?”
고아라는 또 그 남자를 떠올렸다.
옥계마을에 살아야 그 남자를 가까이서 볼 수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송이는 엄마가 옥계마을을 벗어나지 못하자 웃으며 말했다.
“아니~ 요즘 핫한 것으로 뜨기 시작한 ‘한 달 살이’라고 있어요.”
“한 달 살이 그게 뭔데?”
“시골집에 살림과 도구들 전체를 그대로 둔 채 몸만 들어가 사는 거야.”
“아~ 난 또 뭐라고 옥계마을 집과 살림살이를 우리가 몽땅 사서 들어가 산거나 같은 거구만.”
“응 그거야~ 그건 생각해 보자.”
아라는 아무리 공기가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한달살이에 관심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옥계마을만 가득하고 남편과 천문관을 연관 지어 떠올렸다.
그리고 남편이 방금 병문안을 다녀갔다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억을 돌려보니 엠블런스 소리와 어디선가 본 큰 바위 같은 남자의 얼굴은 천문대서 본 남자였다.
그 남자가 자꾸만 남편으로 보여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몇 번이나 가로저었다.
송이가 말했다.
“엄마 왜 그래? 머리 아파?”
“아니 아니야. 가끔 그러잖아.”
“아~내 머릿속에 지우개로 지우는 거야? 하하하.”
“어? 응.”
두 사람은 다른 상상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고아라는 그 남자 생각에 해외여행 계획과 대전에 가서 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우고 있었다.
큰 바위 얼굴 천문 과학관 그 남자만 떠오르고 하루 종이 잠을 잤는데도 이른 잠에 빠지고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다.
송이는 복도로 나와 창가에서서 마음을 모아 하늘을 보았다.
도시의 불빛에 일곱개의 별 북두칠성도 보이지 않아 외로운 별 북극성을 떠올렸다.
환희가 길라잡이별 북극성을 좋아 한다고 했을 때 북극성 찾는 방법을 물었던 생각이 떠오르자 환희가 생각났다.
환희에게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육체적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는 말을 하고 헤어질 때 환희가 준 이니셜별의
기억에 이르자 환희가 급격하게 정신적 지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환희가 내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 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번엔 자신이 외로운 북극성이 아니라 환희가 들려준 오리온자리 신화 속에 사랑하는 남녀의 별로 다가왔다.
환희는 오리온이고 자신은 아르테미스가 되는 사랑별이었다.
(쉽게 그리는 오리온 별자리)
아르테미스 오빠인 태양의 신 아폴론의 계교로 아르테미스가 활을 쏘아 오리온을 죽게 만들었던 비극적인 사랑.
하지만 별자리로 만나는 특별한 사랑의 별.
또 다른 전설엔 오리온이 전갈에 물려 죽었다는 전설도 있어 전갈자리가 뜨면 오리온이 무서워서 피하여 서로 만나지 못하는
별자리처럼 환희와 송이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며칠 후
다시 검사를 받은 고아라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야간수면다원검사’와 주간검사를 해서 낮에 졸음을 초래할 또 다른 수면장애가 있는지 확인했다.
REM으로 수면 이상 증상을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한 진단 결과는 가장 흔한 증상으로 볼 수 있는 ‘수면발작’으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 20여분이 맑은 기분으로 깨어나는 엄마의 경우는 ‘탈력발작’으로 심한 감정 변화와 겹쳐 갑자기 근육 긴장소실로
쓰러지는 경우였다.
우울증은 동반하지 않았고 다만 심한 증상으로 약물 치료로 가능한 ‘기면증’으로 진단을 받고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도록
권유를 받았다.
고아라는 늘 남편이 보고 싶고, 언니에게 준 딸이 보고 싶어 우울하여 그 기분의 기복이 심했다.
그리고 과학관에서 본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조증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다음 편을 기대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