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날 의진오빠가 봉화에 왔어요.
뉴욕서 서강대에 교환학생으로 한국말을 배우는 기간이 끝나고, 돌아가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비었나봐요.
그 중 봉화에서 이삼일 정도를 우리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해서 몇차례의 통화 끝에
비가 내리붓는 2일 늦은 오후에 우리집에 도착했답니다.
마침 첫날은 명지네 부모님이 오셔서 작업실에서-사실은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 먹으려 했으나- 삼겹살 파티도..
음 사실 파티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삼겹살도 구워먹고 과일도 쪼개먹었어요.
집 근처도 구경하고 이웃집에 인사도 가고..
그렇게 첫 날이 지나고,
다음날은 봉화 은어축제에 다녀왔어요.
나도 봉화 1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가 볼 생각을 못했던 곳이라 의진오빠 핑계 대고 다녀왔습니다~
낮 시간대에는 무료로 강에 들어가 은어를 잡을 수 있어서
곧장 아시는 분께 가방 맡기고 반두 대여해서 은어잡으러 들어갔는데..
시간대가 늦어서 이미 사람들한테 다 잡혀가 부렀는지
한 마리도 안 보였습니다..
우리 둘 다 고기는 첨 잡아봐서 좀 잘 잡겠다 싶은 아저씨들 쫓아다니면서 관찰해보고 물어보기도 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둘이서 고기망에 조리 두 켤레 넣고 달랑거리면서 온 강을 휘젓고 다니는 바로 그 모습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너무 고기잡기에 몰두한 나머지 그런 사진은 없네요..
그렇게 오전대 시간은 끝나고..
휘적휘적 나와서 사람들 구경도 하고, 각설이 노래하는 것도 보고, 축제장 내를 쏘다니다가
좀 배가 고파져서 감자떡을 사먹었습니다.
사실 같은 가게의 부침개 먹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방금 막 재료 다 떨어졌다길래 그냥 있는 거 먹었어요.
근데.. 감자떡치고 별로 맛읍었어요.. 그래서 남긴거 싸왔는데 아직까지도 냉장고에 들어있습니다..
그러곤..
가방 맡겨논 곳이 닭꼬치 파는 데라 닭꼬치도 하나씩 먹고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영화 이야기 같은 것도 하고..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
오빠 회 좋아한다 그래서 회 파는데 들어갔어요.
아 근데 축제장이라고 자릿값만 있나 맛대가리 정말 없어요.. 물론 비싸구..
결국 둘 다 먹는 거 포기하고(내가 포기할 정도라니!) 중간에 나왔어요.
저녁은 축제장 밖의 분식집에서 따로 사먹었구요..
이렇게 이튿날을 보내고,
이틀 정도는 집에서 지내면서 한국영화도 찾아보고 기타도 치고...
밭일도 좀 했답니다!
유난히 해가 드세어 푹푹 찌던 날, 당근 씨 심으면서 의진오빠가 물어봤습니다.
" 한국 사람은 다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일할 수 있어?" ...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언니 오빠의 말이 생각났어요. 거기 사람들은 일어난 채로 허리를 구부려서 밭일을 한다구요.
그래서 농기구들도 다 손잡이가 길다고요..
골격의 문제일까요, 습의 문제일까요.. 어쨌든 의진오빠의 경우엔 습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겠네요..
오빠 미안.. 그 때 나도 너무 더워서 차마 오빠가 그 자세가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주지 못했어ㅎㅎ
마지막 날은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기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차를 두고 가는 기차여행..
아름다운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혹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며 두 시간 정도를 달렸습니다.
그리하여 도착한 동 . 해 .
필요한 짐만 구분하여 나누어 지고
나머지는 기차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둔 채 등 가벼운 소풍을 시작했습니다.
첫 목적지는 역으로부터 10분 거리인 추암해수욕장, 그리고 촛대바위.
촛대바위는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 배경에 등장하는 바로 그 바위라네요. 처음 알았어요..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전망대에 올라 수평선도 보고 무슨 일로 떠있는지 모를 큰 배 한척도 관찰하고..
촛대바위와 주변 바위섬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습니다..
역시 바다는 어딜 배경으로 두어도 예쁘네요.
그 후엔 바로 아래 해수욕장으로 내려와 맘껏 바다를 만끽했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워준 파라솔 밑에서 바다냄새나는 바람을 쐬며..
내가 준비해온 과일을 열심히 깍아먹는 동안
나름 한 '철학' 하시는 엄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오빠와 심오한 '철학'의 세계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지요..
그리고 잠시 뒤엔 모두가 아빠를 따라 바닷속으로 풍덩~
또 한 번 안타까운 것은
내 사진기가, 아빠가 바다에 떠다니는 해초를 발견하여 허리와 머리에 두르고 자랑스럽게 모레사장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을 놓쳤다는 겁니다!
물놀이를 마치고 샤워를 한 뒤 해수욕장을 나와
두 번째로 출발한 곳은 귀자이모가 계시는 약국!
여기서 귀자이모를 만나 귀자이모의 차로 횟집으로 이동하여..
'정말' '음식다운' '만족스러운' 회를 푸짐하게도 얻어먹었습니다..
자 이제 작별의 시간.
짐을 맡겨둔 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많이 멀지 않아서 버스 시간에 맞춰 곧장 올 수 있었지요..
고작 사흘동안 정이 들어버린 의진오빠와
한 장씩 기념촬영!
(앗, 아빠 사진은 없다..)
의진오빠 지금쯤 집에 도착했겄다.
오빠 와서 재밌었어~ 미국 가면 또 보자.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해야 해 :)
첫댓글 먼 곳에 사는 오빠 만나 즐거웠구나^^
정말 유럽쪽은 김매는 농기구들이 다 서서 하게 되어있더라.
김준권 선생이 예전에 스위스엔가 다녀와
그쪽 김매는 농기구를 잔뜩 제작해서 우리나라도 많이 보급된 편이야.
풀밀이, 딸깍이..
근데 영주 사진 참 좋다.
특히나 엄마 아빠 사진은 어쩜 저리 잘 찍노?
정말 영주가 부모님을 끔직히 사랑하는 거 같아 ㅎㅎ
특히 두 분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작품 사진에 가까워.^^
(촌스런 신발조차 얼마나 자연스럽니.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
대리 만족도 되고 말이야 ㅋ)
두 분, 이 더위에 저리 폼 잡는 데도 자연스럽고 젊고 아름다우니
딸 한 번 잘 두었소. ㅋㅋ
김준권선생님은 처음 듣는 분이네요. 풀밀이, 딸깍이.. 이름만 들어서 그 용도를 추측하려면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ㅎㅎ
바다에 갔던날,
햇볕이 많이 따가웠어요.
이 아름다운(?) 사진 속에는 비화가 있답니다.
눈 부시다고 촬영을 재촉하는 엄마와 아빠..
낡은 카메라 렌즈가 고장나 손가락으로 여느라 뻘뻘대는 나..ㅎㅎ
김준권선생은 지금 정농회회장이지.
귀농본부에서 서서 김매는 농기구
(내가 잘 못 쓴 거 같구나. 풀밀이가 아니라 풀밀어인데. 딸깍이, 긁쟁이)을
만들어 파는 데
이 세 가지 가운데 우리는 딸깍이를 즐겨 써.
근데, 영주야
나는 네가 미처 못 찍었다는 사진이 아쉽기 보다는
네가 그 장면을 묘사한 글이 넘 좋은 데 ㅎㅎ
"아빠가
바다에 떠다니는 해초를 발견하여
허리와 머리에 두르고
자랑스럽게 모레사장으로 걸어나오는 장면"
아빠 삶과 사상이
영주에게 시로 비친 게 아닌가 싶어.
이 장면을 언젠 한번 시로 잘 가다듬으면 좋겠구나^^
부끄럽습니다~ 아이른님이 자꾸 이렇게 좋은 것만 들춰주시면 아이른님의 뒤를 이어 자뻑시인이 될 지 몰라요ㅎㅎ
시적인 순간은 비록 글로 남기지 않았어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네.
영주가 잡은 아빠의 그 모습은
내게도 오래 기억에 남지 싶어.^^
이럴 때는 사진보다 시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상상력과 영감과 즐거움을 준다는 말이지 ㅎㅎㅎ
어쩌면 영주 무의식에서 사진 찍기를 거부한 것인지도 몰라 ㅋㅋㅋ
이상, 소혹성에서 이 지구를 찾아온 이방인의 마음을
아이같은 지구인이
칼 융의 사상을 잠시 빌려
이해한 바이오 ㅎㅎ
ㅎㅎ 두 사람의 도란도란 이야기가 참으로 다정하네요.
영주야~ 우리집에 풀밀어와 딸깍이 긁쟁이 다 있는데...
그게, 처음에 열심히 써보려고 했는데
우리 밭들이 경사진데다 워낙 밭에 돌이 많아 잘 안써서 니가 모르는가 보다.
엄마가 보여줄께 ^^
진짜? 몰랐네.. 담에 밭나갈 때 들고 나가서 시범을 보여주시와요~~
한 '철학' 하시는 엄마! 그 엄마와 함께 사시는 따님도 '한 철학' 하시는 듯. ^^